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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 신전에서 내려올 때는 올라갔던 길과 다른 길로 내려갔어요. 개구멍은 아닌 다른 입구이지만 올라왔던 입구에 비하면 작은 입구였어요. 그 이유야 당연히 아까 올라왔던 길에는 극장도 있고 이것 저것 큼지막한 유적들이 있었지만 이쪽은 별 거 없었거든요.



"우리가 많이 올라갔구나."

다른 쪽으로 내려와서 뒤돌아보니 멀리 파르테논 신전이 보였어요.



우리나라보다 도시화가 더 심해 보였던 아테네였지만 이렇게 예뻐 보이는 구석도 있었어요. 헤파이스토스 신전으로 가야 하는데 다 내려와서 길을 따라가다보니 시장으로 가게 되었어요.



시장 바로 옆이 유적이에요.



별로 볼 것도 없는데 유료. 서양인들이 아테네 유적에 열광하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정말 일주일도 부족하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어요.


시장에 들어가서 무언가 살 게 있나 살펴보았어요. 그러나 여기는 유로존. 물가가 엄청 비싼 동네. 물론 아테네 물가가 다른 곳에 비교한다면 저렴할 거에요. 프랑스 파리에 비교할 바야 아니죠. 하지만 어쨌든 유로존이었기 때문에 상품 가격은 일단 '비싸다'를 깔고 시작했어요. 마음에 드는 것들이 몇 개 있기는 했지만 가격 때문에 살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망할 유로!"

몰타도 그렇고 이탈리아도 그렇고 그리스도 그렇고 원래는 물가 저렴하기로 유명한 동네. 유로를 쓰기 전만 해도 이 동네들은 물가가 매우 저렴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유로를 도입하면서 물가가 엄청 뛰었고, 거기에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으며 물가가 우리 입장에서는 더욱 비싸졌어요.



시장을 구경하다 유적지를 하나 더 들어갔어요.



내부는 박물관인데 사진촬영금지였어요. 기둥이 끝없이 서 있는 것은 인상적이었지만, 현대에 들어와 세운 냄새가 너무 강하게 나서 역시나 크게 인상적이지 않았어요.


헤파이스토스 신전을 들어가는 길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다 또 다른 유적을 가게 되었어요.



앞은 그냥 폐허. 수풀 너머로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보였어요.



따스한 햇볕 아래 무언가 쓸쓸한 유적.



유적을 돌아다니는데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보였어요.

"저쪽으로 가면 헤파이스토스 신전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갔어요.



헤파이스토스 신전에 도착했어요. 내부는 오래 되어서 그런 건지 대리석이 검게 변색돼 있었어요.



멀리서 보았을 때에는 매우 예뻐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괜찮아 보였어요. 확실히 파르테논 신전보다 보존이 잘 되어 있는 것 같았어요. 파르테논 신전에서는 고대 그리스 신전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유추해보기 어려웠지만 헤파이스토스 신전은 모양이 매우 잘 남아 있어서 고대 그리스 신전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어요. 아마 파르테논 신전도 원래는 이런 모습이었겠죠.



이것은 헤파이스토스 신전.



저 멀리 보이는 것이 파르테논 신전. 아까는 저 파르테논 신전에서 여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여기에서 파르테논 신전을 올려다보고 있어요. 얼마 걷지 않은 것 같은데 꽤 많이 걸었구나.


헤파이스토스 신전을 구경했기 때문에 이제 남은 일은 기차표 구입. 기차표 구입 시간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기차역까지 걸어가기로 했어요.



보수중. 파르테논 신전도 보수중이었고 여기도 보수중.



교회 앞 동상. 아쉽게도 글자를 읽어도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었어요.



옛날 복장의 군인과 현대식 복장의 군인.


느긋하게 기차표를 사러 가다가 기차표를 파는 곳을 물어물어 찾았어요. 그러나 역시나 표는 매진. 바뀐 것은 없었어요.

"진짜 소피아 가야하나 보다."

물론 아테네에서 1박하는 방법도 있었어요. 그러나 아테네에서 1박 한다고 해서 바뀔 것은 없었어요. 기차표 매진 사태가 크리스마스까지 계속이라고 했거든요. 더욱이 유로존. 이왕 이렇게 된 거 불가리아로 일단 탈출하고 보는 것이 훨씬 낫다고 판단했어요.


볼 만한 유적도 다 보았고 시장도 다 보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여기에서 아테네로 바로 가는 방법을 찾아 거리를 헤맸지만 그냥 시간낭비였어요. 결국 시간이 되어서 그나마 남아 있는 마지막 그리스 탈출 방법인 불가리아 소피아행 기차표조차 놓치지 않기 위해 기차역으로 가서 기차표 2장을 샀어요.


"이제 뭐하지?"

"저녁이나 먹자."

대충 거리 음식으로 때우고 싶었지만 친구가 배고프다고 반드시 식당 가서 밥을 먹자고 했어요. 그래서 식당에 가서 기로스를 사먹었어요. 다른 음식을 시키고 싶었지만 무슨 음식인지 알 수도 없었고, 가격도 꽤 비쌌어요. 이때 제 기준은 몰타 물가였어요. 몰타에서 어학연수중이다보니 몰타보다 싸면 괜찮은 곳이고 몰타보다 비싸면 부담스러운 곳이었는데 그리스는 몰타보다는 물가가 비쌌어요.


저녁을 먹고 할 일이 없어서 아테네의 번화가로 갔어요. 번화가는 서울의 명동처럼 엄청나게 북적였고,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번화가 구경을 하다가 화장실도 가고 싶고 서점이 어떻게 생긴지 궁금하던 차에 서점이 보여서 서점에 갔어요.


서점에 들어간 이유는 그리스의 책을 구경하고 살 수 있다면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그리스어판을 구입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리스어는 공부해본 적이 딱 한 번 있어요. 그게 바로 이 아테네로 들어오는 버스 안이었어요. 아테네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리스어 문자를 다 외우고 아주 기초적인 인사 두어 개를 외웠어요. 이것이 저의 그리스어 학습 역사 전부. 솔직히 공부라고 하기도 민망해요. 그래도 그리스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는 않았고, 글자도 외웠기 때문에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그리스어판을 구입해 언젠가 읽어보고 싶었어요. 다른 무수한 소설이 있는데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인 이유는 이 소설이 바로 제가 최초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영문판 소설이었기 때문이에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영문판을 끝까지 다 읽고 스스로 감격했어요. 영어를 정말 지지리 못하는 제가 사전을 뒤져가며 결국 다 읽어낸 유일한 영어 원서였거든요. 이것이 23살 때에요. 그 후로 지금까지 끝까지 다 읽은 영문판 소설이 아무 것도 없어요. 즉,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제게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끝까지 다 읽은 영문판 소설. 연금술사 영문판을 다 읽은 날, 한 가지 결심을 했어요. 여행을 다니며 관심이 생긴 외국어로 번역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기로 마음먹었어요. 이것이 큰 문제 없이 가능한 이유는 연금술사가 워낙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한 나라의 국어로 사용되는 언어로는 거의 다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큰 맘 먹고 연금술사 그리스어판을 찾기 위해 서점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속이 왜 이러지?"

그리스어 책이 꽂혀 있는 곳으로 가서 책장을 보는 순간 속이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단지 아까 먹은 저녁이 얹혀서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글자가 뱅뱅 돌기 시작했어요. 버스에서 글자를 외울 때부터 글자가 이상하게 제 신경을 긁는다는 느낌은 있었어요. 그러나 그것은 버스 안이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별 것 아닌 거라고 넘어갔어요. 지금 제 눈 앞에서 글자가 뱅글뱅글 돌고 있었어요. 글자 하나하나가 뱅뱅 도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예전 인터넷에서 난독증 환자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이 사람들은 글을 안 배워 모르는 것도 아니고 노력하면 되는데 노력을 안 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어요. 난독증 환자들은 글자를 보면 글자가 뱅뱅 도는 것처럼 보이고 어지럽다고 했어요. 그 글을 읽었을 때 어떻게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글자가 하나하나 뱅뱅 돌면 대체 어떻게 보이고 어떤 느낌일지 감을 잡을 수 없었어요. 그러나 여기, 그리스 아테네의 서점에 와서 느끼게 되었어요.


"무슨 그리스어판 연금술사냐..."

점원에게 책을 찾아달라고 하면 찾을 수 있었어요. 그러나 글자를 보고 멀미를 한 후, 책을 살 마음이 싹 사라졌어요. 왜 그리스 문자가 제 신경을 긁고 뱅글뱅글 도는 것처럼 보이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글자를 보고 멀미를 했다는 것. 글자를 보고 현기증을 느끼니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싹 사라졌어요.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서점을 나갈까 하는데 테라스가 보였어요.



백금처럼 반짝이는 것은 바로 파르테논 신전!



밤에 파르테논 신전에 갈 수는 없어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조명을 받으니 낮에 보던 허름한 폐허처럼 보이던 것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는 것이었어요. 저것은 진짜 조명의 힘.


서점에서 나와 기차를 타러 걸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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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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