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14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보로부두르 사원

좀좀이 2015. 7. 26. 08:15
728x90

샤워!


방에 들어오자마자 에어컨을 켜고 옷을 벗기 시작했어요. 땀에 절은 옷은 쉽게 벗겨지지 않았어요. 가뜩이나 땀이 줄줄 나는데 잘 벗겨지지 않는 옷을 벗느라 땀이 더욱 쏟아졌어요. 옷을 찢어버리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그러나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옷을 몸에서 잡아뜯어내듯 벗었어요. 옷을 바닥에 내팽겨치고 침대 위에 놓여진 새로 제공된 수건을 집어들고 화장실로 들어갔어요.


"아, 시원해!"


샤워기로 찬물을 몸에 뿌리자 너무 행복했어요.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은 햇볕에 데워졌는지 미지근했어요. 그래도 좋았어요. 미지근한 물은 체온보다 낮았기 때문에 시원하다고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끈적거리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구요. 머리에 물을 끼얹지니 태양에 달구어진 머리가 빠르게 식는 기분이었어요. 샤워기로 몸에 물을 끼얹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매우 좋아졌어요.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시원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앉아주었어요. 체력이 급격한 속도로 다시 충전되는 기분이었어요.


"저 옷을 또 입어야하다니..."


이따 저녁에 빨래를 맡길 계획이었기 때문에 땀에 절어 있는 옷을 다시 입고 보로부두르 사원을 가야 했어요. 옷을 보자마자 한숨이 나왔어요. 그냥 민소매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밖으로 나가고 싶었어요. 동남아 여행하는 사람들의 흔한 복장처럼요. 하지만 두 가지 이유로 그렇게 입고 돌아다니는 것보다 그냥 저 땀에 절은 옷을 다시 주워 입고 나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첫 번째 이유는 동남아시아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들었던 것대로 현지인들 중 지식이든 돈이든 간에 있는 사람들은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 두 번째 이유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였는데, 바로 모기 때문이었어요. 당장 외곽 지역으로 나가야 하는데, 거기는 분명히 모기가 바글바글댈 터, 모기를 막기 위해서는 조금 덥더라도 긴 바지를 입는 것이 나았어요.


방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카메라에 저장된 사진을 컴퓨터로 옮겼고, 여행 기록을 기록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어느덧 1시 반이 되었고, 보로부두르 투어에 참가하기 위해 숙소 로비로 나갔어요.



숙소 앞에는 승합차 한 대가 서 있었어요. 승합차에 올라타자 승합차가 바로 출발했어요.






승합차는 감비르역 뒤편으로 갔어요.



여기에서 다른 손님들을 기다렸다가 태우고 드디어 보로부두르 사원으로 출발했어요.





차는 도시를 벗어났어요.




한참 직진으로 가다가 방향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어요.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석탑 하나가 나왔어요.



"저것이 믄둣 사원이에요."



믄둣 사원 mendut temple 에서는 차를 세우지 않고 서행으로 달렸어요. 차 안에서 믄둣 사원을 보고 나서 길을 계속 갔어요.


오후 3시 20분. 드디어 보로부두르 사원에 도착했어요.


"교통비는 10만 루피아이고, 입장료는 25만 루피아에요. 모두 35만 루피아 내세요."


기사가 투어 비용을 내라고 했어요. 입장 티켓을 이미 구입한 사람은 10만 루피아만 내었고, 저를 비롯해 입장 티켓을 아직 구입하지 않은 사람은 35만 루피아를 내었어요.


"람부탄 22 카페 앞으로 5시 반까지 오세요."


기사가 입구까지 데려간 후, 표를 건네주었어요. 표는 전화카드처럼 생겼어요.


"오! 여기는 입장료가 비싸서 표도 제대로 만들어서 주는구나! 이거 기념으로 가져야지."


꿈도 야무지세요.


지하철 개찰구 같은 곳에 표를 집어넣고 통과해야 했는데, 이 표를 집어넣자 그것으로 끝이었어요. 그 플라스틱 표는 제 손으로 들어오지 않았어요. 전화카드처럼 생긴 표를 기념으로 갖기 위해서는 입장료 25만 루피아를 내고 보로부두르 사원에 들어가지 않는 방법 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25만 루피아는 우리나라 돈으로 얼추 2만 5천원. 25000원 내고 그 전화카드처럼 생긴 표를 가져오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가이드 고용하실래요?"

"얼마에요?"

"1시간이고 10만 루피아요."


외국인들과 같이 있는데 기사가 가이드를 고용하겠냐고 물어보았어요. 가이드의 언어는 당연히 영어. 그래서 저는 안 하겠다고 했어요. 영어로 설명 듣느니 그냥 제가 혼자 보는 게 나았어요. 제가 그렇게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어차피 가이드 있어봐야 절반 미만으로 알아들을 것 같고, 대한민국은 불교 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대충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돈을 내고 가이드를 고용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어요. 그러나 서양인들은 가이드를 고용하겠다고 해서 10만 루피아를 추가로 더 지불했어요.




드디어 보로부두르 보러 간다!



족자카르타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을 보러 간다니 마구 떨렸어요. 그렇게 많이 듣고, 그렇게 사진으로 많이 보던 것을 이제 드디어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줄지어 위로 올라가고 있었어요.



여기는 당연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 사일렌드라 왕조가 대승불교를 받아들인 후 835년에 지은 사원으로, 12세기에 버려진 후 잊혀져 있다가 1814년 네덜란드에 의해 화산재 속에서 발굴되었다고 해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표지판을 뒤로 하고 보로부두르 사원으로 걸어갔어요.



"헉!"


사진 속으로 보던 보로부두르 사원이 실제로 이렇게 클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하고 있었어요. 위 사진은 말 그대로 보로부두르 사원을 카메라에 우겨넣어서 찍은 사진이에요. 어떻게 해도 카메라에 제대로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컸어요. 사진 앞면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별로 안 커 보이지만, 실제로 보았을 때 정말 거대했어요. 이 정도 큰 건물이 화산재 속에 파묻혀 있었다니, 므라삐 화산이 얼마나 크게 폭발했다는 거지? 이것을 화산재로 덮어버릴 정도라면 요그야카르타가 남아나지 않았을 텐데요. 물론 한 번에 화산재에 파묻혀버렸을 리는 없겠지만요.



인도네시아인들도 이곳으로 많이 오고 있었어요.



왠지 학생들이 현장학습이나 수학여행으로 온 것 같았어요.



계단을 올라갔어요.



옹박에게 뼈가 부러질 때까지 맞아야할 놈들!


borobudur temple


첫 감상은 감탄이기는 했는데 매우 부정적인 감탄이었어요. 불상이 매우 많았는데, 그 중 머리가 달려 있는 불상은 거의 없었어요. 대부분이 머리가 잘려나간 불상이었어요. 여기에 있는 불상들의 목이 없는 이유는 네덜란드가 불상의 목을 떼어갔기 때문이에요. 문화재를 반출하고 싶으면 아예 불상을 통째로 떼어가든가. 불상을 통째로 떼어가면 비극이기는 해도 나중에 반환받아 복구할 경우 깔끔하게 가져다놓을 수 있겠지요. 무슨 불상들이 옛날 패잔병도 아니구요. 옛날 이야기에서 패잔병들 모조리 참수해서 목을 자랑스럽게 들고 갔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놓은 것처럼 보였어요. 목만 없는 불상들을 보니 네덜란드가 얼마나 악랄하게 이곳에서 약탈을 해갔는지 너무나 잘 보였어요.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그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한 분위기였어요. 당장 불상 목 환수 운동도 일으키고, 보로부두르 사원 입구에 '네덜란드 식민 통치의 만행'이라는 팻말을 세워서 방문자들 모두에게 보도록 만들 것 같은데, 그런 것은 전혀 없었어요. 이 나라가 이슬람 국가이고, 이 사원은 불교 유적이라 그런 건가? 아시아를 여행하며 유럽이 얼마나 아시아인들에게 못 되게 굴었는지 볼 수록 서양에 대한 호감이 뚝뚝 떨어져나갔어요. 우리나라가 서양의 지배를 받지 않은 데다 한국전쟁 이후 서양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기 때문에 그렇지, 우리나라가 서양 국가에게 식민 지배를 받았다면 장담컨데 아마 지금도 서양에 이를 박박 갈고 있었을 거에요.





엄청나게 많은 불상 머리가 잘려나갔지만, 그래도 굉장한 사원이었어요. 벽마다 촘촘하게 부조가 새겨져 있었어요. 너무 촘촘히 부조가 새겨져 있어서 오히려 비어 있는 공간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어요. 부조가 없어도 굉장한 사원인데, 부조까지 있으니 이것은 진짜 인간이 만든 것이 맞나 싶을 정도였어요. 불상이 많고 탑이 많으면 천불천탑이라고 하는데, 여기는 진짜로 천불천탑이었어요. 그 천불천탑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건물 안에 빼곡히 들어차 있었어요.







보로부두르 사원의 1층은 부처님의 생애를 표현하고 있고, 2층부터는 화엄경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고 해요. 1층을 다 둘러본 후 시간이 빠듯해서 바로 위로 올라갔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