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미분류

이제는 끝나버린 나의 취미생활 - 공중전화카드 수집

좀좀이 2013. 8. 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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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제 취미는 이것 저것 모으는 것이었어요. 처음에는 우표. 우표는 지금도 조금씩 모으고 있어요. 그리고 내년 열리는 필라코리아 세계우표전시회에 구경하러 가는 게 내년 목표 중 하나이기도 하구요.


그 다음은 외국 동전. 그러나 이것은 지속성이 없었어요.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만, 어린 제가 외국 동전을 수집하기는 무리였거든요. 누가 여행을 다녀와서 동전을 남겨와 주지나 않으면 마땅히 모을 방법이 없었어요. 그래서 가끔 생기면 가지고 안 생기면 말고 하는 그런 취미.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등학교때까지 정말 열심히 모으던 취미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다 쓴 공중전화카드'.


처음에는 그냥 다른 애들이 주워서 모으길래 저도 주워서 모았어요. 당연히 어머니께 쓰레기 주워서 모은다고 혼나기도 했지요. 그러다 이게 일종의 아르바이트(?)로 변질되었어요. 제가 국민학생때 (초등학생 아님) 다 쓴 전화카드를 30장 모아서 전화국에 들고 가면 2000원짜리 전화카드로 바꾸어 주었어요. 이것을 이용해 30장을 모아 2000원짜리 전화카드로 바꾼 후, 삐삐를 쓰던 큰누나에게 1000원~2000원 받고 파는 것이었어요. 가격은 당연히 전적으로 큰누나의 흥정 능력에 따라서 왔다 갔다. 그리고 큰누나가 전화카드를 다 쓰면 그걸 다시 회수해가곤 했어요. 가끔 돈이 많이 남은 전화카드를 주으면 그건 아버지께 쓰시라고 드리든가, 큰누나에게 서비스(?)로 주기도 했어요.


나중에는 주워서 우표사에 가져다 팔기도 했어요. 이것도 나름 쏠쏠한 용돈 벌이.


이렇게 모으는 것도 아니고 완벽한 부업거리(?)도 아닌 상태로 다 쓴 공중전화카드 수집을 하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들어가서 친구가 모은 전화카드들을 보고 갑자기 본격적으로 다 쓴 공중전화카드를 모으고 싶어졌어요.


일단 용돈을 모아서 우표사에 간 후, 그림을 보며 마음에 드는 다 쓴 전화카드들을 골랐어요. 주로 우리나라 민속과 관련된 그림이 그려진 전화카드를 골랐어요.


"그런데 너 지역카드는 안 모으니?"

"지역카드가 뭐에요?"


당시 공중전화카드는 세 종류가 발행되고 있었어요. 첫 번째는 일반카드. 두 번째는 지역카드. 세 번째는 주문카드.


이 외에 IC카드라고 칩이 박혀 있고 신용카드처럼 두꺼운 공중전화카드도 있기는 했는데, 이건 제 고향에서 주워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널리 보급되지도 않았어요.


주문카드는 뭔지 확실히 알고 있었어요. 이것은 누가 도안을 골라서 주문하면 거기에 글을 인쇄한 전화카드로 결혼식때 선물로 많이 주곤 했어요. 결정적인 특징은 뒷면이 비둘기 그림. 이건 가치가 최악이었기 때문에 모아서 전화국 가서 전화카드로 바꾸어 버리든가, 아니면 우표사에 똥값 받고 팔아버리는 카드였어요. 그냥 '나 몇 장 모았어' 라고 말할 때 수 불리기 용도 외에는 전혀 가치 없는 카드. 뒷면에 적힌 카드 일련번호는 MC로 시작했어요. 이 외에 MA 카드도 있었어요. MA카드는 뭔지 저 역시 잘 몰라요.


하지만 일반카드와 지역카드의 차이는 몰랐어요. 그리고 그날 전화카드 수집의 신세계를 깨우쳤어요.


일반카드, 지역카드 모두 뒷면에 적힌 일련번호는 모두 MO로 시작해요.


일단 일련번호의 특징. MO 뒤에는 숫자 7개가 와요. 먼저 앞의 두 개는 발행년도. 그 다음 두 개는 발행 월. 그 다음 한 자리가 바로 일반카드와 지역카드를 구별하는 번호로 일반카드는 1, 지역카드는 2였어요. 마지막 남은 두 개는 발행순서. 발행순서 역시 지역카드와 일반카드가 따로 매겨졌어요.


예를 들면 MO0008214 라고 하면

MO(정식발행)00(2000년)08(8월)2(지역카드)14(2000년 14번째 발행된 지역카드)

라고 읽는 것이죠.


그 뒤에 8자리 숫자가 또 이어지는데, 이것의 맨 앞자리가 의미하는 것은 잊어버렸어요. 그리고 맨 뒤에서부터 0이 아닌 곳까지 보면 되는데 이건 몇 번째로 발행된 카드인지를 나타내요.


예를 들어 MO0008214-30002102 이런 번호가 있다면 앞은 위에서 설명했고, 뒤의 2102는 이 카드가 같은 카드 중 2102번째로 찍힌 카드라는 것이죠. 어떤 카드를 5000장 찍었는데 맨 뒤가 2102라면 그 5000장 중 2102번째로 찍어나온 카드라는 의미에요.


일반카드는 전화국에서 찍고 전국적으로 공식적으로 다 판매되는 카드에요. 이거는 에러카드가 아닌 이상 그렇게까지 가치가 높은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발행량 자체가 대부분 매우 많았어요.


하지만 지역카드는 딱 특정 지역에서만 찍어나오고 그 지역에서만 판매되는 카드였어요. 주로 그 지역의 멋진 풍광을 담았지만, 민속, 특산품 사진 같은 게 인쇄된 경우도 있었어요.


당연히 처음부터 제가 모으고 싶었던 것은 지역카드.


문제는 지역카드가 비싸다는 점이었어요. 특히 초반에 발행된 것들은 그 당시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자랑했어요. 예를 들어 제주 지역카드 중 외돌괴는 당시 80000원이었어요. 8천원이 아니라 8만원, 상태 좋은 것은 12만원이었어요. 다 쓴 전화카드가요.


이러다보니 이 지역카드를 다 모으는 것은 아주 불가능한 일...인 듯 했으나...


눈을 낮추고 발품을 팔면 다 방법이 있었어요. 그리고 제 고향 제주도의 혜택을 매우 크게 받았죠.


일단 한 장에 몇 만원 하는 다 쓴 전화카드는 도저히 구입할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이것은 그냥 일단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어요. 앞면이 마구 긁히고 일련번호가 다 지워진 거라도 구입하자는 것이었죠. 참고로 뒷면의 일련번호가 상하면 가치가 몇 배 폭락해 버린답니다. 그렇게 보통 8만원짜리 외돌괴 전화카드를 상태가 매우 안 좋지만 일련번호는 그나마 살아있는 것으로 구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모으는 데에 고향이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제주도는 당연히 인구가 적어서 지역카드 자체를 적게 찍었어요. 게다가 섬이라는 특징 때문에 육지로 반출되는 양도 별로 없고 진짜로 제주도 안에서 거의 다 돌아다녔어요. 그러다보니 제주도 밖에서는 꽤 귀한 카드인데 제주도 안에서는 약간 흔하게 굴러다니는 카드였어요. 우표사에 팔면 장당 1000~2000원 정도 받았어요. 그래서 제주 지역카드는 상태 제일 좋은 거 두어 개 남기고 나머지는 싹 다 우표사에 팔고, 돈 대신 전화카드와 교환했어요. 앞부분은 가격이 너무 비쌌지만, 중간부터는 장당 500원 하는 것도 널렸거든요. 나중에는 아저씨께서 500원짜리 지역카드는 서비스로 주기도 하셨어요.


이렇게 전화카드를 열심히 주워서 필요한 것만 빼놓고 전부 우표사에 가져가서 지역카드로 바꾸어오고, 용돈을 모아 사기도 한 결과 드디어 끝이 보였어요.


그리고 2000년 늦여름. 8월에 새로 나온 지역카드가 여러 종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구하러 우표사에 갔어요. 그리고 그게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발행되는 지역카드라고 했어요. 그것만 다 모으면 어쨌든 우리나라 지역카드는 전부 모으는 것이었어요.


"야, 너 큰일났다!"

"왜요?"

"이번 8월에 발행된 지역카드 전부 10000장 밖에 안 찍었대!"


순간 '아 쓰..브'하고 욕이 나오려 했어요. 위에서 언급한 제주 지역카드 외돌개 같은 참사...아니, 그보다 더 한 참사였어요. 만약 그때까지도 전화카드를 많이 썼다면 외돌개보다 더 한 참사가 일어났겠지만, 다행이었던 것은 그때 이미 전화카드는 핸드폰에 밀려 없어져가고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 결과가 지역카드 시리즈가 드디어 끝나는 것이었고, 하필이면 그게 죄다 만 장만 발행되었다는 것.


참고로 외돌괴는 2만장 발행되었어요. 즉 지역카드 중에서 가장 비싼 카드인 외돌괴 발행량의 절반만 발행되었는데, 그렇게 발행된 우리나라 마지막 지역카드가 총 8종. 외돌괴보다 더한 놈이 8종이라는 것이었어요.


당시 8종은


대전 뿌리공원

길상사

인왕산 정상에서 본 서울전경

서해대교

월송정

남원 향교

영월 동강 (어라연)

제주 우도


어떻게든 다 모으기는 했어요. 제주도에서 경상북도 지역카드였던 월송정은 끝끝내 못 구해서 대학교 들어가서 남대문 지하상가에 있는 우표상에 가서 구입해 채워넣었어요.


문제는 이렇게 지역카드 발행이 끝나버리자 저의 취미였던 지역카드 수집도 끝나버렸다는 것.


지역카드는 발행이 끝나버렸으니 일반카드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때 일반카드가 전국적으로 2만장 발행 - 이런 식으로 너무 조금 발행되니 이건 우표상에서도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 이전에 일단 전화카드가 주워지지도 않아서 실상 멎어버렸어요.


지금도 아주 가끔 - 1년에 두 세 번 다 쓴 공중전화카드가 보이면 주워서 모으고 있어요. 하지만 일단 주울 기회 자체가 없으니 이 취미는 사실상 멎어 있는 상태죠. 제목에는 끝나버렸다고 썼지만 아예 끝난 것은 아니에요. 그냥 안 주워지니 수집 자체가 안 될 뿐. 그렇다고 지역 카드 모을 때처럼 사용제 카드를 구입해가며 모으고 싶지는 않구요.


이번에 제주도 내려가서 예전에 모아서 명함첩에 꼽아 정리해놓은 지역카드들을 다시 들추어 보았어요.




이것이 우리나라 지역카드 1,2,3,4번이에요. 1번은 정방폭포, 2번은 산방산, 3번은 제주 성산일출, 4번은 수원성. 이 중 3번 제주 성산일출 카드도 외돌괴 급은 아니었으나 이 역시 비싸기로 악명 높은 카드 중 하나였어요. 저는 전화카드 수집을 그만둔 친구로부터 싸게 구입해서 채워넣었죠.




그리고 이것은 지역카드 마지막이자 위에서 언급한 고작 만 장씩 밖에 발행되지 않은 지역카드들 중에서도 마지막이에요. 전체 발행순서로는 309번 남원 향교, 310번 영월 동강(어라연), 311번 제주 우도에요. 위에서 언급한 8종 중 영월 동강 (어라연) 카드만 5천원짜리이고, 나머지는 전부 3천원짜리 카드로 발행되었지요.


그러고보니 지역카드의 시작도, 끝도 제주 지역카드였구나! 이걸 여태 몰랐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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