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일어나."
"몇 시인데?"
"아주머니가 오늘은 이 방에 손님 들어온다고 12시까지 체크아웃해달래."
전날은 이 방에 손님이 안 들어오니 1시까지 체크아웃하면 된다고 했어요. 하지만 주인 아주머니가 오늘은 이 방에 손님이 들어오므로 원래 체크아웃 시각인 12시에 체크아웃을 해 달라고 했다고 말하며 친구가 저를 깨웠어요.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났어요. 밖에서 한국인 여자 목소리가 들렸어요. 두 명쯤 되는 것 같았어요.
"한국인들도 왔나보네."
"응. 쟤네들 란저우에서 왔다고 해서 란저우 어떠냐고 물어봤어."
"뭐래?"
"볼 것들은 황하 따라서 있대."
"그걸로 끝?"
"응."
"뭐 별 거 없네."
전날 밤 제가 인터넷으로 찾아본 란저우 관광 정보와 별다를 것이 없었어요. 란저우 기차역에서 나와서 북쪽으로 걸어가면 황하가 나오고, 황하를 따라 볼 것들이 몰려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어요. 거기에 무슨 언덕 같은 산이 하나 있고, 그 위에 절과 탑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정말로 도시가 관광을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 건가? 그렇다면 다행이었어요. 적당히 황하 따라 걷다 쉬다 하면 될 테니까요.
"기차표는 잘 끊었어?"
"응."
"어떻게?"
"다른 어플 가입해서 구입했어."
천만다행으로 기차표도 발권이 잘 되었어요. 밖에 나가서 옷과 신발 깔창을 들고 온 후, 샤워를 하고 짐을 꾸렸어요.
"오늘은 어디 가지?"
"글쎄."
숙소 입구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어디 갈까 고민했어요. 숙소 입구에는 둔황 관광지 몇 곳이 있었어요.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숲.
"거기 지금 별 볼 일 없대. 단풍 들어야 멋있대."
"그래?"
그 다음은 백마탑.
"거기 입장료 있대."
"입장료? 안 가."
탑 하나 보는데 돈을 내고 싶지 않았어요. 이렇게 백마탑도 안 가고 숲도 안 가니 갈 곳이 없었어요.
"그러면 오늘은 시내에 있는 모스크랑 시내 나가는 길에 있는 절이나 보자."
"절이랑 모스크?"
친구 얼굴이 일그러졌어요.
"오늘 할 거 없잖아. 체크아웃 시간부터 이따 저녁까지 짐 들고 돌아다닐래? 여기 결국 다시 돌아오려면 시내에서 놀아야 하는데."
친구가 반박을 하지 못했어요. 지금 모험을 하러 나간다면 뙤약볕 아래에서 모든 짐을 들고 걸어다녀야 했어요. 이건 정말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숙소에서 멍하니 앉아있을 수만도 없었어요. 어쨌든 밥을 먹으려면 시내로 나가야했거든요. 오늘의 한 끼는 정말 소중한 한 끼였어요. 내일 하루 종일 기차를 타야 했거든요. 기차역에서 파는 음식은 비싸고 맛없기 때문에 오늘 잘 먹어두어야 했어요. 결국은 시내를 돌아다니다 적당히 숙소 돌아와야 한다는 이야기였어요. 전날 시내를 둘러보았을 때 특별히 볼 것이 있는 곳은 아니었어요. 기껏해봐야 사주시장 정도였어요. 절과 모스크를 제외하면 시내에서 계속 걸어다녀야 했어요. 이것도 참 아니었어요. 결론은 절과 모스크를 가고 남는 시간은 적당히 앉아서 시간을 때우든가 하는 것이었어요.
일반적인 여행이라면 멍하니 카페에 앉아서 쉬며 친구와 잡담을 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지였어요. 그런데 지금 기차 이동을 질리도록 하고 있었고, 친구와 벌써 13일째 여행하고 있었어요. 5월 27일부터 중국 여행을 시작했는데 이날은 6월 8일이었거든요. 이제 이야기 소재도 밑천을 드러내고 있었어요. 매일 둘이 붙어다니다보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스포츠는 물론이고 아주 그냥 우주삼라만상 빅뱅에 사후 세계까지 다 몇 번씩 이야기해봤어요. 카페에 앉아서 쉰다면 둘 다 지루함을 이겨내며 멍하니 앉아있어야 할 상황에까지 다다라버렸어요.
친구 핸드폰을 이용해 오늘 일정을 위한 동선을 먼저 짜보았어요. 절은 숙소에서 약 1km 정도 떨어져 있었어요. 3번 버스 노선에서 시내 들어가기 전까지는 특별히 정거장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었어요. 아주 자연스럽게 시내로 일단 버스를 타고 간 후, 시내를 다시 둘러보고 모스크를 찾아가본 후에 걸어서 숙소로 돌아오며 절을 들렸다 돌아오기로 했어요.
11시 40분. 숙소에서 나왔어요. 오늘도 하늘은 불타고 사막은 달구어지고 있었어요.
이것이 명사산과 시내를 이어주는 3번 버스에요.
"명사산아, 이따 또 보자!"
손을 흔들며 버스에 올라탔어요. 정오에 둔황 시내에 도착했어요. 둔황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버스 표지판을 유심히 바라보았어요.
"우리 북진시장 한 번 가볼까?"
"북진시장?"
"응. 거기 한 번 가보게. 여기 일반 시장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이나 하자. 가다가 식당 있으면 밥도 먹고."
"어. 그러자."
친구와 함께 북진시장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둔황 우체국이 나오자 혹시 안에 엽서 예쁜 것 파는지 보기 위해 잠시 들어가보았어요. 엽서도 우표도 예쁜 것은 없었어요.
"벌써 학교 끝났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어요.
한산한 거리를 계속 걸어가자 북진시장 北辰市场 Beichen Market 이 나왔어요.
시장을 쭉 걸어가보았어요.
"설마 이게 끝인가?"
진짜 이것이 끝이었어요. 이것은 정말 시시했어요. 서울의 대림에 온 기분이었어요. 거기가 낮에 한산할 때 보면 이런 느낌이었거든요. 독특하고 재미있는 것을 찾아보았지만 그런 것은 찾을 수 없었어요. 게다가 밥을 먹을만한 식당도 시장 안에 없었어요. 식당이 있기는 했지만 무언가 확 끌리는 것도 없었고, 위생적인 문제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냥 시장을 대충 둘러본 후 밖으로 나왔어요.
거리에서 누가 폭죽을 터뜨렸고, 이것 앞에 있는 식당 안에는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어요.
"여기 맛집인가?"
알고보니 결혼식이 있어서 양가 가족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자리였어요.
"여기 식당이 다 왜 이 모양이냐?"
둔황은 간쑤성. 간쑤성에 왔으니 맛이 있든 없든 간쑤성 음식을 맛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거리에 있는 식당은 전부 쓰촨성 음식을 파는 식당 뿐이었어요. 쓰촨성 음식이라고 적혀 있지 않은 식당에 들어가서 친구가 여기 간쑤성 음식 파는 곳이냐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쓰촨성 음식을 파는 식당이라고 대답했어요. 간쑤성에서 쓰촨성 음식을 먹기는 정말 싫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사천 요리'를 파는 식당은 조금 있지만, '감숙 요리'를 파는 곳은 아직 단 한 곳도 보지 못했거든요. 간쑤성 왔으니 간쑤성 음식은 어떤지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그냥 여기서 먹자."
거리를 걸어가며 식당을 다 들어가보았는데 딱 한 곳만 쓰촨 음식을 판다고 적혀 있지 않았어요. 식당 분위기는 동네 주민들이 와서 가볍게 점심 먹고 가는 분위기였어요. 그래도 사람들이 계속 들어와서 식사하고 나가는 것으로 보아 맛이 없는 식당 같지는 않았어요. 사실 맛이 있고 없고를 따질 상황이 아니었어요. 전부 쓰촨 음식을 파는 식당이라 이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으면 간쑤성 음식을 못 먹어볼 수도 있었거든요.
이 식당 역시 면을 사람이 손으로 뽑아내고 있었어요.
중국 여행 13일째. 이제 수타면에 대한 환상은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이제는 원래 한국에서 먹던 기계로 뽑은 면을 먹고 싶었어요. 처음 수타면 먹을 때에는 쫄깃하고 맛있다고 생각했지만, 이것도 계속 먹으니 질려버렸어요. 볶음밥, 짜장밥, 라면에 말아먹는 밥 등등 이런 저런 밥을 먹더라도 결국은 평소에 생각없이 먹던 한국식 쌀밥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었어요.
식당에 앉아서 무엇을 먹을지 살펴보았어요.
주방에서는 열심히 요리중이었어요. 서빙은 아예 없었어요. 전부 자기가 가져다 먹어야 했어요.
"뭐 시키지?"
"저거 시켜. 중국 왔으면 그래도 중국식 짜장면 먹어봐야지."
친구는 特色炒拉条 를 고르고, 제게는 짜장면을 먹어보라면서 炸酱面 을 시켰어요.
주문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면요리가 나왔어요. 친구와 제가 직접 음식을 들고 가야 했어요.
이것은 特色炒拉条 에요.
이것은 중국식 짜장면인 炸酱面 이에요. 친구가 제 짜장면을 보더니 깜짝 놀랐어요.
"이거는 상해에서 파는 짜장면이랑 다르네?"
"어떻게 다른데?"
"상해는 짜장면에 두부 넣지 않아."
친구 말에 놀랐어요. 한편으로는 '역시 그렇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의 짜장면과 중국의 짜장면이 다르다는 것은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 거의 다 알아요.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 짜장면과 중국의 짜장면이 다르다는 것까지는 모두가 아는데, 중국의 짜장면이 대체 어떻게 생긴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에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중국 가면 호기심에 중국의 진짜 짜장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먹어보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정작 이렇게 먹어본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중국의 짜장면에 대해 특별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요. 왜냐하면 이렇게 중국에서 직접 짜장면을 먹어본 사람들 말을 다 모아보면 말이 정말로 다 다르거든요. 보통은 그래도 장을 올린 짜장면에 가깝지만, 짜장면은 기름이 국물처럼 흥건하다는 사람부터 아예 짜장면에 국물이 있더라는 사람까지도 만나보았어요. 재미있는 것은 이 사람들 말이 거짓이거나 잘못된 것은 또 아니라는 것이었어요. 며칠 여행으로 다녀온 사람들, 적당히 단기 어학연수하고 돌아온 사람들 말이 아니라 진짜 중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저렇게 말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내렸던 결론은 '중국의 짜장면은 그냥 가지각색'이었어요. 그리고 그 결론은 틀린 것 같지 않았어요. 친구가 제가 먹는 짜장면을 보고, 맛까지 보고 베이징, 상하이의 짜장면과는 다르다고 했으니까요.
"여기 간쑤성 음식 파는 식당이래!"
"진짜?"
친구가 계산하면서 직원에게 여기 음식이 간쑤성 음식이냐고 중국어로 물어보았어요. 직원은 맞다고 대답했어요. 단지 '쓰촨 음식'이라고 적혀 있지 않고 동네 주민들 들어가서 점심 먹길래 따라들어간 것이었는데 운 좋게 간쑤성 음식을 맛본 셈이었어요. 정말로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은 격이었어요. 이렇게 간쑤성 음식 두 종류를 먹어보게 되었어요. 저와 친구 모두 매우 신났어요. 그렇게 찾아 헤매던 간쑤성 음식을 포기하고 그냥 대충 먹자고 들어간 식당에서 간쑤성 음식을 요행으로 맛보게 되었으니까요.
식당에서 나와 느긋하게 모스크를 찾아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우리 깡통으로 축구할까?"
친구가 길거리에 굴러다니고 있는 깡통을 보자 축구 한 판 하지 않겠냐고 물어보았어요.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어요. 사람들이 돌아다닌다면 민폐겠지만, 사람들이 없어서 민폐를 끼칠 염려가 없었어요. 깡통으로 축구하는 것은 중학교때까지 하던 놀이. 초등학교때는 종종 했지만, 중학교때는 정말 가끔 하던 놀이였어요. 왜냐하면 교실이나 복도에서 깡통으로 축구하면 시끄러워서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달려나와 혼내곤 했거든요. 그리고 중학생이 되자 아주 고급스럽게 복도나 교실에서는 깡통이 아니라 주로 테니스공을 가지고 축구를 했어요.
친구와 일대일로 하는 것이니 할 만한 것은 페널티킥. 둘이 뛰어다닐 생각도 없었고, 둘이서 깡통 가지고 발로 차며 놀기 좋은 놀이는 페널티킥이었어요. 특별히 내기는 하지 않고 그냥 깡통을 찼어요. 깡통이 더러웠기 때문에 한 명이 막는 것이 아니라 멀찍이서 골을 집어넣는 것으로 했어요. 이러면 세게 찰 필요가 없어요. 적당히 골대 안을 통과할 정도의 힘만 있으면 되요. 대신 정확히 차는 것이 관건이지요. 더욱이 이것은 공이 아니라 깡통이니까요.
그렇게 골대로 정한 곳으로 깡통을 차넣으며 놀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다시 사주시장으로 돌아왔어요.
사람들에게 물어가면서 모스크를 찾아갔어요.
오후 1시 반. 둔황모스크에 도착했어요. 둔황 모스크는 사주시장 야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어요.
문이 잠겨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어요. 그래도 밖에서 본 것으로 만족했어요. 모스크 건물을 보니 역사가 그렇게 오래된 모스크 같지는 않았어요. 이 모스크는 명나라 시대에 지어졌고, 1917년에 다시 지어졌다고 해요. 그런데 1917년에 다시 지은 모스크라 하지만 최근 들어서 다시 수리를 한 것 같았어요. 밖에서 보았을 때 너무 새것 같았거든요. 중국이라면 아마 분명히 내부도 손대었을 거에요. 그리고 그 손대놓은 모습은 그다지 볼만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어제 밤에 모스크 와야되었다."
친구에게 농담으로 말했어요.
전날 야시장에 간 이유는 간식이나 먹고 밀크티나 마시자는 것이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저녁 겸 간식이었어요. 하지만 야시장에서 마땅히 저렴하고 맛있어보이는 간식을 파는 곳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온통 양꼬치만 팔고 있었어요. 아니면 처음 둔황 왔던 날 밥을 먹었던 그 식당이거나요. 그래서 수박 한 통만 먹고 숙소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모스크 쪽으로 오니 여기도 야시장이 열리는 자리인데 간식 거리를 파는 곳이 많이 있었어요. 농담으로 전날 밤 모스크를 와야 했다고 말한 것이었지만, 이 장소의 밤풍경을 못 보고 야시장에서 간식을 사먹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제 말 속에 묽게 희석되어 섞여 있었어요.
건물 한쪽 벽에는 실크로드 부조가 있었어요. 사진을 잘 찍고 싶었지만 너무 밝아서 제대로 찍지 못했어요.
"우리 밀크티나 사서 마시면서 좀 쉬자."
가게로 들어가서 밀크티 한 잔을 주문했어요. 가격은 8위안이었어요.
맛도 괜찮고 가격도 괜찮고 정말 마음에 드는 가게였어요. 밀크티를 마시며 둘 다 멍하니 앉아서 휴식을 취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