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09 중국 상하이역 기차 탑승 전투

좀좀이 2016. 7. 1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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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10분. 상하이역 광장에 섰어요.


상하이 기차역


"추석, 설날때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이 광장 넘어서 저 광장 입구 너머까지 사람들이 줄 서 있어."


아직 역 입구까지 가지도 못했는데 친구는 명절때가 되면 이쪽에 사람이 꽉 들어차다못해 광장 밖까지 온통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지금 제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한산한 모습. 명절때 기차역 전쟁터인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여기는 오죽할까 싶었어요. 상하이 인구는 2400만명. 여기에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 농민공들까지 합치면 아마 더 많을 거에요. 이들이 귀향한다고 하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할 거에요.


역 앞에는 사람들을 줄서게 만들기 위한 줄이 쳐져 있었어요. 줄을 따라 역 건물을 향해 걸어갔어요.


"여권이랑 기차표 꺼내."


기차역에 들어가기 위한 1차 관문은 신분증 및 표검사. 목걸이 지갑에서 여권과 기차표를 꺼냈어요. 직원에게 여권과 기차표를 보여주자 쉽게 통과가 되었어요.


2차 관문은 보안검색이었어요. 짐을 보안검색 기계 위에 올려놓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해 몸수색을 받아야 했어요. 이 또한 상당히 널널했어요. 그냥 웬만하면 다 통과를 시켜주는 것 같았어요. 보안검색대에서 소리가 나든 안 나든 그렇게 큰 차이도 없었어요. 소리가 나면 손으로 몸을 쓱 더듬으며 검사를 하는데, 주머니에 뭐가 있든 적당한 것이면 꺼내보라고 하지도 않고 다 통과시켜 주었어요.


"이제 기차역 들어왔네."



상하이 기차역 내부는 국제공항처럼 규모가 매우 컸어요. 어디로 가야하는지 전광판을 바라보았어요. 제가 타고 갈 Z40 우루무치 남역행 기차는 6번 대합실이었어요.



지하상가 같기도 하고 대규모 국제공항 같기도 하고 기차역 같기도 한 기차역 내부에서 6번 대합실을 찾아갔어요.


중국 기차역 대합실



기차 대합실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아직 기차 시각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어요.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다행히 친구와 제가 앉을 자리가 있었어요. 사람이 많기도 했지만, 이 많은 사람을 더 많게 보이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들이 갖고 있는 짐이었어요. 사람들의 짐은 매우 많았어요. 일단 거의 모든 사람이 캐리어만한 짐 하나는 갖고 있었고, 그 이상의 짐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았어요. 신기하게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차역 대합실 안은 그렇게 시끄럽지 않았어요.


'여행 기록이나 써야겠다.'


여행 기록을 빨리빨리 정리해야 했어요. 이번만큼은 제발 여행기를 여행중에 많이 쓰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며 여행기를 많이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여행기는 고사하고 여행기록 남기는 것조차 버거워했어요. 여행기록을 남기는 것도 한 시간 안 걸리는 날이 없다보니 피곤하면 여행기록을 남기지 않기 일쑤였어요. 이러다보니 여행에서 돌아오면 여행기 쓰는 것이 일이었어요. 여행기 한 편이 여행에서의 하루가 아닌데, 여행기 한 편을 쓰려고 하면 몇 시간씩 걸렸어요. 이러니 여행기 쓰는 것이 항상 밀려있었어요. 이번 중국 여행까지 다녀오고나면 여행기가 무려 4편이나 밀려버려요. 정말 여행 다니며 여행기를 바로바로 올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부러웠어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여행기를 빨리 쓸 수 있는지 궁금했구요. 어쨌든 이건 노력을 해서 기술을 늘리는 수 밖에 없는 문제였고, 이를 위해 일단 1분 1초라도 아껴서 여행 기록을 미리 남겨놓아야 했어요. 당장 투루판 가는 기차에서 투루판 가는 기차를 타는 이야기까지 작성하고 밀린 동남아시아 여행기를 조금이라도 작성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6시 반이 되자 노트북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어요.



6시 50분. 전광판에 드디어 제가 타고 갈 상하이발 우루무치 남역행 Z40 열차가 전광판에 떴어요.


"야, 이제 줄 서자."


친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줄을 섰어요. 이미 몇몇이 개찰구 앞에 줄을 서 있었어요.


'뭐 벌써부터 줄 서자고 하지?'


기차는 7시 40분 출발이었어요. 6시 50분이니 아직 50분이나 남아 있었어요. 친구가 정말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지만 별 내색하지는 않고 친구 말을 들었어요.


상하이역 개찰구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우리랑 같은 열차 탈 사람들이거든? 이제부터 사람들 줄 서기 시작할 거야."


진짜로 사람들이 하나 둘 우리 뒤로 달라붙기 시작했어요.


"우루무치난짠!"


어떤 사람이 중국어로 '우루무치 남역'을 외치며 사람들 사이에서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혹시 저 사람 따라가야 타는 거 아니야?'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어요. 친구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우루무치 남역을 외치며 돌아다니는 중국인에게 어디에서 Z40 기차를 타는 것이냐고 물어보았어요. 그 중국인은 Z40 기차는 우리가 줄을 서 있는 곳에서 타는 것이 맞고, 자기는 짐을 먼저 부칠 사람들을 향해 짐을 가져오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어요. 잠시 후, 그 사람은 사라졌고, 줄은 우리들 뒤로 엄청나게 길게 늘어났어요.


"이제 조금 있으면 개찰구 열어줄 거야. 그러면 새치기 잘 막아야 해!"


친구는 중국에서 기차 타는 법을 알려주었어요. 먼저 이렇게 줄을 서서 개찰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해요. 개찰구 문이 열릴 즈음이 되면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오기 시작해요. 줄이 이미 있다는 것 따위는 소용없어요. 그냥 옆에서 마구 새치기해 들어와요. 어리버리하게 있으면 슬며시 끼어드는 중국인들에 밀려 거의 꼴찌로 기차를 탈 수도 있어요. 새치기하지 말라고 외치고 몸으로 적절히 새치기하는 사람들을 막아야 해요. 개찰구가 열리기 직전에는 줄이고 나발이고 없어요. 말이 좋아 줄이지, 이미 7~8줄이 되어 있어요. 새치기하는 중국인들도 많지만, 아예 새로 옆에 줄을 만들어버리는 중국인들도 많거든요. 개찰구를 통과하면 무조건 객차까지 달려가야 해요. 객차에 타면 먼저 탁자를 점령해야 해요. 자신의 짐을 탁자에 쫙 깔아서 탁자를 점령하고, 짐칸에 가방을 올려놓아야 해요.


"진짜 탁자 꼭 점령해야 해. 탁자 점령 못하면 우리 망하는 거야."


친구는 탁자 점령을 계속 강조했어요. 중국에서 오래 살았고, 기차도 여러 번 타본 친구가 하는 말이니 그런가보다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 '탁자가 대체 뭔데 꼭 점령해야 한다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깟 탁자 반드시 혼자 다 써야 하나? 솔직히 저와 친구가 탁자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일부러 엉망으로 탁자에 짐을 올려놓아야 했어요. 그냥 적당히 공유하며 쓰면 될 건데 왜 그렇게 탁자 점령을 강조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러나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어요. 몇 분 후면 직접 그 이유를 목격할 것이었으니까요.


"너 중국 기차 얼마나 골때리는지 모르지? 해바라기씨 엄청 해대. 입에 계속 넣고 껍질 두두두 뱉어댄대니까? 진짜 화내고 싶었는데 기술 좋게 뱉어대는 족족 껍질이 쓰레기통에 들어가서 화낼 수가 없더라. 농민공들은 일단 페인트통이랑 마대 자루 기본이야. 막 목욕탕 의자 깔고 앉아 있다가 바닥에 누워서 자버려. 화장실을 갈 수가 없다니까? 너 발냄새 때문에 머리 어지러워본 적 없지? 중국 기차에서는 흔한 일이야. 농민공들 기차 타서 신발 양말 벗으면 냄새 엄청나. 게다가 손톱 발톱 톡톡톡 잘라대. 컵라면 엄청 먹어대고 그거 잘 치울 리가 없잖아? 입석으로 끊은 사람들은 막 아무 데나 자기 자리인 척 앉아서 가. 진짜 자기 자리 잘 지켜야 돼. 어느 순간 원래 자기 자리인 것처럼 앉아버린다니까? 너 이제 한 번 겪어봐라."


친구의 중국 기차 설명. 친구의 이 중국 기차 프리젠테이션을 들은 소감은 이랬어요.


'이 녀석이 대륙의 기상에 오염되어 이제 뻥만 잔뜩 치는구나.'


해바라기씨? 그건 이해되요. 이건 솔직히 우리나라만 안 하는 것이지, 중국부터 시작해 저 멀리 터키까지 실크로드 국가에서는 다 하는 거에요. 희안하게 우리나라만 해바라기씨를 하지 않아요. 기차를 오래 타고 가야 하니 안에서 컵라면 끓여먹을 수 있어요. 물론 온수가 있다면요. 입석으로 끊었는데 빈 자리 아무 데나 가서 자기 자리인 것처럼 앉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있는 일이에요. 여기까지는 그냥 상식적이고 흔한 특징. 특징이랄 것도 없고 어느 기차에서도 볼 수 있는 그냥 보편적인 모습이었어요.


페인트통과 마대 자루? 그건 대체 어디에 쓰려고 페인트통과 마대 자루를 들고 타? 상하이 기차역 대합실 안에 사람들이 많기는 했지만 페인트통과 마대 자루를 들고 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어요. 마대 자루까지는 보였어요. 그러나 페인트통은 보이지 않았어요. 이 나라에서 농민공들이 짐을 들고 다닐 때 페인트통과 마대 자루를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면 그냥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그런데 손톱 발톱을 자리에서 깎아서 아무 데다 버린다고? 이건 무슨 또라이 같은 소리야? 손톱은 이해해요. 그런데 발톱은 진짜 아니었어요. 일단 그 장면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어요. 발톱을 깎기 위해서는 먼저 신발과 양말을 벗어야 해요. 자기 자리에서 깎기 위해서는 이제 맨발을 의자 위에 올려놓아야 해요. 그 다음에 발톱 깎기. 3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단계 모두 그리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었고, 특히 마지막 '발톱을 깎는 단계'는 그냥 상상불가였어요. 화장실에 가서 깎는다면 이해가 되요. 그런데 자기가 앉은 자리에서 발톱을 깎는다?


기차 복도가 목욕탕 의자 깔고 앉아 가는 사람, 벌러덩 드러누워 자는 사람으로 가득 찬다? 에라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장시간 이동이니 바닥에 주저앉아 갈 수야 있어요. 자기 짐을 깔고 앉을 수도 있구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목욕탕 의자를 깔고 앉는다? 그리고 기차 바닥이 무슨 건물 복도도 아니고 기껏해야 두 사람도 나란히 못 지나가는 그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벌러덩 누워서 잔다고?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어요.


"너 내 말 거짓말같지? 한 번 타 봐."


친구가 중국 기차에 대해 설명해주는 동안,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정말로 줄이 3줄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 세 줄 옆으로 사람들이 또 계속 스믈스믈 달라붙으려 오고 있었어요. 중국인들이 줄 옆으로 달라붙을 때마다 처음에는 뻥친다고 생각했던 친구의 말이 진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어갔어요. 분명 시작은 한 줄이었는데, 이제는 몇 줄인지 세기도 애매해져버렸어요. 뒤를 돌아보니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던 대합실이 이제 2/3만 사람들로 들어차 있었어요.


7시 5분. 사람들이 사탕에 몰려드는 개미떼 같이 몰려들기 시작했어요.이제는 줄이고 나발이고 엉망이 되어버렸어요. 이미 줄을 서 있던 중국인들이 나름대로 방어를 해보려 했지만 그들과 같은 중국인 특유의 인해전술 앞에 그들은 동화되어 녹아버렸어요. 동방명주, 와이탄 같은 아름다운 상하이 풍경에 대한 기억은 옆으로 마구 몰려오는 중국인들 발에 철저히 짓밟혔어요. 그냥 웃음이 나왔어요.


친구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적당히 줄 서고 가끔 새치기하러 오는 사람이나 어깨로 쳐내면 되지 않을까 예상했어요. 발전한 상하이의 풍경을 믿고 있었거든요. '무개념한 중국인'의 모습이 많이 순화되었을 거라 믿었어요. 그건 제 잘못된 믿음이었어요. 왜 기차를 타기 위해 줄을 서는데 개찰구가 열리는 것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며 점점 비장해지는 감정이 드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분명 지금 기차를 타러 가는 거지, 월드컵 결승전을 뛰기 위해 선수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왜 이렇게 긴장이 되고 흥분이 되는 거지? 옆으로 몰려오는 사람들과 손과 어깨, 다리와 짐을 써서 온몸으로 새치기를 막는 이미 줄을 섰던 사람들. 중과부적으로 옆에서 달라붙는 사람들에게 흡수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기차 타는 상황'과 안 어울리게 아드레날린이 조금씩 스며나오고 있었어요.


이 지경이면 줄을 세워야 정상 아닌가?


아직 생각할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아주 예전,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줄을 서는 습관이 부족했던 때가 있었어요.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버스에 줄을 서서 타는 게 아니라 너나 할 거 없이 버스에 달려들었어요. 2000년대 초반 영등포에서 버스를 탈 때, 거기에서는 줄을 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버스가 오면 사람들이 버스에 달려들어 올라타곤 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아서 줄을 서게 된 것 또한 아주 오래된 일은 아닐 거에요. 개인적 경험 뿐만이 아니라 어렸을 적만 해도 서양인, 일본인들은 줄을 스스로 잘 서는데 한국인들은 줄도 제대로 못 서고 새치기가 난무한다는 내용의 신문 기사 및 글을 읽은 기억이 한 두 개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최소한 줄을 세우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줄을 서게 만드는 줄이 있었구요. 이렇게 아무렇게나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방치해두지는 않았어요.


사람들의 열기로 분위기가 훅훅 달아올랐어요. 아직 뜯지 않아 새 것인 2리터 패트병 2개가 꽂혀 있는 가방이 어깨를 짓눌렀어요. 가뜩이나 습한 날에 사람들의 열기까지 더해지니 육수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어요. 중국인들 몸은 한국인들보다 열이 더 많았어요. 저도 몸이 뜨거운 편인데 이 사람들은 저보다 훨씬 더 뜨거웠어요. 어서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7시 10분. 드디어 개찰구가 열렸다.


거대한 인파가 개찰구로 달려들었어요. 어렸을 적 TV에서 보았던 동베를린 주민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달려드는 것처럼 우루루 앞으로 몰려갔어요. 개찰구를 통과하기 위한 것인지 개찰구를 파괴하고 돌진하기 위한 것인지 애매할 지경이었어요. 개찰구에서는 직원이 손수 표를 받아서 검사하고 있었어요. 개찰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직원에게 가까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직원에게 먼저 표를 건네주는 것이 중요했어요. 개찰구를 통과한 사람들은 친구 말대로 달리기 시작했어요. 이것은 전투였어요. 양옆과 뒤에서 사람들이 계속 밀어대었어요. 넘어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여기서 넘어지면 압사당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신 바짝 차리고 새치기 들어오는 사람들을 막아내며 앞으로 나아갔어요.


드디어 개찰구가 가까워졌어요. 이제 직원까지 한 팔 거리. 직원에게 여권과 표를 들고 있는 팔을 쭉 내뻗었어요. 직원이 제 여권과 표를 받아주었어요. 직원은 제대로 검사하는 것 같지도 않았어요. 직원에게서 여권과 표를 돌려받자마자 앞과 옆 사람을 제치고 개찰구를 통과했어요. 표검사를 받아야만 개찰구를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이때는 다른 사람들도 잘 비켜주었어요.


친구와 개찰구를 통과하자마자 기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어요.


'나 지금 무슨 괴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 거지?'


기차 출발 시각은 7시 40분. 기차까지는 설령 조발한다고 해도 느긋하게 사진 찍고 역사 구경하며 걸어가도 충분히 탈 수 있는 거리만 남았어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달려야할 그 어떤 이유도 없었어요. 직원이 기차가 곧 출발할테니 뛰어가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제 뒤에는 제 앞에서 통과한 사람들보다 몇 배나 되는 사람들이 개찰구를 아직 통과하지 못해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달리고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다 뛰고 있으니 같이 뛰기는 하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웃음이 나왔어요.


기차를 따라 걸어가는데 침대칸에는 객실 문이 있었어요. 조금 더 가자 제가 타고 갈 객차가 나왔어요. 객차 앞에서 다시 한 번 기차표와 여권 검사를 받은 후, 객차 안으로 올라갔어요.


"문 어디 있지? 아까 객차는 객실마다 문이 있던데 여기는 왜 없지?"

"아까 것은 비싼 객차야. 당연히 차이가 있지."


침대칸에 문이 없었어요. 친구에게 왜 우리가 타는 객차는 객실에 문이 없냐고 물어보자 저렴한 침대칸이라 그런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어요.


일단 친구와 탁자에 물건을 늘어놓아 탁자를 점령했어요. 왜 탁자를 점령해야 하는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친구가 해야 한다고 하니 군말없이 친구 말을 들었어요.


중국 기차 침대칸


객실은 6인실이었어요. 이제 여기에서 이틀 밤을 보내야 했어요.


"이 객실 사람들이 낮에는 우리 침대에 걸터앉아 있을 건데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알았어."


침대칸 기차에서 1층은 낮에는 의자, 밤에는 침대에요. 침대칸을 처음 타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침구류에 덮개를 씌우고 자리에 앉았어요.




창밖은 매우 평화로웠어요. 기차를 타기 위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장이라는 느낌이 하나도 없었어요.


기차가 출발했어요. 객실에는 저와 친구 둘 뿐이었어요. 전반적으로 침대칸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어요. 기차가 출발하자 승무원이 기차표를 걷어가고 객실증을 주었어요.


중국 기차 객실증



"우리 칸에 아무도 안 타네. 괜히 뛰었잖아."


온몸이 땀으로 젖어서 꿉꿉했어요. 아직까지 저와 친구가 있는 객실에는 저와 친구 뿐이었어요.



침대칸 복도에는 좌석과 탁자, 그리고 콘센트가 있었어요.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아보니 전기를 사용할 수 있었어요.


"이제 자자."


침대에 드러누웠어요. 몇 개 역을 거쳐 객실로 사람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비어 있던 침대 4개에 전부 사람이 들어갔어요.



기차가 역에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깨었어요. 시계를 보니 새벽 5시였어요. 기차는 역에 잠시 정차했다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어요.


중국 화력발전소



미세먼지를 마구 내뿜어내는 화력발전소가 나왔어요.






기차는 계속 달렸고, 넓은 밭이 나왔어요.



중국 밀밭


오전 6시 40분. 뤄양에 도착했어요. 삼국지에서 나오는 그 불타는 낙양의 그 뤄양이었어요.


'이렇게 뤄양까지 오는구나.'


뤄양에서는 기차가 오래 정차하지 않았기 때문에 밖으로 잠시 내렸다 돌아올 수 없었어요.



기차가 다시 출발했어요.



복도에는 담배 냄새가 났어요. 분명히 친한 동생이 기차에서 담배를 태울 수 없다고 말했어요. 그러면 이것은 설마 화장실에서 태우는 건가? 하지만 화장실에서 담배를 태운다고 기차 복도에서 담배 냄새가 진동할 리는 없었어요. 그리고 만약 기차 내부에서 담배를 태울 수 없다면, 담배 냄새가 날 때마다 승무원이 담배 냄새 진원지로 갈텐데 그런 움직임이 없었어요. 기차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화장실 쪽으로 갔어요.



그러면 그렇지.


흡연의 천국 중국에서 기차 안에서 금연일 리가 없었어요. 기차에는 객차 끝이 흡연공간이었어요.



친구 말대로 온수를 받을 수 있는 급수대도 있었어요.


다시 자리로 돌아오니 친구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고 있었어요.


"우리 뭐 먹어야하지 않을 건가?"

"라면 끓여먹을래?"

"라면 두 개 밖에 없잖아. 여기는 도시락 같은 거 안 팔아?"

"팔아. 그런데 비싸고 맛 없어."

"그래도 하나 사먹자. 내일 아침까지 계속 기차 타고 가야 하는데."


친구와 탁자 앞에 걸터앉았어요. 물을 마시고 창밖을 쳐다보았어요. 지금까지 해왔던 기차여행에서는 어찌 되었든 하룻밤 자면 다음날 내릴 수 있었어요. 발칸유럽과 중유럽에서도, 베니스에서 파리를 갈 때도, 우즈베키스탄에서 여행할 때도,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갈 때도 그랬어요. 그런데 이번은 이렇게 기차에서 하룻밤 잤음에도 불구하고 또 하룻밤 더 여기에서 잠을 자야 했어요. 정말 다행인 것은 아직 기차에서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처럼 들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아침 식사를 파는 승무원이 돌아다니자 면을 하나 구입했어요.




소금 없나요?


점성이 있는 국물은 하나도 맵지 않았어요. 감자가 많이 들어 있었고, 면은 칼국수 면발이었어요. 참 급식같았어요. 소금이라도 조금 더 넣으면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은데 소금이 없었어요. 새콤한 것도 아니고 매콤한 것도 아니었어요. 좋게 말하면 재료맛이 살아있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왜 국물이 붉은 색인지 알 수 없었어요. 안에 들어 있는 계란 후라이가 너무 맛있었어요. 특별한 계란 후라이도 아니고, 이 계란 후라이조차 짠 맛이 없었지만 이 밍밍한 계란 후라이야말로 이 음식에서 가장 독보적인 맛을 자랑하는 핵심이었어요. 못 먹을 정도로 맛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밍밍해서 배를 채우는 용도 뿐이었거든요.


면을 다 먹고 복도 의자에 앉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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