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시간을 뒤섞어 (2014)

시간을 뒤섞어 - 04 타이완 타이베이 고궁박물관, 충렬사

좀좀이 2014. 4. 3.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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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우리가 타고 다닐 버스는 2층 버스. 1층은 짐칸이었고, 2층이 객석이 있는 층이었어요.


"짐은 아래에 싣고 위로 타세요."


버스 앞에 서서 잠시 망설였어요. 이유는 날씨. 정말 더웠어요. 실제 기온은 그렇게 더운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추운 한국에 있다가 갑자기 대만으로 오니 초여름처럼 덥게 느껴졌어요. 이 정도 날씨라면 외투를 입고 있는 것 자체가 불편할 정도였고, 굳이 밤이 되어서 기온이 떨어진다 해도 외투를 입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어요. 괜히 걸리적거리고 귀찮게 버스 안에 옷을 벗어놓고 다니기보다는 차라리 지금 가방에 외투를 넣어버리는 것이 나을 듯 했어요.


"짐 안 넣고 뭐 해요? 무슨 문제 있나요?"

"아뇨, 그냥 더워서 외투를 가방에 넣어버릴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아, 외투 들고 타세요. 밤에는 꽤 쌀쌀해요."


가이드분의 말씀대로 외투는 그냥 입고 버스에 올라탔어요.


"여러분, 날씨 덥죠?"

"예."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뭐 이 정도가 춥냐고들 하세요. 하지만 여기서 계속 사는 저희들은 겨울에 춥다고 느껴요."


가이드 아주머니께서는 가장 먼저 날씨에 대해 설명해주시기 시작하셨어요. 일단 한국보다 따뜻한 것은 사실이지만, 타이완 사람들은 겨울에 춥다고 느낀다고 하셨어요.





그 이야기는 대만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요.


그리고 타이완이 지금 이상기후라는 것을 알려주셨어요. 원래는 이렇지 않은데, 며칠째 밤에는 비가 내리고 으슬으슬 춥기 때문에 덥다고 외투를 무조건 안 챙기면 감기들 수 있다고 하셨고, 그러므로 옷을 여러 겹 입고 더우면 벗고, 추우면 껴입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헐! 여기는 고속도로가 쾌속공로인데요?"


눈에 가장 먼저 확 들어온 것은 한자로 적힌 표지판들이었어요. 대만은 우리와 똑같은 한자를 쓰기 때문에 바로바로 눈에 확확 들어왔어요. 못 읽는 한자들도 많았지만, 읽을 수 있는 한자들도 있었고, 예전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공부했던 기억이 있어서 읽을 줄은 모르지만 무슨 뜻인지 아는 한자들도 있었어요. 아버지께서는 국한혼용 세대이셨기 때문에 한자를 매우 잘 읽으셨어요.


여행기를 쓸 생각이었다면 열심히 사진 찍고, 가이드 아주머니의 말씀을 받아적었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창밖 풍경은 보이는 대로 그냥 보고 가이드 아주머니 말씀은 그냥 듣기만 하고 따로 기록하지 않았어요. 확실히 패키지 여행에서만의 장점이라면 가만히 있어도 떠먹여주는 것처럼 가이드가 알아서 설명을 다 해준다는 것이었어요. 확실히 편한 마음으로 여행을 잘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어요.


첫 번째 간 곳은 그 유명한 고궁박물관. 세계 4대 박물관이기도 하고, 어렸을 적 본 학습그림사회 동북아시아 자유중국편에도 소개된 박물관이었어요. 유물이 하도 많아서 가지고 있는 유물들을 한 번에 다 전시하지도 못한다는 그 박물관. 사실 제가 아는 유일한 타이완의 유명 관광지이기도 했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타이완에 뭐가 있는지 아는 것이라고는 고궁박물관 밖에 없었어요.


가이드 아주머니께서는 고궁박물관의 유물 상당수가 자금성의 보물들인데, 이것이 국민당이 약탈해서 대만까지 온 것이 아니라고 했어요. 중일전쟁 당시 중국군이 일본군에 밀리면서 자금성의 보물들을 가지고 후퇴했고, 그 이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 세력이 타이완으로 후퇴하면서 같이 타이완으로 들어온 것이라 하셨어요. 그 이후 중국 본토에서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것을 생각해보면 어찌 되었든 그나마 이 유물들이 대만으로 넘어왔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 여기는 원래 방문객들이 많은 박물관인데 타이완에서 중국 사람들의 방문을 허용하면서 미어터지는 곳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어요. 본토에서 타이완으로 관광을 온 중국인들은 고궁박물관을 반드시 들리는데, 그 이유는 크기만 크고 텅 빈 자금성에 대체 무엇이 있었는지 너무 궁금해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어요.


국내에서는 국민당 정부가 국공내전에서 패전하면서 후퇴할 때 박물관 유물들을 약탈해서 타이완으로 가져간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위키피디아에서 확인해보면 그 이전에 중일전쟁에서 국민당군이 일본군에 밀리면서 베이징 고궁박물관 유물들을 이전시킨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국민당이 공산당에 밀려 타이완으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유물들도 같이 가져간 것은 맞지만, 멀쩡하게 있던 베이징 고궁박물관을 후퇴 과정에서 약탈해서 가져간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고궁박물관 내부는 사진 촬영 금지. 그러므로 카메라는 버스에 놓고 핸드폰을 챙겨서 핸드폰으로 박물관 밖에서 사진을 찍으라고 알려주셨어요. 꽃보다 할배에서 고궁박물관 내부를 촬영한 것은 정말 매우 보기 드문 특혜였다는 말을 덧붙이셨어요.



타이베이 고궁박물관



고궁박물관에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인파를 목격했어요. 일본인도 많았고, 중국인도 많았어요. 조금 볼 만 하다 싶은 유물들 앞은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 앞과 비슷했고, 고궁박물관이 자랑하는 주요 유물들은 아예 관람 인원 통제를 하고 있었어요.


고궁박물관의 유물들은 다양한 시대의 유물들이지만, 이것들 상당수는 청나라 황실이 수집한 것이라 해요. 그 말을 들으니 한족들은 만주족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하는 묘한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명나라가 강한 국가였다고 해봐야 그 영토는 잘 쳐줘야 오늘날 중국 본토의 절반. 위구르, 티베트, 내몽골 모두 청나라가 정벌해 오늘날 중국 영토가 된 곳들이에요. 게다가 보물들도 자금성에 다 모아놓았구요. 물론 보물들을 모아놓은 것은 그 당시에 보물들을 보호하겠다는 좋은 의도로 모아놓은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중국 근현대사를 보면 그렇게라도 해놓았으니 이렇게 한족 손에 남아 있는 거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대부분 국외로 유출되었을 거에요. 중국 본토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파괴되었고, 1990년대에만 해도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지금같지 않아서 중국에 있는 많은 유물들이 그 가치에 비해 헐값에 외국으로 많이 반출되었었죠.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어요.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일행을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고 다니실 거라는 예상과 달리 고궁박물관 내부에서의 자유시간도 어느 정도 주었어요.





내부와 달리 바깥은 여유로웠어요. 내부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어요.


지금 여행기를 쓰는 도중, 문득 예전 교수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났어요.


"너희들, 나중에 현지에서 가이드 하게 되면 분명 가이드 말 안 들으려고 하는 사람 나올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초보들은 어떻게든 통제해보려고 하는데 그런다고 될 것이 아니야. 그러려고 할 수록 너희들만 피곤해지고, 관광객은 불만만 많아져. 그럴 때는 그냥 마음대로 하시라고 놔둬. 어차피 말도 안 통하고 아는 것도 없는데 해 봐야 뭘 하겠어? 그냥 마음대로 하라고 놔두면 얼마 있다가 가이드 옆으로 슬그머니 오게 되어 있어."


교수님 말씀대로라면 매우 노련하신 가이드 아주머니임이 맞아요. 일에서 백까지 자기가 다 통솔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분명 불만 갖고 가이드 말 안 들으려고 하는 사람 나올 테니, 적당히 아쉽지 않게 자유시간도 주는 것이죠. 이 여행은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어요. 그래서 여행 진행 자체에는 매우 만족스러웠어요. 이것이 빡빡하고 통제된 패키지 여행이라는 느낌도 거의 없었어요. 자유시간을 널널하게 주어서 패키지 여행보다는 그냥 타이완을 잘 아는 사람과 같이 여행다니는 기분이었어요. 불만이라면 저의 무지에 대한 불만 뿐이었죠.


고궁박물관 관람을 마친 후 위병 교대식에 맞추어 충렬사로 이동했어요.






다행히 시간을 잘 맞추어 와서 위병 교대식을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찾아온 자유시간. 내부를 천천히 걸으며 돌아보았어요.




타이베이 충렬사



충렬사는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으로 희생된 분들의 위패를 안치한 곳.






본당 뒤에는 충렬사 모형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벽에는 중일전쟁 당시 각 전투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었어요.


충렬사를 한 바퀴 둘러보고 든 기분은 착잡함이었어요. 이곳에는 중일전쟁 및 국공내전에서 희생된 분들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어요. 하지만 이곳에 소개되어 있는 것은 전부 중일전쟁과 관련된 것이었어요. 중일전쟁은 어쨌든 중국이 이긴 것이니 이렇게 많이 잘 해놓고, 국공내전은 패배한 전쟁이니 잘 다루지 않았을 거라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중일전쟁이든 국공내전이든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은 바로 이 타이완을 위해 싸우다 희생된 분들. 그런데 전쟁의 승패에 따라 이렇게 대우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편하지는 않았어요.





충렬사 관람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러 갔어요. 중국 음식을 처음 드시는 어머니가 조금 걱정되었지만, 어머니께서는 식사를 잘 하셨어요. 어머니께서 식사를 잘 하시는 것을 보니 이번 여행은 매우 편하고 즐겁게 끝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수를 못 드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어머니께서는 고수가 미나리랑 비슷해서 먹을 만 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음식은 매우 푸짐하게 나왔어요. 저녁 식사였기 때문에 배가 터지도록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에 다시 올라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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