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37 중국 카슈가르에서 쿠차로 야간 기차 이동

좀좀이 2016. 9. 20.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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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소리쳤어요.


"맞네! 여기 우리 왔던 시장이잖아!"


카슈가르 시장


아...우리 대체 뭐 한 거지?


안 본 곳을 가보려고 걸어간 것이었는데 결국 중앙아시아 국제 무역 바자르로 와버렸어요. 맥이 풀렸어요. 왜 우리는 이 시장으로 돌아온 것인가? 그리고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까 그 아몬드 아이스크림을 먹은 이후 적당히 차나 커피를 마시며 앉아서 쉴 곳이 단 한 곳도 없었어요. 진짜로 쉬고 싶었어요. 가방이 어깨를 쥐어짜고 허리를 비틀어대었어요. 신발 속의 열기는 발바닥을 구워대고 있었어요. 진심으로 바닥에 앉아서 신발 벗고 쉬고 싶었어요. 생각을 하더라도 일단 가방 두 개부터 집어던지고 생각하고 싶었어요.


이제 여기에서 더 돌아다니는 것은 진짜로 무리. 다닐 수는 있었어요. 의욕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문제였어요. 이 시장으로 돌아온 이상 조금 걸어서는 새로운 곳에 갈 수 없었어요. 향비묘에서 구시가지까지 이어지는 길은 전부 다 걸었어요. 이 길의 수직선 방향으로도 어지간히 돌아다녀보았어요. 결국 새로운 곳을 가려면 한참을 걸어나가야 했어요. 그럴 의욕도 없었고, 몸도 무리였어요. 게다가 갈증. 목구멍을 사포로 문질러대는 갈증이었어요. 그냥 앉아서 뭔가 마시며 쉬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눈에 쌍심지를 켜고 앉아서 쉴 만한 곳을 찾아보았어요.


"야, 저기 저 의자에 앉아서 좀 쉬자."


조그만 상점 앞에 의자 두 개가 있었어요. 그 의자에 앉지 않으면 또 얼마나 걸어야할지 모르는 상황. 진지하게 기차역으로 가버릴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저 의자에 앉든가 기차역으로 바로 가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작정이었어요. 친구도 지치고 갈증에 시달리는 것은 마찬가지였어요. 똑같이 걸었고, 똑같이 먼지를 마셨으니까요. 이 의자에 앉기 위해서는 앉을 구실이 필요했어요.


음료수 사서 마시자.


가게의 의자이니 가게에서 음료수 사서 마시며 앉아 있으면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 저는 호두 음료수를 골랐어요. 친구는 음료수를 하나씩 살펴보더니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썽요. 마시고 싶은 느낌이 드는 음료수가 하나도 없어보였어요. 그때 친구가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했어요.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수박 조각.


거리에서 위구르인들이 잘라서 1위안~2위안에 파는 수박 조각 하나가 들어 있었어요.


"이거 수박 얼마에요?"

"2위안. 저기서 팔아."

"아니요. 저 이거 먹을래요."


친구 진짜 천재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냐?


냉장고 속 수박 조각은 팔기 위해 집어넣어놓은 것이 아니었어요. 거리에서 수박을 잘라서 파는 상인에게 사와서 자기들이 시원하게 먹으려고 냉장고 안에 집어넣어 시원하게 만든 것이었어요. 친구는 그 수박을 구입했어요. 아주 당당하게 2위안을 가게 주인 손에 쥐어주고는 냉장고에서 수박을 꺼내 의자에 앉아 먹기 시작했어요. 가게 주인이 '이것은 대체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보았어요.


"아, 시원해! 어, 맛있어!"


친구는 계속 감탄하면서 수박을 먹었어요.


저도 음료수를 따서 한 모금 마셨어요. 뭐라고 말하기 참 어려운 맛이었어요. 그냥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 맛이었어요. 무슨 죽 같기도 하고 두유 같기도 한 묘한 맛이었어요. 잣죽 음료수에 두유 부어서 섞으면 이것과 비슷한 맛이 날 건가? 음료수를 홀짝이며 최대한 아껴 마셨어요. 맛이 없는 것과 맛이 보통인 것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맛이라 마음만 먹으면 금방 다 마실 수 있기는 했어요. 그러나 음료수를 마셔서 갈증을 푸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있었어요. 음료수 마시며 앉아서 쉬는 것이었어요.


그래도 살겠다.


가방 두 개를 벗어던지고 의자에 앉으니 어깨와 등이 시원했어요. 대체 얼마나 고통을 느끼고 있었는지 가방을 벗어던지자마자 체력이 급속 충전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가방만 없다면 당장 역까지 걸어가도 하나도 힘들지 않을 것 같았어요. 친구도 냉장고에 들어 있던 수박 조각을 먹더니 얼굴이 밝아졌어요. 오늘은 분명히 절대 고생 안 하기로 둘이 다짐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지?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은 괜찮았어요. 그것보다 최대한 이쪽에서 멀어지려고 했는데 이쪽으로 돌아와버린 것이 어이없었어요. 그 유럽식 건물이 있는 길로 들어가면서 여기로 돌아오는 길로 접어들었어요.


"이제 일어나자."

"어디 가게?"

"기차역 가자."


이제 오후 6시 40분이었어요. 슬슬 기차역으로 갈 때가 되었어요.



해바라기씨를 파는 아저씨. 오늘 기차에서 또 짹짹거리며 해바라기씨하는 사람들 속에서 앉아서 잠을 청해야 하는군. 해바리기씨 판매하고 있는 아저씨 옆에는 불법 종교 활동에 해당하는 경우를 알리는 벽보가 붙어 있었어요. 잠깐이라도 중국의 탄압을 잊으려 하면 여지없이 주변에 이런 것이 있었어요. 전문적 지식이 있어야 보이는 것이 아니었어요. 아주 그냥 공기처럼 주변에 있었어요.


"이거 뭐지?"


빨간 대야 안에 무언가 바글바글 꿈틀거리고 있었어요. 여기도 굼벵이 같은 거 먹나?



전갈이다!


빨간 대야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은 전갈이었어요. 크기는 매우 작았어요. 엄지손가락 정도 되는 크기였어요. 이것은 요리해 먹으려고 잡아놓은 건가, 아니면 약재로 쓰려고 잡아놓은 건가? 우리나라에는 전갈이 없기 때문에 신기해서 유심히 살펴보았어요. 이건 말린 전갈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전갈이었어요. 그러고보면 희안하게 우리나라는 유라시아 대륙임에도 불구하고 해바라기씨 까먹는 것도 하지 않고 전갈도 없어요.



"너 저거 먹어볼래?"


친구에게 장난으로 물어보았어요. 친구도 보자마자 얼굴이 굳어버렸어요. 저 붉은 액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요. 전갈 한 무더기에 말린 뱀 한 마리가 들어 있었어요. 여기에 말린 고슴도치도 한 마리 들어 있었어요. 이것을 음식이라고 내놓고 파는 것인지, 전통 약이라고 내놓고 파는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괜히 물어보았다가 한 번 잡숴봐 당할 거 같아서 아예 물어보지 않았어요.


카슈가르 시내 마지막은 결국 이 충격적인 조합이었어요. 전갈과 뱀, 고슴도치가 뒤섞인 무엇인가를 보고 나니 이제 더 신기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우리 수박이나 하나 먹고 가자."

"수박? 너가 갑자기 왜?"

"갈증이 도대체 풀리지를 않네. 수박 한 조각 먹어야겠다."


전갈은 전갈이고 갈증은 갈증이었어요. 거리에서 친구와 조각 수박 하나를 사서 먹었어요. 수박을 먹었더니 갈증이 조금 가셨어요.


수박을 먹고 나서 기차역 가는 시내 버스를 탔어요.


bus in kashgar


역시나 버스에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도 저와 친구가 앉은 뒷좌석까지 사람들이 서서 탈 정도는 아니었어요. 이 정도면 매우 쾌적한 수준이었어요.



시장을 벗어나자 버스는 쌩쌩 달리기 시작했어요.




버스에 둘이 같이 앉을 자리가 없어서 떨어져 앉았어요.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어요. 이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보낼 날이 하루 남았구나. 그리고 진짜 고생해야하는 일정들이 시작되는구나. 카슈가르를 떠나는 것이 너무 아쉬웠어요. 카슈가르에 있으면서 마음이 항상 편하고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어요. 식민지배가 뭔지 확실히 보게 되어서 불편한 기분을 종종 느끼곤 했어요. 그냥 머리를 비우고 눈 딱 감고 다른 사람들처럼 '여기는 양꼬치도 맛있고 다른 음식들도 맛있어요', '여기는 중국과 정말 다르고 신기해요', '동서 문화 교류의 현장 실크로드에 왔더니 너무 낭만적이에요', '여기 중국인들 착해요' 이러고 다니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그렇게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곤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이제 슬슬 위구르어가 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우즈베키스탄에 다시 온 것 같아서 즐겁기도 했구요.






'예전 소련 시절 우즈베키스탄도 이랬겠지?'


아마 소련 시절 우즈베키스탄도 지금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비슷했을 거에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보다 상황이 훨씬 더 낫기는 했겠지만요.


버스 창밖으로 버스터미널이 보였어요.



카슈가르 버스 터미널


우리나라에서는 기차를 한자로 汽車 라고 쓰지만, 중국어에서 汽车 는 자동차에요. 중국어에서 기차는 火车 라고 해요. 중국에서 한자로 '기차' 써 있다고 그게 우리나라의 기차를 말한다고 생각하면 크게 틀려요.



버스에서 카슈가르역이 보이자 사진을 찍었어요. 카슈가르역 앞에서는 사진을 찍기 매우 고약했거든요. 무장경찰과 공안이 지키고 있어서 이들을 피해 마땅히 사진을 찍을 방법이 없었어요. 기차역 자체는 사진으로 찍어도 되지만, 무장경찰을 사진으로 찍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요. 문제는 이 무장경찰이 기차역 어느 방향에서 찍든 딱 나오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버스가 종점인 기차역에 도착했어요. 시계를 보니 저녁 7시 11분이었어요. 기차역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풀밭에서 위구르인들이 쉬고 있었어요.



"위구르 지역 더 있고 싶다."


아쉬움이 엄청나게 밀려왔어요. 이제 다음날이 위구르인의 땅 여행 마지막 날이었어요. 그래도 떠나야했어요. 아직 쿠차 일정이 남아 있었어요. 비록 쿠차에서 천산신비대협곡을 보고 나서 얼마나 그곳을 구경할 시간이 있을지 몰랐지만, 어쨌든 거기도 위구르인들의 땅이에요. 그 이후부터는 친구가 가보고 싶어한 둔황, 시닝 일정. 거기는 또 거기 나름의 재미가 있을 거에요. 그리고 지금 여기처럼 정신적으로 괴로울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친구는 투르판에서 맥가이버칼을 빼앗겼고, 저는 우루무치에서 휴대용 가스를 빼앗겼어요. 이제 더 빼앗길 것도 없었어요. 뾰족한 것 자체가 둘에게 없었어요. 그나마 엑스레이 검사에서 공안이 유심히 살펴볼만한 것이라고는 제 가방 속 우수 맥주캔 뿐이었어요. 그거 가지고 뭐라고 하면 꺼내서 보여주면 될 일이었어요. 중국 기차에 캔음료, 맥주 반입이 금지된 것은 아니니까요.


보안검색을 받고 기차역 안으로 들어왔어요.




"진짜 한족 투성이다."

"중공이 여기로 한족 엄청 이주시키고 있잖아."


저들은 과연 그냥 민간인일까.


분명 민간인들 맞다. 한족 민간인이다. 그런데 과연 저들은 그냥 평범한 민간인일까. 러시아를 제외한 구소련 국가들의 러시아인. 그리고 히키아게샤.


기차 대합실에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도 많이 보였어요. 군인들이 휴가 가나? 군복을 입은 사람들 중에는 한족도 있고 위구르인도 있었어요. 이들은 화장실 앞에 우르르 몰려 있었어요. 대합실에서는 금연이고, 화장실 안에서도 당연히 금연이었어요. 그러나 이들은 화장실 안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어요. 담배를 태우러 군복 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 가더니 화장실 안이 꽉 찼는지 화장실 입구에서도 대놓고 담배를 태웠어요. 결국 역무원이 가서 뭐라고 한 마디 했고, 입구에서 담배를 태우던 사람들은 담배를 껐어요. 그것도 잠시. 다시 이들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어요. 대합실 안으로 담배 냄새가 끊임없이 퍼졌어요.


우루무치역에서 한 번 당해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개찰구를 보고 섰을 때 가장 오른쪽 입구에 줄을 섰어요. 혹시나가 역시나였어요. 개찰구를 한 번에 다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열어주었어요.


"달려!"


친구가 외쳤어요. 사이좋게 달렸어요.



"이번 기차는 2층이다!"

"그렇네?"


달리다가 멈추어섰어요. 이제 달리지 않아도 될 듯 싶었어요. 탁자를 점령하기 위해 충분히 많이 뛰었어요. 이 사람들이 다 우리와 같은 칸에 탈 리는 없었어요.



이제 진짜로 카슈가르와 작별할 때구나.


"2층으로 된 곳은 객차는 좋은 객차겠지?"

"아마 그럴 거야."


친구도 이런 기차는 처음 본다고 했어요. 기차표를 보며 저와 친구가 타야 할 객차를 찾아갔어요.


"우리 객차 2층이다!"

"우리 운 완전 좋은 거 아니야?"

"외국인이라고 좋은 객차 주었나?"


무언가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거라 상상하며 둘 다 웃으며 기차를 탔어요.



"뭐야? 이거 똑같잖아."

"그냥 좌석칸을 2층으로 만들어놓은 거네."


역시나 반인체공학적 의자로 꽉 들어찬 객실이었어요. 그러면 그렇지. 바랄 것을 바랬어야 했어요. 그냥 2층 객실도 있을 뿐이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2층으로 올라가 보았어요. 2층의 의자도 똑같았어요. 고개를 뒤로 젖힐 수 없고 허리를 딱 90도로 만들어주는 아주 불편한 의자였어요. 우루무치에서 카슈가르로 올 때 앉았던 의자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기차 사진을 다시 한 장 찍고 객차 안으로 들어왔어요. 오후 8시 24분. 기차가 출발했어요. 저와 친구가 탄 객차 안에 탄 승객들 거의 전부 아까 화장실에서 담배를 뻑뻑 태워대던 그 군복 입은 사람들이었어요.



"쿠차는 어떨 건가?"

"거기는 여기랑 좀 많이 다르대."

"뭐가?"

"거기는 좀 살벌하대. 우루무치, 카슈가르랑 달리 버스에서 짐검사 하고 그런다더라."



"거기 볼 거 뭐 있을 건가?"

"모르지. 가 봐야 알지."

"진짜 아무 것도 없는 거 아니야? 여행 책자에도 마땅히 설명 없었잖아."



"그런데 우리 천산신비대협곡 꼭 가야 하냐?"

"왜?"

"우리 지금 돈 완전 빠듯해."

"우리 돈 별로 안 썼어."

"우리 공금이 3100위안인데 여기에서 기차표 빼봐. 공금에서 기차표 빼고 남은 돈 하루에 얼마나 써야하는지 계산해보면 돈 엄청 부족해."

"돈 안 부족해."



창밖으로 유적 같은 것이 보였어요. 순간 신기해서 무엇인지 자세히 바라보았어요. 공동묘지였어요.


친구는 아직도 경비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못 느끼고 있었어요. 경비는 정말로 엄청나게 부족했어요. 한 사람당 경비를 3100위안으로 잡았어요. 기차표 값이 이 경비의 거의 절반이었어요. 3100위안에서 기차표 값을 제외하고 남는 돈은 1530 위안. 마지막날 진짜 아무 것도 안 하고 숙소에만 있다가 바로 공항 가서 귀국한다고 해도 20일이었어요. 이러면 하루에 76위안 써야 경비가 부족하지 않다는 이야기에요. 그러나 이미 써버린 돈이 있었어요. 지금까지 사용한 돈이 600위안이었어요. 앞으로 11일 남았고, 남은 여행 경비는 930위안. 하루에 84위안씩 써야 공금을 넘지 않고 여행을 마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이게 될 리가 없었어요. 이 하루 평균 84위안에는 숙박비도 포함되어 있거든요.



"우리 지금 하루에 숙박비 포함해서 한 사람당 84위안씩 쓸 수 있다."


제가 말해놓고도 웃겼어요. 못할 것은 없었어요. 진짜 입장료 내는 것은 아무 것도 안 들어간다면 가능한 일이었어요. 물론 그래도 숙소에서 잠을 잔다면 이론적으로만 가능하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어요. 한 끼에 10위안씩 계산해도 이미 하루에 세 끼 먹어야 하니 30위안. 그러면 54위안이 남아요. 날이 더워서 음료수를 사서 마시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음료수가 아마 20위안 정도는 들 거에요. 그러면 남는 돈 34위안. 이렇게 되면 아주 많이 비참해지기는 하지만 여행 자체는 일단 끝낼 수 있었어요. 제대로 된 식사는 고사하고 간식이고 구경이고 다 때려쳐야 하는 게 문제지만요.



"너 B한테도 우리 돈 없으니까 같이 아무 것도 안 보고 걷기만 하자고 할래? 텐트에 세 명 들어가서 자고?"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당장 우리 둔황도 가야하잖아."

"둔황에서 볼 거 뭐 있는데?"

"거기 막고굴이랑 명사산."

"그런 거 안 가도 돼."

"뭘 안 가? 니가 둔황 가고 싶대메? 둔황 가서 막고굴이랑 명사산 안 볼 거면 둔황 뭣하러 가냐?"



친구의 필살기 '그까짓 거 안 가도 돼'가 발동되었어요. 그러나 바로 저한테 한 소리 들었어요. 둔황 자체가 볼 것이 있는 곳은 아니에요. 거긴 진짜로 막고굴, 명사산 보러 가는 곳. 이것들 안 볼 거라면 둔황에 가야할 이유 자체가 없었어요. 그럴 거라면 아득바득 호탄을 갔을 거에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친구에게 아주 당당히 큰 소리 칠 수 있었어요. 중국의 한족 문화와 역사 따위에는 1나노그램의 관심도 없다고 분명히 밝혔거든요. 솔직히 중국의 한족 문화와 역사를 보는 데에 돈 1마오 쓰는 것도 아까웠어요. 한족 문화를 보고 싶다면 지금까지 정통 한족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타이완 가면 되니까요. 친구가 둔황 가보고 싶다고 해서 호탄을 포기한 것인데 이제 와서 막고굴, 명사산 같은 거 안 가도 된다고 하니 당연히 분통터질 수밖에 없었어요.


친구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어서 한 소리 한 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 현재 상황에서는 하루 84위안을 쓸 수 있는 상황조차 아니었어요. 공금이 930위안이 남아 있었는데 천산신비대협곡 비용 300위안, B가 시안 왔을 때 같이 가야 하는 병마용 입장료 150위안이 있었어요. 이것만 해도 벌써 450위안. 여기에 막고굴, 명사산 입장료가 또 있었어요. 막고굴이 220위안, 명사산이 120위안. 이러면 남는 돈이 140위안. 이건 어떻게 해도 여행 불가였어요.



창밖으로 드넓은 호수가 보였어요. 여행 경비를 절약할 방법을 찾아내야 했어요.


"우리 천산신비대협곡 꼭 가야하나? 너 가고 싶어?"

"글쎄...현지인들은 거기 별로라고 하던데..."



마침 창밖으로 이런 풍경이 나타났어요.


천산신비대협곡은 300위안이 드는 곳. 저는 거기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사진을 보면 아름다워 보이기는 하는데 이미 기차로 그런 것이 있게 생긴 풍경을 계속 보고 있었어요. 천산신비대협곡보다는 그냥 쿠차가 어떤 곳인지 보고 싶었어요. 게다가 쿠차 여행 정보를 구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을 때마다 현지인들은 천산신비대협곡은 별로라고 이야기했어요. 거기 가지 말고 카나스를 가보라고 했구요.


"그럼 천산신비대협곡 가지 말까?"

"나는 괜찮아."


친구가 괜찮다고 하자 쿠차에서 천산신비대협곡을 가지 않기로 했어요. 예정되어 있던 지출에서 300위안이 줄어들었어요. 아쉬운 마음은 없었어요. 애초에 저는 위구르인들의 삶과 문화를 보고 싶었지, 특별한 자연환경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둔황에서 막고굴, 명사산을 안 가는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친구는 천산신비대협곡 안 가는 것에 대해 그렇게까지 아쉬워하는 것 같지 않았어요. 친구가 대체 여행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어요. 친구는 유적 같은 것 보는 것에 관심없다고 하기는 했는데, 그 외에도 뚜렷이 뭔가 하고 싶다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계획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이것저것 다 맛보자는 것도 아니었어요.



어쨌든 천산신비대협곡을 안 가기로 했기 때문에 1일당 얼추 30위안씩 더 쓸 수 있게 되었어요. 입장료를 제외하면 하루 84위안을 쓸 수 있는데, 당장 일단 300위안 지출은 막았어요. 이것만으로도 여행 경비에 상당히 숨통이 트였어요. 입장료와 숙박비가 앞으로 얼마가 더 나올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하루에 1인당 공금 지출을 84위안 아래로 쓰면 남은 여정에서 쓸 돈이 늘어난다는 사실이었어요. 어떻게든 아끼고 아끼면 3100위안으로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는 계속 3100위안이면 어떻게든 될 거라 장담하고 있었지만, 저는 안 될 것을 알고 있었어요. B가 오지 않아도 빠듯한데, B가 왔을 때 우리 돈 없으니 너도 그냥 거리나 걷고 차오판이나 먹고 돌아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요. 그래도 이왕 B가 중국까지 오는데 재미있게 놀아야할 것이고, 그러면 무조건 3100위안보다 많이 들 수 밖에 없었어요. 3100위안만 쓰는 것은 불가능이고, 3100위안보다 얼마나 덜 많이 쓰느냐의 문제였어요.


창밖으로 거대한 호수가 다시 나왔어요.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팔을 탁자 위에 얹었어요. 순간 앞좌석 군복 입은 사람의 해바라기씨 봉지를 쳐서 넘어뜨렸어요. 바닥으로 해바라기씨가 우수수 떨어졌어요. 앞사람에게 미안하다고 했어요. 앞사람은 별 일 아니라는 듯 탁자 위에 쏟아진 해바라기씨만 봉지에 집어넣었어요. 바닥에 쏟아진 해바라기씨는 특별히 치울 필요가 없었어요. 때가 되면 승무원이 빗자루질을 하며 바닥을 청소했거든요.





군복을 입은 무리가 친구에게 말을 걸었어요. 딱 한 명만 다른 곳에 앉아 있는데 자리를 바꾸어주면 안 되겠냐는 것이었어요. 어느 자리인지 보니 저와 친구가 앉은 자리와 마찬가지로 창가쪽 좌석이었어요. 그래서 바꾸어주었어요.





기차가 어떤 역에 도착했어요. 위구르인들이 저와 친구에게 그 자리는 자신들 자리라면서 표를 보여주었어요. 군복을 입은 무리가 그 위구르인들에게 자리를 바꾸어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지만 위구르인들이 싫다고 대답했어요. 저와 친구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어요.


"어서 자자. 쿠차 새벽에 도착한다."


천산신비대협곡 없는 쿠차. 유독 삼엄하게 감시한다는 쿠차. 새벽에 도착하는 쿠차. 그리고 밤에 떠나는 쿠차. 일단 눈을 감고 잠을 청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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