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 근무중일 때였어요.
체크인 업무를 처음으로 하기 시작한 날이었어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오전에 방청소를 하고 있는데 손님이 찾아왔어요. 딱 봐도 동남아시아인.
"여권과 예약 서류 보여주세요."
배운 대로 여권과 예약 서류를 보여달라고 했어요. 가뜩이나 처음 체크인 받아보는 것이라 긴장한 상태였는데, 예약 서류를 받자 더욱 긴장되었어요. 그 손님은 부킹닷컴으로 예약하고 온 손님이었어요.
손님들이 예약하는 방법은 거의 대부분 아고다, 익스피디아, 부킹닷컴을 통해서에요. 이 중 아고다, 익스피디아는 미리 결제를 하고 오기 때문에 진짜 아무나 쉽게 받을 수 있어요. 그냥 방만 안내해주면 끝. 반면 부킹닷컴은 현장결제이기 때문에 초보가 받기는 어려운 편이에요. 이게 현장결제라는 점을 악용하려고 드는 나쁜 놈들이 꼭 있거든요. 숙박업에 종사하다보면 부킹닷컴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지만, 부킹닷컴이 참 양아치라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자기들은 천사이고 여행자들 편인척 하면서 온갖 분쟁을 여행자와 숙박업 종사자끼리 싸우게 만들거든요. 예약자 및 투숙객과 숙박업자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아고다와 익스피디아는 중재 역할을 해줘요. 아고다나 익스피디아에 전화를 해서 예약자 및 투숙객은 자신의 입장을, 숙박업자는 자신의 입장을 아고다, 익스피디아에 전달한 후, 아고다, 익스피디아가 적당히 중재해주는 식이에요. 중재도 어느 한 편에 치우치기보다는 손님을 배려하기는 하나 원칙대로 하는 게 우선이라는 식이에요.
반면, 부킹닷컴은 이렇게 문제가 생겼을 때, 둘이 알아서 처리하든 말든 알 바 아니고 수수료는 무조건 받아갈 거라고 버려버려요. 겉으로는 고객을 좀 배려해주라고 말하는데, 숙소측에서 '그럼 수수료는? 환불해주면 수수료 제해줄 것임?' 이라고 따지면 바로 '알아서 하세요' 해버려요. 고객의 단순변심에 의한 영업방해 피해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피해이지만, 수수료는 진짜로 실존하는 비용이에요.
그래서 처음에는 아고다, 익스피디아 예약 손님들을 받고 조금 적응되면 부킹닷컴 예약 손님을 받는 게 좋은데, 대충 설명만 듣고 처음 받는 손님이 부킹닷컴. 게다가 현금결제였어요.
그래도 태국 여권을 보고 합장을 하며 '싸왓디크랍' 인사를 하자 예쁘게 생긴 태국 여자 손님이 살짝 웃었어요. 그리고 다행히 별 문제 없이 첫 체크인 업무를 잘 끝마칠 수 있었어요.
이날부터 일하러 나가보면 아침 늦게 그 태국 여자 손님이 식당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있었어요. 제가 '싸왓디크랍' 하고 인사하면 수줍게 받아주었어요.
며칠간 그렇게 인사만 하다가 매일 아침 라면을 끓여먹고 있길래 하루는 '싸왓디크랍'만 하는 것도 그래서 말을 걸어보았어요.
"너 라면 좋아해?"
"응."
"그거 태국 라면이야?"
"응."
그리고 대화 끝.
나중에 걔가 체크아웃할 때 태국 라면 하나를 제게 주고 갔어요. 역시 인사를 똑바로 하면 없던 국물이라도 생겨요.
저 글자체는 아직도 못 읽겠어요. 하단 오른쪽은 왠지 라오어 문자 같이 생겼지만, 저것 역시 태국어에요. 저 봉지 하나에 태국어 문자 글자체 3개가 들어 있는데, 저는 아직 정자체 읽기도 힘들어서 뭔지 전혀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국물이 거무튀튀하다는 것.
"이거 무슨 짜장라면이야?"
국물만 보면 왠지 짜장라면. 하지만 당연히 짜장라면일 리 없었어요. 태국 봉지 라면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게 맛있을지 맛없을지조차 감을 잡을 수 없었어요.
크기는 매우 작았어요. 제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였어요.
뭔가 가득 적혀 있는데 역시나 알아볼 수가 없었어요. 이건 그냥 처음 가보는 여행지로 갈 때의 그 막막함 같은 막막함이 느껴지는 봉지였어요.
태국 라면 조리법은 이렇대요. 다행히 숫자와 그림을 보니 대충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어요. 저 숫자를 태국 숫자로 적어놓았다면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대충 만들어 먹었을 거에요.
오른쪽은 가루 스프, 왼쪽은 고체처럼 굳어버린 기름 스프.
뭔지 아무 것도 모르니 일단 전부 부어넣고 전자렌지로 끓이는 방식으로 끓이기로 했어요. 물 300cc를 넣으라는데 뜨거운 물을 대충 머그컵 1.5컵 붓고 전자렌지로 4분 30초 돌렸어요.
"냄새는 그럴싸한데?"
태국 음식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향신료 향기가 적당히 났어요. 태국에서 먹었던 태국 음식들에서 나는 향기에 비하면 향기가 세수하고 지나간 물 수준의 옅은 냄새였지만, 오히려 그 향기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적당한 향기였어요.
먼저 국물.
"이거 맛있다! 이거 우리나라에서 파는 곳 없나?"
쥐똥고추가 주는 톡 쏘는 매운 맛. 그리고 가볍게 느껴지는 태국의 향기. 후아람퐁역 근처에서 먹었던 음식들보다 이 라면이 훨씬 맛있었어요. 태국 라면 답게 시큼한 맛도 살짝 났어요. 태국음식의 긍정적인 한국화라고 해야 할까요? 이건 분명 태국에서 만든 태국 라면인데 왠지 한국 수출용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딱 태국 음식의 풍미를 부담없이 체험해볼 수 있는 일종의 체험수업 같은 맛이었어요.
면은 납작한 면발이라 칼국수 라면 먹는 기분이었어요.
이것을 대체 어디에서 구입할 수 있을까요? 이거라면 쟁여놓고 간식으로 먹고 싶은데요.
이 라면의 단점이라면 오직 딱 하나 뿐이었어요. 양이 너무 적어서 한 개로는 간식거리조차 안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