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35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카슈가르 박물관

좀좀이 2016. 9. 15.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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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시키고 디지털 카메라 속 사진을 노트북 컴퓨터로 옮겨담았어요. 카메라 배터리 부족도 문제였지만, 이것 못지 않게 메모리 카드 용량 부족도 문제였어요. 8GB 메모리 카드를 가져왔어야 했는데 2GB 메모리 카드를 가져왔어요. 사진을 무지막지하게 크게 찍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만에 이 용량이 부족해질 리는 없었어요. 그래도 미리미리 용량을 확보하는 것이 좋았어요. 먼지 풀풀 날리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짐을 풀고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서 사진을 노트북 컴퓨터로 옮겨담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으니까요.


메모리 카드를 비우고 나서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사진을 네이버 클라우드로 업로드하기 시작했어요. 만에 하나 노트북 하드디스크가 고장나면 지금까지 찍어온 모든 사진이 한 방에 다 날아가는 것이었어요. 하드디스크가 고장나서 사진, 자료 등을 한 방에 날렸던 기억이 아주 생생했어요. 아직까지도 그때 어떤 사진과 자료를 날려먹었는지 다 파악조차 못하고 있으니까요.


어제 자기 전에 업로드나 걸어놓고 잘 걸!


후회막급이었어요. 사진을 업로드하는데 속도가 비둘기 걸어다니는 속도였어요. 조금 괜찮게 속도가 나온다 싶으면 끊겨버리고, 안정적으로 사진이 업로드되고 있으면 대신 속이 터지는 속도로 업로드되고 있었어요. 사진을 조금이라도 더 네이버 클라우드에 업로드시켜놓아야 좋은데 얼마나 많이 업로드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어요. 그저 인터넷이 끊기지 않는지 감시하면서 제발 한 장이라도 더 많이 올라가기를 바랄 뿐이었어요.


친구가 샤워를 하고 돌아왔어요.


"너 씻어."


친구가 비누를 건네주었어요.


"야, 이거 껍질을 이렇게 다 찢어놓으면 어떻해? 이거 어떻게 써!"

"그럼 그냥 버려."

"뭘 버려? 이거 껍질 없으면 어떻게 들고다닐건데?"

"비닐봉지에 넣으면 되잖아."

"비닐봉지에 바로 넣으면 비누 다 녹아버리잖아. 이게 있어야 이것이 이게 물 먹어주어서 비누가 덜 녹지."


친구는 종이로 된 비누곽을 다 찢어서 들고왔어요. 친구는 왜 종이 비누곽이 중요하냐고 되묻고 있었어요. 비누를 그냥 비닐봉지에 집어넣고 다니면 비누가 비닐봉지 안에서 녹아서 비닐봉지 내부가 온통 녹은 비누투성이가 되요. 비누를 바짝 말려서 비닐봉지에 넣으면 된다는 아주 원론적인 해결방법이 있기는 한데, 여행중 비누를 그렇게 한가하게 말릴 시간이 많이 나는 것은 아니에요. 틈틈이 기회가 되면 비누로 세수도 하고 팔도 씻고 하는 건데, 그때마다 사용하고 나서 비누를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젖은 비누를 그대로 비닐봉지에 넣으면 비닐봉지 안만 녹은 비누로 더러워져서 끝나지 않아요. 매번 비누 쓸 때마다 비닐봉지를 바꾸어주지 않는다면 결국 밖에도 녹은 비누가 묻게 되고, 이러면 비누가 담긴 봉지와 같이 들어있는 것들도 젖은 비누가 묻어버려요. 그래서 여행중 현지에서 구입한 비누는 종이 비누곽 안에 넣은 후 비닐 봉지 안에 넣는 것이 좋아요. 종이 비누곽은 비누가 담긴 비닐봉지 안이 젖은 비누 투성이로 되는 것을 막아주는 것 뿐만 아니라 비누의 물기를 흡수해주는 역할도 하거든요. 그런데 친구가 종이 비누곽을 다 찢어서 들고 왔어요.


"너 테이프 빌려와라. 이거 테이프라도 발라서 살려놔야지. 이거 그대로 비닐봉지에 담아버리면 녹아서 엉망돼."


친구에게 테이프를 빌려오라고 한 후 샤워하러 갔어요. 몸을 아주 박박 닦았어요. 둔황에 도착하는 것은 6월 6일 저녁. 오늘은 6월 4일. 거의 3일을 못 씻는 예정이었어요. 조금이라도 더 깨끗이 닦기 위해 정성껏 샤워했어요. 머리도 걸레 빨듯 벅벅 감았어요. 목욕재계하듯 아주 깨끗하게 씻은 후 방으로 돌아왔어요. 친구는 테이프를 빌려왔어요. 젖은 종이 비누곽에 테이프를 둘둘 감았어요.


이제 6월 6일 저녁까지 버티기 위해 신발을 밖에 내놓아서 일광건조를 시키고, 수건도 내다걸었어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 하기 위해 침대에 드러누웠어요. 친구도 침대에 드러누웠어요.


"여기 중국애들 엄청 많네?"

"중국애들 자기 나라 안에서 여행 잘 다녀. 중국 전체를 돌아다니는 것이 목표인 애들도 많아. 여기야 워낙 땅이 넓으니까 그렇게 자기네 나라 땅 다 돌아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거든."

"하긴, 쟤들이 무슨 수로 외국 여행 마음껏 다니겠냐? 국경 하나 넘을 때마다 비자 다 받아야할텐데."

"중국 애들 중에 중화사상에 쩔어 있는 애들 엄청 많거든? 그런데 그럴 때 '우리 지금 공항 가서 외국 여행 갈까?' 하면 얼굴 굳어."

"중화사상에 쩔어 있는 애들 진짜 엄청 많은 모양이야? 어떻게 주변에서 중국 좀 있어보았다 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말 하더라?"

"중국 안에 있는 애들은 그냥 다 기본적으로 중화사상에 어느 정도 쩔어있다고 보면 돼."


친구와 누워서 이런 저런 잡담을 했어요. 방에는 사람들이 가끔 들어왔다 나갈 뿐이었어요. 설령 누군가 한국어를 알아서 저와 친구의 대화를 염탐하고 있다 하더라도 당연히 친구와 방언으로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몇 단어만 조심하면 되었어요.


오후 2시 즈음 되자 체크아웃을 하고 밖으로 나왔어요.


위구르인의 땅 카슈가르


밖으로 나오자마자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어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식당


친구는 량피를 시켰고, 저는 만두를 시켰어요.


중국 만두


"하나 먹어봐라."


만두가 6개 나왔어요. 친구에게 맛이나 보라고 하나 주었어요. 친구의 량피는 맛보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보나마나 역겨운 썩은 빙초산 같은 중국 식초 냄새가 날 것이 뻔했거든요. 식초 냄새가 강하게 풍겨져나오지는 않았지만 만두를 먹기 위해 고개를 숙일 때마다 량피에서 나는 식초 냄새가 느껴졌어요.


친구가 제게 물어보지도 않고 아무 말 없이 만두 하나를 더 집었어요.


'이놈 뭐야?'


황당했어요. 물어보지도 않고 아무렇지 않게 제 만두를 하나 더 집어가는 것을 보고 뭐 하는 짓이냐고 말해야하나 잠시 고민했어요. 처음 한 개야 맛보라고 준 거였지만, 이것은 제가 먹어보라고 하지 않았거든요. 더욱이 이 만두 6개가 제 한 끼였어요. 만두가 크지 않아서 6개 다 먹어야 한 끼가 되는 상황이었어요. 애초에 만두 1인분 시킨 것이 6개 나온 것이었어요. 만두 1인분 6개중 5개 먹는 거야 그냥 양이 좀 적다 싶은 정도로 끝나겠지만, 4개 먹으면 양이 진짜로 부족했어요. 젓가락으로 친구 젓가락을 쳐버릴까 하다가 그냥 하나 더 먹으라고 놔두었어요. 지금 뭐하는 거냐고 말할까 하다가 그러면 또 삐져서 툴툴댈 거 같아서 그냥 놔두었어요. 친구는 게걸스럽게 만두를 하나 더 먹어치웠어요. 친구가 만두 두 개를 먹어치워버렸기 때문에 식사가 크게 부족해졌어요. 그래도 너무 민감하게 굴 필요까지는 없었어요. 밖에 나가서 공금으로 뭔가 하나 더 먹으면 되니까요.


그렇게 저는 0.5인분, 친구는 1.5인분을 먹고 밖으로 나왔어요.


"야, 뭐 먹을만한 거 보이면 하나 먹자."

"너 배고파? 나는 배부른데."


이 자식 확 한 대 쥐어박아버릴까?


잠이 덜 깬 건지 더워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건지 친구는 자기는 식사 두둑히 해서 배가 안 고프다고 말하며 제게 그렇게 먹고도 배가 고프냐고 되물었어요. 말투가 상당히 거슬렸어요. 자기는 배불러서 더 먹기 싫으니 먹고 싶으면 사비로 사먹든가 하라는 말투였어요. 순간 한 대 콱 쥐어박아버리고 싶었어요. 너야 당연히 배가 안 고프겠지. 너꺼 다 먹고 내 만두 2개 처먹었으니 배가 고프겠냐? 자기가 뭔 짓을 했는지 생각하지 않고 말을 내뱉는 것을 보고 순간 짜증이 났지만 꾹 참았어요.


"너 내 만두 절반 먹었잖아. 너가 내꺼 절반 먹었는데 내가 식사가 되겠냐?"


그래도 고운 말로 친구에게 왜 제가 무언가 더 먹자고 했는지 이해를 시켰어요. 친구의 태도에 순간 짜증이 확 났지만 그것을 밖으로 표출해야할 정도의 일은 아니었어요. 그냥 '만두가 너무 먹고 싶었나 보구나' 생각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요. 친구는 할 말이 없었어요. 자기가 생각해도 제 말이 맞았거든요. 1인분으로 나온 만두 6개 중 하나만 맛보라고 했는데 자기가 제 허락 없이 2개를 먹어치워버렸으니 제가 그거 먹고 식사가 될 리가 없었어요.


'너가 그러면 그렇지, 뭐.'


원래 배고픔에 상당히 예민한 친구라 실수한 거라고 치고 그냥 넘어갔어요. 어쨌든 친구에게 저는 친구 때문에 점심을 부족하게 먹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이해시켰으니 그것으로 된 일이었어요.


이제 가야할 곳은 카슈가르시 박물관. 친구는 스마트폰으로 바이두 지도를 보아가며 버스 정거장을 찾기 시작했어요. 친구가 버스 정거장은 신화서점쪽이라고 했어요.


uyghur


신화서점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하보도를 건너가야 했어요.


카슈가르 지하보도


참고로 저 사진에서 지하보도 오른쪽을 보면 오토바이가 지나가는데, 카슈가르 도로 구조가 저렇게 되어 있어요. 인도가 있고, 그 옆에 오토바이 도로가 있고, 오토바이 도로의 차도쪽 구석에 지하보도 입구가 있어요.


"여기 맞냐?"

"지도가 여기라는데?"

"그거 엉터리 아냐? 그거 메이드 인 차이나잖아."


지도에 나온대로 지하보도를 통과해 신화서점쪽으로 갔지만 버스정거장처럼 생긴 것이 보이지 않았어요. 사람들에게 버스정거장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사람들은 저와 친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서 구시가지 쪽으로 쭉 걸어가라고 알려주었어요. 사람들이 알려준대로 걸어갔어요. 버스정류장이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결국 이드카 모스크 앞에 와서야 버스정류장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 정류장에서 박물관으로 가는 20번 버스를 탈 수 있었어요. 괜히 쓸 데 없이 모든 짐을 메고 헤맨 것이었어요. 만약 이것을 처음부터 알았다면 바로 이드카 모스크로 왔을 거에요. 이드카 모스크는 숙소에서 가까웠거든요. 신화서점은 숙소에서 멀었구요.


20번 버스가 오자 버스에 올라탔어요.


중국 카슈가르 버스


여기도 버스 정거장에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bus stop in kashgar


버스는 강을 건너갔어요.



강을 건너서 조금 더 가자 내려야하는 버스 정거장이 나왔어요.


قەشقەر


"이거 맞아?"


버스 정거장에서 내려서 박물관까지 걸어가는데 거리가 짧지 않았어요. 그 이전에 박물관처럼 생긴 건물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친구는 바이두 지도를 보며 이쪽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했어요. 바이두 지도가 영 믿음이 가지 않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안 믿을 수도 없었어요. 그래도 이것은 버스 정류장, 노선 같은 것이 아니라 건물을 찾는 것이니 일단 믿어보기로 했어요.


뙤악볕 아래로 한참 걸어가자 박물관이 나왔어요.


카슈가르 박물관


입구에 가방을 맡기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입구에 아무도 없었어요.


"여기 콘센트 어디 있지?"


주변을 살펴보았어요. 친구의 스마트폰을 충전시켜야 했어요. 친구의 스마트폰은 우리의 눈이요, 귀였어요. 둘 다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에 친구의 스마트폰은 절대적으로 중요했어요. 만약 친구 스마트폰 배터리가 다 되어서 꺼져버린다면 당장 '우리는 지금 어디인가'라는 상황에 빠져버릴 것이었어요. 그러나 1층에는 의자도, 콘센트도 보이지 않았어요. 심지어는 직원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일단 구경이나 좀 하자."


1층 전시실 안으로 들어갔어요.



전시실 중앙에는 카슈가르 시장 조형이 있었어요.


이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모습들이었어요.








전통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위구르인 모형도 있었어요.



그리고 위구르 악기들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이것은 위구르인의 전통 모자인 돕브에요.



이것은 위구르인의 전통 신발인 초룩이에요.



이 마네킹 두 개가 걸친 옷이 위구르 전통 의상이에요.



이 박물관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타지크인의 전통 모자, 의상도 같이 전시되어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중앙아시아에서 페르시아계 민족과 튀르크 민족은 많이 어울려 살고 있어요.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페르시아계 민족은 타지크인이에요. 타지크인은 이란어의 방언 정도 되는 타지크어를 모국어로 하고 있으며, 시아파 이슬람이 대다수인 이란인과 달리 수니파가 대다수에요. 타지크인은 주로 타지키스탄 및 우즈베키스탄 동남부에 많이 거주해요. 중국의 서부 끝쪽에도 타지크인들이 살고 있다고 해요. 중국에서 타지크인들이 많이 사는 대표적인 곳이 타슈쿠르간이에요. 튀르크계와 페르시아계가 워낙 교류가 많아서 타지크인 문화와 우즈베크인 문화는 쉽게 구분하기가 어려워요. 이렇게 박물관에 전시된 것으로 보면 딱 구분이 되지만, 실제 타지크인들의 전통 문화와 우즈베크인의 전통 문화를 보면 많이 비슷해서 저 전시물처럼 딱 칼같이 구분하기 힘들어요.





박물관에는 위구르인들의 전통 칼인 옝기사르 칼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벽 한쪽에는 중국 특산 가축을 수놓은 카페트가 매달려 있었어요.



위구르인의 거주 문화와 관련된 전시물도 있었어요.




"2층 올라가면 쉴 곳 있을 건가?"


1층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가운데에 있는 카슈가르 시장 모형. 나머지는 사실 그다지 볼 것 없었어요. 카슈가르 구시가지를 한 바퀴 둘러보면 다 볼 수 있는 것들이었어요. 구시가지를 둘러볼 때 위구르어도 중국어도 모르면 이름을 알 수 없는데, 여기에서는 이름을 확인해볼 수 있다는 것 정도가 차이였어요. 그 외에는 1층을 구경해야할 이유가 정말 없었어요. 제가 우즈베크 문화를 많이 접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구시가지 한 바퀴 둘러보면 다 몇 번씩 볼 수 있는 것들이었어요.


게다가 1층에는 콘센트도 없었고, 앉아서 쉴 곳도 없었어요.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다는 점은 좋았지만, 가방을 내려놓을 수조차 없었어요. 앉아서 쉬면서 적당히 시간을 때울 목적으로 박물관에 왔는데, 그 목적과는 전혀 동떨어진 공간이었어요.



쉴 곳이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어요.



2층 전시실 한쪽에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및 위구르인의 역사를 새겨놓은 부조가 있었어요.



저렇게 생지옥으로 떨어지는 장면도 새겨져 있었어요. 만약 진짜 위구르인들을 위했다면 위구르인들이 독립하게 해주었어야죠. 제1차 동투르키스탄 운동은 국민당 정부의 썩어빠진 간부인 성스차이에게 진압당했지만, 그 이후 제2차 동투르키스탄 운동은 이 중국 공산당에게 점령당했어요. 청나라에게 점령당한 후 위구르인들은 계속 독립을 염원하였지만, 한족은 탄압과 진압으로 대답했어요.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내려오고 있구요.


2층 전시실에 전시된 유물들은 1층에 전시된 것보다 더 볼 만하지 못했어요.





실크로드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 별 볼 일 없어보이는 유물들은 더욱 재미가 없었어요. 위구르인의 전통 문화와 오늘날 삶의 모습을 전시했다면 꽤 재미있게 보았을 거에요. 제가 보고 싶은 것은 현재였지, 화석이 되어버린 과거는 아니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이 유물들이 무언가 눈에 확 띄게 굉장해보이는 것도 아니었어요. 파편에 가까운 것들이었어요. 억지로 이 부스러기 같은 유물들에 '실크로드의 문명 교류'라는 의미를 부여해가며 망상에 빠져보고 싶지 않았어요.


2층에 전시된 유물을 대충 둘러보며 쉴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찾아보았어요. 그러나 쉴 수 있는 곳은 보이지 않았어요.


"이거 미라 아니야?"


중국 미라


미라였어요. 우루무치에서 그렇게 보려다가 못 보았던 미라가 카슈가르 박물관에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친구와 신기해하며 유심히 살펴보았어요. 진짜 미라 맞았어요. 건조 기후 때문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미라였어요.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간간이 미라가 발굴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이런 박물관에까지 진짜 미라가 전시되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어요. 이것은 기적 같은 미라와의 조우였어요. 이렇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아주 우연히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발굴된다는 미라를 보게 되었어요.


2층을 둘러보며 정말 실망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 미라 하나로 확 달라졌어요. 미라를 보았다는 것 자체만으로 배낭 짊어매고 2층으로 올라간 보람이 있었어요.


"이제 가자."


콘센트도 없고 쉴 수 있는 공간도 없었어요. 미라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볼 만한 것도 없었고, 사람도 없었어요. 친구와 같이 박물관을 둘러보는 동안 건물 안에 사람이 저와 친구를 포함해 다섯 명이 넘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2층을 돌아다닐 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저와 친구 외에 그 누구도 없었어요.


어쨌든 쉴 곳이 필요했어요. 박물관은 시원하기는 했지만 쉴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2층까지 다 본 후 미련없이 밖으로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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