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53 중국 둔황 절 - 뇌음사 中国 敦煌 雷音寺

좀좀이 2016. 11. 1.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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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자 입구가 나왔어요.



"여기 이름은 뇌음사구나."


한자가 흘겨서 적혀 있지 않아서 읽을 수 있었어요. 중국어 발음으로 어찌 읽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말로 읽으면 뇌음사. 천둥 소리 절이었어요.


'그러고보니 중국 와서 절을 가볼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구나.'


절, 모스크 가서 구경하는 것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올 때 중국에서 절을 가보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어요. 그냥 한족들의 것 자체에 관심이 없었거든요. 게다가 모든 정신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위구르인들의 삶과 문화를 관찰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어요. 한족들의 절을 가본다는 생각은 아예 해보지를 않았어요. 관심도 필요성도 못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이 절을 가게 된 것 역시 의도해서 간 것이 아니라 막고굴을 안 갔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어요. 만약 어떻게든 막고굴을 가겠다고 했다면 바로 오늘 막고굴을 갔을 거에요. 그런데 막고굴이 입장료는 비싸고 별로 볼 거 없다는 평을 보고 막고굴 일정을 폐기시켜버렸고, 그로 인해 텅 비어버린 일정을 때워넣기 위해 모스크도 가고, 이렇게 절도 가게 된 것이었어요.


중국 둔황 뇌음사 정문


우리로 치면 일주문에 해당하는 문을 통과하자 뇌운사 지도가 보였어요.


중국 뇌음사 지도


이 절은 원래 서진 시대에 건립된 절이래요. 원래 이름은 선암사 仙岩寺 였고, 5호16국 시기 정식 명칭은 막고굴 莫高窟 이었으며, 당나라 초기에는 숭교사 崇敎寺, 원나라 때에는 황경사 皇庆寺, 청나라 초기에 현재 이름인 뇌음사로 바뀌었대요. 그러나 청나라 이후 실상 폐허로 남아 있다가 1986년 둔황의 불자들이 조그맣게 절을 다시 세웠고, 2007년에 둔황 막고굴 사원 172개 동굴 벽화를 따라 크게 확장했다고 해요.


먼저 천왕전 天王殿 으로 갔어요.


뇌음사 천왕전



사천왕상은 우리 나라 것과 아주 달라보이지는 않았어요.


중국 사천왕상


중국 둔황 뇌음사 사천왕상


일단 앞으로 쭉 걸어갔어요.





한자가 흘려서 써 있어서 읽지 못했어요. 이곳을 지나가서 또 안으로 계속 걸어가자 대웅보전이 나왔어요.


중국 둔황 뇌음사 대웅보전


대웅보전 내부는 이렇게 생겼어요.



현판에는 운음빈선 雷音頻宣 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리고 안에 모셔진 불상은 이렇게 생겼어요.


중국 뇌음사 대웅보전 불상


대웅보전을 통과하자 매우 큰 법당이 하나 보였어요.




이 건물은 대광명전 大光明殿 이었어요.


中国 敦煌 雷音寺 大光明殿


대광명전 안으로 들어갔어요.


중국 둔황 뇌음사 대광명전


"여기는 절을 어떻게 하라는 거야?"


절에 왔으니 부처님께 절을 하고 가려는데 바닥이 그냥 돌바닥이었고, 둥근 방석들이 자리잡고 있었어요. 이 둥근 방석 위에서 절을 하라는 건가? 맨바닥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절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절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정확히 어떻게 절을 해야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눈치로 일단 이 노란 원형 방석 위에서 절을 하는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어요.


중국 불교


노란 방석 앞에 서서 우리나라에서 절에 가서 절을 하듯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절을 드렸어요. 정말 불편했어요. 방석 높이가 꽤 있었기 때문에 절을 할 때마다 발이 공중으로 떴어요. 게다가 방석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몸을 바짝 움츠려야 했어요. 절하기 매우 불편했어요. 어떻게 절을 하는지 잘 몰라서 우리나라 식으로 불상마다 절을 드리는데 중국인 한 명이 들어와 불상에 절을 하는 것이 보였어요.


저렇게 하면 우리나라에서 108배 드리는 것이 왜 힘든 일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방석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세우고 앉아서 허리만 까딱까딱 숙이고 있었어요. 태국, 라오스에서 사람들이 바닥에 두 다리를 다소곳이 모아 포개고 주저앉아 허리만 굽혀 절하는 것과 약간 비슷했어요. 무릎으로 땅에 서서 허리만 까딱이고 있었거든요. 저렇게 절하면 108배는 금방 할 수 있게 생겼어요. 이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에서 108배를 드리는 것이 깊은 불심을 보여주는 행동이라고만 말해주면 그것을 전혀 이해 못할 거 같았어요.



中国 敦煌 雷音寺


대명광전은 불상 뒤로 돌아가볼 수도 있게 되어 있었고, 벽은 작은 불상을 붙여가고 있었어요.






대명광전에서 나와 다시 절을 돌아다녀보기 시작했어요.




중국 절


대명광전 뒷편은 아직도 증축 공사가 진행중이었어요.




"이제 숙소 돌아가자. 나 힘들어."


친구가 재미없다면서 숙소로 돌아가자고 했어요. 저는 건물 하나씩 들어가보고 불상에 절을 하느라 지친 상태. 일단 이 절은 규모가 상당히 컸어요. 정말 대륙답게 어마어마하게 넓고 크게 지어놓았어요. 물론 중국에는 이보다 더 큰 절도 분명히 여럿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제가 가본 절 중 이렇게 큰 절은 본 적이 없었어요. 절당 건물들을 돌아다니는 것도 힘든 일인데 거기에 불상이 보이면 우리나라식으로 삼배를 드리다보니 진짜로 저도 지쳤어요.


"돌아가자."






中国 佛教


우리나라는 왜 유독 절을 힘들게 할까?


불상에 절을 하면서 다시 이것이 궁금해졌어요. 사실 이것은 단순히 불상 앞에서 절을 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나라에는 뭐든지 강성으로 만드는 기운이 흐르고 있는 거 아닌가? 불교도 유교도 기독교도 모두 우리나라로 들어와서 강성으로 바뀌었어요. 이는 종교 뿐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에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외고집, 외골수를 높게 쳐주는 것은 아닌데요. 얼핏 보면 외골수를 높게 쳐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아요.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딱 한 과목만 잘하면 된다'고 하지는 않아요. 하여간 왜 외국 것이 우리나라로 들어오면 강성으로, 극단적으로 가는지 모르겠어요. 어찌 보면 참 재미있는 현상이고, 어찌 보면 사람 참 공격적으로 만드는 현상이에요.



'나도 중국식으로 절 해볼까?'


불상마다 절하다 지쳐서 편하게 중국식으로 절을 할까 순간 고민이 되었어요. 그러나 그냥 그것은 아닌 것 같았어요. 차라리 절을 안 하고 구경만 하고 가면 갔지, 어색하고 뭔가 아닌 것 같은 식으로 대충 때우고 싶지는 않았어요. 에구구 거리면서 절을 했어요. 절을 하면서 빈 소원은 딱 하나였어요. '제발 여행 무사히 잘 끝내게 해주세요.' 딱 이것만 빌었어요. 여행중에는 그냥 무사히 여행 잘 다니게 해달라고 비는 것 외에는 딱히 다른 것을 빌고 싶지 않더라구요. 예전부터 다녔던 여행들에서 별별 일을 다 겪다보니 여행중에는 뻘짓, 모험 다 필요없고 무사안전이 최고라고 여기게 되었거든요.




이곳이 중국 서진 시대에 지어진 절 유적 위에 다시 지어진 절이라 해서 1700년 역사를 가진 절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절당 건물들 자체의 역사는 긴 편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그 얼마 안 되는 역사 속에서 모래 먼지가 칠해져서 자연스럽고 나름 역사가 있는 건물들처럼 보였어요. 아마 둔황 시내의 삐까번쩍한 건물들도 몇 년 후에는 이 절처럼 아주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들어간 절이었는데 의외로 규모도 크고 나름 볼 만 했어요. 다른 절을 여러 곳 보고 보았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어요. 이 절은 제가 이 중국 여행에서 처음으로 가본 절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불교 유적 때문에 유명한 둔황에 와서 불교와 관련된 곳을 한 곳 가보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만족스러웠어요. 백마탑, 막고굴은 못 갔지만, 대신 현재 절로 사용하고 있는 곳을 갔으니까요. 만약 여기를 가지 않았다면 둔황 와서 모래 언덕만 질리도록 보고 갈 뻔 했어요. 이렇게 의미 부여를 하니 더욱 더 여기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친구는 썩 재미있어하지 않았지만요.


절에서 나와 길을 걷는데 명사산으로 향하는 쌍봉낙타가 우리 앞을 달려가고 있었어요.



"이제 거의 다 왔네."



숙소 근처인 명사산 입구에 도착하니 어느덧 오후 5시였어요.


中国 敦煌


"숙소에서 쉬면서 핸드폰 충전하다 나오자."


둘 다 휘청거리며 숙소로 들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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