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72 라오스 여행 - 루앙프라방 왓 씨분흐앙, 왓 쑤완나 키리, 왓 씨앙통

좀좀이 2017. 4.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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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절이 있네?"


절이 끝없이 나왔어요. 절 너머 절이었어요. 절 하나 보고 조금 걷나 싶으면 절이 하나 또 나왔어요. 이건 절이 바글바글 모여 있다는 것으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절이 아예 다닥다닥 붙어 있었어요. 절 하나 보고 바로 옆 절 가는 식이었거든요. 치앙마이에 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 정도로 많이 있지는 않았어요. 이렇게 절이 많이 몰려 있는 곳은 루앙프라방이 처음이었어요.


왓 씨히뭉쿤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옆 절이나 마찬가지인 절로 갔어요. 여기는 라틴 문자로 적힌 절 이름 표지판이 없었어요.



라오어로 ວັດສຼີບຸນເຮືອງ 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왓 씨분흐앙이었어요. 지도에는 Wat Sibounheuang 이라고 나온 곳이었어요.


라오스 루앙프라방 - 왓 씨분흐앙


왓 씨분흐앙은 1758년 Sotikakoumane 왕 재위 시절 루앙프라방 양식으로 건설되었고, 1900년대 초에 창문과 현관이 수리되고 교체된 이후 지금까지 계속 큰 개조나 특별한 개보수 없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절이에요. 그래서 루앙프라방 양식 건물을 관찰하기 매우 좋은 건물이라고 해요.


대법당인 위한 건물의 지붕 끝 장식인 써파 ຊໍ່ຟ້າ 를 보면 치미와 망와가 모양이 달랐어요. 이것은 원래 반인반조인 상상의 동물 가루다를 상징하는 것인데, 망와의 써파는 새 모양이 확실히 보였고, 망와의 써파는 상당히 단순화되어 있었어요. 입구의 법당 전면부 ປະຕູທາງເຂົ້າ 빠뚜 탕카우의 박공벽 ປ້ານລົມ 빤롬은 란나 양식처럼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빤롬 하단을 보면 가운데가 아래로 솟아나와 있는데, 이것을 ຮັງເຜິ້ງ 항 펑이라고 해요. '항 펑'은 라오어로 '벌집'이라는 뜻이에요.


대법당 입구는 붉은빛 배경에 금색으로 화려하게 그림이 그려져 있었어요. 이 그림은 금색 스텐실로 그려진 것으로, Vessantara Jataka 설화를 다루고 있다고 해요.



법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Wat Sibounheuang


삼배를 드리고 불상을 촬영한 후, 천장을 올려다보았어요.



보수를 하지 않아 오래된 티가 많이 났어요. 만약 나중에 저 천장을 다시 칠하고 그림을 새로 잘 그려넣는다면 여기도 꽤 아름다운 법당이 될 거에요.



"이번에는 본존불이 부하 부처님 거느리는 거야?"


맨 앞에는 바나나잎으로 만든 장식 제물인 막뱅 ຫມາກເບັງ 이 바쳐져 있었어요. 그 뒤에는 작은 불상 4기가 옹기종기 앉아 있었고, 그 뒤에 커다란 주불이 앉아 있었어요. 대장이 앞에 부하들 세워놓은 것처럼 보였어요. 무지하고 오만한 서양인이 와서 절에서 깽판치려고 하면 주불이 '출동! 혼 좀 내주어라!'라고 외치며 앞에 있는 작은 불상 4기에 출동 명령을 내릴 것 같았어요.


"아...이런 생각하면 안 되는데..."


라오인들에게 절은 매우 신성한 공간이에요. 이렇게 불상을 배치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거에요. 라오인들에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이렇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제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축적된 기억들의 연산 결과. 아무리 이런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떠올라버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어요. 아무리 애를 써봐도 이런 잡생각이 들며 웃음이 나와버렸어요.


법당에서 나왔어요.



소박한 불단이 보였어요.



이제 다음 절로 갈 차례. 다음 절은 왓 쑤완나 키리 - 줄여서 '왓 키리'라고 부르는 절이었어요.



라오어로는 ວັດສຸວັນນະຄີຣີ 라고 적혀 있었고, 라틴 문자로는 VAT SOUVANNAKHIRI 라고 적혀 있었어요. 흔히 '왓 쑤완나 키리'라고 하지만 이것 역시 '왓 쑤완나 키히'였어요. 라오어 문자 중 ຮ 가 h 발음인데, 이것이 태국어에서는 ร 인데, 이 글자의 발음은 r 이에요. 게다가 불어에서는 h 가 유음이냐 무음이냐 따지기는 하지만 유음이든 무음이든 어쨌든 소리 없는 글자인 묵음이고, r은 ㅎ에 가까운 소리에요. 그러다보니 ຮ 는 r로 쓰는 것 같은데 이게 종종 ㄹ 발음으로 적히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나중에야 제가 잘못 알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기 쓴 글자는 ຮ 가 아니라 ຣ 였어요. 둘이 상당히 비슷하게 생겼는데 ຮ 는 h 발음이고 ຣ 는 r발음이에요. 저건 왓 쑤완나 키리가 맞았어요.



왓 키리는 1773년에 푸안 왕국 왕자 Chao Kham Sattha 가 루앙프라방 왕국의 공주가 결혼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씨엥 쿠앙 양식으로 건설한 절이라고 하는데, 현재의 절은 2006년 화재 이후 복구된 절이라고 해요.



저 긴 막대는 뭐지?


법당 왼편 천장에 길다란 장대가 하나 매달려 있었어요. 오른편에도 똑같이 매달려 있었다면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을 건데 왼쪽에만 매달려있으니 무지 신경쓰였어요.





wat khili


왓 키리를 본 후, 드디어 왓 씨앙통 Wat Xieng Thong 으로 갔어요.



라오어를 라틴 문자로 표기할 때 x는 대체 언제 사용하는 거지?



표지판을 보며 의문이 들었어요. 라오어로는 ວັດຊຽງທອງ ຣາຊວຣະວິຫາຮ 이라고 적혀 있었고, 라틴 문자로는 VAT XIENG THONG RATSAVORAVIHANH 라고 적혀 있었어요. ຊ 는 저자음 s 발음인데 이게 왜 x로도 쓰고 ts로도 쓰는지 궁금했어요. ks 라면 차라리 이해가 되었을 거에요. 그런데 ts. 라틴 문자만 보면 아무리 봐도 랏싸보라피한. 라오어 글자를 읽어보면 라써라위한.


"이게 루앙프라방에서 꼭 보라는 절 하나잖아."


드디어 안으로 들어갔어요.



일단 대법당이 상당히 큰 건물이라는 것이 눈에 확 들어왔어요. 건물 크기만큼 인상적인 것은 바로 지붕. 멀리서 얼핏 보면 지붕이 땅바닥에 닿을 정도로 컸어요.


라오스 루앙프라방 - 왓 씨앙통


대법당 정면으로 갔어요.


wat xieng thong


이 건물 날아오를 거 같아!


정면에서 보니 승천하는 새 모습이었어요. 안에 있는 부처님 불상이 이 건물을 조종해서 하늘로 출격할 거 같았어요. 망와에 해당하는 써파가 없어서 더욱 그렇게 보였어요.


라오스 루앙프라방 절 - 왓 씨앙통


대각선으로 보면 건물이 거대한 지붕을 힘겹게 바치는 모습. 건물 안으로 빗방울은 단 한 방울도 못 들어오게 생겼어요.



대법전 뒷면에는 삶의 나무 모자이크 조각이 있었어요. 멀리서 보면 지붕 엄청 크고 수수한 절당 건물. 가까이에서 보면 매우 화려했어요.



이것은 대법당 지붕 한가운데에 장식된 것이에요. 이것을 엿 써파 ຍອດຊໍ່ຟ້າ, 또는 독 써파 ດອກຊໍ່ຟ້າ 라고 해요.


대법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여기 진짜 굉장하다!"


이것은 규모와 화려함에서도 꽤 굉장한 절이었어요.


대법전 내부를 감상한 밖으로 나와 와불 법당으로 갔어요.




와불 법당 벽면에는 모자이크 장식이 있어요. 이것은 여러 민담이 담긴 장식이라고 해요. 전날 서점에서 이 장식에서 다루는 민담들과 관련된 책을 샀어요. 그냥 봐도 상당히 멋진 장식인데 그 책을 산 후 보니 더욱 멋졌어요. 태국에서 절을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인상적인 절은 거의 없었어요. 화려한 것 같았지만 소박했어요. 소박한 것 같았지만 화려했어요. 너무 매력적이라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야, 벌써 5시 15분 되간다."


친구가 부지런히 둘러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알려주지 않았다면 계속 와불 법당 벽면 모자이크 장식을 보며 멍하니 서 있었을 거에요.






와불 법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와불 법당 안에는 16세기에 제작된 와불이 안치되어 있었어요. 그 앞에 좌불이 있었고, 그 앞에는 맨바닥에 앉아 있는 불상이 있었어요.


이건 2중 방음 시스템인가.


와불은 누워서 자고 있다. 맨 앞의 불상이 잡소리를 다 잡아낸다. 다는 못 잡아내어서 뒤로 넘어가는 잡소리는 뒤에 있는 불상이 잡아낸다. 이러면 완벽한 2중 방음 시스템. 이런 건가? 불경한 생각이지만 이런 생각이 또 떠올라버렸어요.


이제 장례 마차 법당인 호 랏싸롯을 볼 차례였어요.


라오스 루앙프라방 왓 씨앙통 - 장례 마차 법당


밖에서 장례 마차가 보였어요.



안으로 들어갔어요.



라오스 장례 마차


금빛 번쩍거리는 장례 마차를 구경하고 안을 둘러보았어요.



"이쪽은 이런 것이 특징인가?"


이것을 보는 순간 라오스 불교 미술의 특징이 이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확 들었어요. 아직 라오스의 절을 많이 본 것도 아니었어요. 라오스에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이것을 보는 순간 그런 느낌이 딱 왔어요. 이 생각과 느낌이 맞는지 틀린지는 알 수 없었어요. 동남아시아 불교 문화와 불교 미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직감적으로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여기는 불상이 왜 이렇게 많냐?


태국 절과 라오스 절의 확실한 차이 하나는 이제 확실해졌어요. 라오스 절 법당 내부에는 불상이 많아요. 정말로 많아요. 중요한 절일수록 불상이 많아요. 뭔가 계획을 가지고 일부러 불상을 많이 모셔놓은 것은 아니었어요. 이 장면을 보고 아주 확실해졌어요. 이것은 그냥 불상을 많이 가져다놓은 것이었어요. 통일성도, 계획성, 일관성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냥 불상이 많을 뿐이었어요. 불상이 불상을 부르는 것이었어요. 불상이 다른 불상을 불러서 하나 둘 모이다보니 불상이 많이 비치된 것이었어요.


'불상 하나에 삼배 드린다고 하면 여기는 108배 넘게 해야겠네. 나중에 3천배 해야 하는 절도 나오는 거 아니야?'


라오스에서는 절에 불상이 많으면 더 좋은 거라고 생각하나? 불상이 1기 있는 것보다 2기 있는 게 좋고, 2기 있는 것보다 3기 있는 게 더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다다익선인가? 설마 여기는 불상이 자연번식해서 막 증가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우리나라 절도 불상을 많이 비치한 법당이 있는 절이 있기는 해요. 그렇지만 이런 것과는 많이 달라요. 이것은 아무리 봐도 딱히 계획을 갖고 불상을 많이 비치한 게 아니었어요. 특별한 계획 없이 자연적으로 하나 둘 늘어간 것이었어요.


호 랏싸롯에서 나와 왓 씨앙통을 둘러보았어요.




안에는 두 손을 들고 있는 불상이 모셔져 있었어요.







오늘 절 몇 곳 갔지?


지금까지 왓 마이, 왓 농씨쿤무앙, 왓 쌘, 왓 쏩, 왓 씨 뭉쿤, 왓 씨분흐앙, 왓 쑤완나 키리, 왓 씨앙통을 갔어요. 벌써 8곳을 돌아다녔어요. 그러나 이렇게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아직도 절이 남아 있었어요. 친구의 노래가 떠올랐어요. 웃었어요. 친구에게 다시 그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어요. 친구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어요. 그 노래가 너무 좋다고 대답했어요. 친구가 그 노래를 다시 불러주었어요. 저도 마음속으로 따라불렀어요.


왓 시러시러 밧 시러시러 모스크 오 노

절 시러시러 암자 시러시러 항상 내 곁엔 오! 부두!

맛좋고 때깔좋고 영양도 최고 깔끔한 내 성격엔 부두가 최고야!

부두 좋아 부두 좋아 부두 주세요 다 주세요!

부두 좋아 부두 좋아 세상에서 제일 좋아!


이 여행의 진정한 주제곡이었어요. 이 노래 듣고 또 깔깔 웃었어요. 노동요 부르듯 이 노래를 속으로 흥얼거리며 그 다음 '밧'을 향해 걸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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