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60 태국 치앙마이 하루에 절 14곳 돌기 02 - 왓 쩨디 루앙

좀좀이 2017. 2. 2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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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치앙만에서 왓 쩨디 루앙까지는 조금 걸어가야 했어요. 원래 왓 쩨디 루앙은 전날 보아야했던 절이었어요. 왓 프라씽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왓 쩨디 루앙을 보고 돌아오기로 했는데 지갑 잃어버린 줄 알고 숙소로 달려오느라 가지 못했어요. 숙소로 돌아간 후 다시 보러 나가기에는 거리가 조금 있는 절인데다 매우 큰 절이라 해서 오늘 보기로 했어요. 왓 쩨디 루앙으로 가는 길은 전날 갔던 길과 똑같은 길이었어요. 왓 판따오에서 전날은 서쪽으로 갔고, 오늘은 동쪽과 남쪽을 갈 예정이었어요. 지도상에서는 성이 그다지 크지 않았어요. 정사각형 비슷한 치앙마이 성 한 변은 약 1km 정도였어요. 일단 남쪽 절을 보고, 성벽을 타고 돌아서 동쪽으로 올라가서 동쪽을 본 후, 시간이 남으면 다시 성벽을 따라 북쪽으로 가서 북쪽 절까지 다 볼 계획이었어요. 만약 북쪽까지 다 돌아본다면 절 15곳 넘게 도는 것인데,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했어요. 왜냐하면 숙소에서 늦게 나왔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었거든요.


전날 갔던 길을 따라 가는데 와위 커피가 나왔어요.


"저기서 커피 한 잔 하고 가자."


이제 슬슬 12시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어요. 아유타야에서도 겪어본 일이지만, 날이 너무 더우면 단순히 덥기 때문에 입맛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땀이 엄청나게 많이 나서 쉽게 목이 마르게 되고, 갈증을 느껴서 물을 마시다보면 물배 차요. 뱃속에 있는 물이 다 흡수가 되어서 배가 비어갈 즈음에 또 목이 말라서 물을 마셔요. 이게 계속 되니 밥 생각은 없어져요. 계속 배에 물이 들어차 있는 거니까요.


이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왓 치앙만에서 왓 쩨디 루앙으로 걸어가는데 땀이 좍좍 흘러내렸어요. 아유타야는 그래도 자전거 타고 다녔지, 치앙마이는 전부 걸어다녀야 했어요. 바람이라도 선선하게 불어주면 괜찮을텐데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았어요. 솔직히 길을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일단 숙소 돌아가서 샤워부터 다시 하고 나오고 싶었어요. 그렇게 절 돌기 시작하자마자 더위와 갈증에 빠져버렸는데, 그때 딱 전날 갔었던 wawee 커피가 나타난 것이었어요.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온몸을 덮쳐오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극락이 따로 없었어요. 해동되어 흐물흐물해진 고기가 냉동실 들어가서 딱딱해지는 것처럼 저의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어요. 머리로 땀을 타고 흘러나오던 영혼은 다시 머리 속으로 기어들어갔고, 온몸에서 땀을 타고 빠져나오던 세포와 신경들도 다시 몸 속으로 돌아가 제 자리를 잡았어요.


"아이스커피 주세요."


'타이 커피'라는 메뉴가 있어서 아이스 커피로 시켰어요. 타이 커피를 아이스 커피로 주문했더니 1회용 플라스틱 컵으로 주었어요. 주황빛이 도는 시원한 타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어요.


"아, 살겠다!"


타이 커피의 맛은 매우 독특했어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맛보는 그 커피 맛이 아니었어요. 커피와 차를 섞어놓은 맛이었어요. 애초에 색 자체가 탁하고 어두운 주황빛이라 시각적으로 이미 우리가 아는 커피와 많이 달랐구요. 왜 색이 주황빛 도는 색이 나왔나 했는데 커피 맛을 보니 차를 조금 섞은 것 같았어요. 자리를 잡고 앉아서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정신을 차렸어요. 하지만 오래 앉아 있을 수는 없었어요. 그렇게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절 15곳을 돌아야 하는데 이제 겨우 2곳 갔고, 정오가 코앞이었어요. 게다가 이 시원함에 몸이 적응해버리면 밖에 나가서 몇 걸음 걷지 않아 다시 아찔한 더위를 맛보게 될 것이었어요.


"이거 컵은 한국에 챙겨가야겠다."


1회용 플라스틱 컵 디자인이 예뻤고, 컵이 물렁거리지 않고 딱딱했어요. 이것은 기념품 삼아서 한국으로 들고가기로 했어요.


태국 치앙마이 와위 커피


wawee coffee


"얼음은 어디 버리지?"


커피를 다 마시고 얼음을 버리려는데 얼음을 버릴 곳이 보이지 않았어요.


"얼음 다 녹으면 하수구에 물 버려야겠다."


태국에서 얼음은 먹지 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이것은 태국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 전체에 해당되는 것으로, 얼음을 만든 물의 수질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얼음은 웬만하면 먹지 말라고 해요. 컵은 한국으로 가지고 가기로 했기 때문에 가방에 넣어야 하는데 컵 속에 얼음이 있는 상태로 가방에 넣을 수는 없었어요. 그러면 컵에 맺히는 이슬 때문에 가방 안이 젖어버릴테니까요. 그래서 얼음이 녹을 때까지 컵을 손에 들고 가기로 했어요. 가끔씩 얼음이 든 통을 얼굴에 대어 열을 식히며 왓 쩨디 루앙을 향해 걸어갔어요.


11시 50분. 드디어 전날 가지 못했던 왓 쩨디루앙 Wat Chedi Luang วัดเจดีย์หลวงวรวิหาร 에 도착했어요.


왓 쩨디 루앙에 도착하자마자 작고 화려한 건물 하나가 보였어요.


치앙마이 기둥


어떤 건물인지 앞으로 가보니 석비 하나가 있었어요. 석비에는 치앙마이 기둥 Chiang Mai City Pillar 라고 적혀 있었어요. 태국어로는 부차 사오 인타낀 บูชาเสาอินทขีล 이라고 해요.


"이게 그 치앙마이 기둥이구나!"


왓 쩨디 루앙은 치앙마이의 중심이라고 해요. 왜냐하면 여기에 치앙마이 기둥이 있거든요. 이 지역 전설에 의하면 힌두교의 신 인드라가 이 지역 주민들에게 재해와 재앙으로부터 보호해주기 위해 이 기둥을 주었다고 해요. 이후 이 기둥을 멩라이 왕이 왓 인타낀으로 옮겼고, 1800년 란나 왕조의 짜오 까윌라가 여기 왓 쩨디 루앙으로 옮겼어요. 치앙마이에서는 매해 음력 6월 12일부터 8일간 치앙마이 기둥 축제가 열린다고 해요.


치앙마이 기둥이 모셔진 건물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단, 여자는 입장할 수 없었어요. 오직 남자만 건물 내부로 들어가 치앙마이 기둥을 볼 수 있었어요. 이것은 인도 및 상좌부 불교의 영향 아닌가 싶었어요. 상좌부 불교에서는 사실상 남자만이 해탈하고 부처가 될 수 있거든요. 이 부분이 우리나라 및 베트남, 일본, 중국이 믿는 대승불교와는 이 부분에서 크게 달라요. 다른 차이점도 여럿 있지만 이 부분이 가장 쉽게 눈에 띄는 차이점이지요.


치앙마이 기둥이 모셔진 건물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역시나 신발을 벗고 맨발로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했어요. 슬리퍼를 벗고 발을 내딛는 순간.


"으억!"


이런 식으로 법당에 들어가기 전에 더러운 발바닥을 고온 멸균 처리 하는 건가? 신성한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청결히 하는 과정을 이렇게 하라는 건가?


오늘 이미 두 번 맨발로 달구어진 계단 바닥을 올라갔기 때문에 예상을 하고는 있었어요.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어요. 계단에 발바닥이 닿는 순간 발바닥이 구워져서 김이 나는 것 같았어요. 발바닥을 이루고 있는 단백질에 변성이 생기고, 그 발바닥에 살고 있는 세균들도 죄다 박멸시켜버릴 열기였어요. 정말 후다닥 뛰어 올라갔어요. 체면이고 뭐고 없었어요. 지하철 종점의 기적처럼 무조건 반사를 이용해 달려올라갔어요.


"어우, 살겠다."


안에 들어가니 안쪽 바닥은 그나마 차가워서 괜찮았어요.


"여기 멋지다!"


Chiang Mai City Pillar


삼배를 드리고 사진을 찍은 후,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았어요. 내부는 정말 세밀하고 멋졌어요.


치앙마이 기둥


บูชาเสาอินทขีล


이제 다시 내려갈 차례. 그저 한숨만 나왔어요. 100m 전력질주를 위한 자세를 취하고 눈 질끈 감고 뛰쳐나갈까 진지하게 생각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정말 아니었어요. 그나마 위안이 되는 사실이라면 계단이 몇 개 없다는 것. 계단이 많고 높다면 답없는 상황이지만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어요. 아주 잠깐의 고통만 참으면 되었어요. 그 고통이 워낙 커서 문제였지만요.



"악, 뜨거!"


종종걸음으로 후다닥 내려와 슬리퍼를 신었어요. 안에 들어가서 치앙마이 기둥에 삼배를 드리고 사진찍고 관람하던 새에 슬리퍼도 뜨겁게 달구어졌어요. 슬리퍼 역시 아까 두 번 올라갔을 때보다 훨씬 더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슬리퍼를 신자마자 제자리를 뱅뱅 돌았어요. 이번에는 세 바퀴 돌았어요.


치앙마이 나무


치앙마이 기둥 옆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었어요. 이 나무는 카윌라 왕자가 치앙마이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1796년에 심은 나무래요. 치앙마이 사람들은 이 나무가 계속 자라는 동안에는 치앙마이가 안전하게 보호될 거라고 여긴대요. 사진 가운데에 있는 건물이 치앙마이 기둥을 모신 건물이고, 그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위한 루앙 - 우리나라 절로 치면 대웅전이에요.



절을 다시 천천히 둘러보았어요. 위한 루앙에 들어가려면 또 신발 벗고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이대로 바로 올라가는 것은 무리였어요. 발바닥이 좀 진정되면 그때 들어가기로 하고, 그동안 주변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살펴보았어요.



입구 쪽에는 작은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어요.


태국 전통의상 인형


"이 인형들은 대체 어디에서 파는 거지?"


왼쪽에 있는 인형이 바로 제가 구입하고 싶어하는 전통 의상 인형이었어요. 저 인형을 구입하고 싶은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저 인형을 파는 곳이 보이지 않았어요. 태국 거리를 돌아다니며 길에 마련된 작은 불단을 보면 저렇게 전통 의상을 입은 태국인 인형이 종종 보였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었고, 저렇게 부부 한 쌍도 있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시작해서 손자, 손녀까지 구입하면 딱인데 아무리 찾아봐도 저것을 파는 곳이 보이지 않았어요. 이 인형을 어디에서 파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 불단 근처에는 사람이 없었어요. 이전에 몇 번 물어본 적이 있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은 시장, 문방구 가보라고 대답할 뿐이었어요. 당연히 가보았지만 안 팔았구요.



치앙마이 기둥이 모셔진 건물과 그 옆에 있는 치앙마이 사람들이 치앙마이가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여기는 나무 사진을 한 장 찍은 후 위한 루앙으로 갔어요.


치앙마이 왓 쩨디 루앙 - 위한 루앙


"여기는 좀 괜찮네."


여기는 그래도 지붕 아래에 계단이 있어서 계단이 그렇게 뜨겁지는 않았어요. 멀쩡히 걸어올라갈 만 했어요.


왓 쩨디 루앙 - 루앙 위한 Luang Wihan


Luang Wihan


"우와! 굉장하다!"


정말 여기에서 절을 하면 복을 엄청나게 많이 받게 생겼어요. 너무나 황홀하고 아름다웠어요. 그리고 깊은 불심이 느껴졌어요. 꼼꼼하게 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황홀할 수 없을 테니까요.



위한 루앙은 1928년 건설되었으나 2005년과 2006년에 무너졌대요. 이후 2007년 초에 재건하기 시작해 2008년 11월에 재건작업이 완료되었다고 해요. 위한 루앙의 본존불은 높이 8.23m 에요. 이 불상의 이름은 Phra Chao Attarot 에요. 공포를 떨쳐 없앤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Abhaya mudra 자세를 취하고 있어요. 이 불상은 14세기에 조성되었다고 해요. 이 불상 양 옆의 불상은 석가모니의 두 제자라고 해요.



삼배를 드리는데 역시나 태국인들이 다 쳐다보았어요. 심지어는 저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기까지 했어요.


'대체 왜 자꾸 내가 절만 하면 사람들이 다 쳐다보지? 내가 그렇게 특별하게 생겼어?'


태국에서 불교 사원에 가서 절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전부 신기하게 저를 쳐다보았어요. 이제는 핸드폰 카메라로 제가 절하는 모습을 찍는 사람까지 나왔어요. 이 사람들이 자기들은 절 안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제가 절을 할 때마다 신기하게 여기는지 정말 궁금했어요. 그렇다고 누군가 잡고 '당신은 왜 제가 절하는 것을 신기하게 쳐다보나요?'라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삼배를 드린 후 법당 안을 둘러보았어요.



아! 이 사람들이 왜 내가 절할 때마다 자꾸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지 알겠다!


위한 루앙 안으로 사람들이 계속 들어왔어요. 그들은 절에 들어와 불상에 절을 했어요. 그 절하는 모습을 보니 왜 태국인들이 제가 절하면 자꾸 신기하게 쳐다보는지 알 수 있었어요.


이 사람들은 우리처럼 절하지 않아! 일어났다 앉았다 하지를 않아!


우리는 절할 때 일어났다 앉아서 엎드렸다 하며 절을 해요. 그래서 108배 드리는 것이 쉽지 않죠. 태국인들이 절하는 방법은 우리와 달랐어요. 치마 입은 여자들이 바닥에 앉는 것처럼 다리를 한쪽으로 모아 바닥에 주저앉은 후, 그 상태로 허리만 까딱까딱 하면서 절했어요. 이 사람들 눈에 제가 일어났다 엎드렸다 하면서 절하는 것은 신기해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어요. 우리가 TV로 티베트인들이 오체투지하는 장면을 보며 저렇게 힘들게 절하는구나 하는 것처럼 태국인들 눈에 우리가 절하는 모습이 그렇게 보였던 것이었어요.


"이 사람들은 108배가 왜 힘든지 이해 하나도 못 하겠다."


태국인들이 절하는 식으로 108배를 한다면 108배가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물론 앉은 상태에서 상체를 바닥까지 기울였다 세웠다 하는 것도 108번 하면 힘들기야 하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아예 꼿꼿하게 섰다가 앉아서 머리를 땅에 대는 것을 108번 하는 것보다는 108배 쉬워요.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108배가 왜 어려운지 설명해주려면 일단 한국에서 절하는 방식에 대해 먼저 설명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루앙 위한 안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법당 안으로 나시티에 짧은 반바지를 입은 서양인 남자가 들어오더니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어 반쯤 드러누웠어요. 그러자 법당을 관리하는 태국인 아주머니께서 오시더니 서양인 남자에게 당장 기둥에 기대지 말고 일어나서 양반다리로 똑바로 앉으라고 혼냈어요. 서양인은 얼굴이 굳었고, 태국인 아주머니가 시킨대로 자세를 고쳐 양반다리로 앉았어요. 그러나 얼마 안 가 바로 밖으로 나가버렸어요.


"꼴 좋다."


이 순간 제게 흥선대원군이 빙의했어요. 척화비로 무례한 양놈들 귀싸대기를 후려치고 싶었어요. 태국 돌아다니며 꾸준히 느껴온 것 중 하나가 죽비로 정수리 후려맞아도 시원찮을 서양인이 꽤 많다는 것이었어요. 제 아무리 예의와 질서를 싸그리 무시하는 중국인이라 해도 절당 안에서 개판치지는 않았어요. 법당 밖에서는 난리를 치더라도 법당 안에서는 그래도 예의를 갖추었어요. 그런데 서양인들은 법당 안에서도 기본 예의를 무시하고 제멋대로였어요.


이것은 솔직히 문화 차이가 아니었어요. 불교 문화를 처음 접해서 그러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어요. 이놈들이 성당, 교회에서도 그 꼬라지로 행동한다면 원래 이쪽 문화를 몰라서 그랬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놈들이 성당, 교회 가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요. 절당에서 드러누울 거면 성당, 교회 의자에도 드러누워야죠. 서양인들이 여기를 무시하기 때문에 하는 짓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싫어졌어요.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 보니 서양인 관광객들 빨아대는 사람들이 더욱 한심하게 여겨졌어요. 서양인들은 자기 주장 또박또박 말한다고 하는데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 앞에서는 파리채 앞 바퀴벌레 꼴이었어요. 오히려 중국인 단체관광객들 앞에서 꿀리지 않는 건 한국인 관광객들이었어요. 이건 예의가 바르고 바르지 못해서가 아니라 서양인들이 비굴한 거에요. 서쪽에서 시작된 여행에서 본 결과 확실히 동쪽으로 갈 수록, 특히 동남아에서 개판치는 서양인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어요.


이러다 진짜 나 흥선대원군 되는 거 아냐?


태국에서 관광객들 모습이 어떨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 보니 보면 볼 수록 더 싫어졌어요. 어찌 보면 그냥 개념이 없어서 개념이 없는 행동을 하는 중국인들이 덜 나빠보였어요. 어찌 행동해야 하는지 아는데 일부러 안 하는 것과 정말 몰라서 못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거니까요. 그냥 여행 온 기분에 취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기저에 나쁜 의미가 깔려 있는 행동인지 그냥 돌아다니며 본다면 사실 구분이 상당히 힘들어요. 이게 현지인들에게 중요한 종교 시설인 절을 찾아 돌아다니니 그게 확 보였어요.


위한 루앙을 본 후 쩨디를 보러 갔어요. 쩨다 윗부분은 전날 왓 프라씬 갈 때 보았어요.


태국 치앙마이 왓 쩨디 루앙 탑


이 탑은 쌘 무앙 왕이 자신의 아버지 시신을 모시기 위해 지으라고 명령해서 조성된 탑으로, 1391년부터 짓기 시작했대요. 이 탑은 띨로까랏 왕 재위 시기인 1475년에 완공되었고, 높이 85미터에 길이 44미터에 달하는 치앙마이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1545년 지진이 발생해 이 탑이 무너져 60미터만 남았고, 이 남아있는 60m는 1990년대에 복구되었다고 해요.



이 탑은 단지 규모로만 중요한 의의를 갖는 탑이 아니에요. 1468년에는 라오스 루앙프라방에 있던 에메랄드 부처인 프라 깨우를 모셔와 이 탑 오른쪽 감실에 안치했다고 해요. 프라 깨우는 이 탑에서 80년간 모셔졌고, 이후 방콕으로 옮겨졌어요. 이 에메랄드 불상 프라 깨우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방콕 왕궁에 모셔진 에메랄드 불상이에요. 프라 깨우는 태국에서 가장 신성한 불상으로 모셔지고 있지요.



탁발을 하는 동자승 석상이 있었어요.


chedi in chiang mai


쩨디의 감실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는 나가 뱀이 조각되어 있었어요.




"이건 뭐지?"


작은 탑 모형이 쩨디 앞에 일렬로 쭉 늘어서 있었어요.



이 작은 탑 모형들이 뭔지 살펴보았더니 태어난 띠에 따른 탑 모형이었어요. 아시아어락기행을 보고 태국에서 태어난 요일에 따라 모시는 불상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태어난 띠에 따라 모시는 탑이 따로 있다는 것은 나오지 않아서 몰랐어요. 그 이전에 태국도 12간지를 믿는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어요. 처음에는 여기에 중국인들 하도 많이 와서 저렇게 만들어놓은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진짜로 태국인들이 우리처럼 12간지를 믿고, 이 띠에 따른 탑을 모시는 문화가 있대요.


무너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어마어마했어요. 부서진 부분을 보니 이 쩨디는 벽돌을 쌓아 만든 탑이었어요. 태국은 벽돌로 탑도 만들고 불상도 만들어서 탑과 불상을 큰 규모로 잘 만들었어요. 이런 제작 방식의 차이를 모르고 단순히 '우리나라는 왜 태국처럼 거대한 탑과 불상이 없을까' 라고 아쉬워할 점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태국인들에게 우리나라 문화재를 그 크기로 자랑할 것은 절대 아니기는 했어요. 크기로 태국인들을 놀라게할 만한 우리나라 문화재는 법주사 팔상전, 관촉사 석불 정도니까요.


"저 양놈은 또 왜 절에서 웃통은 까고 난리냐?"


탑을 한 바퀴 돌아보고 있는데 서양인 한 명이 절 구석에서 웃옷을 훌러덩 벗고 있었어요. 그래도 저건 일단 법당 밖에서 웃옷을 벗고 있는 것이니 양호하다고 해야 하나? 태국인 친구가 치앙마이 가면 중국인 엄청나게 많을 거라고 했는데 중국인은 오히려 정말 얌전하고 문화시민이었어요. 서양인들이 정말 가관이었거든요. 아무리 질서 의식 없는 중국인이라 해도 법당 들어가자마자 드러누우려고 하고 술냄새 풍기며 법당 들어가고 하지는 않아요.


"저 건물은 뭐지?"



탑 뒷편에 건물이 또 있었어요. 검은 건물은 그 자체가 매우 고운 흑진주 같았고, 그 옆 건물은 태국 오기 바로 전에 갔던 나라인 인도네시아의 전통 가옥 같은 모습이었어요.



검은 건물 앞에는 탑이 있었어요.



이 검은 건물의 이름은 Wihan Thanphra Achan - Man - Phuridatto 라고 해요.


Wihan Thanphra Achan - Man - Phuridatto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저 사람 연예인 김정화 아냐?"


위한 안으로 들어갔는데 정말 예쁜 태국 여성이 바닥에 앉아서 조용히 태국어로 된 불경을 읽고 있었어요. 정말로 탤런트 김정화 닮았어요. 정말로 예뻐서 깜짝 놀랐어요.


건물 내부 사진을 찍으려 하자 불경을 읽던 그 여자는 자리를 비켜주었어요.



"여기는 불상 없나?"


불상이 보이면 일단 삼배를 드리려 했는데 법당 안에 불상이 보이지 않았어요. 거꾸로 들어온건가 싶어서 법당 안을 돌아다녔어요.



불상이 보이지 않았어요.


"뭐지? 여기는 왜 불상 없지? 그냥 별 의미 없는 건물인가?"


불단은 제대로 설치되어 있는데 아무리 봐도 불상이 보이지 않았어요. 아직 공사중인 건물은 아니었어요. 분명히 제대로 잘 지은 법당이었어요.


"저...여기 불상 없나요? 기도하고 싶은데요."

"여기는 사리를 모신 곳이에요. 사리에 하면 되요."


불경을 읽고 있던 태국 미녀에게 불상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자 태국 미녀는 여기는 사리를 모신 곳이라 불상이 없다고 알려주었어요. 불단에 있는 작은 크리스탈 그릇 속에 사리가 있다고 영어로 더듬더듬 친절하게 알려줬어요.


이 건물에 모셔진 사리는 고승 Luang Pu Man Bhuridatto 의 치아 사리라고 해요. 이 스님은 종종 왓 쩨디 루앙을 방문하고 머무르곤 하셨다고 해요.



밖은 덥고 절은 커서 조금 쉴 겸 해서 태국 미녀와 서로 더듬더듬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태국 미녀는 영어를 잘 못 한다고 했고, 실제로 영어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서로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태국 미녀와 불교의 심오하고 깊은 뜻과 대승불교와 상좌부불교의 차이를 논할 리가 당연히 없었거든요. 간단히 자기 소개 하는 정도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아이 엠 코리안. 아이 라이크 치앙마이' 수준의 영어면 충분했어요.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facebook 및 line 아이디를 교환했어요. 태국 미녀에게 카카오톡 아이디가 있냐고 물어보자 카카오톡 아이디는 없다고 했어요. 인도네시아에서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이메일 인증을 하라고 하는 것을 미루다 PC버전이 아예 먹통이 되어버린 네이버 라인의 아이디는 소용없었지만, facebook 아이디를 교환했으니 어떻게든 제가 노력만 한다면 꾸준히 연락하며 지낼 수 있었어요.


태국 와서 처음으로 현지인과 연락처를 교환했어요. 정말 기뻤어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렇게 치앙마이에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돌아가고 운도 따라주는 데 정작 다음날 라오스 루앙프라방으로 떠나야한다는 점이었어요.


태국 미녀는 헤어질 때 하는 태국어 인사로 'good luck' 이 '촉 디'라고 알려주었어요. 순간 이것은 예전에 외운 적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어요. 라오어로 같은 말이 '커 하이 쏙 디', 줄여서 '쏙 디'라고 하는데, 아주 예전에 제게 태국어 같이 공부하자고 꼬셨던 친한 동생이 그거 태국어랑 똑같다고 하며 태국인들은 그냥 '촉 디' 라고 말하고 헤어진다고 알려준 적이 있었어요. 태국 미녀에게 '촉 디'라고 작별 인사를 하고 태국 미녀가 알려준 대로 사리가 모셔진 불단을 향해 삼배를 하고 법당에서 나왔어요.



이제 위한 탄프라 아짠 만 푸리닷또 옆에 있는 쁘라 위한 짜 뚜 라뭇 부라파짠 Phra Wihan Cha Tu Ramut Buraphachan 에 갈 차례였어요.


Phra Wihan Cha Tu Ramut Buraphachan


안에는 와불이 있었어요.



와불 규모는 크지 않았어요.


"이 부처님은 뭘 드셨길래 이렇게 살집이 좋으셔?"



계속 절을 쭉 둘러보았어요.







"여기 시간 꽤 걸리는 큰 절이구나."


전날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착각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여기는 돌아오는 길에 안 오는 것이 맞았어요. 이 절 관람을 정오 조금 안 되어서 시작했는데 1시 반이 넘어서야 관람을 마칠 수 있었어요. 전날 예상했던 관람 시간보다 훨씬 많이 걸렸어요. 괜히 이곳이 치앙마이 성에서 가장 중요한 절이라고 하는 게 아니었어요. 도이수텝 사원과 함꼐 꼭 가보아야할 절이었어요. 전날 탑 꼭대기 조금 봤다고 그냥 지나쳤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절이었어요.



"이거 시간 너무 많이 흘러가버렸는데?"


오늘 절 15개 도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제 세 곳 돌았어요. 오후 1시 32분. 남은 절은 12곳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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