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52 중국 여행기 둔황 거리 풍경

좀좀이 2016. 10. 3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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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돌아갈까?"


멍하니 자리에 앉아서 말없이 쉬고 있는데 친구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자고 했어요.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2시였어요. 숙소까지는 걸어가기로 했어요. 숙소까지 약 1시간 정도 걸렸기 때문에 이제 슬슬 출발할 때가 되기는 했어요. 더워서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어요. 음료수 하나 더 시켜서 더 앉아서 멍하니 있고 싶었어요. 그러나 그렇게 무한정 계속 있을 수는 없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슬슬 걷기 시작했어요.


둔황 식당


지금껏 가보지 않은 쪽으로 돌아가서 숙소로 가보기로 했어요.


"야시장이랑 사주시장 연결되어 있는데?"


둔황 사주시장 입구


야시장도 사실 사주시장의 일부분. 그런데 이쪽 사주시장은 밤에 계속 왔던던 관광지 사주시장과는 살짝 거리가 있는 풍경이었어요. 관광 기념품도 팔고 있었지만 일반 잡화도 팔고 있었어요.





그리고 길 건너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12번 버스.


"우리 이따가 여기로 오면 돼!"

"여기로?"

"저기 12번 버스 있잖아. 저거 기차역 가는 버스 아니야?"


버스 노선도를 보았어요. 기차역이 적혀 있었어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12번 버스가 둔황역 가는 버스가 맞다고 알려주었어요. 오늘은 친구와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해야 하는 날. 다음날은 아침 일찍 기차가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잠을 자야 했어요. 여차하면 기차역 안에서 자고 싶었지만, 중국에서 그것을 허락해줄 것 같지는 않았어요. 설령 그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기차역 들어갈 때 보안검색을 받아야했기 때문에 한 번 들어가면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어요. 그러므로 적당히 기차역 근처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하는 것이 최고의 선택지. 둔황 시내에서 기차역까지는 상당히 멀기 때문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어요. 저 12번 버스를 찾아냈으니 이따 망설일 필요 없이 바로 이쪽으로 오면 될 것이었어요.


"우리 이따 저 도넛 사서 먹어보자."

"그러게."


중국 둔황 회족 도넛


친구와 이따 도넛을 사서 먹기로 하고 계속 걸었어요. 참고로 저 사람은 회족이에요. 그리고 뒤에 보면 '할랄'이라고 적혀 있어요.


둔황 시장 풍경


둔황 시장 거리


대충 방향을 잡고 골목길로 들어갔어요.



"목마르다. 우리 밀크티 하나 사먹자."

"그럴까?"


확실히 덥고 건조했어요. 게다가 먼지도 많았어요. 목이 아주 빠르게 말랐어요. 모래 풀풀 날리는 운동장에서 오래달리기를 마친 것처럼 입안이 짜고 텁텁했어요. 뭔가를 마시고 싶었어요. 친구도 이것저것 먹자는 것에는 시큰둥했지만 마시자는 것에는 좋다고 하고 있었어요. 설령 배불러서 지금 당장 다 마시기 힘들다 하더라도 갈 길이 머니 천천히 마시며 가면 되기도 했구요.


밀크티를 파는 가게가 없나 주위를 살펴보는데 입구에서 꼬치를 파는 가게에서 안에는 밀크티를 팔고 있다고 적혀 있었어요.



"야, 여기 밀크티 엄청 싼데?"



밀크티는 작은 컵이 5위안, 큰 컵이 6위안이었어요. 당연히 1위안 차이라면 큰 컵이었어요. 밀크티를 주문하고 식당을 둘러보는데 역시나 여기에도 음식을 낭비하지 말자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어요.


중국 음식 절약 포스터


밀크티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왔어요. 목이 말랐던 상태라 그런지 밀크티가 정말 맛있었어요. 전날밤 마셨던 그 10위안보다는 살짝 떨어지는 맛이기는 했어요. 그래도 1위안짜리는 1위안의 값어치를 한다는 중국 격언에 따르면 이것은 매우 좋은 선택이었어요. 10위안짜리 밀크티에 비하면 7위안 정도는 하는 맛이었거든요. 사실 한국 기준으로 본다면 이 밀크티도 상당히 맛있는 밀크티에 속했어요. 단지 중국이다보니 경쟁 밀크티들이 쟁쟁해서 조금 낮게 평가받은 것 뿐이었어요.





번잡하고 화려하고 너무 새 것 투성이라 짝퉁 아닌가 싶은 장소에서 조금만 벗어나자 이렇게 한적하고 조용한 풍경이 나왔어요.


"우리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나?"

"맞을껄? 방향이 맞잖아."


벌써부터 친구의 스마트폰 배터리가 걱정되기 시작했어요.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스마트폰이 없으면 저와 친구 모두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여행 정보에 대해 제대로 찾은 것도 아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별로 없었어요. 더욱이 기차표를 발권받기 위해서는 친구의 스마트폰이 반드시 있어야 했어요. 친구의 스마트폰은 말 그대로 우리의 길 안내자이자 정찰병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없어지면 갑자기 '이제부터 새로운 곳 탐험이에요'로 여행이 바뀌어버리는 것이었어요. 국내여행이라면 그래도 문제가 덜한데, 이것은 외국 여행이고, 하필이면 중국. 친구 스마트폰이 꺼져버리는 순간 저는 60kg 넘는 걸어다니는 짐덩이로 전락. 게다가 당장 오늘밤과 내일밤은 노숙이었기 때문에 충전할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숙소로 돌아가 다시 충전을 조금 하겠지만 그 충전으로 이틀밤을 보내야 했어요. 그래서 웬만하면 친구에게 핸드폰을 꺼내지 말라고 하고 있었어요.



이 빛깔은 중앙아시아의 색!


둔황은 한족과 회족들이 사는 곳. 그러나 이 색은 바로 중앙아시아의 색이었어요. 여름철 중앙아시아 거리 색이 이렇거든요. 저 나무와 그 위에 덮힌 먼지가 만들어내는 탁한 연녹색 나뭇잎과 누르끼리 하얀 나무의 기둥. 중앙아시아의 여름을 상징하는 색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단연코 저 색들을 꼽을 거에요. 저 색이야말로 여름철 중앙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색깔이니까요. 실크로드가 사실상 중앙아시아를 건너가는 길이니 여름철 실크로드 위에 있는 마을을 대표하는 색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에요.


이 길을 걷는 것은 벌써 세 번째. 두 번은 밤에 걸었고, 낮에 걷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처음에는 길을 잘못 들어온 줄 알았는데 계속 걷다보니 KTV 간판이 보였어요. 순간 안도감이 들었어요. 밤에 걸어서 숙소 돌아갈 때 KTV 간판을 보았거든요. 두 번이나 보았기 때문에 KTV 간판을 보는 순간 저와 친구가 엉뚱한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니라 맞게 잘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중국 둔황 실크로드 모자이크 벽화


실크로드의 환상을 그린 모자이크 벽화가 보였어요. 이 벽화는 불교와 중국이 중심이었어요.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실크로드 그림을 그려놓은 것을 보면 느낌이 이것과는 많이 달라요. 그림의 소재에서 불교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지 않고 있고, 자신들의 땅이 실크로드 위에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자신들의 전통 문화를 강조하지요. 중국 냄새가 많이 나기는 했지만 이 그림은 참 마음에 들었어요. 왜냐하면 불을 잔뜩 그려놓아서 실크로드가 얼마나 위험하고 험난한 길인지 표현하고 있었거든요.



다행히 거리에 가로수가 많아서 걸을만했어요.



길 옆에는 화초를 키우기 위해 물을 주고 있었어요.


'여기는 물을 한낮에 주네? 이렇게 해도 되나?'


어렸을 적 한여름에 식물에 물을 줄 때는 한낮에 주지 말라고 배웠었어요. 왜냐하면 한낮의 뜨거운 열기로 물이 뜨거워져서 식물이 익어서 죽어버릴 수 있다고 한여름에는 물을 한낮에 주는 것이 아니라고 했어요. 이것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는 몰라요. 그냥 저는 그렇게 어른들에게 배웠고, 지금까지도 그렇다고 알고 있을 뿐이에요. 그런데 여기는 한낮에 물을 아주 흠뻑 주고 있었어요. 이것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여기는 너무 건조하고 뜨거우니 오히려 물을 주어서 식혀야 할 수도 있는 거고, 반대로 아주 관료제스럽게 기계적으로 시간 변동 없이 물을 트는 것일 수도 있구요.


멀리 명사산이 보였어요.



길 옆으로는 물이 이렇게 콸콸 흐르고 있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사막이라고 해서 물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정확히 말하자면 지상 위에 물이 없는 거에요. 땅 위에 있는 물은 건조해서 쉽게 다 말라버리는 것이에요. 땅 속에는 지하수가 흘러요. 그 지하수가 사막 위로 솟아나오면 월아천 같은 오아시스가 되는 것이구요. 둔황 자체에 물이 이렇게 콸콸 흐르는 것은 이상해보이지만 이상할 것은 없는 것이었어요. 단지 저렇게 대놓고 땅 위로 흘려보내면 증발량이 어마어마할 거라는 문제점이 있을 뿐이지요.


다리를 건너 공원 안으로 들어갔어요.


중국 장기


공원에는 이런 저런 조각들이 있었어요. 일단 가장 먼저 발견한 동상은 장기 두는 할아버지와 아이였어요.


'중국 장기 한국 장기랑 꽤 많이 다르지.'


저는 중국 장기를 베트남 여행 중에 배웠어요. 한국 장기랑 비슷해 보이지만 한국인 기준에서는 상당히 답답하고 재미없어요. 이것은 어쩌면 동아시아 3국의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에요. 마작, 장기 모두 중국에서 건너온 놀이지만 동아시아 3국인 한국, 중국, 일본의 게임 방법은 정말 많이 달라요. 중국 것을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한국 것은 상당히 빠르고 공격적이고 단순하며, 일본 것은 상당히 세세하고 복잡해요.




공원 안에는 물이 정말 풍부했어요. 명사산과 그렇게 먼 곳이 아닌데 이렇게 물이 풍부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였어요.



쿠차의 위구르인 소녀 조각은 노트북 컴퓨터 하던데 둔황의 한족 소녀 조각은 책을 읽고 있었어요.



"가자."


친구에게 공원에서 나가서 어서 절로 가자고 말했어요. 같이 앉아서 쉴 자리는 고사하고 저 혼자 앉아서 쉴 자리도 없었어요. 친구는 어떻게 앉아서 쉴 곳을 찾았지만, 딱 한 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벤치가 있기는 했지만 전부 양달에 있어서 도저히 앉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요. 공원 구경은 적당히 했고, 햇볕이 너무 강해서 사진은 몇 장 찍지 못했어요. 차라리 절에 가서 쉬는 것이 낫겠다 싶었어요.


전날 못 가본 가로수 너머 뒷길로 걸어가보기로 했어요. 어차피 명사산 방향으로만 가면 되었기 때문에 방향을 찾는 것 자체는 큰 무리가 없었어요. 매일 같은 길로만 지나다녀서 다른 길로도 가보고 싶었지만 밤에는 차마 그럴 수 없었어요. 으슥하고 무서워서가 아니었어요. 멀쩡한 큰 길도 너무 깜깜해서 은하수가 보이는 구간이 있을 정도인데, 가로수 너머 뒷길은 진짜 암흑의 세계였거든요. 거기는 정말로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역시나 명사산이 길 끝에 시원하게 보이고 있었어요.








"여기 뭐지?"

"왜 건물이 다 이 모양이냐?"

"무슨 버려진 마을이야?"



벽의 선전 포스터 그림은 이제 확실히 한족의 그림이었어요.


다시 큰 길로 나왔어요.



길 건너에서는 무슨 바자회라도 있는지 차양막이 쳐 있고 사람들이 몰려 있었어요.




그리고 나타난 둔황 경마장.


둔황경마장


둔황 역사박물관도 나왔어요.


둔황 역사박물관


"이것들 정말 지금도 운영하는 건가?"


둔황 경마장과 둔황 역사박물관을 보니 이 두 건물이 지금도 운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어요. 먼지를 뒤집어쓴 거야 이곳 기후와 지질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해요. 하지만 인기척이 아예 없었어요. 사람이 안 보일 수 있어요. 엄청나게 뜨거운 한낮이니까요. 모두 실내 들어가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다면 여기 관광 버스라도 한 대 있어야 할 거에요. 그런 것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자동차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버려진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로 이질적인 두 풍경이 한 공간에 있는 길이 계속 이어졌어요.



그렇게 친구와 계속 걸어가다보니 드디어 절 느낌이 나는 담장이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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