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11 인도네시아 기차로 자카르타에서 족자카르타

좀좀이 2015. 7. 16.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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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일 새벽 5시 30분. 눈을 떴어요. 남반구에서 처음 맞이하는 아침. 창문을 여니 시원한 아침 공기를 느낄 수 있었어요. 전날 오후에 느꼈던 그 더위가 단순히 꿈 속에서 느꼈던 더위라 생각될 정도였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느꼈던 건조기후 한여름의 일교차보다 일교차를 더욱 확실한 것 같았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느꼈던 한여름의 일교차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더위와 살 만한 더위. 하지만 여기는 엄청난 더위와 선선한 아침.


"적도 근처는 연교차보다 일교차가 크다는 특징이 있다."


중학생들에게 가르치던 내용이 몸으로 느껴지고 있었어요. 지금껏 매해 중학생들에게 저위도 지역의 기후를 가르쳐왔지만 실제 저위도 지역을 와본 것은 이번이 처음. 연교차보다 일교차가 크다느니, 스콜이 내린다느니, 열대 우림이 발달하고 토양은 붉은 빛 라테라이트라고 하는 저위도 지역의 특징은 저도 그저 책으로만 보고 아는 것일 뿐이었어요. 그렇게 책으로만 보고 아는 것을 직접 하나씩 겪는다는 것 자체가 매우 신기했어요.


'설마 물도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빠져 내려갈까?'


과학 시간때 외웠던 '물이 빠져 내려갈 때 북반구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고 남반구는 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는 것을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이것은 코리올리 효과라고 해요. 사실 열대 기후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기는 했지만, 남반구에 와 있다는 것은 그렇게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무언가 지금 내가 남반구에 있다는 것을 지도상 위치가 아니라 어떤 현상으로 확인을 해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물이 빠질 때 생기는 소용돌이의 회전 방향을 확인할 방법이 마땅히 없었어요. 참고로 물이 빠질 때 생기는 소용돌이를 통해 코리올리 효과를 관찰하는 것은 생각만큼 단순한 일이 아니에요. 코리올리 힘보다 그 외의 변수들이 물이 빠져나갈 때 생기는 소용돌이의 회전 방향을 더 크게 결정해요. 게다가 물이 빠져나가는 양과 물이 고여 있는 양의 비율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양이 너무 크면 제대로 볼 수도 없어요. 물이 빌빌빌 빠져나가며 자연스럽게 소용돌이가 생겨야 볼 수 있는 현상이니까요.


짐을 꾸리고 호텔 1층으로 내려갔어요. 이른 시각이었지만 조식 부페를 먹을 수 있었어요. 아침 메뉴에는 미 고렝이 있었어요. 맛은 괜찮은 편이었어요. 메추리알 꼬치도 있었어요. 이것 역시 먹을 만 했어요. 메추리알 꼬치를 보자 우즈베키스탄 있었을 때 우즈베크인들은 몸에 열이 많아서 메추리알을 많이 못 먹는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떠올랐어요. 그러나 저는 우즈베크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10알이 넘는 메추리알을 먹었어요. 인도네시아답게 삼발 소스도 있었어요. 삼발 소스는 우리나라에서 먹었던 삼발 소스와는 맛이 달랐어요. 우리나라에서 먹었던 삼발 소스는 고추장에 살짝 가까운 맛이었는데, 여기에서 먹은 삼발 소스는 그냥 매운 맛이었어요.


"이제 또 걸어가야지."


노트북 가방을 대각선으로 걸쳐메고, 캐리어 손잡이를 꽉 잡았어요. 어제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걸어가야 했어요. 아직 많이 덥지는 않았어요. 그게 그나마 위안거리였어요. 감비르역까지 걸어가면 어짜피 땀은 나게 되어 있었어요. 제가 탈 기차는 아침 8시 50분 감비르역 출발 예정이었어요. 표 가격은 35만 루피아. 도착 예정 시각은 16시 32분이라고 적혀 있기는 했지만 그 시각에 도착할 거라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므르데까 광장 문 열었다!"



아침 7시 55분. 므르데까 광장 입구에 도착했는데 문이 열려 있었어요. 전날은 문이 잠겨 있어서 므르데까 광장 외곽으로 뱅 돌아가야 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돌아갈 필요가 없었어요. 문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원래 계획했던대로 광장을 통과해서 감비르역으로 갈 수 있었어요. 이렇게 광장을 통해서 감비르역으로 가면 걸어가는 거리가 줄어들고, 걸어가는 거리가 줄어들면 땀이 덜 나서 옷도 덜 젖게 되요. 망설임 없이 광장 안으로 들어갔어요.



이른 아침인데도 광장에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모나스를 광각 컨버터를 이용해 억지로 사진에 우겨넣으려고 하자 사진에서 왜곡이 크게 일어났어요.



"쟤네들 학교 안 가?"


광장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놀고 있었어요. 오늘은 월요일. 아침 8시면 학교에 가야할 시간. 애들이 공원 어디에서 누워 있다면 그건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냥 '여기는 빈부격차가 심해서 학교에 못 가는 학생들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되는 일. 하지만 지금 눈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노는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있었어요. 새벽반인가? 새벽반이 끝나고 여기에서 자전거 타고 놀려면 수업을 새벽 4시에는 해야 할텐데?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 오후반? 오후반이라면 조금 가능성이 있기는 했어요. 그렇지만 왠지 오후반 학생들은 아닐 것 같았어요.



광장에서는 연을 파는 상인도 있었고, 여러 사람들이 연을 날리며 놀고 있었어요. 상인이 팔고, 사람들이 날리고 있는 연을 보니 우리나라 가오리연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광장에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았어요. '대체 이 사람들은 이 시각에 회사 가지 않고, 학교 가지 않고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았어요. 이 시각에 이렇게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지금 이 상황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일 거구요. 우리나라에서 아침에 이렇게 사람들이 공원이나 강가에 많이 있는 것은 본 적이 없었어요. 제가 상상하던 '남국의 아침'과 어울리는 장면이기는 했지만 8시가 훌쩍 넘었음에도 이렇게 사람들이 광장에 많이 나와 있다는 것은 신기한 장면이었어요.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이 사람들은 이 기온에 적응되었는지 땀을 별로 흘리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어요. 저는 이때 이미 땀이 또 줄줄 흐르고 있었어요.



광장에서 감비르역으로 이어지는 통로에는 이렇게 거대한 인형이 서 있었어요. 이 인형들의 이름은 ondel-ondel 이에요. 이 인형은 원래 자카르타의 전통 인형으로, 크기는 대략 2.5m 에서 80cm 정도 더 크거나 작게 만든다고 해요. 온델 온델의 몸통은 대나무를 짜서 만들고, 얼굴은 나무를 깎아서 만들며, 머리카락은 길게 짲은 야자잎을 이용해 만들어요. 전통적인 방식에서 남자는 얼굴이 빨갛고, 여자는 얼굴이 하얘요. 이 사진 속 온델 온델은 둘 다 얼굴이 하얘요. 둘 다 여자 온델 온델이지요. 원래는 재앙이나 악령으로부터 보호해달라는 의미로 만들던 것이었는데, 요즘은 축제때나 높은 손님이 왔을 때 만들어 전시한다고 해요.


감비르역에 도착하자 경찰에게 표를 들고 다가갔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 기차 어디에서 타요?"


경찰은 표를 보더니 당일표 구입 창구 옆 게이트로 들어가면 된다고 알려주었어요.


경찰이 알려준 대로 전날 갔었던 당일표 구입 창구로 갔어요. 옆에는 개찰구가 있었고, 직원이 표와 신분증을 검사하고 있었어요. 기차표와 여권을 건네주자 대충 쓱 보더니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어요.


"어디로 가나요?"

"3번 플랫폼."


개찰구를 통과한 후,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갔어요. 3번 플랫폼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건물 내 길 안내 표지가 잘 되어 있어서 그것만 따라가면 되었어요.



직원들에게 표를 보여주며 물어가며 제가 타야하는 차량을 찾아갔어요. 제가 탈 차량 앞에 도착하니 8시 35분. 기차에 타기 전, 캐리어를 열고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에 슬리퍼로 갈아신었어요.


"인도네시아 사람들 친절하구나."


전날 기차표 구입하는 과정에서 한 시간 넘게 시간을 날리고 므르데까 광장이 문을 닫아서 쓸 데 없이 광장을 뱅 돌아가야 해서 자카르타에 대한 인상이 별로 안 좋았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확실히 친절했어요. 호텔 직원들도 친절했고,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기차역 직원들 모두 친절했어요. 인도네시아에 대한 인상은 이렇게 사람들로 인해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어요.



"자리 완전 넓어!"


기차 좌석은 매우 넓었어요. 우리나라 고속버스보다 살짝 좁은 정도였어요. 의자를 뒤로 젖히면 거의 눕다시피 할 수 있을 정도였어요. 게다가 좌석이 넓다보니 의자를 뒤로 쫙 젖혀도 뒷사람에게 크게 불편을 주지 않았어요.


8시 55분. 기차가 출발했어요. 8시 50분 출발 예정이었는데 조금 늦게 출발했어요. 이 정도면 정시 출발했다고 봐도 무방한 정도였어요. 기차에서 에어컨 바람이 나오고 있었는데, 들었던 것처럼 춥다고 느낄 정도로 강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지는 않았어요. 그냥 '덥지 않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약하게 바람이 나오고 있었어요. 기차 앞에는 TV가 매달려 있었고, 여기에서 영화와 음악이 나오고 있었어요. 인도네시아 뮤직 비디오를 틀어주는데 괜찮은 노래가 몇 개 있었어요.


'노래 계속 틀어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잠시 후. 영상은 나오는데 소리가 묵음이 되어 버렸어요. 역에 정차했다가 출발할 때 잠시 소리가 나오고, 그렇게 소리가 나오다 조금 지나가면 또 묵음이 되어 버렸어요. 이 현상은 기차가 족자카르타 도착할 때까지 계속 반복되었어요.


인도네시아어 교재를 펼치고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별로 열심히, 많이 공부하지도 않은 인도네시아어였는데, 그나마도 잊어버린 것이 워낙 많아서 맨 처음부터 다시 보아야 했어요.


"와, 이거 추억이 떠오르네!"


예전 인도네시아어를 배울 때 추억을 떠올려준 단어가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mata 와 mata-mata. 인도네시아어에서 명사를 복수로 만드는 방법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같은 단어를 두 번 쓰는 거에요. 예를 들면 '사람' 이라는 뜻을 가진 단엉인 orang 을 두 번 써서 orang-orang 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되요. 하지만 같은 단어를 두 번 썼을 경우 뜻이 아예 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바로 mata 와 mata-mata에요. mata 는 인도네시아어로 '눈', mata-mata 는 인도네시아어로 '간첩'이에요. 이것을 배울 때 간첩은 눈을 자꾸 돌려대며 곁눈질해야 하니까 mata 를 두 번 써서 mata-mata 가 간첩이 된 것 아닌가 혼자 추측해본 적이 있어요. 이와 달리 단어를 두 번 중복해서 쓴 형태만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단어가 바로 '나비'를 의미하는 kupu-kupu.




창밖에는 논이 펼쳐져 있었어요.



"여기는 지금 모내기 하는구나!"



인도네시아는 이때 모내기를 하고 있었어요. 우리나라 기준에서 보면 늦게 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되요. 우리나라는 1모작 하는 나라이고, 인도네시아는 3모작하는 나라. 기후가 아예 다르고 1년에 벼농사 짓는 횟수도 아예 달라요. 이쪽은 불면 날아간다는 '인디카' 계열의 쌀. 그런데 모내기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해 보였어요.


"물소다!"


창밖으로 물소가 보였어요.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창밖으로 대었지만 기차 속도는 제가 물소 사진을 찍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았어요.


"물소는 꼭 찍어야 하는데..."


물소는 볼 때마다 신기했어요. 볼 때마다 동남아시아스러운 것이라고 느꼈어요. 그런데 지난 번 베트남 여행 중에도, 그리고 이 순간 기차에서도 물소를 보기는 하는데 사진을 찍을 수 없었어요. 이상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이동 수단을 타고 있을 때에만 물소가 등장했어요. 물소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이미 지나가 있고, 멀리 있는 물소는 사진 찍고 나서 보면 점으로 보여서 찍어도 소용이 없었어요.


기차가 어떤 역에 도착했어요.



"나가서 바람 좀 쐬고 들어와야지."




정차 시간이 나름 길었기 때문에 잠깐 밖에 나갈 수 있었어요. 기차 안에서 가만히 앉아있자니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불편해서 밖으로 나갔어요.


"앗, 뜨거!"


기차 안에서 에어컨 바람이 나오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강하게 나오고 있지는 않았어요. 더위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조금 덥다고 느껴질 정도였어요. 그래서 밖에 나가면 별로 안 더울 거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것은 완벽한 오판이었어요. 밖으로 나가자마자 더위가 확 몰아쳤어요. 게다가 날이 너무 좋아서 머리 위로는 햇볕이 폭우처럼 쏟아지고 있었어요. 나가자마자 땀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았어요.


더운 바람을 쐬고 기차 안으로 돌아오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어요. 기차는 다시 출발했고, TV에서 출발할 때 보았던 뮤직비디오가 또 나오기 시작했어요.



창밖으로 모스크가 보였어요.



이것 역시 모스크. 미나렛을 보았을 때 전에 본 것이 훨씬 중요한 모스크 같았어요.


그리고 펼쳐지는 대자연.







기차에서는 가끔씩 직원들이 음식과 커피, 차를 주문할지 물어보러 다녔어요. 인도네시아 기차는 먹을 것을 파는 수레를 끌고 다니며 그 자리에서 판매하는 게 아니라 먹을 것을 주문할지 물어보는 직원에게 주문을 하면 직원들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그때 돈을 내는 식이었어요. 기차를 계속 타고 가니 커피 한 잔이 마시고 싶었어요. 커피 한 잔은 6천에서 7천 루피아. 카푸치노를 시키자 굿데이 커피를 타서 가져다 주었어요. 옆 좌석 사람들은 컵라면을 시켜서 먹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컵라면을 시켜먹을 때마다 기차 객실 안에는 라면 냄새가 퍼졌고, 그때마다 출출해졌어요.





동남아시아 최대 무슬림 국가 답게 기차역에도 모스크가 있었어요.



전날 가게에서 구입한 Bintang 무알콜 맥주를 꺼내서 마셨어요.



"이건 뭐지?"


이건 그냥 Bintang 음료수라고 해야 할 맛이었어요. 맥주맛과는 상당히 다른 맛이었어요. 참고로 이것은 술이 아니기 때문에 마셔도 별 문제 없어요. 그리고 인도네시아 아무 편의점에서나 다 팔구요.



이제 기차에 빈 좌석이 많이 생겼어요.




자는 것도 지겨웠고, 앉아 있는 것도 지겨웠어요.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하면 되긴 하는데, 기차에 앉아 있으니 책이 눈으로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어요.


"기차나 돌아다녀볼까."


창밖을 보는 것도 이제 재미가 없어졌어요. 제가 앉아 있는 쪽으로 풍경이 쫙 펼쳐져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제가 앉아 있는 쪽 바로 옆으로 경사진 땅과 수풀이 있었어요. 빠르게 달리는 기차 안에서 보니 이 풍경들은 곧 그게 그거처럼 보였어요. 그냥 수풀이 우거진 절벽에 불과했어요. 게다가 너무 가까워서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어요. TV에서 뮤직비디오라도 나오면 그거라도 멍하니 보고 들을텐데 이상한 중국 영화가 나오고 있었어요. 그나마 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었구요.


기차 앞칸을 향해 계속 걸어갔어요.



"식당칸이다!"



이것이 식당칸에서 파는 것들.



나시 고렝과 같은 도시락류는 3만 루피아 정도였고, 음료는 대체로 5000에서 1만 루피아 사이였어요.


식당칸에서 커피 한 잔을 또 사서 자리로 돌아갔어요. 컵이 흐물흐물한 하얀 플라스틱 컵인데 물을 많이 부어주어서 돌아오는 동안 흘리는 것 신경쓰고, 손가락이 너무 뜨거워서 혼났어요. 자리에 앉았을 때 커피 한 잔을 즐긴다는 기쁨보다 이 뜨거운 컵에서 해방되었다는 기쁨이 더욱 컸어요. 커피를 홀짝이며 창밖을 바라보았어요. 아직 도착 예정시각까지 2시간 조금 안 되게 남아 있었어요. 그렇지만 이 기차가 딱 정시에 도착할 리가 없겠지? 아직까지 크게 연착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어요. 동남아시아에서 기차 연착한다는 말을 워낙 흔히 접할 수 있는 말이었거든요.




드디어 요그야카르타 투구역 바로 전 역에 도착했어요. 이 역에서 사람들이 조금 내렸어요.


'연착이나 하지 말아라.'



오후 4시 40분. 기차역이 등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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