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85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박물관, 비엔티안 중앙도서관, 빠뚜싸이

좀좀이 2017. 7. 19.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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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여행 기록을 남기고 바로 잠을 잤어요. 깊게 잘 잤어요. 눈을 뜨니 아침 8시였어요. TV를 켜고 바닥에 주저앉아 노트북을 다리 위에 올려놓았어요.


"이거 뭐야!"


바닥에 주저앉아서 노트북을 하려는 순간 눈에 보인 작은 점들. 아주 바글바글했어요. 경악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개미떼였어요.


'아, 이건 또 무슨 재앙이냐.'


예전 자취방에 개미가 들끓었던 것이 떠올랐어요. 아무리 과자 봉지를 잘 막아놓아도 잠깐 지나고 보면 과자 봉지 안에 개미떼가 바글바글. '개미는 변온동물이니까 냉장고 안에는 안 들어가겠지' 하고 냉장고에 넣어도 소용없었어요. 어떻게든 비집고 안으로 들어가서 냉장고 안도 개미. 개미떼가 얼마나 징한 존재인지 겪어보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몸이 앞섰어요.


노트북 컴퓨터와 디지털 카메라를 침대 위로 올려놓은 후 물티슈로 개미를 닦아내었어요. 조그만 것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잡아낼 방법이 없었어요. 한 마리씩 잡다가는 오늘 하루 종일 잡아도 다 잡아낼 수가 없었어요. 물티슈로 바닥의 개미를 닦아내는데 백 마리는 넘게 닦아내었을 거에요. 이것도 나름 살생이니까 개미 한 마리당 행운 포인트가 1씩 까인다고 하면 최악의 불운이 따를 수준이었어요.


"여기는 뭔 또 개미가 아침부터 창궐이야?"


루앙프라방에서의 첫 아침도 개미, 비엔티안에서의 첫 아침도 개미였어요. 그래도 루앙프라방에서는 개미들이 얌전히 음료수 마신 컵에서 일렬로 수십 마리가 알짱거리는 수준이었는데 여기는 나름 라오스의 수도라고 개미도 수백 마리였어요. 겨우 다 닦아내었다고 생각했는데 닦아낸 만큼 또 방 안으로 기어들어오고 있었어요. 들어오는 놈들 잡는 수준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을 상황이었어요.


"뭐가 문제야?"


개미를 아무리 닦아내도 한국전쟁 다큐멘터리 속 압록강을 건너는 중공군처럼 개미들이 쉴 새 없이 밀고 들어왔어요.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이것은 대자연과의 끝없는 대결이 될 것이 분명했어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개미를 닦아내는 것을 중단하고 개미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했어요. 개미들의 움직임이 일정했어요. 개미들은 제 신발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어요. 신발을 들추어보았어요. 신발 바닥에 찹쌀밥 비슷한 게 뭍어 있었어요. 전날 돌아오는 길에 신발로 음식물을 밟았고, 그거 떼어먹으려고 개미가 미친듯이 달라붙고 있었어요.


신발을 들고 밖으로 나갔어요. 신발을 털고 물티슈로 신발 바닥을 깨끗하게 닦아내었어요. 방으로 돌아와 모기기피제를 꺼내서 방 입구에 떡칠이 되도록 뿌렸어요.


"어? 이것들 봐라?"


개미들이 요단강 앞에서 알짱거리는 것처럼 문 앞에서 알짱거리기만 할 뿐 문을 넘어오지 못했어요. 모기기피제 살포지역을 못 넘고 계속 어떻게든 들어와보려고 하는 개미들 모습이 너무 웃겼어요. 개미들이 제 방으로 넘어오는 것을 아예 꿈도 못 꾸도록 살포지역을 더 넓히고는 신발 바닥에도 모기기피제를 듬뿍 뿌려주었어요.


이렇게 개미떼의 기습과 격퇴로 2015년 6월 25일이 시작되었어요.


앉아서 노트북 컴퓨터를 하다가 10시 반이 되어서야 숙소에서 나왔어요.


일단 먼저 갈 곳은 중앙우체국이었어요.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위치와는 다른 곳에 있었어요.


"국립박물관부터 보고 갈까?"

"그러자. 그렇게 하는 것이 오늘 덜 걷는 길이지?"

"응. 우체국에서 빠뚜싸이로 바로 가면 돼."


친구가 지도를 보더니 우체국 가는 길에 국립박물관부터 가자고 했어요. 우체국 가는 길에 국립박물관이 있다고 했어요. 친구 말대로 국립 박물관부터 가기로 했어요.


10시 54분. 라오스 국립박물관에 도착했어요.


라오스 국립박물관


국립박물관은 소지품은 맡겨야 하고 카메라는 돈을 따로 받았어요. 그런데 직원이 카메라 요금 받는 것조차 까먹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제가 목에 카메라를 걸고 있는데도 입장료만 받았어요. 입장료만 내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아무 제지도 없었어요. 딱히 제지하지 않아서 카메라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안에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있었어요.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이제 막 들어온 모양이었어요. 가이드가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이끌고 이것저것 설명해주고 있었어요.


1층 입구 바로 앞에 있는 지도에 라오스 남부에 이런 저런 공장이 표시되어 있었어요. 가이드는 자기가 그 지도에 공장이 있다고 표시된 지역들을 가보았는데 공장이 없었고, 라오스 현지인들에게 물어보아도 그런 공장들이 있는지조차 모른다고 이야기하며 그 지도상에 정말 그런 공장들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어요. 가이드는 라오스의 공업은 가내수공업 수준이라고 덧붙였어요.


1층은 정말 볼 것 없었어요. 그래서 1층은 대충 둘러보고 2층으로 올라갔어요.


가이드의 설명을 조금씩 주워들었어요. 꽤 재미있었어요. 가이드는 라오스를 사회주의 국가로 만든 카이손 폼비한 Kaysone Phomvihane 이 라오스를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살게 만든 사람이라고 이야기했어요. 그 말에 꽤 공감이 되었어요. 라오스에 입국해서 지금까지 길거리를 보면서 이 나라 국민 소득 및 생활 수준에 비해 거리가 매우 청결하다고 생각했어요. 동남아시아 국가는 베트남, 라오스, 태국, 인도네시아를 가 보았어요. 확실히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과 라오스는 거리가 깨끗한 편이었어요. 그에 비해 인도네시아, 태국은 길거리가 정말 너무 더러웠어요. 인도네시아야 그렇다 쳐도, 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발전하고 잘 사는 나라인데도요. 또한 매우 재미있는 점이 하나 더 있었어요. 태국을 여행할 때 문맹인 사람을 여럿 만났어요. 그러나 라오스에서는 문맹인 사람은 만나지 못했어요. 라오어는 못하지만 문맹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저는 라오어를 모르고, 라오인들은 대체로 영어를 못 했기 때문에 무언가 물어볼 때는 가이드북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페이지를 펼쳐서 단어나 문장을 보여주었거든요. 이러면 말이 어찌어찌 통했어요. 라오인이 그 문장이나 단어를 읽고 손가락으로 방향을 알려주든가 '예, 아니오', 또는 가격 같은 제가 원하는 대답을 제대로 들려주었거든요. 그래서 라오스 현대사에 대해 매우 궁금해졌어요.


2층은 라오스 현대사 전시실이었어요. 가이드북에는 라오스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프랑스와 미국은 나쁜 놈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되었어요. 실제로 2층은 정말로 재미있게 볼 만 했어요.



이 그림 아래에는 'Paint Lao people being captured and tortured by the French colonialist'라고 적혀 있었어요.



이것은 프랑스 식민지배자들이 라오인들을 강제로 끌고가서 강제노여기키는 그림이에요.


레닌 동상


박물관에는 레닌 동상이 있었어요.


호치민 동상


호치민 조각도 있었어요.



이것은 1941년 당시 라오스 공산당의 활동 상황 지도에요.



이 그림 아래에는 'The uprising of the people in Vientiane plefecture in September 1945' 라고 적혀 있었어요.



이 그림 아래에는 'A Savage operation made by the French to Seize Thakhek on 21th March 1946' 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이 사진 아래에는 'Hmong people urdertare military training' 라고 적혀 있었어요.


카이손 폼비한 흉상


이 흉상의 주인공이 바로 카이손 폼비한이에요.



위 지도에서 오른쪽 분홍색으로 칠한 지역이 1953-1954년에 파텟라오가 해방시킨 지역이래요.



이 사진 아래에는 'The Free Lao Army and Vietnamese volunteers Iiberate Bolovens peateau' 라고 적혀 있었어요.



이 사진 아래에는 'The Neolaoitsala millitary delighted after victory' 라고 적혀 있었어요.



전시실 가운데에 금칠이 된 전사 동상이 있었어요.



사진을 쭉 보았어요.





우리나라에서 보지 못한 라오스 공산화 과정 사진이 많았어요. 우리나라에서 인도차이나 반도의 공산화 과정은 베트남만 다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공산화 과정은 베트남 전쟁의 곁다리 정도로 다루어요. 그나마 캄보디아는 킬링필드 때문에 공산화 이후의 이야기를 조금 다루기는 하지만 라오스에 대해서는 공산화 과정이나 공산화 이후나 알려진 것이 거의 없어요.



이 사진 아래에는 'The pagoda, the sacred place of people, destroyed US imperialist' 라고 적혀 있었어요.



이 사진 아래에는 'Vong pao (smiling in the center of the picture) the commander of the special force the key herchman of the US Imperialist savagely murdered the Lao people' 라고 적혀 있었어요.



이 사진 아래에는 'The imperialist my weapons moved into Laos to bolter minions of carbon it' 라고 적혀 있었어요.


라오스 현대사 전시실 전시물 자체는 별로 볼 것이 없었지만 설명이 재미있었어요. '식민주의자', '제국주의', '꼭두각시' 같은 표현이 꼭 들어가 있었어요.


한편, 저런 표현 때문에 가이드북에서 라오스의 주관적이라고 한 것은 솔직히 저자의 망언이라고 생각했어요.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지배가 악랄했던 것은 사실이에요. 이들이 과연 인도차이나 반도에 살던 사람들을 인간으로나 보았을까요? 장담컨데 아니에요. 오늘날 유럽이 인권 인권 거린다고 과거에도 당연히 그랬을 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에요. 식민 지배를 받은 나라들 대부분이 지금도 지지리 못 살고 힘이 없고 유럽 국가들은 이미지 세탁 참 잘해서 그렇지, 이들도 식민지 통치할 때 일본 못지 않게 악랄했어요. 그리고 미국이 라오스에 폭탄을 엄청나게 투하한 것도 사실이에요. 우리는 일본 강점기에 대해 일본 강점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근대화되었다고 절대 말하지 않아요. 오히려 우리나라를 강점했기 때문에 일본이 우리에게 잘못을 했다고 확실히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식민지 근대화론은 쓰레기 헛소리라고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프랑스의 라오스 지배, 미국의 라오스 공격에 대한 박물관 설명이 라오스의 주관적인 관점이어서 프랑스, 미국에 대해 나쁜 놈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었어요. 우리를 지배한 일본은 나쁜 놈이고 베트남, 라오스를 지배한 프랑스, 이들을 공격한 미국을 그들이 나쁘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들의 주관적 관점이라고 하는 건 정말 많이 언어순화해서 말해야 이중잣대에요.


박물관을 자세히 관람하고 있는데 직원이 이제 점심시간이라 문을 닫을 것이니 빨리 보고 나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남은 부분을 대충 후딱 보고난 후 박물관에서 나왔어요.


"우체국도 점심시간이라고 닫는 거 아냐?"

"왠지 그럴 거 같은데."

"그러면 우리도 밥부터 먹자."


박물관도 점심시간이라고 문을 닫아버리는데 우체국도 당연히 점심시간이라고 문을 닫아버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점심을 먹은 후 우체국으로 가기로 했어요. 마침 근처에 피자집이 보였어요. 그래서 점심으로 피자를 먹기로 했어요.


샐러드바도 같이 주문했어요. 매우 작은 그릇이 하나 나왔고, 딱 한 번만 퍼갈 수 있다고 했어요.


"샐러드바 참 비싸네."


라오스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 쳐다보았어요. 양상추를 접시 주변에 깔아서 음식을 담을 수 있는 면적을 최대한 늘린 후 샐러드바 음식을 마구 팍팍 퍼가고 있었어요.


'저거 우리도 예전에 했던 짓인데.'


그 모습을 보고 옛날 생각이 나서 미소를 지었어요. 정확히 어디인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저도 대학교 저학년때 피자 가게 샐러드바에서 한 번만 떠갈 수 있다고 해서 비슷한 짓을 했었어요. 저 혼자 독창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모두가 그렇게 했어요. 양상추로 테두리를 더 넓힌 후, 샐러드를 최대한 많이 떠갔어요. 한 번만 떠갈 수 있었으니까요. 그것을 여기에서 다시 하게 될 줄은 저도 몰랐어요. 저도 당연히 라오스 사람들이 하듯 양상추로 샐러드를 담을 수 있는 면적을 최대한 늘린 후 최대한 많이 푹푹 떠왔어요.


'여기 라오스 사람도 많이 오네?'


가격이 라오스 물가 치고 꽤 있는 가게였어요. 라오스 사람들은 별로 안 오고 외국인들이나 가는 가게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라오스 사람들도 많이 왔어요. 더욱 깜짝 놀란 것은 라오스인들이 많이 먹는다는 것이었어요. 전날 블로그 지인분께서 원래 라오스인들은 음식을 적게 먹는데 요즘은 점점 많이 먹고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여기가 라오인들에게 특별한 곳이라 작정하고 푹푹 떠서 먹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식당에 들어온 라오스 사람들은 음식을 엄청나게 먹고 있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기본 1인분 자체가 태국보다 라오스가 양이 많았어요. 비만투성이인 태국에 있다가 라오스 와서 날씬한 사람들을 보고 라오스 사람들은 소식할 줄 알았는데 먹을 때는 정말 많이 먹었어요. 설마 세 끼 다 저렇게 먹지는 않겠지? 그보다 여기는 어떻게 비만이 별로 없지? 그저 신기할 뿐이었어요.


점심을 먹는데 스콜이 내렸어요. 그래서 아주 느긋하게 먹었어요. 다행히 나갈 때가 되자 스콜이 멈추었어요.


점심을 먹고 나와서 중앙우체국으로 갔어요.


라오스 중앙우체국


우체국 안으로 들어갔어요.


라오스 우체국


우체국 한켠에서는 수집 우표 및 일반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어요.



우체국 안에서 판매중인 일반 기념품은 질이 꽤 괜찮은 편이었어요. 대신 가격도 그만큼 있는 편이었어요. 혹시 우표 살 만한 것이 있나 살펴보았어요. 우체국에서는 왕조 시절 우표도 판매하고 있었어요.


'예쁜 건 이미 다 팔렸나?'


음식, 전통 의상 우표는 왕조 시절 것에만 조금 있을 뿐이었어요. 공산화 이후 우표 중에는 음식, 전통의상 우표가 예쁜 것이 없었어요. 딱히 사고 싶은 우표가 보이지 않아서 어떤 것을 살까 꼼꼼히 골랐어요. 가장 먼저 이 우표를 집어들었어요.


라오스 우표


이 우표는 라오스가 공산화되기 전, 공산 반군인 파텟라오가 1974년에 발행해 사용하던 우표에요. 오른쪽 맨 위에 있는 우표를 보면 전투기 날개에 US 라고 흰 색으로 적혀 있어요.


이 우표를 고른 후 다른 우표 몇 장을 고르고 우체국에서 나왔어요. 이제 빠뚜싸이에 갈 차례였어요. 란쌍 거리로 걸어갔어요.


"도서관이다!"



입구에 VIENTIANE CAPITAL LIBRARY 라고 적혀 있었어요. 비엔티안 도서관.


'저기는 그래도 조금 나을 거야.'


전날 국립 도서관에서의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이 도서관도 한 번 들어가보기로 했어요.



신발을 벗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어요.


라오스 비엔티안 도서관


'기대한 내가 바보지...'


여기는 동네 작은 도서관 수준이었어요. 우리나라의 어린이 도서관 규모였어요. 라오어로 된 책은 정말 적었어요. 대부분 태국어 책이었어요.


"내일 무조건 동덕대로 간다!"


도서관 안에 교복을 입은 여대생 세 명이 잡담을 하고 있었어요. 인사를 하고 말을 걸었어요.


"여기에서 동덕대 어떻게 가요?"


세 명 중 한 명은 영어를 괜찮게 했어요. 자기가 동덕대 학생인데 지금 자기 차를 타고 동덕대 데려다주냐고 물어보았어요.


"아니에요. 오늘은 빠뚜싸이와 탓 루앙 갈 거에요. 내일 갈 생각이에요."


동덕대 가는 방법으로 시작해서 간단히 이야기를 나눈 후 연락처를 교환했어요.


'일단 급한 불은 껐다.'


동덕대 가는 방법도 알아내었고, 영어를 아는 라오인의 연락처도 획득했어요. 이들과 얼마나 자주 연락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있다'와 '없다'의 차이는 매우 컸어요. 연락을 자주 주고 받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지만 일단 영어를 아는 라오인 연락처가 생겼으니 라오어 공부하다 모르는 것 있을 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생겼어요. 물론 대답이 돌아올지는 미지수지만요.


도서관에는 라오스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가 있었어요.


"생각보다 수준이 낮지 않은데?"


라오인들이 대체로 영어를 못해서 중학교 1학년 마지막까지 알파벳을 배우고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교과서 수준이 그렇게 낮지 않았어요. 우리나라 중학교 1학년 영어책보다 조금 쉬운 편이었어요.


"너희들 태국어 알아?"

"응. 태국어는 라오어와 80% 같아서 그냥 볼 수 있어."


우리나라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책을 펼쳐놓고 핸드폰으로 채팅을 하고 있었어요. 라오어 입력을 어떻게 하나 보았어요. 스마트폰 자판으로 태국어 자판을 이용하고 있었어요.


라오인 여대생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도서관에서 나와 빠뚜싸이로 갔어요.



라오스 비엔티안 빠뚜싸이


빠뚜싸이는 파리 개선문을 따서 만든 거라고 하는데 파리 개선문보다 훨씬 멋있었어요. 빠뚜싸이의 별명은 '수직 활주로'라고 해요. 그 이유는 인도차이나 전쟁 중 미국이 신공항 지으라고 지원해준 시멘트로 지었기 때문이래요.


빠뚜싸이는 입장료를 내면 안으로 들어가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어요.




계단을 걸어올라갔어요.


"여기 뭐지?"


한 층 올라갔을 때 뭔가 당황스러우면서 재미있는 장면이 펼쳐졌어요.




빠뚜싸이 내부에는 각 층마다 기념품 상점이 있었어요. 이런 곳 내부에 전시물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는 흔한 것이었지만, 이렇게 기념품이 잔뜩 들어와 있는 것은 깜짝 놀랄 일이었어요. 이렇게 전 층을 기념품 상점 시장으로 만들어놓은 기념물은 본 적이 없었거든요.


빠뚜싸이 안에는 서점도 있었어요. 이 나라 기준으로 서점에 책이 꽤 많았어요. 라오스 와서 돌아다닌 서점들보다 라오어로 된 책이 훨씬 더 많아보였어요.


한 눈에 보는 라오스어 회화


"이거 내가 갖고 있는 책이잖아!"


라오스 여행에 들고 와서 매우 유용하게 써먹고 있는 제 라오어 교재인 '한 눈에 보는 라오어 회화'가 여기에도 있었어요. 차이점이라면 표지 정도였어요. 내용은 똑같았어요.


"이거 기념으로 살까?"


신기해서 기념품으로 구입할까 하다가 돈을 아끼기 위해 관두었어요. 제목만 같은 것이 아니라 내용도 똑같아서 굳이 구입해야 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이 책을 구입한다면 오직 표지 때문에 구입하는 꼴이었어요. 그렇게 여행 기념을 위해 책표지에 돈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어요.



계단을 올라갔어요.





라오스 비엔티안 대통령궁


'더 위로 못 올라가나?'


꼭대기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조그만 기념품 가게가 보였어요.



그리고 그 안에 진짜 꼭대기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어요.



계단 위에서 가게 사진을 한 장 찍었어요.



"다 올라왔다!"


비엔티안 시내가 시원하게 보였어요. 예전에 비엔티안에 빠뚜싸이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다는 고도제한이 있었어요. 그래서 빠뚜싸이 꼭대기에 올라가자 시야를 가로막는 높은 건물이 보이지 않았어요. 아주 멀리까지 볼 수 있었어요.



"저거 탓 루앙 아냐?"



멀리 아주 작게 황금빛 뾰족한 것이 보였어요. 저것이 바로 탓 루앙이었어요.


다시 아래로 걸어내려왔어요.



빠뚜싸이 천장을 사진으로 찍고 나서 시간을 확인했어요. 오후 3시 25분이었어요. 탓 루앙은 오후 4시에 문을 닫아요. 빠뚜싸이에서 탓 루앙까지의 거리는 2km. 걸어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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