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10 중국 중부를 관통해 서부로 가는 중국 침대칸 기차 24시간

좀좀이 2016. 7. 1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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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정이랄 것조차 없는 날. 그냥 하루 종일 기차 안에 있기만 해야 하는 날이었어요. 기차에서 하루를 다 보내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야 투루판에 도착이었거든요. 이런 여유는 여행 말기에 한 번 가지는 것이 좋은데, 여행 일정을 보면 정작 여행 말기에는 상당한 강행군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나마 한숨 돌릴 만한 부분이라면 시안에서의 3일. 이때는 한국에서 다른 친구가 와서 잠시 같이 놀기로 했어요.


'여행 기록부터 어떻게 해결해야겠다.'


기차에서 할 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이럴 줄 알고 한국에서 태국 가이드북도 들고왔거든요. 기차 타기까지의 일정을 다 정리해서 기록한 후, 태국 여행기를 조금 쓸 생각이었어요. 당장 이 중국 여행만 해도 20박 21일의 긴 여행. 이거 여행기로 쓰려면 하루에 하루치를 쓴다고 해도 20일이 걸렸어요. 대충 쓴다면 하루에 하루치 여행기를 다 쓸 수 있겠지만, 제대로 쓰려면 하루에 한 편 쓰기도 벅찼고, 한 편이 하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한 것도 본 것도 지지리 없는 날이라면 하루에 한 편으로 끝나지만, 여행 중 그렇게 하루에 한 편으로 끝나는 날은 거의 없었어요.


중국 밀밭



차창 밖의 풍경은 평화로운 농촌이었어요. 이 풍경이 바뀌고 바뀌어서 황량한 사막으로 바뀌어야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들어가는 것이었어요. 이제 아침 8시 채 되지도 않았어요. 신장-위구르는 고사하고 시안도 못 왔어요. 뤄양 다음 역이 시안이었는데, 시안은 오전 11시 도착 예정이었어요. 절반은 고사하고 1/3이나 왔을까 싶은 정도 이동했어요. 기차가 아무리 조발을 마구 해대더라도 투루판까지 오늘 내에 도착할 확률은 0%였기 때문에 그 어떤 조급함도 없었어요.





넓은 들판을 지나 산이 나왔어요.


풍력발전기


산 위에는 풍력발전기가 있었어요.


"너 뭐 하고 있어?"

"여행 기록 정리."


친구가 창가에 앉아 있는 제게 무엇하냐고 물어보았어요. 기차에서 할 것이라고는 사실 여행기록 정리하고 여행기 쓰는 것 외에는 없었어요. 제가 탄 객차에 위구르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딱 한 가족 있었어요. 나머지는 전부 중국 한족이었어요. 중국어를 모르니 이 한족들과 어울릴 일이 없었어요.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거나 소란을 부리는 몰지각한 사람들도 없는 것 같았어요. 가끔 컵라면 물 받으러 가거나 담배 태우러 가는 것 외에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어요. 복도에서 해바라기씨를 짝짝짝짝 해대는 사람도 없었어요. 기차 소음만 울려퍼질 뿐이었어요.


산을 통과하자 도시가 나왔어요.




"저거 모스크 아니야?"


mosque in china


얼핏 보면 높지 않은 아파트처럼 생긴 건물인데 그 위에 모스크를 나타내는 구슬과 초승달 장식이 있었어요. 중국 와서 처음 보는 모스크였어요. 아직 시안까지 가지도 못했어요. 중국에 무슬림이 많이 있다고는 해요. 그 대부분이 위구르인이고, 회족도 있다고 해요. 위구르인, 회족 모두 중국 서부에 많이 사는 민족이에요. 이 기차는 중국 서부는 고사하고 아직 중부라 부를만한 곳까지 가지도 못한 상태였어요. 그런데 저렇게 규모가 꽤 되는 모스크가 나오자 깜짝 놀랐어요.



"중국에서 모스크를 다 보네."


중국의 종교 탄압은 꽤 유명한 이야기. 특히 이슬람에 대한 감시가 꽤 철저하다고 알려져 있어요. 이러다보니 중국에서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나 가야 모스크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스크가 딱 나오자 눈이 둥그래졌어요. 조금 더 자세히 건물을 관찰하고 싶었지만 기차는 빠르게 모스크를 지나갔어요. 잠깐 몰아친 바람처럼 모스크가 스쳐지나간 후,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다시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친구는 객실 안에서 다른 승객들과 중국어로 대화하며 놀고 있었어요. 그 승객들의 얼굴을 보니 딱 중국 한족이었어요. 친구도 혼자 시간을 잘 보내고 있었어요. 조용하고 평화로운 기차 안 아침이었는데...


뒤에서 한족 아주머니가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셨어요. 볼 테면 보라고 신경쓰지 않았어요. 저는 한국어로 여행 기록을 남기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이때 적고 있던 내용은 2016년 5월 27일 내용이었어요. 공항에서 극적으로 말레이시아 링깃 지폐를 떠올려 환전해서 음료수를 사서 마셨던 감동의 순간을 글로 남기고 있었어요. 설령 한국어를 잘 아는 중국인이라 해도 읽고 문제될 내용이 하나도 없었어요. 계속 뚫어져라 바라보는데 문제될 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볼 테면 봐봐라. 물론 알아볼 지나 모르겠지만.'


그때 그 한족 아주머니께서 말을 걸었어요. 중국어로 제게 한국인이냐고 물어보았어요.


"뛔이. 워 스 한궈런."


이제 '예, 저 한국인이에요' 정도는 중국어로 할 수 있어요. 사실 딱 저기까지였어요. 아주머니는 중국어로 무언가 물어보았어요.


"워 부 쯔따오 한위. 워더 펑요우 쯔따오 한위."


'저 중국어 안 알아요. 제 친구 중국어 알아요' 라고 중국어로 이야기했어요. 게스트하우스 일할 때 참 많이 말했던 '워 부 쯔따오 한위'. 중국어 좀 아는 사람들은 이것을 볼 때마다 못 고쳐주어서 안달이지만, 그때마다 그냥 한 귀로 흘려듣고 계속 유용하게 잘 사용하던 말이었어요.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며 한국어도 영어도 진짜 심각하게 모르는 중국인들을 종종 만났어요. 진짜 과장 하나 안 보태고 hello, my name is 이런 것조차 모르는 중국인들도 여럿이었어요. 이들이 중국어로 물어볼 때, 말 없이 고개 갸웃거리기도 그렇고, 쏘리쏘리 왓왓 거리기도 싫어서 하던 말이 저거였어요. 일단 중국어를 못한다는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면서 상대가 빨리 알아먹어서 제가 중국어를 할 거라는 일말의 기대도 못하게 하는 게 목적이었어요. '저 한국어 못해요'라고 하는 외국인과 '나 한국어 아나롸열' 하는 외국인 중 누가 더 한국어를 못할 것 같이 보이는지와 같은 이치였어요. 이왕 못한다고 말하려면 최대한 멍청하게 말해야 하니까요.


제가 손가락으로 친구를 가리키자 아주머니는 친구에게 가서 뭐라고 이야기했어요. 둘은 쏼라쏼라 솽솽솽 열심히 이야기했어요. 대충 너희 어디 가냐, 너 중국어 어디에서 공부했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나머지 대화는 전혀 못 알아들었어요. 친구가 아주머니와 열심히 대화하는 것을 구경하는데 아주머니가 친구에게 제가 중국어 아냐고 물어보았어요. 친구는 제가 중국어 모른다고 대답했어요. 아주머니는 매우 미심쩍어하며 다시 친구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어요. 저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을 보고 다시 노트북에 여행기록을 적기 시작했어요.



기차는 평화롭게 달리고 있었어요. 창밖 산 모습이 우리나라 산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대충 충청도나 강원도 어디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풍경이었어요.


"뭐 하고 있어?"

"여행기록 쓴다."

"이 사람들 전부 우루무치 가는 사람들이래."


복도에서 노트북으로 여행기록을 남기고 있던 저는 어느새인가 이 객차에 탄 모두의 관심을 끌고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중국어를 모르고 친구가 안다는 것이 밝혀지자 사람들이 친구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어요. 친구 말로는 이 객차에 탄 사람들 대부분이 우루무치 가는 사람들이었어요. 이 한족 사람들이 우루무치는 정말 좋은 곳이라고 칭찬했다고 했대요.



9시 40분. 북한산, 도봉산처럼 생긴 산이 나왔어요.


"여기 진짜 멋지다!"


차창 밖으로 정말 멋진 산악 풍경이 펼쳐졌어요.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꺼냈어요.



그러나 달리는 기차에서 창밖 풍경을 잘 찍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풍경은 휙휙 지나가는데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웠어요. 카메라를 대충 쓴 지 하도 오래되다보니 이렇게 신경써서 찍어야 하는 상황이 닥친 상황에서 마음대로 빨리 조작할 수 없었어요. 분명히 어떻게 하면 초점거리를 무한대로 놓아서 셔터만 마구 누를 수 있게 할 텐데 그것을 어떻게 설정하는 건지 기억나지 않았어요. 그동안 아름다운 풍경은 계속 지나가버렸고, 남은 사진은 딱 저거 하나 뿐이었어요. 나중에 이곳이 무슨 국립공원이라고 표지판도 나왔지만, 그것 역시 사진으로 찍지 못했어요.


아름다운 풍경이 지나간 후 다시 여행기록을 작성하는데 아주머니께서 제게 아이 주먹만한 사과를 주셨어요.


"고맙습니다."


사과를 받아들고 친구를 바라보았어요.


"그거 신장 지역 사과래. 신장 지역 사과 한 번 맛보면 다른 지역 사과는 맛없어서 못 먹는대."


사과를 외투로 쓱쓱 문지른 후 한 입 베어물었어요. 이것은 기억에 남을 정도로 맛있었어요. 제가 지금까지 먹어본 사과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맛이었어요. 첫 번째로 맛있었던 것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먹어본 키르기스스탄 사과. 그 사과는 너무 독보적인 존재였어요. 그 키르기스스탄 사과를 제외한 나머지 중에서 가장 맛있는 사과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일 맛이었어요.


사과를 먹는데 친구가 같은 칸에 탄 한족 청년 두 명과 사과를 준 아주머니가 해준 이야기를 제게 해 주었어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사는 여자들은 매우 착하고 고분고분해서 거기 가서 여자를 만난 남자는 다른 곳 가서 여자를 만나지 못하고 그냥 신장 지역에 눌러앉아버린대요. 이것은 위구르족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족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보통 한족 여자들은 기가 세고 고집이 상당히 강해서 자기 고집 꺾는 일이 절대 없는데 신장의 한족 여자들은 예쁘고 착하대요. 나중에 주변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남자가 신장 지역 가면 여자 때문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은 중국에서 유명한 말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중국인들 - 특히 한족들은 우루무치를 상당히 무서워해요. 에이즈 피 주사기 테러, 폭탄 테러 등등 살벌하고 무서운 도시라는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퍼져있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무서운 곳이 아니라 상당히 안전한 곳이라고 기차에 탄 한족들이 이야기해주었다고 말해주었어요. 그에 비해 란저우는 도둑이 엄청나게 많기로 모든 중국인드르 사이에서 악명이 자자하다고 했어요. 우루무치는 소문만 살벌하지 실제로는 괜찮은 도시이고, 진짜 무서운 도시는 란저우라는 것이었어요. 이 기차는 란저우역도 들릴 예정이었어요.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갑자기 화장품 샘플을 들고 왔어요.


'설마 샘플도 주는 건가?'


여자용 화장품이었기 때문에 제게 전혀 필요가 없는 것이었어요. 하도 건네서 받기는 했는데 뭘 해야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아주머니는 친구에게 뭐라고 이야기했어요.


"우리보고 이거 들고 한국어로 한 마디 해달라는데? 핸드폰으로 찍겠대."


설마 사과가 모델비였던 거야?


한국 여권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꼈어요. 한국인이 홍보하는 동영상을 찍고 싶다고 샘플을 건넨 것이었어요. 별 것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해드리는데 자꾸 이 상황이 웃겨서 웃음이 나왔어요. 그냥 한국어로 아무렇게나 홍보 대사 말하라고 하는데 무엇을 말해야할지 떠오르지도 않았어요. 어떻게 동영상을 짧게 찍기는 했는데 아주머니는 그 동영상이 매우 못마땅한 것 같았어요. 어쩔 수 없었어요. 제가 화장품 홍보하는 영상을 찍는 상상은 꿈에서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이건 망상 속에서조차 존재하지 않던 상황이었어요.


"시안역이다!"


11시 20분. 기차가 시안역에 도착했어요. 이곳은 나중에 다시 와야할 기차역이었어요. 지금은 이렇게 흘러가지만, 다음에 여기 올 때에는 이 역에서 내릴 것이었어요. 창밖을 보니 기차역에서 먹을 것을 팔고 있었어요.



"점심 먹을 거 사와야지."

"내가 가서 사올께, 너는 짐 보고 있어."

"알았어."


친구가 점심 먹을 것을 사오기 위해 기차에서 내렸어요.



같은 객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먹을 것을 사러 기차에서 내렸어요. 잠시 후, 친구가 고기 만두를 사와서 제게 건네었어요.



이것이 10위안이었어요.


"맛있냐?"

"그럭저럭 먹을만하네."


특별히 맛있지는 않았어요. 이것 역시 밍숭밍숭한 맛이었어요. 기억에 남길만한 구석이 없는 먹거리였어요. 단지 이것을 안 먹으면 오늘 저녁이든 내일 아침이든 한 끼를 굶어야했기 때문에 먹을 뿐이었어요.


만두를 먹고 자리에 드러누웠어요. 슬슬 잠이 몰려왔어요. 여행 기록을 그럭저럭 남겼고, 아직 기차가 투루판에 도착하려면 한참 남아있었기 때문에 급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창밖 풍경을 찍는 것도 슬슬 재미가 없어지고 있었어요. 아직까지는 창밖 풍경이 크게 변한 게 없었어요. 그리고 카메라 배터리 및 메모리 용량도 고려해야 했기 사진을 난사할 수도 없었어요. 기차에서 있었던 일은 나중에 다시 정리하기로 하고 잠시 자기 위해 눈을 감았어요.



"어이그...너 이제 밤에 잠 못 잔다."

"무슨 잠을 못 자?"

"야, 심심해. 놀아줘."


눈을 뜨자마자 친구에게 들은 말은 밤에 잠을 못 잘 거고, 자기가 심심하니 놀아달라는 것이었어요.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30분이었어요. 탁자 위에 놓인 물을 마신 후, 창밖을 바라보았어요. 창밖 풍경은 아까보다 훨씬 메마른 풍경으로 바뀌어 있었어요. 메말라가는 산을 보니 확실히 서쪽으로 많이 왔다는 것이 실감났어요. 이제 바람이 한 번 불면 산에서 모래먼지가 확 일어날 것 같았어요.


중국 화물 열차


"저 기차 엄청 길다!"


창밖으로 화물 열차가 지나가고 있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엄청난 길이였어요. 비록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보았던 소련제 53량 화물 열차보다 짧았지만 이쪽도 꽤 길었어요. 역시 공업기술 및 과학기술에서 중공은 소련에 비하면 형편없었어요. 사실 소련제는 인체 비공학적이라 그렇지 튼튼하기는 엄청 튼튼해요. 이제 소련이 망해서 없어지기는 했지만, 소련제는 인체 비공학적이고 부실한 중공제에 비할 바가 아니에요. 매우 많은 화물칸을 끌고 가는 화차를 보며 흥분해야 하는데, 우즈베키스탄에서 보았던 것과 비교가 되며 순간의 흥분은 금방 사그라들었어요.



메마른 산과 초록빛 밭. 옛날 대상들은 여기에서부터 슬슬 목이 타기 시작했겠지?



이 메마른 땅에도 하천이 흐르고 있었어요.


"저거 설마 황하인가?"



갑자기 싯누런 거대한 하천이 나왔어요. 이렇게 물이 하나도 없게 생긴 땅에 거대한 하천이 나오자 놀라서 창밖을 계속 쳐다보았어요. 기차는 계속 달렸고, 거대한 하천의 모습은 곧 사라졌어요.


기차에서 조만간 란저우역에 도착할 것이라고 방송이 나왔어요.


"여기 기차역에서 귀중품 잘 간수하라고 방송나온다."


친구가 방송을 듣더니 신기해하며 알려주었어요. 지금까지 지나온 그 어떤 기차역에서도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귀중품을 잘 간수하라고 방송이 나온 적은 없었다고 했어요. 같은 칸에 탄 중국인들도 우리들에게 귀중품 꼭 잘 챙기라고 당부했어요. 이제 이 기차가 도둑들의 도시 란저우에 들어가기 때문이었어요. 기차 방송도 도둑 조심하라고 하고, 한족들도 도둑 조심하라고 하니 조금 긴장이 되었어요.


이거 무슨 은하철도 999야?


창밖 풍경은 도시 풍경으로 바뀌었어요.



2016년 5월 29일 오후 6시 32분. 기차가 드디어 도둑들의 도시 란저우 兰州 에 도착했어요.


"내려서 바람 좀 쐬야겠다."


하루종일 기차 안에만 있으려니 갑갑했어요. 내려서 잠깐이라도 바람을 쐬고 싶었어요.


"너 내릴래? 나는 내려서 바람이라도 쐬고 몸 좀 풀고 해야겠어."

"나도 내릴래."


친구도 따라서 내린다고 했어요. 친구도 내리면 우리가 탄 객실이 텅 비어버리기 때문에 둘 다 귀중품을 챙겨서 기차에서 내렸어요.


lanzhou


기차에서 내리니 여기 또한 간식을 파는 판매대가 있었어요.


回族


'저 사람이 회족인가?'


생긴 것은 한족인데 딱 보니 무슬림 같았어요.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인 회족은 이슬람을 믿는 한족이에요. 그래서 언어도 중국어를 사용해요. 이들은 '둥간족'이라고도 불러요. 중국에서 회족을 한족으로 같이 묶으려 했지만, 회족들의 반대가 심해서 아직까지 한족과 하나의 민족으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요. 중국이 중앙아시아의 둥간족들을 이용해 중앙아시아에서 한족의 세력을 넓혀보려 했지만, 둥간족 사람들이 우리가 왜 한족이냐며 반발해서 무위에 그친 일도 있구요.


판매대에서 팔고 있는 빵은 중앙아시아에서 흔히 먹는 빵인 난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사람들은 이 빵과 닭고기를 같이 사가고 있었어요. 라면 하나만으로는 식사가 될 것 같지 않아서 빵도 하나 구입해서 객실로 돌아왔어요.


객실로 돌아오자마자 빵을 한 입 먹어보았어요. 기름이 많다는 것 외에는 아무 특징이 없었어요. 진짜로 무언가를 싸서 먹는 빵이었어요. 아무 것도 넣지 않고 후라이팬에 기름 두르고 밀가루 반죽을 구우면 딱 이 맛이 날 것 같았어요. 맛이 있지도 없지도 않아서 그냥 계속 뜯어먹었어요. 맨밥을 퍼먹는 기분이었어요. 친구는 몇 입 먹다가 먹는 것을 관두었고, 저 혼자 계속 빵을 뜯어먹었어요.


란저우역


기차가 란저우역을 출발했어요. 갑자기 승무원이 돌아다니며 신분증과 표 검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여기 진짜 이미지 않 좋은가 보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표검사를 여기에서 하네."


대체 란저우가 얼마나 악명이 높으면 신분증 확인 및 표검사를 다시 하지? 친구도 신기해했어요. 란저우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친구가 말해주어서 알게 된 란저우 라면이 전부였어요. 그냥 라면이나 만들어 파는 도시라 생각했는데 한족들 사이에서 이 도시의 이미지는 가히 최악이었어요. 방송으로 소지품 조심하라고 하고, 사람들 모두 도둑 조심하라고 하고, 기차가 출발하니 다시 한 번 신분증과 표검사를 하고 있었어요. 기차가 그냥 많이 와서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혹시 도둑이 탔을까봐 검사하는 것이 틀림없었어요.


갑자기 같은 칸에 탄 한족 청년이 웃기 시작했어요. 친구가 왜 웃냐고 물어보더니 같이 웃기 시작했어요.


"저기 밖에 라면 대학도 있다! 무슨 라면 만드는 것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대학도 있냐?"


다행히 란저우에서 별 일 없었어요. 기차가 출발하자 아까 사과를 주셨던 아주머니께서는 이번에는 멜론을 잘라 객차 모든 승객들에게 돌리기 시작했어요.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거의 강권 수준으로 멜론을 나누어주셨어요. 멜론 역시 신장 지역에서 나온 멜론이라고 하셨어요. 맛은 우리나라 머스크 멜론과 거의 비슷한 맛이었어요. 그냥 시원하게 먹을 수 있었어요. 친구 말로는 한족들은 남이 무엇을 하든 신경 안쓴다고 했는데, 이 아주머니께서는 친구의 말과 정반대로 객차 모든 사람들의 일에 신경을 쓰고 계셨어요. 먹을 것 나누어주고, 핸드폰에 프로그램적인 문제 있는 사람이 있으면 데리고 다니며 물어물어 고칠 줄 아는 사람에게 데려가고, 계속 상대를 바꾸어가며 대화를 나누셨어요. 아주머니 덕분에 기차 안은 삭막하지 않았어요.



저녁 7시 반. 절단면이 붉은 산이 등장했어요.






산 사이로 마을이 나왔어요.



다시 산이 나왔어요.



그리고 다시 나온 마을.



"서부로 많이 오기는 했구나."


한나절 기차를 타고 서부로 들어온 것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모스크였어요. 아침에 처음 모스크를 보았을 때만 해도 중국에 모스크가 있다는 것 자체에 놀랐어요. 아침에만 해도 모스크 보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그러나 이제 마을이 나오면 모스크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이제는 모스크가 있어서 신기한 것이 아니라, 모스크가 흔하게 보여서 신기했어요. 그리고 모스크가 늘어난 차창 밖 풍경을 보며 서쪽으로 정말 많이 왔다는 것이 실감났어요.



다시 들판과 산이 나오고, 해는 저물어갔어요.


중국 만년설


멀리 만년설이 쌓인 산이 보였어요.


그리고 다시 나온 모스크.



저녁 8시 30분. 드디어 시닝역에 도착했어요.


西宁


이제 창밖이 어두워서 사진을 더 이상 찍을 수 없었어요. 슬슬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서 컵라면을 하나 끓여먹었어요.



시닝역을 지나서부터는 모스크가 상당히 많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제 정말로 중국 서쪽. 그러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까지는 아직도 한참 남았어요. 다시 한 번 잠을 푹 자고 일어나야 신장 위구르 자치구였고, 투루판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경계에서도 더 들어가야 했어요. 모스크 하나하나를 보며 일희일비하기에는 아직 너무나 먼 거리가 남아 있었어요.


중국인 청년 둘이 복도에 있는 탁자 아래에 있는 콘센트에 핸드폰 충전기를 연결하고는 담배를 태우러 갔어요. 그 사이 한족 아저씨 하나가 오더니 그것을 그냥 빼고 자기 핸드폰을 꽂으려 했어요.


'진짜 개념없네? 그냥 막 뽑으려고 해?'


"뿌! 뿌 커이!"


일단 안 된다고 소리쳤어요. 그리고 친구에게 저 아저씨 생각없이 우리랑 같은 객실 이용하는 청년이 꽂아놓은 핸드폰 충전기 막 빼버리고 자기 것 꽂으려 한다고 말하자 친구가 또 뭐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그 청년이 돌아와서 아저씨에게 뭐라고 말했어요. 대충 우리도 이제 꽂았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한족 아저씨는 기분이 상해서 일그러진 얼굴로 자기 객실로 돌아갔어요.


"저 아저씨 이상한 아저씨야. 한족 애들 원래 남의 것에 절대 손 안 대. 잘못 건드렸다가 도둑으로 몰릴 수도 있고, 재수없게 마약 있는 거 건드렸다가 망하는 수가 있거든."


친구는 저 아저씨가 특히 무개념한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침대칸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그다지 지루하지 않게 지나가고 있었어요. 풍경이 확확 변하니 풍경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그리고 눕고 싶을 때 언제든 누울 수 있고, 콘센트도 있어서 충전하고 싶을 때 충전할 수 있어서 매우 편했어요. 사람들이 담배를 정해진 곳에서만 피웠기 때문에 객실 공기가 그렇게 탁하지도 않았고, 승무원이 종종 화장실 청소를 했기 때문에 화장실도 그렇게 더럽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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