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제주도

제주시 삼도2동 제주우체국

좀좀이 2014. 11. 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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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 때 관덕정에 가는 이유는 딱 두 가지였어요. 공무원매장 때문에 가든가, 중앙우체국 때문에 가든가였죠. 공무원매장은 나중에 광양에 생긴 상록회관으로 옮겼고, 예전처럼 공무원 및 그 가족만 들어갈 수 있는 곳에서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는 매장으로 바뀌었어요. 그리고 제주중앙우체국은 나중에 노형동 제주일고 근처에 제주우편집중국이 생기면서 제주우체국이 되었어요.


제주우체국이 제주중앙우체국일 때, 이곳을 중앙우체국 또는 관덕정 우체국이라고 불렀었어요. 만약 동네 우체국에서 기념우표가 다 떨어지면 이곳으로 달려가야 했어요. 아무래도 여기가 큰 우체국이다보니 기념우표도 다른 곳보다 많이 있었거든요. 만약 중앙우체국에서도 구입을 못 하면 용담에 있는 우표상에 가서 구입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이 우표상을 그때 '00식당'이라고 불렀어요. 정확히 무슨 식당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오뚜기 식당이었던가...아무리 생각해내려고 머리를 쥐어짜봐도 그 식당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요. 하여간 중앙우체국에서조차 기념우표를 못 사면 이 용담에 있는 서문시장 안에 있는 무슨 식당이라고 부르던 우표사에 가서 우표를 사든가 해야 했어요. 나중에 광양 대성학원 맞은편 - 시민회관 정류장에 탐라우표사가 생겼는데 여기는 망했고, 제주우표사는 나중에 생겼는데 지금은 일도1동 있어요. 지금은 제주도에 제주우표사밖에 없지요. 제주우표사도 위치가 몇 번 바뀐 것으로 알고 있어요. 도남에 있었던 적도 있었고, 관덕정 근처에 있었던 적도 있었어요.


고등학생 때 봉사활동 시간을 채워야 했는데, 이 당시 제주중앙우체국에서도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어요. 초창기였기 때문에 관리가 상당히 널널한 편이었어요. 가서 하는 일은 2층으로 올라가는 통로에 봉사활동 시간을 기입하는 곳에 도착한 시간을 적고 2층으로 올라가서 우편물 분류를 거드는 일이었어요. 우편물 분류는 하루종일 쉴 새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우편물이 올 때만 하면 되었고, 나머지 시간은 대충 청소하거나 앉아서 잡담하고 노는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가운데에 점심 시간 되면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오는데 이 시간 역시 봉사활동 시간에 포함되었어요. 관리가 하도 널널한데다 우편물이 9시부터 6시까지 쉴 새 없이 쏟아져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딱 들어오는 시간만 들어왔기 때문에 밥 먹고 근처 오락실에서 한 시간 정도 놀다 돌아와서 또 안에서 시간 보내고 우편물 들어오면 분류 후딱 하고 놀다가 시간 왕창 채워서 집에 돌아갈 때 장부에 시간을 기입하고 봉사활동 증명서를 받아갔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학교에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봉사활동 시간을 다 채워주어서 우체국에서 한 봉사활동은 모두 초과 봉사시간이 되어버렸지요.


개인적으로 이렇게 추억이 있는 제주우체국이에요.




하지만 제주우체국은 아무래도 이렇게 찍은 사진이 더욱 낯익어요.




커다란 환풍기가 달려 있는 지하상가 입구가 같이 나와야 관덕정 우체국다워보여요. 관덕정은 지하상가의 한쪽 끝이에요. 예전에는 그냥 물허벅 진 여인상 하나 있고 끝이었어요.




우체국에 들어가면 바닥에 이렇게 방향이 표시되어 있어요.



해외로 부치는 EMS는 제주우체국 내부에서 가장 왼쪽에서 취급해요.



이것은 오른편이에요.


바로 위 사진 오른쪽 코너에 가자 제주도 기념 우표와 기념 엽서를 팔고 있었어요.


"여기에서 제주도 기념 우표랑 기념 엽서 파나요?"

"예. 이것들이에요. 육지분이세요?"

"아니요."


엽서는 항공엽서 뒷면에 제주 사진을 인쇄한 것이었고, 우표는 나만의 우표에 제주 풍경을 인쇄한 것이었어요.


"이것들 많이 팔리나요?"

"예. 중국인들이 많이 사가요."

"여기도 중국인들이 와요?"

"예, 여기도 많이 들려서 이것들 많이 사 가요."


중국인들이 여기도 온다는 말에 깜짝 놀랐어요. 비록 제주우체국 바로 옆이 제주목관아와 관덕정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를 굳이 와야 할 이유는 없었거든요. 그 사람들도 집에 기념엽서를 부치기 위해 온 김에 여기에서 엽서를 부치고 제주 우표도 구입해 가는 건가?


여기서 구입한 엽서들이에요.



산방산. 이것은 딱 봐도 가파도에서 찍은 사진이었어요. 제가 간 날 중산간도 맑았다면 저도 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 거에요.



이것은 산방산과 유채. 역시나 뒤에 희미하게 한라산이 보여요. 제주도는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하나의 거대한 산처럼 생긴 지형인데다 중산간 지역은 국립공원으로 개발이 막혀 있고 한라산 자체가 해발 1950m라서 한라산 보는 것은 쉬워요. 어지간해서는 한라산은 다 보여요. 하지만 바다는 제주시내의 경우 고층 건물 사이에 있으면 안 보이지요. 물론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바다 역시 한라산 만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어요. 바다와는 거리가 꽤 있는 저희 집 창문으로도 바다가 시원하게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지금은 집 옥상에서 한라산은 보이지만 바다는 건물들에 막혀서 보이지 않아요.



용두암은 역시 흐리고 바람불 때 보아야 제 맛.



이것은 주상절리.



이것은 제주초가.


이 외에도 엽서가 몇 종류 더 있기는 했지만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구입하지 않았어요. 사진 오른편 구석에 잘린 돌과 나무가 바로 정낭이에요. 정낭을 꼽는 돌을 정주먹, 정주먹에 끼우는 나무를 정낭이라고 하지요. 정주먹에는 구멍 3개가 있는데, 정낭이 몇개가 어떻게 꽂혀 있는지에 따라 주인의 출타와 출타 정도를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 엽서 뒷면은 평범한 항공엽서였어요.



외국에 부치려면 추가 요금을 더 물어야한다고 했어요.


우체국에서 나와 동문로터리를 바라보았어요.




지금은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오른편에서 버스를 타지만 예전에는 사진 왼편에서 버스를 탔어요. 산지천 복개공사 이전에는 버스 정류장이 이 사진 왼쪽에 있었는데 복개공사하면서 정류장이 오른쪽으로 옮겨갔죠. 그리고 사진 속 하얀 탑은 해병대 충혼탑이에요. 충혼탑 주변에 있는 종려나무 세 그루는 상당히 크게 자란 것이에요. 어렸을 때에는 지금 사진 속 저 모습보다 키가 작았어요. 충혼탑보다 좀 더 큰 크기였었죠. 저 종려나무들은 정말 확실히 나이 있는 것들이에요. 여기는 '동문로타리'라고 많이 불렀어요. 지금도 '로터리'보다는 '로타리'가 편해요.


참고로 어렸을 때에는 - 즉 1990년대만 해도 동문로타리 및 중앙로가 제주도 최대 번화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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