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에서 새로운 인물이 추가되면 새로운 인물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어요. B의 합류는 저와 친구에게 그런 재미를 주었어요.
"야, 여기 차 왜 이래?"
"여기 중국이네."
시안이라고 차가 신호를 잘 준수하고 차선을 잘 지킬 리 없었어요. 전날 란저우보다는 그래도 상황이 나았지만 여기도 엉망이기는 매한가지였어요. 저는 중국 여행을 한 지 이제 열흘도 훌쩍 넘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 자체가 신기하거나 이상하지 않았어요. 중국어로 적힌 간판도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그 상황 속에서 중국의 무질서함에 당황해하는 B의 등장은 신선함 그 자체였어요.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정도가 아니라 초록불 자체를 믿지 말아야 하는 중국의 길 건너기에 B는 전혀 적응이 되지 않는 모습이었어요. 이게 적응이 바로 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죠. 게다가 B는 외국 여행이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었어요. 대학교 졸업 여행으로 상하이를 다녀온 이후 처음 오는 여행이라고 했어요. B는 길을 건너는 저와 친구를 놀라워했어요.
드디어 서안성 성벽과 해자가 나타났어요.
"너 왜 기운 없어?"
"덥고 힘들어."
이 혼잡한 도로에 정기를 다 빨려버렸나? 그렇게까지 혼잡한 도로는 아니었지만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혼잡한 도로였어요. 날이 덥기도 했구요. 그래도 B는 너무 빠르게 지쳐가고 있었어요.
'어제까지 일하고 와서 피곤한가?'
B가 상당히 많이 힘들어해서 전날까지 일하고 와서 힘든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남문을 통과하자 대안탑 비슷한 기념물이 나왔어요.
오른쪽에는 서원문이 있었어요. 서원문 거리를 구경하러 갔어요.
B가 힘들어하고 친구도 시큰둥해했어요. 저도 그렇게 크게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인사동과 비슷해 보였거든요. 일단 목이 마르고 더워서 음료수를 사서 마신 후 또 걸어갔어요.
서안 고루에 도착했어요.
이쪽이 바로 제가 기대했던 회민가의 시작이었어요.
란저우에서 보았던 거대한 케이크를 잘라서 막대기에 꽂아 파는 것이 보였어요.
다양한 꼬치도 보였어요. 저 나무 꼬챙이를 보자 전날 란저우에서 보았던 그 장면이 떠올랐어요.
회족거리에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어요. 친구도 B도 이렇게 사람 많은 것에 질색했어요.
둘 다 사람 많은 것을 매우 싫어해서 회민가를 대충 둘러보며 앞으로 쭉 걸어갔더니 순식간에 북원문이 나타났어요.
예상보다 회민거리를 보는 데에 걸린 시간이 너무 짧았어요. 원래 오늘 계획은 서원가와 회민가를 구경하는 것이었는데 둘 다 순식간에 끝나버렸어요. 북원문을 멍하니 바라보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점심을 먹고 나온 것이 약 3시였는데 지금 시각은 오후 5시. 지금 바로 저녁을 먹기에는 점심을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너무 일렀어요.
"카페 가서 좀 쉴까?"
B는 진짜로 힘들어하고 있었고, 저와 친구도 조금 피곤했어요. B는 전날까지 일하고 바로 온 거라 힘들었을 것이고, 저와 친구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든 일정을 소화중이었기 때문에 힘들었어요. 일단 셋 다 조금 쉬어야 했어요. 저녁 먹으며 쉬기는 이르니 카페 가서 쉬기로 했어요. 북원문 근처 카페를 돌아다녀보았어요. 다행히 자리가 있는 카페가 있어서 그 안으로 들어갔어요.
"너네 진짜 여행 잘 하는구나. 나는 진짜 힘들다."
"너 체력 많이 약해진 거 닮아."
"어. 한국 돌아가면 운동 하든가 해야겠다. 진짜 힘드네."
아주 나중에야 알았지만 저와 친구가 덜 지쳐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고, B가 힘들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어요. 저와 친구는 B가 전날 일하고 오기는 했지만 우리도 '지옥의 4일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B 혼자 날아다닐 거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오히려 B와 만나기 전까지 B 혼자 체력이 남아돌아서 흥분한 망아지마냥 혼자 뛰어다니면 그거 우리가 어떻게 쫓아다니나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었어요. B는 분명히 우리랑 신나게 놀 거 기대하고 올 게 뻔한데, 지옥의 3일을 보내고 지옥의 4일째에 접어든 저와 친구가 계속 힘들고 지치다고 징징거리며 B의 들뜬 마음에 걸쭉한 오물을 퍼부어대는 것은 엄청난 무례였어요. 아주 신난 B의 기분에 맞추어서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체력 보충은 커녕 있는 체력도 다 소모하고 있는 판이라 상당히 걱정했어요.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이 더위도, 이 혼잡도, 이 걸어간 길의 거리도 저와 친구에게는 아주 익숙한 것이었지만 B에게는 모두 생소한 것이었거든요. 사무실에서 일하는 일반인인 B에게는 뙤약볕 아래를 이렇게 걸어다닐 일 자체가 당연히 없고, 이 정도로 혼잡스러운 곳을 쉬지 않고 계속 걸어야할 일도 없었어요. 이렇게 많이 걸어야할 일도 없었구요. B의 체력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저와 친구의 체력이 놀라울 정도로 강해진 것이었어요.
그러나 이때는 이것을 당연히 몰랐어요. 어쨌든 B가 힘들어하는 것은 사실이었고, 더 이상 마땅히 볼 것이 있어보이지도 않았어요.
한 시간쯤 카페에서 쉬다가 밖으로 나왔어요.
길을 따라가다보니 공원이 하나 나왔어요.
하늘이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했어요.
"설마 비 오는 거 아니야?"
순간 기차에서 친구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기차에서 B가 오면 시안에서 어떻게 놀까 이야기를 하며 날씨를 확인해 보았더니 B가 와 있는 내내 시안은 비가 내릴 거라고 나와 있었어요. 그것을 보며 B가 참 날씨 고약할 때 온다고 말하면서 건조기후인 중국 내륙 지역에 설마 이렇게 3일 내내 비가 오겠냐 하고 있었어요. 우리나라도 일기예보가 아주 시시각각 바뀌어대는데 먼 미래의 일이 벌써 딱 맞아떨어지겠냐고 하며 실제 그날 가면 날이 맑을 거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우리 저녁 어디에서 먹을 거? 멀면 택시 타고 가자. 택시비 내가 낼께."
B가 저녁 먹으러 갈 곳이 멀면 택시타고 가자고 말했어요. 저와 친구가 돈을 아끼려고 걷는 것이라면 자기가 택시비는 내주겠다고 했어요.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버스를 검색해 보았어요.버스 정류장으로 갔어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폭우가 쏟아졌어요.
셋 다 우산이 없었기 때문에 건물 아래로 기어들어가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어요. 배수시설이 엉망인지 순식간에 길 여기저기에 물이 엄청나게 고였어요. 빗방울이 크고 거세게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얼마 안 가서 그칠 것처럼 보였어요. 지금 밖에 나가면 나가자마자 쫄딱 젖을 정도로 엄청나게 퍼부어대었어요. 그렇게 계속 기다리자 빗방울이 많이 약해졌어요. 빗줄기가 어느 정도 가늘어지자 식당을 찾아 달려나갔어요. 다행히 괜찮아보이는 식당이 보여서 거기로 바로 들어갔어요.
이렇게 음식을 시켜서 맥주를 반주로 해서 저녁을 먹은 후 밖으로 나왔어요.
밥을 먹고 나오니 비가 거의 그쳤어요. 하지만 이 빗줄기가 다시 굵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었어요. 부지런히 종루를 향해 걸어갔어요.
"야, 택시비 내가 낼께. 우리 택시 타자."
"택시 보이면 타게. 그런데 택시가 없다."
B는 만약 돈 때문에 저와 친구가 택시를 안 타려 하는 것이라면 자기가 내줄테니 빨리 숙소로 택시타고 가자고 몇 번에 걸쳐 매우 강조했어요. B에게 택시비를 혼자 다 부담하라고 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돈 아끼려고 택시를 안 타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저와 친구도 택시를 타고 싶었어요. 너무나 간절히요. 그런데 갑자기 비가 퍼붓자 중국인들이 다 택시를 타기 시작했어요. 택시가 남아나지 않았어요. 빈차가 있어야 잡아타고 갈텐데 빈차는 고사하고 오토바이 택시마저 만차였어요. 손님이 타지 않은 택시 자체가 보이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택시가 보이면 바로 잡아타기로 하고 종루쪽으로 걸어가는데 종루 도착해서도 택시가 보이지 않았어요.
"오토바이 택시 잡자."
남문까지 넘어가버리면 오히려 택시 잡기 고약해질 것 같아서 종루 근처에서 택시를 잡아타기로 했어요. 종루 근처라고 상황이 다르지는 않았어요. 택시와 오토바이 택시는 많이 보였지만, 모두 안에 사람이 타고 있었어요. 이제 비가 멈춘 것 같기는 했지만 기분나쁘게 실오라기 같은 빗방울이 가끔씩 뺨을 스쳐지나갔어요. 피곤하기도 하고, 비가 다시 내릴 수도 있는 상황이라 마음이 급했어요.
어떻게 오토바이 택시 한 대를 잡았어요.
"야, 타! 15원 부르는데 10원에 흥정했다."
앞에는 친구가 앉고 뒤에 저와 B가 앉았어요. 친구는 택시 기사와 뭐라고 중국어로 마구 이야기했어요.
"친구 중국어 진짜 잘한다!"
"어. 완전 중국인."
"쟤는 진짜 중국인 다 되었네."
친구는 계속 택시 기사와 열심히 중국어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동안 저는 B와 잡담을 하며 창밖을 바라보았어요. 오토바이 택시는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갔어요.
"이 택시 기사 우리 장기 털려고 끌고가는 거 아냐?"
"여기 왜 이렇게 으슥해?"
칼을 들고 네 신장 어디 보자 해도 될 것 같은 분위기. 곳곳에 마작방이 있었어요. 어두침침한 불빛 아래에서 사람들이 열심히 마작을 치고 있었어요. 마작 자체는 재미있는 게임이지만, 마작방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안 좋았어요. 우리나라 외국인 노동자 관련 뉴스를 보면 불법 마작방이 성행하고 있다는 뉴스가 간간이 나오거든요. 저런 곳에서 마약도 하고 도박도 하고 칼부림도 나는 거 아니야? 아무리 남자 셋이라지만 활개치고 다닐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야, 내려!"
갑자기 친구가 오토바이 택시를 세우고 내리라고 했어요. 저와 B는 영문도 모르고 친구가 내리라고 하니 내렸어요.
"거의 다 왔으니까 걸어가게."
"여기 숙소 아니잖아?"
"택시 기사가 계속 징징대는 거야. 저러면 분명히 내릴 때 돈 더 달라고 해."
"얼마나 더 달라고 하는데?"
"3원에서 5원."
"3원에서 5원?!"
"숙소 여기에서 얼마 안 멀어. 그냥 걸어가게."
친구가 내리라고 해서 내리기는 했지만 저와 B 모두 어이없었어요. 이 당시 중국돈 1위안은 우리나라 돈 175원 정도였어요. 그냥 편의상 1위안을 200원으로 계산하며 다니고 있었는데, 1위안의 가치를 후하게 쳐줘서 1위안당 200원이라 해도 3위안에서 5위안이면 우리나라 돈 600원에서 1000원. 5위안이면 음료수 500mL 한 통이기는 하지만 굳이 그 돈 가지고 성질나서 택시에서 내려야할 돈은 아니었어요. 게다가 처음에 흥정을 10위안으로 마친 후 탄 것이라 더 달라고 해도 무시하면 그만이었구요.
숙소에 거의 다 왔다고 해서 길을 찾아가며 걸어가는데 금방 깨달았어요.
우리 종루에서 숙소까지 절반도 못 와서 내렸다.
택시 기사는 횡재했다고 아주 좋아할 거에요. 친구가 10위안은 다 주었거든요. 원래 숙소까지 10위안이었는데 숙소까지 절반도 못 와서 내려버렸으니 저 택시 기사는 아주 신났을 거에요. 바로 종루로 돌아가면 손님을 금방 또 태울 수 있을 테니까요. 종루에서 숙소까지는 절대 가깝지 않았고, 종루에서 숙소까지의 절반 지점이라고 해도 절대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어요.
친구가 성질나서 택시에서 내려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와 B도 숙소를 향해 남은 길을 걸어가야만 했어요. 종루 쪽도 택시 잡기 어려웠는데 이쪽은 택시 잡기 더 나쁜 곳이었거든요.
비 온다! 비 퍼붓는다!
택시에서 내려서 얼마 걸어가지 않아 아까 버스에서 내렸을 때처럼 다시 비가 좍좍 퍼붓기 시작했어요. 셋 다 우산이 없었어요. 거리에 택시도 없었어요. 그냥 맞고 걸어가야 했어요. 숙소까지 가깝기는 개뿔이었어요. 숙소에서 많이 걸어가야 소안탑이 나오는데, 소안탑까지도 한참 걸어가야 했어요. 게다가 소안탑에서 숙소까지 걸어가는 길은 공사중이라 어두침침하기까지 했어요. 친구는 성질나서 처음에는 성큼성큼 혼자 앞서갔지만, 눈이 안 좋았기 때문에 금방 저와 B에게 따라잡혔고, 나중에는 저와 B의 뒤를 졸졸 쫓아오게 되었어요.
숙소까지 길안내를 제가 해야 했어요. B도 길을 알기는 했지만 중국의 험악한 교통질서에 아직 적응이 안 되어 있었거든요. 친구는 눈이 안 좋고 비까지 내려서 앞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었어요. 인도 상황 자체도 안 좋은데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겨서 걸어가기 매우 고약했어요. 빨리 걸어가고 싶어도 빨리 걸어가면 친구가 못 쫓아오니 빨리 걸어갈 수도 없었어요.
숙소에 간신히 도착하니 셋 다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버렸어요.
"야, 5위안? 내가 택시비 낸다고 했잖아!"
B가 진짜로 화났어요. 저도 어이없는데, B는 저녁 먹으러 가기 전부터 계속 오늘 택시비는 자기가 낼 테니 택시 타고 돌아다니자고 외쳤어요. B는 자기가 택시 타고 가자고 말한 만큼 더 많이 화가 났어요. 게다가 B는 3박 4일 일정이라 겉옷도 아주 대충 챙겨왔어요. 거친 빗줄기 속에서 한참을 걸어왔으니 당연히 B의 겉옷은 쫄딱 젖어버렸어요. 신발도 당연히 물웅덩이에 발 몇 번 빠지며 젖었구요.
"너는 3일 내내 2인용 침대에서 자!"
B가 합세하면서 시안에서의 숙소는 트리플룸으로 잡았어요. 3인실 침대는 더블 베드 1개와 싱글 베드 1개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원래는 하루씩 싱글 베드를 돌아가면서 쓰기로 했어요. 남자 둘이 한 침대를 쓰는 것은 군대에서 2년간 침상에서 남자들끼리 부비부비하며 자는 것으로 아주 과포화 상태의 경험이거든요. 하지만 천 원도 안 되는 돈 때문에 택시에서 뛰쳐내려서 비 흠뻑 맞아가며 숙소까지 걸어오게 만든 죄를 가만히 놔둘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B와 저는 친구에게 3일간 2인용 침대에서 자라고 벌을 내렸어요. 잘못에 대한 응징에 대해 친구는 아무 할 말이 없었어요. 200m 정도 걸어온 거라면 그래도 할 말이 있겠지만 사나운 빗줄기와 온갖 물웅덩이와 굉폭한 오토바이와 자동차 무리를 뚫어가며 1km 넘게 걸어오게 했거든요.
신발을 벗었어요. 엄청난 악취가 확 올라왔어요. 전날 황하 강변에서 쉰 이후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신발을 벗어서 냄새를 빼지 못한데다 비까지 맞아서 신발이 푹 젖어버렸으니 그 강도는 3배로 강화되었어요. 신발을 빨면 마를 것 같지 않아서 급한대로 신발 깔창만 빨기로 했어요. B가 치약으로 빨면 신발에서 나는 발냄새를 많이 줄일 수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신발 깔창을 치약으로 빨고, 다시 비누로 빨았어요. 발에서도 냄새가 엄청나게 나고 있었기 때문에 발도 똑같이 치약으로 먼저 씻고 비누로 다시 씻었어요. 확실히 치약으로 발을 씻고 신발 깔창을 빨자 발과 신발 깔창의 냄새가 확 없어졌어요.
"우리 시안에 오직 너 만나러 온 거야. 그러니까 너 가고 싶은 곳 좀 찾아봐봐. 우리는 시안에서 마땅히 가고 싶은 곳이 없어."
"알았어. 오늘 밤에 시안에서 갈 만한 곳이 있는지 한 번 찾아볼께."
씻고 나와서 B에게 저와 친구는 진짜로 시안에 오직 너를 만나러 온 것이고 시안에서는 그 어떤 일정도 아예 없다고 정확히 말해주었어요. 이 이야기 역시 친구에게 B에게 말해주라고 몇 번을 말한 것이었는데 친구가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던 것이었어요. B 역시 오늘 하루 저와 친구와 같이 돌아다녀보고는 이 말이 진짜 거짓이 아니라고 느껴서 진지하게 오늘 밤에 시안에서 가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겠다고 했어요.
"야, 나 꼭 3일간 2인용 침대에서 자야 돼?"
"어!"
저와 B의 기분이 좀 풀어진 것 같자 친구가 꼭 자기가 그렇게 3일 내내 2인용 침대에서 자는 벌을 받아야하냐고 물어보았어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저와 B가 딱 잘라서 대답했어요. 친구는 침울해져서 침대 안으로 기어들어갔어요. 일단 1인용 침대는 첫날인 오늘은 B가 사용하고, 다음날에는 제가 사용하고, 세 번째 날에는 저와 B가 가위바위보를 하든 해서 둘 중 누가 쓸 지 결정하기로 했어요.
신발 깔창을 널어놓고 친구 옆에 누웠어요. B는 스마트폰으로 시안에서 가볼만한 곳이 무엇이 있나 열심히 검색하고 있었어요.
"너 와이파이 쓰고 있어?"
"아니. 한국에서 로밍해왔어."
"오! 로밍! 돈 많네!"
"아니야. 일정 짧아서 로밍해도 얼마 안 나와."
B의 말을 들어보니 3박 4일 일정이면 로밍을 해 오는 것이 심카드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어요. 결정적으로 로밍을 해서 오면 중국의 무조건 다 금지시키고 보는 무개념 방화벽인 황금방패의 제한을 안 받을 수 있거든요.
"화청지 괜찮대. 우리 내일 화청지 가자."
인터넷으로 시안의 가볼 만한 곳을 찾아보던 B가 화청지를 가자고 말했어요. 저도 숙소 와이파이를 이용해 화청지가 어떤 곳인지 찾아보았어요. 입장료가 150위안이기는 하지만 괜찮아 보였어요.
저도 시안에서 볼거리가 무엇이 있나 찾아보았어요. 병마용은 원래 가기로 한 곳이고, 그 외에 화청지, 대안탑, 화산 정도가 있었어요. 화산을 가면 좋겠는데 거기 다녀오기에는 B의 일정이 빠듯했어요. 화산을 간다면 다음날 병마용과 화청지를 다녀오고, 다다음날 가야 하는데, 그 다음날 B가 귀국하고 그 다음날에 B는 출근해야 했어요. 가려면 갈 수야 있지만 그렇게 하면 B가 엄청나게 힘들 것이었어요.
'여기 모스크도 있네?'
회민가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청진대사' 清真大寺 라는 오래된 모스크가 있었어요. 이 모스크는 모스크 양식이 확립되기 전에 세워진 모스크라 그 구조가 일반 모스크와 많이 다르다고 나와 있었어요. 문제는 입장료였어요. 입장료가 25위안이라는 것을 보니 가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졌어요. 입장료 내고 들어가는 모스크 중 모스크 그 자체로 매우 만족스러웠던 것은 지금까지 딱 한 곳 - 모로코 카사블랑카의 하산 2세 모스크 뿐이었어요. 모로코 카사블랑카의 하산 2세 모스크는 북서아프리카 이슬람 예술 복합체라 해도 될 정도로 크고 잘 지은 모스크거든요. 하지만 이 모스크를 제외하고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모스크 중 모스크 그 자체만으로 만족스러웠던 모스크는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어요.
이 모스크를 가자고 하면 무료라 해도 친구가 신나게 흔들어놓은 콜라 뚜껑 확 열어버리듯 가기 싫다고 발광할텐데, 1인당 25위안까지 내야 한다고 하면 그 반응은 안 봐도 뻔했어요. B에게 이곳을 가자고 이야기하면 B야 좋다고 가기는 하겠지만, 모스크 들어가서 B에게 어떻게 설명해줄 자신이 없었어요. 차라리 일반 모스크라면 알고 있는 것 가지고 한 번은 재미있게 만들어줄 수 있는데, 사진을 보니 이것은 제가 아는 그 일반적인 모스크 형태가 아니었어요. 어디에서 어떤 설명을 해주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어요. B가 특별히 재미있어하지 않으면 친구는 아주 신나서 그거 보라고, 모스크 가봐야 볼 거 없어서 싫다고 3단 고음으로 노래를 부를 것이 뻔했어요. 저 혼자만 가는 거라면 어떻게든 들어가보겠지만, 2명과 같이 다녀야 하다보니 매우 고민이 되었어요. 게다가 중국에서 모스크 보러 들어가는데 입장료 25위안을 내는 것은 진짜 아니라고 생각했구요.
혹시 무언가 제 마음을 확 잡아당길 것이 있나 더 검색해 보았지만 딱히 와닿는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스마트폰을 끄고 잠을 청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