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71 라오스 루앙프라방 여행 - 왓 농씨쿤므앙, 왓 쌘, 왓 쏩, 왓 씨 뭉쿤

좀좀이 2017. 4. 24.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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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절을 갈 차례였어요. 길을 따라 걸었어요. 친구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왓 시러시러 밧 시러시러 모스크 오 노

절 시러시러 암자 시러시러 항상 내 곁엔 오! 부두!


"뭐?"


친구가 우유송에 맞추어서 노래를 불렀어요. 아주 절묘하게 딱 들어맞았어요. 가사를 듣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어요. 친구가 왓 가기 싫다고 해서 '여기는 VAT 라고 적혀 있잖아! 이것은 밧! 태국의 왓과 다른 거야!' 라고 말하며 친구를 데리고 다니고 있었어요. 친구도 어떻게든 절을 하나라도 덜 가기 위해 가이드북도 뒤져보고 지도를 뒤져보았지만 정말 갈 곳은 절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저와 절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건데, 옆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왜 하필 부두야?"

"왜? 사이언톨로지도 넣고 다 넣어볼까?"

"너 나중에 아이티 가서도 그 노래 불러야한다."

"풉! 아이티 갈 돈부터 모아보지?"


친구와 부두교의 나라 아이티에 갈 일은 아마 절대 일어날 리 없을테니 친구는 저 노래를 마음놓고 계속 불렀어요. 저 노래가 아무리 생각해도 웃겼어요. 태국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참 잘 어울리는 노래이기는 했어요. 인도네시아 일정만 아니었다면 이 여행의 주제곡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어요. 저도 이렇게 절만 돌아다닐 생각은 원래 없었어요. 그런데 와서 보니 유적도 절이고 볼거리도 절이고 가볼 만한 곳도 절이었어요. 기승전절이었어요.


오후 3시 25분. 왓 농씨쿤므앙에 도착했어요.



여기는 라틴 문자로 VAT NONG SIKHOUNMUANG 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왓 농씨쿤므앙의 대법당인 씸은 이렇게 생겼어요.


라오스 루앙프라방 절 - 왓 농씨쿤므앙


문은 잠겨 있었어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어요.



왓 농 씨쿤므앙은 1729년에 지어진 절인데, 1774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대요. 이 당시 화재로 이 절에 안치된 청동으로 만든 불상인 Pra Chao Ong Saensaksid 외에는 모두 소실되었는데, 태국인들에 의해 1804년에 재건되었대요. 이 절의 특징은 태국인들에 의해 재건되다보니 태국 양식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점이에요. 태국 양식의 특징은 귤색 기와, 또는 귤색 기와와 붉은색 기와를 사용한다는 것이에요.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또 이것저것 많이 다르겠지만, 문외한이 보았을 때 바로 시각적으로 알 수 있는 점은 기와의 색깔이에요.



법당 문이 잠겨 있어서 법당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어요.


라오스 불상


"이 불상 갖고 싶어!"


스님이 계시고 말만 잘 통한다면 진지하게 이 불상을 갖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돈을 얼마 드리고서라도요. 나무를 조각해서 만든 불상인데 상당히 부드러운 느낌이었어요. 예전 우즈베키스탄에 있었을 때 누가 버리지 못해 갖고 있던 낡은 카페트를 밖에 내놓았는데 서양인이 와서 경탄하더니 몇백 달러 주고 사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요. 그 서양인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어요. 이 불상이 가치가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뭔가 확 마음에 들었어요.


갖고 싶다는 마음은 마음 속에 조용히 뭍어두고 얌전히 사진만 찍었어요.



"이건 뭐야!"


정말 단순하고 투박한 불상 2기가 있었어요. 이 두 불상이 재미있는 것은 불상이라고 금칠을 했는데, 불상과 불단은 구분하겠다고 불단 부분은 금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전체적으로 얼핏 보면 하얀 부분이 이 불상 2기의 하반신 같지만, 자세히 보면 하얀 부분은 불상 아래의 불단으로 보아야해요. 그나마 오른쪽 불상은 눈과 입의 금칠이 벗겨진건지 눈과 입만 하얘서 레이저 광선을 쏘는 모습이었어요.


"뭔가 소득이 있어!"


불상 3기를 보고 깔깔 웃었어요. 왓 농씨쿤므앙의 대법당에 못 들어가서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이 불상 3기를 본 것으로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절에 와서 마음에 드는 불상 3기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화려한 불상들을 계속 보다가 이렇게 소박하고 투박한 불상 3기를 보니 이것이 오히려 더 신기해 보였어요. 이 불상들은 누가 만들었는지 정말로 궁금했어요.


"이 꽃 예쁘다!"


라오스 국화


거리에는 꽃잎은 하얗고 속부분은 노란 매우 깔끔하게 생긴 흰 꽃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어요.


참파꽃


이 꽃은 참파꽃이에요. 라오스의 국화이자 상징이에요. 라오어로는 덕짬빠 ດອກຈໍາປາ 라고 해요. 라오어로 덕 ດອກ 이 꽃이에요. 이 꽃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매우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 안 알려진 꽃은 아니에요. 하와이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그 하얀 꽃이 바로 이 꽃이거든요. 우리나라에서는 영어명을 그대로 가져와서 '플루메리아' 또는 '하와이 자스민' 이라고 불러요.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는 참파 나무가 귀신과 악마로부터 보호해준다는 믿음이 있어서 힌두교 및 불교 문화에서는 이 나무를 사원에 잘 심는다고 해요.


라오스 닭장


거리에는 닭장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안에 닭이 없는 줄 알았어요. 가만히 들여다보니 안에 닭이 있었어요.



오후 3시 48분. 왓 쌘 쑤까함에 도착했어요.


왓 쌘은 1718년에 지어진 절로, 1932년과 1957년에 보수한 태국 양식의 절이에요. 이 절의 전면부는 루앙프라방에 있는 모든 절 중 가장 아름다운 전면부라고 하며, 다른 절들과 달리 지붕이 붉은 색 기와로 장식되어 있고, 지붕 테두리는 금빛 기와로 장식되어 있어요. 이 사원은 낏싸랏 왕이 메콩강에서 돌 10만개를 이용해 건설했다고 해서 이름이 왓 쌘이라고 해요.



절 안에는 부처 입상이 모셔진 건물이 있었어요. 커다란 부처 입상 아래에는 작은 불상들이 여러 개 있었어요.



이것이 바로 그렇게 아름답다는 왓 쌘의 전면부에요.


라오스 루앙프라방 절 - 왓 쌘


왼쪽에 있는 탑은 비엔티안에 있는 탓 루앙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전면부는 붉은색과 금색의 조화였어요. 여기 역시 역시나 문이 잠겨 있었어요.


"여기 왜 보트가 모셔져 있지?"



절 한켠에는 커다란 보트가 보관중이었어요.


'여기 홍수 날 때를 대비해서 보트를 준비해놓는 건가?'


여기 자체가 물에 잠길 리는 없겠지만, 메콩 강물이 범람하면 외부로 나가기 어려워서 미리 보트를 준비해놓는 건가? 당연히 그런 이유는 아니었어요. 사원에 보트를 보관해놓는 이유는 라오스에서 우기가 끝날 때 보트 시합이 열리는데, 그때 사용하는 보트를 이렇게 절에 보관해놓는다고 하더라구요.


Temple in Luang Prabang - Wat Sene


절 한켠에서는 곡식을 말리고 있었어요.



다른 한켠에서는 시커멓게 그을린 솥으로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어요.



절을 나와 다음 절인 왓 쏩을 향해 걸어갔어요. 어디에선가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어요.



새장 안에 새가 들어 있었어요.


'저거 설마 나중에 방생해주려고 키우는 거 아니겠지?'


불교 국가에서는 방생시키기 위해 일부러 동물을 잡아서 키우는 경우가 있어요. 원래는 일부러 잡아서 풀어주면 당연히 안 되는데, 사람들이 사냥꾼에게 잡힌 동물을 일일이 찾아다닐 수 없으니 그런 문화가 발생한 것이에요. 사냥해서 돈 받고 풀어주든가 자기가 먹든가 한다면 어쨌든 똑같기는 하지만요. 이것은 동남아시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문화에요. 요즘은 많이 없어졌지만요. 한때 우리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동물을 방생해주는데, 붉은귀 거북을 방생해주다가 생태계 교란 일어난다고 문제가 된 적이 있었어요.



다음 절인 왓 쏩에 도착했어요. 이 절의 정식 명칭은 왓 쏩 씩카함 VAT SOP SICKHARAM 이었어요.


라오스 루앙프라방 절 - 왓 쏩


이 절에서 유명한 것은 바로 이 탑이었어요.


Wat Sopsikhalam


이 탑은 가운데에 불상이 모셔져 있고, 탑을 도자기 타일로 꾸며놓았어요.


이 절에 동자승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고 해요. 라오스 전통 문화에서 어린이들은 최소 3주간 출가를 한대요. 대체로 15세 정도에 출가를 해서 승려 생활을 체험한다고 해요. 보통은 3주간 절에 머물지만, 주변의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이 절에 많이 맡겨져서 수년 동안 이 절에서 양육되고 있다고 해요. 이 절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공부도 하는 것이지요.


1975년 인도차이나 반도 공산화 이후, 라오스는 불교 문화가 현재까지 계속 잘 유지되고 있는 상태에요. 그 이유는 라오스 공산화 당시 승려를 탄압할 경우 식자층이 거의 남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라오스의 불교 사회주의를 보면 승려를 공산주의 투사로 묘사하면서 승려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데, 이는 이런 배경을 통해 이해할 수 있어요. 승려를 모두 숙청하면 당장 식자층이 크게 부족해져버리니까요.


법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절을 드리고 법당 내부 사진을 찍었어요.


"여기는 왜 이렇게 불상이 많지?"


확실히 태국 절에 비해 불상이 많이 모셔져 있었어요.


법당에서 나와 절을 쭉 둘러보았어요.




절 자체가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옆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왓 쏩 옆에는 커다란 정원이 하나 있었어요.





팻말에는 ບ້ານ ໂພນເຮືອງ 라오어로 '밤' ບ້ານ 은 '집, 마을'이라는 뜻이고, '폼' ໂພນ 은 '둔덕, 언덕'이라는 뜻이고, '흐앙' ເຮືອງ 은 '빛나는, 아름다운' 이라는 뜻이에요. 동네 이름을 이렇게 적어놓은 것 같았어요.


길가에는 '쌈러'라고도 부르는 뚝뚝이 정차해 있었어요.


라오스 교통수단 - 쌈러


4시 19분. 왓 씨히뭉쿤에 도착했어요. 여기는 구글 지도에서는 왓 씨 뭉쿤 wat si moung khon 이라고 나와요. 라오어 글자를 그대로 읽으면 ວັດ ສີຮີ ນຸງຄຸນ ໄຊຍາຮາມ '왓 씨히 뭉쿤 싸이야함'이었어요.


라오스 루앙프라방 - 왓 씨히뭉쿤


더듬더듬 라오어 글자를 읽다가 나중에 제대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절 이름을 사진으로 찍고 발걸음을 옮겼어요.


wat si moung khon in Luang Prabang, Laos


법당 내부로 들어갔어요.



여기도 내부에 불상이 많이 있었어요. 여기는 아까 왓 쏩보다 더했어요. 불단의 높이와 위치를 보지 않으면 어떤 불상이 본존불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어요.


삼배를 드리며 속으로 중얼거렸어요.


'무슨 무적 부처님 7형제야?'


이건 아무리 봐도 독수리 5형제, 무적 파워레인저가 떠올랐어요. 불상이 아홉 기 있기는 했지만, 2개는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아서 보자마자 주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나머지 7기는 크기조차 같았어요. 앉아 있냐 서 있냐, 손을 들고 있냐, 내리고 있냐 차이였어요. 이 일곱 부처님이 합치면 초슈퍼 부처님 파워 불심 빔을 쏠 수 있는 거야? 막 빔에 맞자마자 오만무례 서양인들이 스스로 삭발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삼천배 드리는 거야?


신성한 법당에서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저도 인간인지라 이런 생각이 자동적으로 떠올라버렸어요.


삼배를 드리고 법당 내부를 촬영한 후 밖으로 나왔어요.



라오스 동자승


동자승이 마당을 쓸고 있었어요.


라오스 동자승


담벼락에서 찹쌀밥을 말리고 있었어요.


라오스 찹쌀밥



시계를 보았어요. 오후 4시 27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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