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37 태국 아유타야 왓 랏차 부라나, 왓 마하탓

좀좀이 2015. 12. 14.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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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릉 꽝!


불을 끄고 자리에 눕자 천둥과 번개가 치고 스콜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태국 와서 3일 연속으로 밤에는 스콜이 내리고 있었어요. 예전 어떤 글에서 읽은 바에 의하면 태국 우기에는 스콜이 자주 내리는데 주로 밤에 내리고, 스콜이 밤에 내려주어야 다음날이 그나마 선선하다고 했어요. 이게 맞는 말인지 틀린 말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스콜이 내리든 말든 상관없이 낮에 무지 더운 것은 사실이었어요. 하루에 샤워를 6번 했다는 것에서 얼마나 더운지 증명되었어요. 밖에서 돌아다니다 들어와서 샤워한 것이야 그렇다 치지만, 마지막에 샤워하고 에어컨 바람 쐬고 있는데도 더워서 다시 찬물로 샤워한 것은 얼마나 더운지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어요.


폭우처럼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다 아침 8시 즈음에 일어났어요.


드디어 아유타야를 자전거로 돌아다니며 구경하기로 한 6월 10일. 일단 아침을 먹기로 했어요. 아침은 전날 야시장에서 구입한 메뚜기 튀김과 망고스틴.


메뚜기 튀김과 망고스틴.


메뚜기 튀김과 망고스틴...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희안한 조합이었어요. 망고스틴은 나름 고급 과일. 메뚜기 튀김 주워먹다가 망고스틴 한 조각 입에 집어넣고, 또 메뚜기 튀김 주워먹다가 망고스틴 한 조각 집어넣기를 반복하고 있었어요. 이건 단순히 메뚜기가 어쨌든 벌레라서 이상한 조합이 아니었어요. 백번 양보해서 메뚜기 대신 이게 건새우나 멸치 볶음이라 쳐도 망고스틴과 같이 먹는 것은 매우 희안한 조합이었어요. 일단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야 하니 뭔가 먹기는 해야했고, 멀쩡한 음식을 버리기도 싫어서 열심히 먹기는 했지만 정말 이 조합은 어색하고 뭔가 잘못된 것 같았어요.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아침부터 기분 상당히 묘하게 만드는 음식 구성이었어요. 진짜 무슨 콜라에 밥 말아먹기, 씨리얼을 커피에 말아먹기 급과 맞먹는 부조화였어요.


뭔가 역겹다거나 그런 것은 없었어요. 전날 메뚜기 튀김에 성공적으로 적응했거든요. 전날보다 메뚜기가 보다 뚜렷하게 잘 보이기는 했지만 그건 괜찮았어요. 새우, 멸치도 확대해서 보면 메뚜기보다 잘 생겼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이게 망고스틴과 같이 먹으니 제 머리도, 제 뱃속도 이에 대해 어떤 감정적 반응을 보여야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머리도 이상하고 속도 이상한 상태로 짐을 꾸리고 샤워를 한 후 밖으로 나왔어요.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뜨거운 공기. 전날 밤 스콜이 내렸는데, 특별히 시원해졌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달구어진 후라이팬에 물 한 방울 떨어진 것 같달까요. 아니면 하지 근처이다보니 해가 너무 일찍 떠서 제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충분히 달구어진 것일까요. 전날 스콜이 무섭게 퍼부었고, 바닥에 물이 고여 있는 곳이 조금 있기는 한데 더운 것은 그대로였어요.


"여기에 짐 맡기고 자전거 빌릴 수 있죠?"

"예."


자전거 대여료는 50바트였어요. 선착장에서 빌리는 것보다 딱 10바트 더 비쌌어요. 10바트면 우리나라 돈으로 400원 조금 안 되는 액수. 400원 아끼자고 짐 들고 선착장까지 가서 자전거 빌리고 거기에 짐을 맡기는 것보다 차라리 400원 더 내고 숙소에 짐을 맡기고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어요. 400원 아끼자고 땡볕 아래에서 땀 뻘뻘 흘리며 선착장까지 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였거든요.


숙소에서 빌린 자전거는 한국에서 타던 자전거가 아니라 딱 쌀집 자전거였어요. 쌀집 자전거에 얇은 바퀴. 자전거를 많이 타본 것은 아니었지만, 자전거는 한 번 타기 시작하면 아무리 안 타도 금방 다시 타게 되는 기구. 자전거 위에 올라타 페달을 밟았어요. 습관적으로 자전거를 모는데 뭔가 느낌이 상당히 이상했어요. 그냥 느낌이 이상한 정도가 아니라 균형이 잘 잡히지 않았어요.


'하도 오랜만에 타서 그런가? 아니면 이렇게 얇은 바퀴로 된 자전거는 처음 타서 그런 건가?'


자전거를 타고 슬슬 페달을 밟는데 무언가 균형잡기 안 좋았고, 휘청휘청 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왠지 뭔가 미세하게 앞바퀴와 본체가 안 맞는 기분이 들었어요. 한국에서 자전거를 탔을 때처럼 자세를 잡으면 똑바로 가지 않고 미묘하게 이상한 방향으로 꺾인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거든요. 하지만 이게 정말 앞바퀴와 본체가 일자가 아니라 살짝 틀어져서 그러 것인지, 아니면 제가 오랜만에 타는 것인데다 이렇게 얇은 바퀴로 된 자전거는 처음 타는 것이라 그런 것인지는 애매했어요.


묘하게 힘이 들어가고 신경이 쓰이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아유타야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아유타야 지도


지도를 펼쳐들고 한 번 훑어보았어요. 가운데에 있는 것이 섬 하나로 보이지만, 이 섬은 운하로 딱 갈라져 있었어요. 섬 외부에 있는 주요 절은 전날 보트 투어를 하면서 보았기 때문에 오늘은 섬 내부에 있는 곳만 다 둘러보면 되었어요.


"설렁설렁 다녀도 이 정도 섬은 다 보겠지? 걸어다니는 것도 아니고 자전거 타고 다니는 것인데. 자전거로 돌아다니는 건 너무 쉬운 거 아니야?"


길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어요. 전날 대충 숙소 주변을 둘러보았기 때문에 첫 목적지까지 금방 갈 수 있었어요.


9시 17분. 첫 목적지인 왓 랏차 부라나 Wat Ratcha Burana 에 도착했어요.



왓 랏차 부라나는 1424년에 보롬마라차티라트 2세가 왕위 계승을 놓고 다투다 죽은 두 형을 위해 지은 절이에요.


'어제 밖에서 대충 보았는데 들어갈까?'


잠깐 고민이 되었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둘러보기로 했어요.


태국 절터


들어가자마자 여기가 절이 아니라 절터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어요.


wat ratcha burana in ayutthaya


여기도 역시나 머리가 제대로 붙어 있는 불상은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아무리 절터라지만 머리가 없는 불상을 보니 이곳이 버려진 유적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아유타야 유적


커다란 불상 머리는 눈이 훼손되어서 안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이거 진짜 황성옛터 노래에 딱 맞는 곳이구나!"





佛頭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들었어요. 만약 여기를 처음 왔다면 조금 더 나았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여기는 전날 밖에서 보고 오늘 안에 들어와서 보고 - 벌써 두 번째 보는 것이었어요. 안에서만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를 바랬는데 안에서 보는 것이나 밖에서 보는 것이나 그렇게 큰 차이는 없었어요. 여기가 아유타야의 대표적인 유적지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굳이 안에 들어가서 꼭 보아야하나 싶었어요. 여기에 언제 다시 올 지 모르기 때문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굳이 꼭 들어가서 볼 필요는 없었어요.


"뭐 벌써 이렇게 덥지?"


왓 랏차 부라나 관람을 마치니 9시 30분이 조금 넘었어요. 아직 해가 머리 꼭대기로 올라갈 때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벌써 엄청나게 더웠어요. 그냥 슬슬 걸어다니며 절터 하나 본 것 뿐이었는데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어요. 이게 땀인지 육수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계속 흘러내렸어요.


"모자를 벗을 수도 없고..."


워낙 날이 뜨겁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했기 때문에 모자는 반드시 써야 했어요. 모자를 써서 머리를 직사광선의 파상공세에서 지키는 것까지는 좋았어요. 모자를 똑바로 쓰기만 해도 일사병은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땀이 계속 나고 모자가 뜨겁게 달구어지다보니 머리 속이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기분이었어요. 모자를 벗고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더위를 먹을 것 같아서 벗을 수도 없었어요.


이제 다음에 갈 곳은 왓 마하탓 Wat Mahathat. 왓 랏차 부라나 바로 옆에 있었어요.


자전거를 타고 바로 옆 왓 마하탓으로 이동했어요.



"땀 좀 식혔다 가야겠다."


왓 마하탓에는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와 있었어요. 한국인 단체 관광객도 있었고, 태국인 학생 단체 무리도 있었어요. 왓 마하탓은 아유타야 유적들 가운데에서 손꼽히게 유명한 곳.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왓 랏차 부라나와는 매우 대조적이었어요.


입구에 자전거를 세우고 먼저 입구에 있는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았어요.


"와...여기 기념품 꽤 비싸구나!"


기념품 가격이 방콕보다 훨씬 비쌌어요. 특별히 좋아보이거나 예뻐보이는 것도 없는데 가격은 비쌌고, 상인들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어요.


"한국인이세요?"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한국어로 저를 불렀어요.


"예."

"어머, 반가워요!"


아주머니는 제가 한국인이라고 대답하자마자 매우 반가워하셨어요.


"한 달 넘게 아들 데리고 여행중인데 한국인을 별로 보지 못했어요. 한국어 들으니 너무 반갑네요."

"아드님과 여행중이세요? 대단하세요!"


6월달에 아들을 데리고 외국 배낭여행중인 아주머니가 참 대단해 보였어요. 6월은 학기중인 만큼 엄청난 결단 없이는 여행을 떠나기 쉽지 않은 달이거든요. 게다가 며칠 잠깐 다녀가는 것도 아니고 한 달 넘게 여행중이라니 그 아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어렸을 적 외국 여행 한 번 다녀오는 게 소원이었고, 현실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제주도를 벗어난 적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었거든요.


아주머니께 여행 잘 하시라고 인사드린 후, 물을 한 통 사서 마시며 기념품 상점 뒷쪽으로 갔어요.



"와...저기도 유적이 있네!"


넓은 호수. 그 호수 너머로 유적이 보였어요. 오늘 시간이 허락해준다면 이 섬에 있는 모든 유적을 다 둘러볼 생각이었어요. 아직 아침 10시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게 강행군을 하지 않아도 널널하게 다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걸어서 돌아다니는 것이라면 힘들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니까요. 아무리 자전거를 천천히 밟으며 돌아다닌다 해도 어쨌든 자전거는 걸어가는 것보다는 빠르니 이동에 많은 시간이 들 지 않을 것이었어요.


"여기에 있는 유적 모두 보고 가는 거 아니야?"


차가운 물을 마시며 중얼거렸어요.


땀이 어느 정도 식자 자리에서 일어나 왓 마하탓 내부로 들어갔어요.



"어? 저건 왓 랏차 부라나잖아!"


왓 랏차 부라나와 왓 마하탓은 사실상 붙어있다시피한 절이다보니 왓 마하탓에서 왓 랏차 부라나도 보였어요.



안으로 들어가자 멀리 커다란 멀쩡한 불상이 보였어요.


wat mahathat in ayutthaya


"여기는 멀쩡한 불상도 있구나!"


나는 왜 멀쩡한 불상을 보고 반가워하는가?


그 이유는 어제부터 목이 잘리고 파괴된 불상만 엄청나게 봐왔기 때문이었어요.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춘 불상을 전날부터 거의 보지 못하고 목 없는 불상만 무수히 많이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멀쩡한 모습을 갖춘 불상을 보자 너무나 반가웠어요. 하지만 이 불상이 아주 오래전부터 멀쩡했던 것이 아니라 나중에 복구된 불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매우 아쉬웠어요.


symbol of ayutthaya


"저거 그거 아니야?!"


태국 아유타야 상징


거대한 나무 뿌리에 감싸여진 석상의 머리는 바로 아유타야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바로 그것이었어요. 일설에 의하면 잘린 불상의 머리가 땅 속에 파뭍혀 있다가 나무가 자라나오면서 머리가 뿌리에 감싸여진 채 땅 위로 올라왔다고 해요. 이 역시 버마의 만행과 연관이 있지만, 워낙 신기한 모습 때문에 지금은 아유타야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었어요. 분명히 비극인데, 오히려 부처님의 힘을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 되었어요.


실제 이것을 보니 자연적으로 이런 모습이 생긴 것이 딱 티가 났어요. 누가 일부러 나무에 박아놓은 것이라면 절대 저 자연스러운 조화가 나올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 당연한 것이지만, 저 앞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어요.


"이제 슬슬 절을 둘러봐야겠다."






돌아다니는데 정말 거대한 절이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이 절에는 원래 가장 높은 승려가 머물렀다고 해요. 그러나 아유타야 왕조가 버마군의 침략으로 무너진 후, 이곳도 폐허가 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고 해요.




이곳 역시 파괴된 불상들이 가득했어요.



"여기는 복구 엄두도 못 내겠다."


복구가 된다면 정말 눈부신 절이 될 거에요. 그러나 규모가 어마어마했고, 멀쩡한 불상과 건물이 실상 없었어요. 이것을 복구시킨다는 것 자체가 정말 무리 같았어요. 게다가 이 거대한 절이 파괴되어 있으니 거기에서 풍겨져 나오는 오묘한 느낌이 존재했어요. 복구한다면 그것대로 엄청난 절이 재창조되겠지만, 지금 이대로 잘 보존되는 것도 꼭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절터 안을 계속 돌아다녔어요.








"어? 사람 얼굴이다!"



저건 누가 일부러 사람 얼굴을 만들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파괴되고 풍화되고 하다 보니 나온 모습. 그런데 딱 봐도 사람 얼굴이었어요. 누가 일부러 작정하고 만든 듯한 모습이었어요.




상당히 넓은 왓 마하탓을 전부 천천히 잘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어요.


อยุธยา


저 나무 뿌리와 하나가 된 부처님 머리는 자기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렇게라도 사람들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을까? 아니면 저렇게 즐거워하는 모습도 덧없는 모습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나무 뿌리와 하나가 된 부처님 머리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사람들을 옆에서 바라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음표 하나가 머리 속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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