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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반. 알람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어제 몇 시에 잤지?"


전날 어떻게 잠자리에 누웠는지는 기억이 났지만, 언제 잠자리에 누웠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침대 위에 양반 다리로 앉아서 노트북에 여행 기록을 정리해 올리다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어요. 잠깐 눈을 감으면 5분. 여행 기록 또 정신차리고 정리하다 잠깐 눈을 감으면 10분. 이것을 반복하다가 어떻게 대충 여행 기록을 다 정리하고 노트북을 끄고 침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어요. 이렇게 동작들은 기억이 나는데 언제 잤는지는 도저히 기억나지가 않았어요. 4시 반에 눈을 뜨기는 했지만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그냥 몽롱하고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일어나기는 해야 하는데 눈이 떠지지 않고 정신도 돌아오지 않아서 자리에서 뒤척이기만 했어요. 그러다 겨우 일어나니 새벽 5시였어요.


샤워를 하고 짐을 꾸렸어요. 하룻밤 머무는 곳이라 짐을 많이 풀어헤치지 않고 잘 때 갈아입을 옷 한 벌과 세면도구만 꺼내놓았기 때문에 후다닥 짐을 꾸릴 수 있었어요. 비행기를 또 타야 했기 때문에 세면도구를 캐리어에 집어넣었고, 전날 입은 옷을 다시 입고 잘 때 입었던 옷을 접어서 캐리어에 넣은 후 캐리어를 잠그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걸이 지갑에 돈, 여권 그리고 체크카드가 잘 들어있는지 확인한 후 목에 걸고, 셔츠 단추를 다시 잠그었어요.


똑똑똑


"예."

"택시 왔어요!"


몇 시인데 택시가 벌써 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5시 40분. 나는 분명히 어제 새벽 6시로 예약했는데? 동남아시아이니 당연히 택시가 늦게 올 거고, 정시에 와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려 20분이나 일찍 왔어요.


짐을 들고 아래로 내려갔어요. 좁은 계단을 노트북 가방 메고 캐리어를 들고 내려가니 1층 도착하자마자 땀이 나기 시작했어요.



아직 새벽 6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이었는데 벌써 거리에서는 쌀국수를 팔고 있었어요.



베트남에서 쌀국수를 제대로 먹고 싶다면 이른 아침 노점상에서 먹어야 해요. 그게 현지인들이 먹는 쌀국수이거든요. 쌀국수를 보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 택시를 타고 탄손너트 공항으로 가야 했어요. 게다가 어차피 베트남 동도 없었기 때문에 쌀국수를 먹을 시간이 있다고 해도 돈이 없어서 못 먹는 상황. 그러다보니 쌀국수를 먹고는 싶었지만, 못 먹는다고 해서 크게 아쉽지는 않았어요.


택시에 올라탔어요. 택시 기사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주었어요. 땀으로 살짝 젖은 옷이 다시 보송보송 말라가기 시작했어요.




이른 시각이라 길이 막히지는 않았지만, 오토바이는 보였어요. 여기 사람들은 확실히 아침을 매우 일찍 시작했어요. 그런데 낮에 매우 더운 것을 생각해보면 이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길이 막히지 않아서 택시가 빠르게 달렸어요. 택시를 타고 20분쯤 가자 탄손너트 공항에 도착했어요. 호치민 시내를 달려서 간 것을 고려하면 공항과 시내가 정말 가까운 거리였어요. 공항 가는 길이라 해서 무언가 논밭이 나오고 공터가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없었어요. 여기도 아마 원래는 시 외곽 멀찍이 지어놓았을 건데 도시가 성장하면서 공항 코앞까지 도시가 형성되어 버렸을 거에요. 우리나라 김포공항처럼요.



통일 40주년 기념을 알리는 거대한 입간판이 보였어요. 베트남 국기 옆에 있는 위는 빨강, 아래는 파랑인 깃발이 바로 베트콩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의 깃발이에요. 어렸을 적 보았던 '머나먼 정글'이라는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에서 저 깃발이 나왔을 때 저것이 남베트남 국기인 줄 알았어요. 저 깃발이 베트콩 깃발이고, 남베트남 깃발은 노란 색에 가운데에 빨간 선 3개가 그어진 깃발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정말 한참 뒤의 일이었어요.



공항 앞에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어요. 공항 구조를 보니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사를 받아야 했고, 공항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수속 창구가 있었어요. 식당이나 기념품점 같은 것은 정말로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식당은 모두 공항 건물 앞에 있었어요. 이른 시각인데도인지, 이른 시각이어서인지 가게가 몇 곳 열린 곳은 없었지만 무언가 사먹는 사람들은 여럿 있었어요. 도시락을 싸들고 와서 먹고 있는 사람도 있었어요.


'공항이니 여기는 달러로 무언가 사먹을 수 있겠지?'


샌드위치도 팔고 있었고, 컵라면도 팔고 있었어요. 버거킹도 있었어요. 10시 비행기였기 때문에 평소라면 아무 것도 안 먹고 기내식을 먹겠다고 생각했겠지만, 이날 따라 아침부터 출출했어요. 베트남 음식이 칼로리가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이 많은 것도 아니었거든요. 전날 저녁까지 다 챙겨먹기는 했지만 양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먹던 것보다 적다보니 허기가 느껴지는 것이 당연했어요.


"달러로 지불할 수 있어요?"

"아니요. 베트남 동만 되요."


응?!


모든 가게가 오직 베트남 동만 받는다고 했어요. 하지만 베트남 동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았어요. 전날 저녁 환전을 안 한 이유 중 하나가 공항 가면 달러로 무언가 사먹을 수 있을 거라는 추측 때문이었어요. 일반 거리에서 환율을 좋게 쳐주지 않아서 그렇지, 달러를 아예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공항에서도 달러로 내고 무언가 사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것은 완벽히 틀린 추측이었어요. 그 어떤 가게도 미국 달러를 받아주지 않았어요.


전날 상황의 연속. 왜 돈이 있는데 아무 것도 사먹지 못하니! 여기까지 와서 아침에 베트남 음식을 먹지 못하고 떠나야한단 말인가! 아침에 도시락을 싸들고 와서 먹는 베트남인들이 너무나 부러웠어요. 가게에서 컵라면, 샌드위치를 사먹는 베트남인들이 승리자로 보였어요. 베트남 음식을 먹는 방법이라면 이제 면세 구역 들어가서 먹는 수 밖에 없었어요.


'혹시 면세구역에서는 1달러를 1만동으로 쳐주는 거 아니야?'


면세 구역에서는 환율을 매우 나쁘게 쳐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방법이 없었어요. 면세 구역에서 베트남 음식을 얼마에 파는지 몰랐어요. 어설프게 환전 했다가는 음식값보다 베트남 동이 부족해 이중으로 돈을 날릴 수 있었어요. 환전한 베트남 동은 그대로 남아버리고, 음식값은 달러로 지불해야 하는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어요. 불과 몇천원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돈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공항 밖에는 환전소가 보이지 않았어요.


의자에 앉아 들고온 맹물만 벌컥벌컥 마시다가 공항 안으로 들어갔어요.



정말 수속 창구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공항 내부. 탑승 수속을 하는데 수하물을 비행기표 긴 부분에 붙여주었어요.


"이거 항공사에서 회수해가는 부분인데?"


비행기표에서 항공사에서 뜯어서 회수해가는 긴 부분에 수하물 스티커가 붙어 있었어요. 수하물 스티커는 제게 필요한 부분. 그래서 조심스럽게 살살 뜯어서 짧은 부분에 옮겨 붙였어요. 수하물 스티커를 옮겨 붙인 후, 미련 없이 바로 출국 심사를 받고 면세 구역으로 들어갔어요.




"여기 베트남 최대 도시의 국제공항 맞아?"


예전 하노이 노이바이 구 공항보다 크기는 컸지만, 정말 아담했어요. 무빙 워크도 있고, 건물도 깨끗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어요. 호치민이 베트남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 해서 공항도 볼 것이 많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다양한 베트남 기념품을 구경하는 것은 즐거웠지만, 딱 거기까지였어요. 무언가 크게 인상에 남는 공항은 아니었어요.


아침을 먹기 위해 윗층으로 올라갔어요.


"헉! 내 추측대로잖아!"


면세 구역 식당에서의 환율은 1달러가 1만동 급이었어요. 공항 건물 밖에 있는 버거킹 가격이 약 4만동이었는데, 공항 면세 구역에 있는 버거킹 가격은 4달러였어요. 멀리 호치민 시내까지 갈 필요 없이, 공항 밖과 공항 안의 같은 햄버거 가격이 2배 넘게 차이났어요. 다른 식당들 역시 마찬가지. 혹시 다른 저렴한 식당이 있나 공항 면세구역을 전부 돌아다녀보았지만 그런 것은 없었어요. 아침을 먹고 싶다면 면세 구역 윗층에서 먹어야 했고, 가격은 착하지 않았어요.


먹을까, 말까?


가격을 보니 먹기가 싫고, 음식을 보니 먹고 싶고...


'어차피 돈 쓰러 온 여행인데 까짓거 먹자!'



메뉴를 보니 돈 약간만 더 내면 커피도 같이 나온다고 해서 커피까지 시켰어요.


역시 베트남 쌀국수는 진리다.


정말 맛있었어요. 베트남에서 먹는 베트남 쌀국수는 이번에도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어요. 베트남에서 그릇을 들고 국물을 마시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했지만, 마지막 남은 국물 한 방울까지 죄다 먹기 위해 그릇을 들고 국물을 깔끔히 다 마셨어요.


면세 구역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려 했지만, 면세 구역에서 크게 구경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탑승구로 갔어요.



'이제 드디어 인도네시아 가는구나.'



탑승구 앞에도 기념품 가게가 있었어요.



"저거 베트남 용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전통적인 용과 비슷하게 생긴 용 조각이 가게 위에 전시되어 있었어요. 베트남 사람들은 자신들 국가 모양이 용을 닮았다고 해요. 그리고 이것이 바로 베트남의 용. 우리나라 용과 비슷하게 생기기는 했는데, 몸통이 훨씬 날씬했어요. 그러고보니 베트남에서 비만인 베트남인은 거의 보지 못했어요. 사람들도 비만이 적어서 용도 저렇게 늘씬한 건가? 크기가 작다면 구입하고 싶었지만 작은 크기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진열대에는 전시되어 있지도 않았구요.


비행기 표에는 탑승 게이트로 9시 10분까지 가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러나 비행기 탑승은 시작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언제 탑승하는 거야?'


의자 뒤에는 콘센트가 있었어요. 노트북 콘센트를 연결하고 전원을 켰어요. 아침에 공항와서 느꼈던 좌절. 그리고 쌀국수 앞에서의 굴복. 여행 기록을 다 남겼는데도 비행기 탑승은 시작되지 않았어요.


'비행기 언제 탑승 시작이야?'


아...졸려. 어제 몇 시간 잤지? 어서 비행기 타서 눈 좀 붙이고 싶은데...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여기로 일찍 와서 잠이나 자고 있을껄...


멍하니 앉아서 탑승 개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잠이 밀려왔어요. 잠깐만 눈을 붙이면 매우 개운할 것 같았지만 이미 탑승 예정 시각을 지나가버렸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어요. 잠을 깨기 위해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기 시작했어요. 소용 없었어요. 한 번 몰려온 잠은 쉽사리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노래를 들으며 계속 탑승 게이트와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번갈아 보았어요.


9시 45분. 드디어 탑승이 시작되었어요. 항공사 직원에게 표를 건네주었어요. 항공사 직원은 제가 건넨 표를 받더니 짧은 부분에 붙어 있던 수하물 스티커를 떼어서 긴 부분에 붙여주었어요.


'어? 저 스티커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순간 당황스러워서 이것을 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순간. 직원은 표의 점선을 부욱 뜯어서 긴 부분을 제게 주고 짧은 부분을 회수했어요.


'뭐지?'


분명히 한국에서 베트남 갈 때는 짧은 부분을 받았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긴 부분을 제게 주었어요. 국내선, 국제선 모두 여러 번 이용해 보았지만, 비행기표에서 긴 부분을 잘라서 탑승자에게 주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항공사 직원이 기계적으로 하는 동작이었기 때문에 항공사 직원이 잘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아까 수속 창구에서 수하물 스티커를 긴 부분에 붙여주었을 때 그게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맞는 것이었어요. 왜냐하면 짧은 부분을 항공사에서 가져가고 긴 부분을 탑승자에게 주니까요.




비행기는 10시 조금 넘어서 이륙했어요.






안녕, 호치민! 안녕, 베트남!



창 밖으로 메콩강이 보였어요. 호치민은 경유로 잠깐 들려서 본 것 치고 나쁘지 않았어요. 만약 작년 12월에 베트남을 오지 않았더라면 여기에서 환전도 하고 기념품과 선물도 꽤 많이 구입했을 거에요. 떠날 때 아쉬움도 많이 남았을 거구요. 그러나 작년에 왔었기 때문에 딱 적당히 잘 보고 간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작년에 무리해서 호치민까지 내려오지 않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호치민 시내 전부 돌아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하노이보다 볼 것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거든요.


승무원들이 입출국 카드를 나누어 주었어요. 작성은 어렵지 않았어요. 입국 카드를 후다닥 작성해서 여권과 같이 목걸이 지갑 속에 집어넣었어요.



입출국 카드를 다 쓰고 난 후, 기내식이 나왔어요.


아직 나는 베트남 음식을 잘 먹는다고 말할 수가 없다.


기내식이 맛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기내식은 맛있었어요. 단지 제 입맛에 철저히 안 맞는 것이 있었을 뿐이었어요. 생선을 발효시켜서 만든 느억맘 소스가 들어간 면 요리가 있었는데 이렇게 발효된 음식을 안 좋아하는 제게는 정말 별로였어요. 그 면 요리를 다 먹고나서 주황색 과육을 가진 과일을 먹었더니 주황색 과육의 과일이 풍기는 꼬릿꼬릿한 향과 느억맘의 냄새가 입 안에서 뒤섞였어요. 순간 제 입에서 쓰레기통 냄새가 나는 것 같았어요. 저 스스로 제 입냄새를 견딜 수 없었어요. 빨리 이 냄새를 지우기 위해 다른 것을 먹어야 했는데, 무엇을 먼저 먹을까 고민하다 귤처럼 생긴 것을 먹었어요.


"오! 입냄새가 지워진다!"


귤처럼 생긴 과일을 먹었더니 그 꾸리꾸리한 냄새가 싹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제 남은 것은 파인애플과 수박. 둘 다 너무나 맛있었어요. 둘 다 한 무더기 쌓아놓고 먹고 싶었어요. 통째로 이빨로 물어뜯어가며 먹고 싶을 정도였어요. 이로써 깨달았어요. 아직 베트남 음식을 완벽히 잘 먹는다고 할 수가 없구나...고작 고수 그 풀떼기 하나 잘 먹는다고 베트남 음식을 무리없이 잘 먹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어요. 라임도 극복해야하는 대상이고, 생선 비린내도 극복해야하는 대상이었고, 발효 냄새도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었어요.


비행기에서 여행기를 조금 작성하다 창밖을 보니 섬들이 보였어요.




12시 40분경. 드디어 육지가 나타났어요.



그리고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12시 50분. 비행기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위치한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 착륙했어요.



"슬리맛 씨앙, 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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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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