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제주도

설화 속 아흔아홉골은 어디일까요 - 제주도 설화 이야기

좀좀이 2014. 6.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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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큰 인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제주도의 유명한 옛날 인물들을 다룬 책을 보아도, 결국은 인물이 부족해서 추사 김정희와 같은 외지인들 이야기를 끼워넣을 수 밖에 없지요.


이에 대해서 옛날 제주 사람들도 나름의 이유를 설명했어요. 원래 종교, 전설은 그 시대에서는 과학적 분석 결과였고, 왜 제주도에서 큰 인물이 나오지 않는가에 대해서는 제주 사람들도 나름의 원인 분석을 했지요.


제주에서 큰 인물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 설화가 바로 아흔아홉골 설화랍니다.


내용은 이래요. 원래 제주도에는 맹수가 무지무지 많았다고 해요. 그리고 맹수들과 사람들이 어울려서 살고 있었다고 해요.


한편, 중국에서 점을 쳐보니 제주에서 천하를 호령할 장수가 나올 것이라는 점괘가 나와서 이를 막고자 제주에 사람을 보냈지요.


중국에서 넘어온 이 사람은 사람들에게 '계몽'이라는 이유로 맹수와 어울려 지내지 말 것을 가르치고, 맹수들을 '백골'이라는 곳에 모아 모두 사라지게 한 후 중국으로 다시 도망쳤다고 해요. 뒤늦게 맹수들이 사라졌음을 알고 사람들이 무슨 일이 터진 것인지 알게 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고, 그 이후 제주에서는 큰 인물이 날 수 없게 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백골에서 한 '골'이 없어져서 그 이후부터는 '아흔아홉골'로 불리게 되었구요.


이 설화의 재미있는 점은 지장샘 설화와 달리 중국인이 제주도에서 큰 인물이 못 나오도록 영원히 막아버리는 데에 성공한다는 것이에요. 지장샘 설화를 보면 중국놈 고종달이 제주의 지맥을 끊어서 제주에서 아예 큰 인물이 못 나오게 하려고 했는데, 지장샘 수맥은 농부의 기지로 찾지 못해서 끊지 못했고, 그나마 끊어서 모은 수맥은 바닷가에 다 쏟아버리는 바람에 바닷가에서 물이 퐁퐁 나오게 되었다는 내용이지요. 이 이야기는 제주도에서 왜 동부가 척박하고, 서부와 해안가에 왜 상대적으로 물이 풍부한 지를 설명하는 설화에요. 이 중국놈이 동쪽의 큰 수맥은 다 끊어놓는데, 그것을 서쪽에 쏟아버리거든요.


전설에 의하면, 중국이 제주에서 큰 인물이 나오지 못하도록 두 번 사람을 보내는데, 아흔아홉골 설화에서 성공해 제주도에서는 더 이상 큰 인물이 못 나오게 되어버리죠.


그러면 아흔아홉골은 어디일까요?


제주도에는 실제로 '아흔아홉골'이라는 지명을 가진 곳이 있어요. 현재 한라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곳이지요. 이 한라산의 아흔아홉골을 설화 속 아흔아홉골로 보는 쪽이 있다는 것을 아주 최근에 인터넷에서 민담을 찾아 읽다 알게 되었어요.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아흔아홉골이 원래는 백골이었는데, 맹수들을 여기로 불러모아 골짜기 하나와 같이 사라지게 한 후 아흔아홉골이 되었다는 것이었어요.


"이거 맞아?"


골짜기란 푹 파인 곳을 이야기하는데, 그러면 맹수들이 다 생매장 당했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동물은 동물대로 없애고, 땅은 도술로 평탄화 작업이라도 했다는 이야기인가?


더욱이 어렸을 때 읽고 듣고 해서 알고 있었던 내용과는 너무나 달랐어요. 물론 이 '백골에 맹수를 모은 후, 맹수와 골 하나를 없애버렸다'라는 기본 내용은 같지만, 어렸을 때 읽고 듣고 해서 알았던 원래 '백골'은 지금 그 '아흔아홉골'이 아니었거든요.


사실 이 설화는 제주도에서 매우 유명한 설화에요. 제가 어렸을 때에는 설문대 할망 다음으로 유명했던 설화이기도 했지요.


제가 알기로는, 이 '아흔아홉골' 설화는 성산일출봉 분화구와 관련된 설화에요.





성산일출봉은 제주도 오름들 중 가장 유명한 오름이자, 아주 오래전부터 관광 코스로 개발된 오름이지요. 초등학교때부터 견학으로 여러 번 갔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웬만해서는 절대 안 올라가는 곳이기도 해요. 덕분에 정상까지 여러 번 올라갔지만, 제가 직접 찍어서 가지고 있는 정상 분화구 사진은 이것 밖에 없네요.


사진에서 보다시피 이 성산일출봉 정상을 보면 작은 자잘한 돌기들이 많이 있어요. 이것을 아흔아홉골이라고 불렀었어요. 그리고 당연히 설화에서는 원래는 저 뾰족뾰족한 것들이 100개 있어서 '백골'이라고 불렀구요.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에서는 맹수들을 저 여러 봉우리 중 하나에 다 모이게 한 후, 그 봉우리를 통째로 날려버렸다고 해요. 설화의 맨 마지막을 보면 맹수들이 갑자기 사라져서 이상하게 생각한 주민들이 여기에 올라와 저 뾰족뾰족한 것을 세어보니 하나 없는 것을 알고서 큰 인물이 나올 기운이 끊겨버렸고, 자신들이 중국놈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요.


과연 제주도에서 큰 인물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 '아흔아홉골 설화'에서 말하는 '아흔아홉골'은 어디일까요? 골짜기 하나를 없애버렸다는 쪽이 더 그럴듯한가요, 봉우리 하나를 날려버렸다는 쪽이 더 그럴듯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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