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뜨거운 마음 (2011)

뜨거운 마음 - 04 조지아 (그루지야) 트빌리시

좀좀이 2012. 4. 1.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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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빌리시 공항에 들어가며 슬슬 긴장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요. 여기는 그루지야. 드디어 구 쏘련의 영토.


구 소련 영토라 무서운 것이라면 딱 두 가지 이유였어요. 첫 번째, 영어가 정말 안 통하기로 악명이 높다는 것. 두 번째, 경찰이 돈 요구하기로 악명 높다는 것. 그리고 부수적으로 사진 찍으면 안 되는 곳이 생각보다 아주 많다는 것. 과거 동구권 국가들 가운데 폴란드를 제외하고 전부 다녀보았지만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어요.


공항 안에는 기념품점이 많이 있었어요. 조금 구경하려 했으나 시간이 없고 공항 안에 있는 가게는 비쌀 거라는 생각에 대충 훑어보기만 했어요. 예쁜 기념품들이 참 많았어요. 시내에 가면 더욱 많겠지? 내심 기대했어요. 공항에서 약간의 돈을 현지화인 라리로 바꾸고 밖으로 나왔어요.


밖에 나오자마자 달라붙는 택시 기사들. 그러나 37번 버스를 타면 기차역까지 바로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아무리 여행 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인포메이션 센터는 공항 안에 있었어요. 다행히 인포메이션 센터는 영어를 할 줄 알았어요.


문제는 그 누구도 어디서 버스를 타는지 안 알려준다는 사실. 사람들을 잡고 물어보았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았어요. 이유는 당연했어요. 영어를 아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짐을 끌고 공항 밖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공항 앞에 버스 한 대가 서 있는 게 보였어요.
"기차역 가나요?"
당연히 아무도 못 알아들었어요.
"빠이찌 바그잘...?"
당연히 엉터리 러시아어. 우리나라 말로 하면 '가다 기차역?'. 그래도 통했어요. 기사는 맞다고 했고 일단 올라탔어요.




버스에 올라탔어요. 버스에 타자마자 더위가 확 몰아쳤어요.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좁기는 엄청 좁은데 냉방시설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어요. 의자도 아주 인체 비공학적 설계로 만들어져 있었어요. 내부는 몰타에서 돌아다니는 버스와 비슷한데 한 가지 좋은 점이라면 뒤에서도 돈을 낼 수 있다는 점.



공항에서 나오는 길. 역시나 아무 것도 없었어요. 버스는 계속 덜컹거렸어요. 창문을 열어놓았지만 더운 것은 어쩔 수 없었어요. 이건 아주 극악의 더위. 2011년 7월의 서울은 매일 비가 와서 선선했어요. 습하기만 엄청 습하고 온도는 차가워서 찬물로 샤워하기에는 약간 고민되는 날씨. 그러나 여기 오자마자 저를 덥친 것은 어마어마한 더위. 제발 에어컨으로 바람이라도 잘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에어컨은 고사하고 창문도 제대로 안 열려서 안은 푹푹 찌는 찜통이었어요.


매우 낯익은 얼굴. 이것은 조지 부시 아니여! 알바니아 외에 세계적으로 미움받았던 조지 부시가 예쁨받는 나라가 여기 또 있었네요. 알바니아는 코소보 문제에서 조지 부시가 알바니아인들 편을 들어준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표 발행하고 조지 부시가 알바니아 방문했을 때 국민들이 열광적으로 환호해서 조지 부시가 일일이 악수해 주었어요. 여기는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조지 부시 거리까지 있어요. 왜 이 나라가 조지 부시에 열광하는지 궁금해졌으나 언어 문제로 인해...


버스를 타고 가며 이것 저것 보았어요.


이런 것도 보고...


이런 것도 보고...


이런 것도 보고...


이런 것도 보고...


이런 것도 보고...


이런 것도 보았어요.


이런 것을 보며 트빌리시에는 반드시 오래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꽤 볼 것이 많아 보였고, 도시도 예상보다는 매우 깔끔했어요. 물론 당연히 후줄근했지만 제가 생각했던 수준은 거의 우리나라 재개발 예정 지역 수준. 그러나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버스를 타고 겨우 기차역에 도착했어요. 한 것은 버스를 탄 것 뿐이었지만 버스를 찾는 것부터 내리는 것까지 의사소통도 제대로 안 되고 안은 후덥지근하고 마구 흔들려서 생각보다는 힘들었어요.


드디어 기차역.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기차역에 들어가 매표소에 갔어요. 계획은 이날 바쿠행 야간열차를 타고 가는 것이었어요. 매표소에는 무뚝뚝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있었어요.

"바쿠행 기차 몇 시인가요?"

아주머니는 아무 말 없이 뚱한 표정으로 다른 매표소를 가리켰어요. 아...저기로 가라는 말이구나.


아주머니가 가리킨 매표소에 갔어요.

"바쿠행 기차 몇 시인가요?"

"없어요."

"바쿠행 기차가 없다니요?"

하지만 의사소통 불능. 국제선 매표소인데도 영어는 제대로 통하지 않았어요. 다시 러시아어와 영어를 섞은 대화 시작. 그러나 그나마도 곧 한계를 보였어요. 매표소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경찰이 오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진상을 부린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문제. 결국 아주머니는 종이와 볼펜을 꺼냈어요.

"악! 악! 악! 악!"

아주머니께서 아주 큰 소리로 뭐라뭐라 강조하시며 종이에 쓰셨어요. 물론 뭐라고 하셨는지는 이해 불가. 하지만 종이에 쓴 것을 보니 이해가 되었어요. 트빌리시에서 바쿠까지 가는 기차는 오직 하루에 한 대. 출발 시각은 오후 4시. 하지만 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4시를 넘어버렸어요. 더욱이 시계는 터키 시간에 맞추어 놓았어요. 하지만 그루지야는 터키보다 한 시간 빠름. 즉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를 넘어버렸어요.


여행 처음부터 일정이 꼬여버렸어요. 그리고 이것 하나 때문에 여행 일정은 여행 중반까지 계속 꼬이게 되었습니다.


일단 기차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오는데 작은 서점이 하나 보였어요. 일단 서점에 들어갔어요. 저는 여행을 가면 현지어로 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구입해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구입하는 이유는 제가 처음으로 끝까지 다 읽은 영어 원서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이기 때문이에요. 군대에서 시간날 때마다 영어 사전을 뒤적이며 조금씩 읽다보니 상병때부터 읽기 시작해서 병장 꺾이고나서 다 읽었어요. 그래서 제가 여행한 국가의 언어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비록 영어판 이후로 단 한 권도 끝까지 읽은 것은 없지만 기념으로 구입하고 있었어요.

"여기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있나요?"

영어로 물어보았는데 다행히 영어가 통했어요.

"예. 그런데 그루지야어로 된 것 밖에 없어요."

"예. 그루지야어로 된 것 주세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그루지야어판을 구입한 후 역에서 나왔어요. 참고로 기차 매표소는 3층에 있었어요. 1층에 내려와서 아무나 잡고 버스 정거장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오르타쨜라 버스정거장'에 가면 국제선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역시나 대화 불가. 사람들은 한결같이 '즈나이쉬 빠 루스끼?'라고 물어보았어요. 한참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다 겨우 마슈르트카를 타고 가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마슈르트카를 타고 가는 길의 풍경들이에요.


이것도 역시 마슈르트카에서 본 풍경.


이것 역시 마슈르트카를 타고 오르타쨜라로 가는 길에 본 풍경이에요.


오르타쨜라로 도착했는데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감도 안 오게 생겼어요. 앞에 큰 건물이 있기는 한데 텅 비어서 지금 쓰는지 안 쓰는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았어요. 분명 맞게 왔는데...사람들이 오르타쨜라라고 했어요.


"어디 가세요?"

택시 기사가 다가와 달라붙었어요. 가볍게 무시. 그래도 계속 달라붙었어요.

"바쿠에 가요!"

일부러 아제르바이잔어로 대답했어요. 여기 사람들이 아제리어를 알 리는 없겠지. 오르타쨜라까지 오며 겪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러시아어와 그루지야어만 알았어요. 일단 외국인을 만나면 무조건 러시아어. 외국인인데 그루지야어로만 이야기하는 사람도 보았어요. 그래서 일부러 아제리어로 대답했어요. 택시 기사를 골탕 먹이려고 아제리어로 대답한 것은 아니었어요.

"저기가 오르타쨜라인데 버스 없어요. 아침에 있어요."

그래도 솔직한 택시기사. 나중에야 알았지만 택시기사의 말이 맞았어요. 오르타쨜라에서 바쿠 가는 버스가 있기는 있는데 오전 11시에 있어요. 그 이후로는 버스가 없어요. 더욱이 야간 버스는 더더욱 없어요. 여담이지만 카프카스 지역을 돌아다니며 많은 택시기사들이 달라붙었는데 거짓말해서 택시에 태우려는 기사는 못 보았어요.


"여기에서 지금 아제르바이잔 가려면 국경을 육로로 넘어서 국경에서 버스를 잡아타야 해요."

택시 기사 아저씨는 계속 볼 것 없는 바쿠 가지 말고 예레반에 가라고 했어요. 아저씨의 택시 간판을 보니 'ЕРЕВАН'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아저씨는 예레반이 정말 아름다우니 예레반까지 가라고 했어요. 그러나 우리는 무조건 바쿠에 가야 했어요. 트빌리시에서 일박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여행 일정을 짤 때 내일부터 바쿠 일정 시작이라고 잡아놓았기 때문이었어요. 하루 늦게 가면 예약한 호텔 하루 날리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이후 일정들이 계속 꼬이기 때문에 반드시 오늘 아제르바이잔에 넘어가야 했어요. 정확히 하자면 내일 바쿠에 들어가야 했어요. 그러나 다음날 야간 열차로 바쿠에 넘어가면 바쿠 도착은 모레 도착. 버스가 아침 11시에 있다고 했는데 그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어요. 트빌리시-바쿠 버스는 있다고만 들었을 뿐 몇 시에 있는지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어요. 예전에 이스탄불에서 티라나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해서 그것 믿고 이스탄불에서 헤멘 기억이 있는데다 영어로 바쿠행 버스가 몇 시에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 (이 판단은 정확했어요. 여행 끝날 때까지 영어가 안 통하는 문제로 엄청나게 고생했어요.) 시간도 많이 늦었어요. 여차하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될 상황. 판단을 빨리 내려야 했어요.

"아제르바이잔 국경까지 50라리."

50라리면 그루지야에서는 큰 돈. 한국돈으로 약 4만원. 그러나 싸다 비싸다 바가지다 논할 상황이 아니었어요. 한국이라면 슬슬 해가 질 시각. 무조건 내일 바쿠에 들어가야하는 상황에서 선택할 여지가 없었어요. 그래서 50라리를 주고 국경까지 가기로 했어요.



택시 타고 국경 가면 본 풍경.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어요. 무언가 둥글둥글하면서 완만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스탈린이 태어난 나라이고 러시아와 전쟁을 했었던 국가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풍경이었어요. 확실히 오래되고 낡아보이기는 했지만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였어요.


택시는 평지를 달리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넘었어요. 꼬박 2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 그루지야-아제르바이잔 국경에 도착했어요. 시속 100km로 2시간을 달렸으니 50라리를 주었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많은 돈을 내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어요. 한국 택시 요금과 비슷하게 낸 셈.


국경에 도착하니 이번엔 바쿠행 택시를 타라는 택시 기사들이 달라 붙었어요. 택시 기사들에게 계속 '녜뜨'라고 소리치며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곳으로 갔어요. 줄이 너무 길어서 아마 1시간은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바쿠'와 '녜뜨'를 외치는 걸 본 몇몇 청년이 저희를 향해 걸어와 뭐라고 말했어요.

"예?"

그 사람들은 뭐라고 말했지만 아쉽게도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계속 되는 대화의 단절. 사람들은 계속 우리에게 무언가 알려주려고 했지만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그 사람들은 결국 주변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고, 드디어 영어를 아는 사람 한 명이 나왔어요.

"여기 말고 저 통로로 가세요."

사람들이 줄 서 있었던 이유는 아제르바이잔에서 그루지야로 사람들만 건너왔고 버스는 못 건너왔기 때문에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우리는 그루지야에서 아제르바이잔으로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반대편 사람이 아무도 없는 통로로 가서 국경 심사를 받고 넘어가면 되었어요.



그루지야에서 아제르바이잔으로 넘어가는 국경 통로. 이 통로 가운데에 그루지야 출국 심사대가 있고 그 너머부터는 양쪽의 중립지역. 중립지역을 걸어 넘어가면 아제르바이잔 입국 심사대가 있어요.


"여권 주세요."

다행히 출국 심사대의 직원 두 명은 영어를 할 줄 알았어요. 두 사람은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았어요. 마치 무료한데 제 발로 걸어들어온 구경거리를 보는 듯 했어요.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남한이요."

"김정일 알아요?"

"예?"

여권을 뒤적이며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보아서 남한에서 왔다고 하니까 다짜고짜 김정일 아냐고 물어보았어요.

"김정일 이즈 크레이지 가이."

이명박, 반기문은 모르면서 김정일은 알고 있었어요. 직원들은 담배를 태우며 김정일이 미친 놈이라고 했어요. 우리도 김정일 싫다고 했어요. 여행을 다니며 깨닫게 된 사실은 한민족 5천년 역사 중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민족 인물은 세종대왕도 이순신도 아닌 김정일이었어요. Republic of Korea가 아니라 South Korea에서 왔다고 해도 사람들이 물어보는 것은 '김정일 아냐', '김정일 어떻게 생각해'였어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더불어서 박지성도 알았어요. 하여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대충이나마 한국을 아는 사람이라면 김정일 아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루지야 출국심사는 별 것 없었어요. 그래서 그루지야에 대한 인상이 매우 좋게 남았고, 여행의 마지막은 그루지야에서 아름답게 끝내기로 결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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