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뜨거운 마음 (2011)

뜨거운 마음 - 05 아제르바이잔

좀좀이 2012. 4. 7.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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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제르바이잔 국경 검문소에 들어갔어요. 비자 발급 받을 때에는 초청장, 여행 바우처, 호텔 컨펌 레터를 준비해야 해서 아제르바이잔 입국 심사도 꽤나 까다롭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별 것 없었어요. 비자를 자세히 보는 것 같았지만 특별히 꼬투리 잡거나 그런 것은 없었어요. 입국 도장을 찍어주며 입국 심사관이 말했어요.
"웰컴 투 아제르바이잔."


국경을 넘어 아제르바이잔 땅에 들어왔어요. 이제부터는 아제르바이잔. 이번 여행의 핵심인 지역이었어요. 여행이기는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에서 공부에 필요한 자료 수집이 가장 중요한 목표. 원래 계획은 아제르바이잔 본토의 셰키, 이스마일르, 겐제, 바쿠를 보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막상 계획을 세우니 이번에는 자료 수집 때문에 가는 것이기도 했지만 여행이기도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 안 가 본 곳을 가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여행 일정을 다 뜯어고치면서 아제르바이잔에서의 일정도 완전히 뜯어 고쳤어요. 어차피 바쿠에서 당일치기로 볼 수 있는 곳은 진흙화산으로 유명한 고부스탄. 그러나 진흙화산은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았어요. 다녀온 사람들의 글과 동영상을 보니 진흙이 멋지게 펑펑 터지는 게 아니라 작게 뽈록 뽈록 끓는 것이었어요. 게다가 그것을 보려면 옷을 버릴 각오를 해야 했어요. 하지만 여행 동안 빨래는 나의 몫. 옷을 버릴 것이란 말에 가기 싫어졌어요.


아제르바이잔은 국토가 두 개로 나누어져 있어요. 바쿠가 있는 쪽은 본토이고 터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쪽은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이에요. 자치공화국이라는 말이 멋져 보였어요. 왠지 자치공화국이 아니라 '자치共'이라고 해야할 것만 같았어요. 더욱이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을 다녀왔다는 한국인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어요. 알고 지내던 아제르바이잔 친구가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이 매우 아름답다고 했어요. 중요한 것은 그 친구도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을 가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계획을 바쿠에서 3일 머무르고 나흐치반에서 2일 있는 것으로 짰어요.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에서 터키 동부로 나와서 1박 하고 그루지야 바투미에서 1박하고 아르메니아로 넘어가서 아르메니아를 보고 다시 그루지야로 돌아와 그루지야를 마저 보고 귀국하는 것으로 계획을 확정했어요. 그래서 아제르바이잔 일정이 더욱 중요했어요.


설레는 마음과 함께 내딘 첫 걸음. 그리고 우리를 열렬히 맞아주는 택시 기사 아저씨들과 환전상 아저씨들.


좀비의 밤이다.


아무리 '녜뜨'라고 외치고 '노'라고 외쳐도 달라붙는 택시 기사 아저씨들과 환전상 아저씨들. 버스가 없으니 무조건 택시를 타야 한대요. 처음에는 100마나트 부르더니 나중에는 50마나트까지 떨어졌어요. 진짜 택시 안 탄다고 아무리 외쳐도 소용이 없었어요. 사실 택시를 타야할 이유가 전혀 없었어요. 호텔은 다음날부터 예약되어 있었어요. 국경을 넘었지만 아직도 여행 첫날. 굳이 바쿠로 기어들어가도 호텔 방을 찾아 돌아다녀야 했어요.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바쿠에서 굳이 일박을 할 필요까지는 없었어요. 무슨 여행 후반이라 체력적으로 힘든 것도 아니었구요.


좀비 영화를 보면 아무리 싫다고 외쳐도 좀비들이 바득바득 달려들어요. 진짜 그 장면의 실사판이었어요. 날은 가뜩이나 엄청 습하고 푹푹 찌는데 택시 기사 아저씨들과 환전상 아저씨들은 우리를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국경 입구에 경찰이 서 있었어요. 하지만 경찰은 우리를 멀뚱멀뚱 지켜볼 뿐이었어요. 아니, 택시 기사들과 담배를 태우며 잡담 중이었어요. 말 그대로 좀비의 밤. 좀비 영화 실사판. 아무리 도망을 가도 끈질기게 쫓아왔어요. 무슨 거머리 엑기스를 통째로 들이마셨나...그나마 다행이라면 팔을 잡지 않았다는 것. 무작정 국경 반대쪽으로 걸어가자 200미터쯤 쫓아오다 그만 쫓아왔어요.


찰거머리 진드기 좀비 같은 택시 기사들과 환전상들로부터 벗어나자 숨을 조금 돌릴 수 있었어요. 정말 국경에서 자야 하나? 노숙? 택시를 타고 바쿠에 갔다면 숙소가 없어서 막막했을 거에요. 하지만 여기라고 다를 것은 없었어요. 오늘 밤은 대체 어떻게 하지? 주변에 잠을 잘 곳은 당연히 보이지 않았어요.
"버스 있어!"
친구가 버스를 찾았어요. 일단 버스 쪽으로 갔어요. 친구가 운전기사와 이야기를 하더니 결과를 알려주었어요. 확실한 것은 오늘 밤에 바쿠로 가는 버스는 없었어요. 이 버스는 내일 아침 6시 반 출발. 한 사람당 버스비는 10 마나트이고 버스비를 내면 버스 안에서 잠을 잘 수 있다고 했어요. 노숙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방법이었어요.
"좋아요."
버스 기사에게 달러로 돈을 낼 수 있냐고 하자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환전상을 불러왔어요. 국경이면 환율이 나쁜 것이 일반적이에요. 그래서 50 달러만 환전해서 버스비를 지불했어요. 나중에야 알았지만 국경 환전상의 환율이 바쿠 시내 환전소 환율보다 더 좋았어요.


가방을 버스 짐칸에 집어넣고 버스에 올라탔어요.
"헉!"
버스이니 편하게 눕는 것은 포기한다 하더라도 이건 아니었어요. 정말 너무 더워서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이것은 버틸 수 있는 더위가 아니었어요. 안개 사우나에서 잠자는 기분. 딱 그 느낌이었어요. 바로 밖으로 뛰쳐 나왔어요. 밖으로 뛰쳐나오니 그나마 살 것 같았어요.


여기서부터 생존 아제리어의 시작. 정말 눈물 나오는 현실은 영어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어요. 물 없이 긴 밤을 보내는 것은 불가능. 시계를 보았어요. 정말 시간이 안 간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Harada su ala bilar?"
문법적으로 맞는지 틀리는지 중요하지 않았어요. 되는 대로 일단 말하고 보기. 다행히 사람들이 알아들었어요. 사람들이 가게를 알려주었어요. 시간이 너무 늦어서 음식 파는 곳은 없었지만 물과 아이스크림 파는 가게는 문이 열려 있었어요. 그 이유는 엄청난 화물 트럭들 때문이었어요. 아제르바이잔에서 그루지야로 넘어가려는 화물 트럭의 줄이 끝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거의 10분에 한 대 정도 국경을 통과하는 것 같았어요. 한참 있다가 한 대 빠져나가고, 또 한참 있어야 한 대 빠져나갔어요. 아예 밤에 국경 통과하는 것을 포기하고 트럭 안에서 잠자는 기사들도 있었어요. 트럭이 바글바글 거리니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도 간간이 있었어요. 버스비 내고 남은 돈으로 물을 샀어요.


"아야!"
친구가 갑자기 소리쳤어요.
"왜?"
"벌레가 물었나봐."
진짜 최악의 밤. 진짜 벌레가 엄청나게 많았어요. 가로등 근처는 하늘 반, 벌레 반. 땅에도 벌레가 바글바글. 위험한 것은 둘째 치고 벌레 때문에 도저히 밖에 있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버스 안에 들어가면 끔찍한 더위. 버스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어요.
"그냥 자야겠다."
버스 의자 위에 드러누웠어요. 안에서는 더위, 밖에서는 벌레에 시달리다가 결국 지쳐서 버스 의자 위에 누워 버렸어요. 누워서 잠시 눈을 붙이는데 누군가 들어왔어요. 들어온 사람은 버스 기사. 버스 기사는 버스 문을 닫고 의자 위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어요. 에어컨? 그딴 거 몰라요. 가뜩이나 더운데 버스 문을 잠그고 잠들었어요. 창문을 열 수 있는 버스가 아니라 정말 끔찍하게 더웠지만 나름 잘 만 했어요. 왜냐하면 정말 피곤했거든요. 최고의 밥 반찬은 배고픔이고 최고의 잠자리는 피로라는 것을 체득했어요. 진짜 피곤하지 않았다면 머리 끝까지 화났을 거에요.


카메라 가방을 메고 정말 잘 잤어요. 눈을 떠 보니 아침 6시. 버스가 얼마나 더웠는지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어요. 셔츠 속 목걸이 지갑을 꺼내 보았어요. 얼마나 땀을 많이 흘렸는지 미국 달러를 비닐 봉지에 집어넣고 목걸이 지갑에 집어넣었는데 달러가 눅눅해 졌어요. 다행히 여권은 안 젖었어요.


"아...젠장!"
얼마나 덥고 땀을 많이 흘렸는지 카메라 렌즈에 김이 서려 있었어요. 처음에는 사진이 떨렸거나 안개가 낀 줄 알았어요. 하지만 카메라에 나온 사진과 제 눈이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날 수는 없었어요. 그리고 안 떨린 사진도 뿌옇게 나왔어요.
"벌써 카메라 망가지면 어떻하지? 아놔...진짜 망했네."
이 상황에서 좋은 말이 절대 나올 수 없었어요. 이제 여행 시작했어요. 그런데 벌써 카메라가 망가지면 답이 없어요. 물론 큰 디카와 작은 디카를 가져갔는데 김이 서린 것은 큰 디카 뿐. 이건 불행 중 다행. 하지만 둘은 용도가 조금 달라요. 큰 디카는 후지필름의 HS10인데 광각 아답터를 끼우면 화각이 18mm가 되요. 그리고 망원은 720mm. 화각만 따지면 이것은 무적의 화각이에요. 작은 디카는 삼성의 WB500. 이것은 광각은 24mm인데 가볍게 찍으려고 가져온 카메라에요. 가장 열받는 것은 HS10은 구입해서 몇 번 찍어보지도 않은 카메라였는데 여기에 김이 서렸다는 것이었어요.


국경의 아침. 아침은 쌀쌀했어요. 사실 쌀쌀한 것이 아니라 찜통 버스 안에서 기어나왔더니 상대적으로 쌀쌀하게 느껴진 것이었어요.


국경의 아침. 정확히는 국경의 새벽. 제가 사진을 찍을 때 제 뒤에 빵과 차, 커피를 파시는 아주머니가 계셨어요.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장사하고 계셨어요. 절대 안 춥고 더운 날씨인데 쌀쌀하게 느껴져서 차를 한 잔 사 마셨어요. 차를 받았는데 정말 엄청나게 뜨거웠어요. 각설탕 3개 집어넣고 후후 불어가며 마시는데 아주머니께서 사탕을 쥐어주셨어요.


6시 반. 드디어 버스가 출발했어요. 드디어 바쿠 가는 길.


뭔지는 몰라요.


해가 떠오르고 있었어요. 저 태양이 이날 한 건 제대로 합니다.


아제르바이잔 - 그루지야 국경 근처 마을의 아침이 시작했네요.


목동 아저씨께서 소를 몰고 나오시네요.



저 군인 아저씨는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요? 집에 가는 버스? 아니면 부대 복귀 버스?


아제르바이잔 깃발을 보자 이제 아제르바이잔 영토에 들어온 것이 확실히 실감났어요.



토부즈 도착. 이때부터 벌써 진지하게 버스에서 내려 저 음료수를 사먹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어요.


들판에 쓸쓸하게 서 있는 버스 정거장. 그런데 자세히 보면...


내부는 모자이크로 예쁘게 꾸며놓았어요.



아침 일찍부터 들판에 바글바글한 양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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