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마지막 희망은 저 모스크다.'
다시 쿠차 왕궁을 가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어요. 결국은 이 길 위에서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 했어요. 쿠차 왕궁 앞에 있는 공원 비슷한 곳에서 돗자리를 깔고 잘 수 있을까? 만약 모스크마저 안 된다면 이제 남은 곳이라고는 그 왕궁 앞 공원 비슷하게 생긴 곳 뿐이었어요. 거기에서 쉬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아까 보지 못했어요. 아까 거기도 마땅히 쉴 만한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만약 모스크에서도 쉴 수 없다면 남는 것은 거기 뿐이었어요. 거기조차 안 된다면 여기에서 누워서 쉴 곳은 아예 없었어요. 앉아서 쉴 만한 곳조차 딱히 없었구요.
"나 힘들어. 우리 2시 되면 쉬기로 했잖아."
그렇지 않아도 어디에서 쉬어야할지 생각하느라 머리 속이 복잡한데 친구는 눈치 없이 또 힘들어 징징이 리믹스를 시작하려고 했어요. 정확히 어디를 가서 쉬자고 말하면 그냥 거기 가자고 할 텐데 이건 그냥 자기도 답 없으니까 저한테 징징거리고 보채고 있었어요. 친구가 다시 징징거리면서 짜증나게 굴려고 하자 이제 판단이고 나발이고 없었어요. 지금 이 답 없는 상황에서 징징이 리믹스까지 듣고 있다가는 돌아버릴 것 같았거든요.
"너 봤잖아! 지금 이 길바닥에 돗자리 깔고 드러누울래?"
친구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계속 쉴 곳을 찾는 모습을 친구에게 보여주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자기도 두 눈으로 보며 다녔으니 할 말이 없었어요. 정말로 돗자리 깔고 드러누울 곳이 없었거든요.
"저 모스크에서 쉴 수 있는지 한 번 들어가보자. 저기도 안 되면 왕궁 앞에 그 공원 비슷한 거 가서 드러눕고."
이제는 나도 모르겠다. 더 시간을 끌고 더 다른 곳을 찾아보는 것은 불가능. 친구의 그 징징거리는 소리를 또 듣다가는 진짜로 머리 뚜껑이 열려버릴 것이었어요. 그나마 인간적으로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것은 모스크. 만약 모스크 안에서 쉴 수 없다면 남는 후보지는 이제 왕궁 앞 공원 비슷한 곳 밖에 없었어요. 다리 아래는 돗자리를 깔고 드러눕게 생기지를 않았거든요.
시장 입구에 있는 모스크는 레스테 모스크 reste meschit 이었어요. reste 는 위구르어로 상점들이 양 옆에 있는 좁은 길이라는 뜻이에요.
입구를 지키는 위구르인 할아버지께 허락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여기도 누워서 쉴 수는 없었어요. 공터가 넓지도 않았을 뿐더러 하필 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어서 그늘 넓이가 넓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모스크 본당 안에서 드러누워 잘 수도 없었구요. 인도네시아 모스크가 갑자기 그리워졌어요.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 있는 카우만 모스크는 사람들이 그냥 드러누워서 자고 있었거든요.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텐데 여기는 그래도 되냐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결례일 것 같다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여기는 그래도 잘 관리했는지 벽화가 매우 선명했어요.
할아버지께서 모스크를 청소하고 계셨어요.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모스크에서 나왔어요. 모스크에서 조금 쉬고 싶었지만 친구가 계속 빨리 왕궁 앞으로 가자고 징징거려대었거든요.
왕궁 앞 공원 비슷한 곳도 사실 돗자리 펴고 누워서 잘만한 곳은 아니었어요. 워낙에 누워서 잘 후보지가 없기 때문에 거기를 가는 것일 뿐이었어요. 왕궁 가는 길에 제발 돗자리 펴고 누울 수 있는 공간이 기적처럼 발견되기를 바랬어요.
'확 저 버스 타고 아예 다른 곳으로 이동해버릴까?'
진심으로 버스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서 적당히 누워서 쉴 만한 곳을 찾아 눕고 싶었어요. 정말로 그 왕궁 앞에서 드러누워서 자는 것은 백만 번 생각해도 아니었어요. 지금 거기로 가는 것은 그냥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가는 것이었어요. 태양은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가 있어서 엄청나게 뜨거웠고, 육체적으로 정말로 피곤했어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친구는 계속 피곤하니 빨리 공원 가서 쉬자고 아무 생각 없이 떼쓰고 있었어요. 진짜 궁지에 몰려 있었어요. 버스를 타고 가다가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나무 그늘이 보이면 돗자리 펴고 잘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무리였어요. 먼저 버스를 타고 모르는 새로운 어딘가로 간다 하더라도 드러누워 잘 만한 자리를 발견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두 번째로 버스 이동 시간 및 막차 시간을 고려해야 했어요. 여기 풍경을 보니 버스가 밤 늦게까지 돌아다닐 것 같아보이지 않았거든요. 마지막으로 친구가 입 다물고 버틸 리가 없었어요. 왕궁 앞에서 쉬자고 했으니 결과가 안 좋으면 '아까 왕궁 앞에서 쉬자고 했잖아' 라고 기차역 대합실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징징거릴 것이 뻔했어요.
그냥 여기에 돗자리 펴고 누워버릴까?
아까 그 공원보다 차라리 여기가 나아보였어요. 여기에 돗자리 깔고 누워서 자고 있으면 혹시 아나요. 누가 거지인줄 알고 1위안 지폐라도 던져주고 갈 지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친구가 이제 쉬러 간다는 사실에 떼쓰고 보채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걸었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뭐라 할 것이 없었어요. 그다지 먼 거리도 아닌 데다, 택시 잡는 것 또한 여기에서는 일이었기 때문에 걸어가야먄 했어요. 친구가 이 정도도 생각 못할 정도로 이성을 잃어버린 상태는 아니었어요. 아는 길 다시 가는 것이니 보채고 말고 할 것이 없었어요. 친구가 떼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정신과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고 있었어요.
목공소에서 전통 목재 기둥을 제작하고 있었어요. 저 목재 기둥에 새기는 문양도 지역마다 다르다고 하는데 아직 제게 그 문양을 감별하는 능력은 없어요.
길을 걸으며 간간이 보이는 문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2시 30분 조금 넘어서 왕궁 앞에 도착했어요. 아까 얼핏 보아둔 자리로 걸어갔어요. 이것을 공원이라고 해야할지, 그냥 산책로라 해야할지 정말 애매했어요. 솔직히 돗자리 펴고 눕고 싶지 않았어요. 이건 사람 없는 길바닥에 드러눕기. 사람 있고 오토바이 다니는 길바닥에 드러눕지 않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더 찾아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이보다 더 누워서 쉴 만한 자리가 있을지 확신이 전혀 없었고, 더 찾아보자고 하면 친구가 또 엄청나게 찡찡거리며 신경을 긁어댈 것이 뻔했거든요. 이제는 저도 포기였어요.
돗자리를 펼칠 만한 곳을 찾아보았어요. 웬만하면 풀밭에 펴고 싶었어요. 풀밭에 펴야 덜 쪽팔리니까요. 간혹 있는 행인들에게 걸리적거리지도 않구요. 풀밭을 살펴보았어요.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어요. 풀밭에 물을 주어서 도저히 돗자리를 펼 상태가 아니었어요. 일단 큰 길가에서는 벗어나야 하고, 햇볕이 안 드는 곳을 찾아야했어요. 해는 머리 꼭대기에 있었어요. 그림자가 가장 짧은 시간. 그늘진 곳 면적이 둘이 누울 만한 곳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도 어떻게 햇볕을 피해 돗자리를 깔고 누울만한 자리를 찾았어요. 공원 같은 곳 한가운데였어요.
"두 시간쯤 자자."
등에 짊어졌던 배낭을 베개처럼 베고 앞으로 메었던 가방을 이불처럼 배 위에 얹고 꼭 껴안았어요. 친구는 바로 골아떨어졌어요. 이제 나도 모르겠다. 그냥 눈을 감고 잠을 청했어요. 이때가 2시 40분이었어요.
어찌 되었든 드러누우니 좋기는 했어요. 몸에 쌓여 굳어버린 피로와 통증이 얼음 녹듯 녹아서 땅 속으로 흘러들어가 사라지고 있었어요. 이렇게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허리 통증이 빠르게 가라앉아간다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어요. 신발도 벗었기 때문에 발도 시원했어요. 발을 손으로 꽉 쥐고 있다가 놓아주었을 때 드는 그 완화되는 느낌이었어요. 앉아서 쉬는 것과는 정말로 차원이 달랐어요. 이대로 딱 네 시간만 잘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거에요. 어차피 집에서도 맨 바닥에 그냥 드러누워서 자기 때문에 땅바닥에 누워서 자는 것 그 자체가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어요. 쪽팔린 것이 문제이기는 한데, 저 혼자 안 눕고 앉아있는다고 안 쪽팔릴 건 아니었어요. 친구는 정말로 아주 잘 자고 있었으니까요.
몸은 편했지만 깊게 잘 수가 없었어요.
동네 주민들이 지나가면서 자꾸 쳐다보고 수근거려.
지나가며 쳐다보고 수근대는 것까지는 괜찮았어요. 그러나 혹시 물건이 없어지지 않는지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구요. 게다가 여기 와서 계속 느껴지는 이상한 그 느낌 때문에 이런 것을 다 무시하고 잘 수도 없었어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길바닥에 돗자리 펴고 드러누워 있는 저와 친구를 바라보는 것이 계속 느껴졌어요. 잠이 깊이 들 만하면 사람이 지나가며 저와 친구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져서 잠을 깨고, 그냥 보고 가는 것을 느끼면 다시 잠들었어요. 그렇게 얕게 자다 잠이 깨다를 반복하고 있었어요. 그나마 잠이 계속 든 것은 정말 피곤했기 때문이었어요.
발 아래에서 어린애들이 짹짹대는 소리가 들렸어요.
"뭐해? 가!"
눈을 떠서 보니 애들이 저와 친구가 벗어놓은 신발을 가지고 장난치려고 신발에 손댈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어요. 바로 일어나 앉으면서 우즈베크어로 애들을 쫓아냈어요.
잠시 후. 누가 저를 불렀어요. 눈을 떠보니 이 구역 관리 직원이 서 있었어요. 저와 친구에게 가라고 했어요.
"저희 한국인이고, 지금 여행중인데 정말 피곤하고 다리가 아파요. 여기에서 앉아서 조금만 쉬다 가면 안 될까요?"
우즈베크어로 직원에게 사정했어요. 그러자 직원이 굳은 표정으로 알았다고 하면서 앉아 있으라고 말하고는 경비실 같이 생긴 작은 간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요.
"야, 일어나."
친구를 흔들어 깨웠어요.
"왜? 무슨 일인데?"
"여기서 나가라고 해서 앉아서 쉬다 가겠다고 사정했다. 일어나서 앉아 있어."
또 누워서 자면 분명히 진짜로 나가라고 하든가 다른 사람을 불러오든가 할 것이었어요. 그래서 친구를 깨워서 앉아 있으라고 시켰어요. 저도 그냥 앉아 있었어요. 시계를 보니 3시 30분이 조금 넘었어요. 50분 정도 누워서 잠을 잤어요. 그거 잠깐 누워서 자다 깨다 했다고 피로가 많이 풀렸어요. 친구도 이제 살겠다고 하며 기지개를 켰어요. 이제 눕지는 못하지만, 앉아서 쉰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어요. 마땅히 앉아서 쉴 만한 곳도 없었으니까요.
"슬슬 일어날까?"
4시가 되자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어요. 몸도 개운하고 발의 피로도 많이 풀렸어요. 더위도 조금은 사그라들었어요. 일단 50분이라도 누워서 쉬었고, 제일 뜨거운 시간에 돌아다니는 것은 피했으니 되었어요.
"이제 어디로 가?"
"저기. 우리 안 가본 곳으로 가봐야지."
왕궁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상태에서 왼쪽에 공원 같은 장소가 있었고, 이 공원의 왼쪽에 길이 하나 있었어요. 그 길로 걸어갔어요.
길을 따라 쭉 걸어가는데 모스크가 하나 나왔어요.
이 모스크는 tinch meschit 였어요. 중국어로는 '평안청진사'라고 적혀 있었어요. 우리말로는 '평화 모스크'에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에 들어가보아도 되나요?"
"예, 들어오세요."
위구르인에게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보자 들어가도 된다고 대답했어요. 그래서 위구르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어요.
이 모스크 역시 이중 구조였어요. 더 안쪽으로 들어가보았어요.
내부는 보수 작업이 진행중이었어요.
잠깐 앉아서 쉬다 갈까 했지만 내부에서 보수 작업중이라 앉아서 쉴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어쨌든 지금은 모스크 하나라도 더 보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본 것 자체가 나쁘지는 않았어요. 없는 일정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이 동네 안에서 어떻게든 저녁을 먹을 시간까지 버텨야 했고, 그나마 뙤약볕 아래를 덜 돌아다닐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이러려면 무조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죄다 들어가야 했어요. 일단 실내로 들어가면 최소한 이 불볕더위는 피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가방을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가방을 내려놓고 앉아서 구경도 하면서 쉴 수도 있고, 걸어다니며 구경을 할 수 있어요. 흔히 허리와 어깨가 아플 때 무조건 눕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가볍게 살살 움직이는 것이 통증 완화에 도움이 많이 되요. 이슬람권 여행할 때 체력을 관리하는 방법 중 하나가 이렇게 모스크를 열심히 들어가는 것이에요. 이런 방법으로 체력의 급격한 소모와 피로 및 통증의 폭증을 막으며 돌아다니다 찻집이 보이면 차를 마시며 쉴 생각이었어요. 친구가 모스크가 싫다고 징징거리든 말든 알 바 아니었어요. 이것을 설명해주고 이해시키는 것도 어마어마하게 짜증나는 일이니까요. 오히려 설명해주다가 친구가 '그걸 꼭 모스크에서 해야 하냐?'라고 꼬투리잡으면 '그러면 니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곳 찾아와보든가'라고 말이 나올 거고, 그랬다가는 모스크에서 쉬지도 못하고, 쉴 만한 곳이 없으니 계속 쉬지도 못하고 마을을 뱅뱅 돌며 주구장창 걸어야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확률이 높았어요.
게다가 이 동네에서 볼 것은 이제 다 본 상태. 시간은 이제 4시 20분. 기차 시각은 고사하고 저녁 먹을 시간까지도 까마득하게 남아 있었어요. 공짜로 볼 것은 무조건 보면서 시간을 생산적으로 낭비해야 했어요. 이곳을 떠나 멀리 있는 마을을 가기에는 너무 위험했어요. 그러려면 아까 잠을 잘 것이 아니라 점심 먹고 바로 버스 타고 다른 마을로 떠나야 했어요. 이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마을에서 저녁까지 먹고 떠나야 했고, 그러려면 뭐라도 하나 더 들어가고 구경해야만 했어요.
모스크에서 나와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계속 묘지가 나왔어요.
"여기서 귀신 나오는 거 아니야?"
"진짜?"
"뭐가 진짜야. 그리고 설마 귀신이 한국어 하겠냐."
"한국어 하면?"
"설마 여기 한국어 하는 귀신 있을라구."
"그런데 우리 여기 말 다 되잖아."
그렇네?
그러고 보니 귀신이 중국어로 말하면 친구가 알아듣고, 귀신이 여기 말로 하면 내가 알아듣겠구나. 귀신이 나올 리는 없었지만, 만약 나온다면 이런 문제점이 있었어요.
사실 친구나 저나 무덤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무서울 것이 없었어요. 고향에서 질리도록 보아온 것 중 하나가 무덤이거든요. 지금은 제가 살던 동네 및 그 주변이 많이 개발되었지만, 예전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집 앞에는 감귤 과수원이 있었고, 진짜로 집 부엌에서 바다가 보였어요. 슬레이트 집이야 허다하게 보이는 것이었고, 초가집도 있었어요. 당연히 밭도 있었구요. 무덤 또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어요.
무덤 앞에는 폐가 같은 집이 하나 있었어요.
굳게 잠긴 문 위에 문패가 달려 있었어요.
위구르어로는 Kucha sopuni 라고 적혀 있었고, 중국어로 库车肥皂 라고 적혀 있었어요. 뜻은 '쿠차 비누'. 그 위에 한자로 '현급 비물질 문화유산'이라고 적혀 있었고, 위구르어로 같은 내용이 또 적혀 있었어요. 문이 굳게 걸어잠겨 있었기 때문에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문틈으로 쳐다보았어요.
"이거 뭐 하는 곳이지?"
내부는 완전 폐허였어요. 문화재라고 뭔가 팻말은 위에 붙여놓았지만, 내부는 그냥 버려진 상태였어요.
조금 더 가자 커다란 묘지가 하나 나왔어요.
한쪽은 공동묘지이고 다른 한쪽은 폐가 같은 건물인 길을 계속 걸어갔어요.
"혹시 여기에서 차도 팔지 않을 건가?"
그러나 차는 팔지 않았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기름을 짜내는 곳이었어요.
"찻집 없나?"
마을에 동네 찻집이 있으면 들어가서 앉아서 쉬면서 잡담이나 하며 시간을 보낼텐데 찻집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렇게 찻집을 찾으며 길을 걸었는데 결국 버스 정거장이 있고 왕궁 앞까지 이어지는 큰 길로 돌아와 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