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21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 홍산공원

좀좀이 2016. 8. 1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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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로 나오자마자 눈에 확 들어온 것은 굴절 버스였어요.


중국 굴절버스


'저거 예전에 탔었는데!'


굴절 버스를 보자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굴절 버스를 처음 탔던 때가 떠올랐어요. 우리나라도 굴절 버스가 운행되었던 적이 있어요. 지금은 261번으로 바뀐 서울 시내버스 48번 노선에 굴절 버스가 투입된 적이 있었어요. 외대 갈 일이 있어서 갔다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굴절 버스가 나타나서 신기해하며 탔어요. 괜히 굴절 버스니까 이왕이면 역방향으로 앉아서 가보자고 뒷편 차량 역방향 좌석에 앉았는데, 정말로 어지러웠어요. 여의도 U턴할 때에는 이게 제대로 U턴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지만 멋지게 U턴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어요.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은 볼 수 없는 버스가 되어버렸어요.


이 버스에는 BRT 라고 적혀 있었어요. BRT 는 간선급행버스체계로, 버스를 지상에 있는 도로에서 지하철처럼 운행하는 시스템이에요. 서울의 중앙버스 전용차로가 BRT 시스템과 비슷해요. 버스 중심 신호체계가 없다는 점에서 BRT는 아니라고 하지만요.


traffic jam in urumqi


여기 역시 길이 엄청나게 막히고 있었어요.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까 조금 전과 풍경이 확 바뀌었다는 것이었어요. 갑자기 번화한 대도시로 바뀌었어요. 우루무치 정보를 찾아보면 나오는 그 발전하고 번영하는 우루무치의 풍경이었어요. 재미있는 점은 갑자기 위구르인들이 안 보였다는 것이었어요. 정말 어쩌다 한둘 보일 뿐이고,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한족이었어요. 위구르어 또한 보기 매우 어려워졌어요.



"그런데 중국인 관광객 보고 요우커라고 하는 거 웃기지 않냐?"

"갑자기 왜?"

"그렇잖아. 요우커가 무슨 특별한 말도 아니고 중국어로 그냥 관광객이라는 말인데. 지금 우리도 요우커야. 아까 사람들이 나한테 왜 왔냐고 물어보면 다 요우커라고 대답했어. 그런데 무슨 그게 중국인 관광객 지칭하는 말이라고 특별히 '요우커'라고 해? 그냥 중국인 관광객이라고 하면 될 것이지. 안 그래?"


친구 말이 맞았어요. 요우커 游客 yóukè 는 중국어로 '여행객, 관광객' 이라는 뜻이에요. 그 이상의, 그 이하의 뜻도 없어요. '중국인' 이라는 뜻은 저 단어 안에 절대 없어요. 우리가 중국으로 여행가면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요우커에요. 그런데 뉴스에서는 그냥 '중국인 관광객'이라고 하면 정확히 의미가 전달됨에도 불구하고 괜히 있어보이려고 쓸 데 없이 어리석게 중국인 관광객을 '요우커' 라고 지칭하고 있어요. 아주 한심한 작태에요. 일반명사의 의미를 제 멋대로 함부로 왜곡 및 한정시키는 것은 상당히 안 좋아요. 외국인이 '개 = 한국의 보신탕용 개' 라고 생각해서 '나는 개 없어요. 내 것은 dog에요' 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 어이없어 할 거에요. '중국인 관광객'을 '요우커'라고 하는 것이 엉터리인 또 다른 이유는 타이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화교 관광객들 또한 중국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와서 자신들을 '요우커'라고 해요. 즉 타이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화교들을 기자들이 졸지에 중화인민공화국 인민으로 오해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에요.


"저건 무슨 나이키 짝퉁이냐?"



친구와 주변을 구경하며 홍산공원을 향해 계속 걸어갔어요.



한글로 된 간판을 걸어놓은 상점도 있었어요.


우루무치 한류


가게 이름은 '무궁생활'. 한자로는 木槿生活 이라 적혀 있었어요. 이것은 뜻을 번역해 적어놓은 것이었어요. 木槿 mùjǐn 은 무궁화거든요. 한자를 그대로 읽으면 '목근'이구요.




드디어 홍산 공원 입구로 들어가는 진입로에 도착했어요.



홍산공원 안내도에는 위구르어가 단 한 글자도 없었어요.


중국 공원 안내도


사람들도 거의 전부 한족들이었어요. 번영하고 번화한 우루무치는 한족들의 땅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어요.


우루무치 홍산공원 입구


입구에는 보안검색대가 있었어요. 이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었어요. 보안검색대 옆에는 공고판이 설치되어 있었어요. 가까이 다가가서 어떤 내용인지 들여다보았어요.



"진짜 엄청나게 감시하고 탄압하는구나."


상단 내용은 그러려니 할 만한 것이었어요. 보안검색 잘 받고, 위험물질 들고 공원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이 정도는 그냥 상식적으로 별 문제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었어요. 얼마나 대단한 공원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사고가 잘 나는 공원이라면 이렇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 동기가 광기든 치기든 간에 뜬금없이 무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으키는 묻지마 범죄가 중국이라고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어요.


중요한 것은 바로 하단의 내용이었어요. 비정상적인 의복 형식과 정상적인 의복 형식의 차이였어요.



"이 사람들 무슬림 관광객은 아예 안 받을 생각인가?"


우리는 '민족'이라 하면 혈통적 단일성부터 떠올리지만, 사실 민족 정체성에서 혈통 및 혈연은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는 한 요소에 불과해요. 오히려 실제 여러 민족들의 민족 정체성을 살펴보면 혈연 및 혈통적 단일성보다 언어 및 문화적 동질감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해요. 위구르인들의 문화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이슬람이에요. 한족 중심의 중화사상으로 소수민족의 민족적 특징을 말살하려는 중국 정부 입장에서 위구르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이슬람은 감시와 탄압이 필요한 대상이에요. 자신이 차별받고 핍박받고 있다고 느낄 수록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데, 무슬림들은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더 강화해나가는 형태로 종종 나타나요. 히잡 착용 강화는 이런 성향을 시각적으로 바로 알 수 있게 하는 현상이구요.



하단에 그려진 빨간색 배경에 초승달과 별, 파란색 배경에 초승달과 별은 이슬람계 튀르크 민족주의의 상징이에요. 빨간색 배경에 초승달과 별은 딱 봐도 터키 국기와 비슷하게 생겼고, 파란색 배경에 초승달과 별은 동투르키스탄 깃발이에요. 이것은 이슬람계 튀르크 민족주의의 상징이라서 중국 정부에서 정말 싫어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지요. 터키는 오스만 제국 말기 튀르크 민족들을 통합하려는 범투르크 민족주의 운동을 일으켰고, 현재까지도 튀르크 민족의 맏형을 자처하고 있어요. 그래서 실제로 현재까지 중앙아시아 및 러시아 등지에 터키계 학교를 설립하기도 하고, 현지 학생들에게 장학생으로 유학 기회를 많이 제공하기도 해요. 위구르인들에게도 마찬가지라서, 정치적 망명도 상당히 잘 받아줘요. 이러다보니 중국은 터키의 이런 움직임을 상당히 경계해요. 중국 정부는 위구르 민족의 민족성을 제거해버리고 싶어하는데, 터키의 이런 움직임은 위구르 민족의 민족 정체성을 강화시켜주거든요. 그러다보니 중국 정부가 학자들 중에서 튀르크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는 학자들에 대해 비자를 발급하지 않거나 아예 입국 금지 블랙리스트에 올려버리는 경우도 많아요. 한편 터키 정계나 학계에서는 '신장 위구르' 라는 단어 자체를 매우 싫어해요. 그것은 중국 정부가 자기들 멋대로 부르는 말이고, 터키 및 튀르크 민족주의자들은 동투르키스탄 Doğu Türkistan 이라고 불러요. 그러므로 당연히 빨간색 배경에 초승달과 별, 파란색 배경에 초승달과 별 패션은 나쁜 복장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것을 읽어낼 수 있었어요. 중국 정부가 이 지역을 반드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었어요. 당연한 소리지만, 한족들을 엄청나게 이주시키고, 엄청나게 번화한 거리를 조성하고, 시장을 관광지로 꾸며놓은 이유는 이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단순히 건설 사업으로 경기를 끌어올려 보겠다는 단순한 계산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많이 어려웠어요. 상하이를 돌아다니며 본 부동산 가격과 와이탄, 기차를 타고 오며 서쪽으로 갈 수록 점점 낙후되어 가는 풍경이 말해주고 있었어요. 이쪽을 발전시키려면 여기저기에서 관광객도 많이 유치해 와야 하며, 중앙아시아 이슬람 문화 국가들과도 많은 교류를 해야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슬림 관광객 및 이슬람 문화 국가 국민들이 반감을 가질 수 있는 선전을 대놓고 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어요. 중국에서 오래 있었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 중 하나가 '중국을 우리 기준으로 이해하고 예측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중국에 대해 예측이 어려운 이유는 중국 정부가 자신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 우리들이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라는 방법보다 더 심한 방법도 언제든 쓸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정권 존립을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도 사용 가능하며, 어떠한 피해가 발생하든 개의치 않겠다는 자세이기 때문에 쉽게 중국에 대해 예측을 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 역시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어요.



이런 전통 복장은 괜찮다고 하고 있었어요. 이슬람 사상 대신 중화 사상을 받아들인 중화 민족으로써의 위구르인으로 살아가라는 것이었어요. 얼핏 보면 위구르인들의 전통문화를 보호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자기네 입맛에 맞게 민족 문화를 개조하려는 작태였어요. 자기들 멋대로 위구르인의 문화를 규격화시켜버린 것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열심히 홍보하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구요. 정상형식 正常形式 이라는 말이 우스울 따름이었어요.


보안검색대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어요.




여기는 대놓고 한족들의 휴식처로 조성되어 있었어요.


"힘들어."

"그래도 왔으니 올라가자. 여기 내일 짐 다 짊어매고 올라갈래? 오늘 안 가면 결국 내일 다시 와서 저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말이야."


친구는 이제 힘들다고 말했어요. 저 또한 조금 피곤했어요. 그러나 반드시 오늘 올라가야만 했어요. 다음날 숙소에서 체크아웃할 예정이었어요. 홍산공원, 숙소, 기차역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우루무치의 교통체증과 다음날 동선을 생각하면 숙소에서 체크아웃할 때 짐을 들고 나와야했어요. 그렇다면, 여기를 내일 다시 올 경우, 짐을 전부 짊어지고 꼭대기까지 기어올라가야 했어요. 오늘 조금 피곤하기는 하더라도 힘을 내서 위로 올라가서 여기를 끝내는 것이 전체 일정을 놓고 보면 현명한 선택이었어요. 돈 내고 들어가는 곳은 거의 다 안 가는 상황에서, 이런 곳마저 조금 피곤하다고 안 가면 여기로 여행을 왜 왔는지 이유가 없어질 상황이어서 더더욱 올라가야만 했어요.



한족 문화로 꾸며진 계단을 올라갔어요.



계단을 오르고 통로로 만들어진 길을 걷자 산 정상 즈음에 도착했어요.





"여기 왠 절이 있지?"


절이 있어서 들어가보려는데 입장료를 내어야 했어요. 저와 친구의 선택은 당연히 안 들어가는 것이었어요. 특별히 돈을 내고 들어가야할 필요성을 둘 다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문이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에 밖에서 건물 사진은 찍을 수 있었어요.



절 사진을 한 장 찍고 정상을 향해 갔어요.




저 탑이 있는 곳이 바로 홍산 공원의 정상이었어요. 사진 속 탑은 홍산탑이에요.


우루무치 홍산탑


드디어 정상에 올라왔어요. 정상에서는 우루무치를 내려다볼 수 있었어요.






"야, 비온다. 내려가자!"


친구가 내려가자고 보채기 시작했어요. 하늘을 보니 비가 내릴 하늘이 아니었어요. 그냥 어쩌다 빗방울 몇 개 떨어졌을 뿐이었어요. 그러나 친구는 빨리 내려가자고 조르기 시작했어요. 친구가 보챈 이유는 자기 카메라에 빗물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친구는 평소에도 핸드폰, 디지털 카메라 등 자신의 전자장비를 엄청나게 아꼈어요. 심지어는 케이스에 기스 하나만 나도 기분이 확 상해버렸어요. 외관이 어찌 되든 작동만 멀쩡히 되면 된다는 저와는 정반대 성향이었어요. 어쨌든 친구가 군말없이 정상까지 잘 올라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저도 군말없이 친구를 따라 내려가기로 했어요. 홍산은 한 바퀴 돌아볼 수 있게 조성되어 있었어요. 원래는 홍산탑을 보고 한 바퀴 둘러볼 생각이었지만 한족 문화로만 잔뜩 꾸며진 곳인데다 친구가 한 바퀴 둘러보기 싫어해서 그냥 내려갔어요.



저녁 8시 반. 친구와 산에서 내려가는데 그제야 올라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시계는 8시 반이었지만, 실제 여기 생활시간으로는 6시 반~7시 반 정도였어요. 산에서 내려오는 것은 금방이었어요.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탔어요. 다행히 저와 친구 모두 좌석에 앉을 수 있었어요. 버스는 금새 만차가 되어버렸고, 교통체증에 갇혀 버렸어요.



"저 사람 차 사이로 왜 돌아다니지?"



얼핏 보았을 때에는 무단횡단하려는 사람, 또는 우리나라 명절때 고속도로에서 뻥튀기 파는 것처럼 무언가 파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계속 유심히 바라보니 위구르인 할아버지 한 분이 교통체증으로 갇혀버린 차 사이을 돌아다니며 적선을 요청하고 있었어요. 가끔 사람들이 차창을 열고 할아버지께 지폐를 건네주었어요. 길이 워낙 막히다보니 차창을 열고 할아버지께 적선을 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고, 할아버지도 여러 차를 지나가며 적선을 바랄 수 있었어요.


'확실히 이슬람권이긴 하구나.'


예전에 재미있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다른 문화권과 달리, 이슬람권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그 지역에 정말 엄청난 재앙이 발생한 것이라는 말이었어요. 이슬람에서 희사인 '자카트'는 그 방법과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아요. 이슬람에서 자카트는 기독교의 십일조와 '기부'라는 점은 비슷하나 그 실천 방법에서 상당히 많이 달라요. 일단 자카트는 순수입의 2.5%를 내게 되어 있고, 누구에게 주든, 어떤 형태로 주든 제약이 없어요. 예를 들어서 빵 장수가 팔다 남은 빵을 거지에게 주는 것 또한 자카트에 들어가요. 그러다 보니 이슬람권은 가난한 사람은 많아도 굶어죽는 사람은 쉽게 발생하지 않는 구조이며, 굶어죽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우리 기준으로 유추한 상황보다 그 사회가 더욱 심각한 식량 부족 상황에 빠져 있다는 뜻이었어요.


"저녁 어떻게 할까?"

"너 뭐 먹고 싶어? 나는 지금은 별로인데..."

"그러면 오늘은 그냥 각자 저녁 먹을 거 사먹자."


친구가 저녁 먹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고 하자 각자 알아서 해결하기로 했어요. 일단 친구와 먹거리를 팔고 있는 곳으로 갔어요.



친구는 과일 가게에서 수박을 팔고 있는 것이 보이자 거기로 달려갔어요. 친구는 저녁으로 수박을 먹겠다고 했어요. 저도 과일을 사서 먹을까 하고 가격을 물어보았어요. 과일 상태도 별로였고, 가격도 비쌌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구입해서 주식으로, 간식으로 먹어대었던 살구가 떠올라 살구를 찾아보았어요. 살구를 파는 곳이 있기는 했어요. 먹어보니 맛이 없었고, 가격 또한 비쌌어요.


'뭐 먹지?'



'난이나 먹어야겠다.'


난 한 개를 구입한 후, 친구와 슈퍼마켓으로 갔어요. 음료수도 구입해야 했고, 여행에 필요한 휴지, 비누도 구입해야 했어요.


'혹시 여기 아니면 우수 맥주 안 파는 거 아니야?'


가게에 들어가서 음료를 보는데 순간 이 지역 맥주인 우수 맥주를 다른 곳에서 안 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 들고 가려면 캔맥주로 구입해야 했어요. 위구르인들은 술을 잘 마시지 않으므로 Wusu 맥주 중 캔맥주는 의외로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어요. 일단 쿠처에서 무언가 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아예 하지 않았어요. 지금 구입하지 않으면 카슈가르에서 Wusu 맥주를 구입해야하는데, 캔맥주를 찾는 것이 쉬울지 의문이었어요. 만약 카슈가르에서 제가 봐놓은 숙소 근처에서 Wusu 캔맥주를 판매하지 않는다면 교과서 구하러 돌아다니는 일에 캔맥주 구하러 다니는 일까지 추가될 판이었어요. 저 때문에 같이 서점을 찾아가주는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거기에다가 캔맥주 찾자고 같이 돌아다니자고까지 하는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일단 여기서 한 캔은 사자.'


맥주 한 캔 정도는 짐에 그 무게가 더해져도 허리에 큰 무리가 갈 리가 없었어요. 그러나 두 캔이라면 허리에 무리를 줄 수도 있는 무게였어요. 당장 내일부터 이틀 연속 모든 짐을 짊어매고 돌아다녀야 했어요. 다음날은 카슈가르행 야간 열차를 타야 해서 짐을 메고 돌아다닐 예정이었고, 그 다음날은 친구와 텐트를 치고 하룻밤 보내기로 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짐을 메고 돌아다녀야 했어요. 마음 같아서는 그냥 두 캔 사고 싶었어요. 하지만 맥주 한 캔 무게 차이가 민감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허리 상태가 썩 좋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했어요.


구입할 것을 다 구입한 후, 숙소로 돌아왔어요.




밤 10시 넘어서 방으로 돌아와 캔맥주를 가방에 집어넣은 후, 친구와 침대에 앉아 각자 사온 것을 먹기 시작했어요. 먹을 것을 다 먹고 이런 저런 잡담을 하며 쉬었어요. 심심했어요.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 방송이라도 틀어놓고 싶었지만, 전자기기 충전 때문에 TV 플러그를 뽑아버렸어요. 다음날과 다다음날 충전을 오래 할 시간이 없었어요. 특히 친구의 스마트폰은 무조건 충전해야 했어요. 친구의 핸드폰이 없으면 둘 다 심봉사가 되는 것이었어요. 심봉사 정도가 아니라 기차표 예약을 전부 친구 스마트폰으로 했기 때문에 기차표 발권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어요. 그 다음은 각자의 카메라 배터리였어요. 기록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었기 때문에 꼭 충전을 해야 했어요. 더욱이 카메라 배터리는 빨리 닳기 때문에 보조배터리까지 확실히 완충해놓아야 했어요. 이렇게 친구의 스마트폰과 각자의 카메라 배터리를 꽂아놓고, 그 다음에 충전해야 하는 것은 저의 노트북 컴퓨터와 친구의 아애패드였어요. 기나긴 밤을 두 번 전기 없이 보내야하니 이것들 역시 완충해놓는 것이 좋았어요. 이렇게 이것저것 꽂아서 충전해야 하다보니 콘센트가 부족했어요.


둘 다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밖에 나갔다 올까?"

"그럴래?"


둘 다 심심해서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기로 했어요. 혹시 위험할 수 있으므로 모든 귀중품을 다 숙소 안에 두고 깜깜한 계단을 내려가 밖으로 나왔어요. 자정이었는데도 영업중인 식당이 여러 곳 보였어요. 손님들은 식당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어요. 무리지어 걸어다니는 위구르인들도 종종 보였어요. 위구르인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위구르인 남자들끼리 뭉쳐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조금 긴장되었지만, 정말로 아무 일 없었어요. 그래도 으슥한 곳은 절대 들어가지 않고 큰 길로만 다녔어요. 한참 이런 저런 잡담을 하다가 숙소 앞으로 돌아왔어요. 이때가 밤 1시였어요. 숙소 옆 가게는 그때까지도 문을 열고 있었어요.


"우리 맥주 한 캔 할래? 내가 살께."


그냥 숙소로 들어가서 자기에는 무언가 아쉬워서 친구에게 맥주 한 캔 하지 않겠냐고 물어보았어요. 친구가 좋다고 하자 가게로 들어갔어요.


"초록색 Wusu 맥주 한 번 마셔보자."


Wusu 맥주는 빨간색이 있고 초록색이 있어요. 빨간색은 전날 마셔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초록색을 마셔보기로 했어요. 초록색 Wusu 맥주를 2개 구입하고 밖으로 나와 숙소 앞 계단에 주저앉았어요. 이것은 어떤 맛일까? 맥주캔을 따서 한 모금 마셔보았어요. 알콜맛이 거의 나지 않았어요. 술이기는 한데 술을 마시는 것인지 맥주맛 음료를 마시는 것인지 아리까리할 정도였어요.


"걔네들이 왜 빨간색 마시라고 한 지 알겠다."

"그러게. 이거 밍밍하네."


맥주를 마시며 오랜만에 고등학교때까지의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친구는 저와 중학교 동창이기는 하지만, 정작 서로 알고 친구가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때 같은 반이 되면서부터였어요. 오랜만에 예전 이야기를 하니 재미있었어요. 친구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했지만, 저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친구들과 노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그 당시가 그저 즐겁지만은 않았어요. 게다가 고1이던 17살로 돌아간다면 군대도 다시 가야 하잖아? 이건 진짜 최악. 군대를 다시 가지 않아도 된다 하더라도 고등학교 시절이 마냥 편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새벽 2시를 훨씬 넘겨서 방으로 돌아왔어요. 친구는 바로 잠들었고, 저는 양말을 빨아 창밖에 널어놓았어요. 신발 깔창도 빨고 싶었지만 이것은 다음날 마를지 안 마를지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만약 마른다면 빨아서 같이 널어놓고 자면 좋은데, 안 마르면 대체할 예비 깔창이 없기 때문에 문제였어요. 그래서 깔창은 냄새만 조금 빠지라고 빨지 않고 창밖에 널어놓고 침대에 누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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