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한국 라면

한국에서 여름에는 팔도비빔면

좀좀이 2013. 6. 19.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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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면을 처음 먹어본 것은 초등학생때였어요. 아마 3~4학년이었을 때였을 거에요. 어머니를 따라 슈퍼에 갔는데 유독 예쁜 파란 봉지에 들어있는 라면이 보였어요. 마침 TV에서는 종종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 팔도비빔면~'이라는 광고 노래가 종종 나왔기 때문에 한 번 너무 먹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머니께 팔도비빔면을 사달라고 졸랐어요. 어머니께서는 점심에 종종 라면을 끓여주셨기 때문에 그냥 사 주셨어요.


다음날,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께서 끓여주신 팔도비빔면을 점심으로 먹었어요.


"으어억! 이거 왜 이렇게 매워!"


어린 제가 먹기에는 충격적으로 매운 맛. 어떻게 다 먹기는 했는데, 비빔면을 먹어서 배부른 게 아니라 맵다고 물을 너무 들이켜서 배가 불렀어요.


그런데 이건 일단 뜨겁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른 라면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매워도 계속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맛도 괜찮았고, 맵기는 했지만 뜨겁지는 않아서 참고 먹을 수 있었거든요.


고등학교 급식으로 쫄면이 나오기 전까지, 팔도비빔면은 제 머리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매운 음식'으로 자리잡고 있었어요. 그리고 여름에는 종종 끓여먹었구요.


팔도비빔면에 대한 추억이 하나 더 있다면 고등학교때였어요. 집에서 점심을 배불리 먹고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친구 어머니께서 비빔면 먹으며 놀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까짓 비빔면 1개, 금방 먹지' 하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는데...


나온 게 양푼 가득 비빔면.


친구랑 둘이서 먹는데 도저히 줄어들지가 않았어요. 집에서 굶고 온 것도 아니고 점심을 잔뜩 먹은 상태에서 배고플 때에도 도저히 다 먹을 수 없는 양의 비빔면이 나오자 경악 그 자체. 둘이 어떻게 다 먹기는 했는데, 그 이후 한동안 그 친구네 집에 항상 밥시간을 피해서 갔다가 밥시간을 피해서 집에 돌아오곤 했어요.


사람들이 비빔면이 한 개는 적고 두 개는 많다고 하는데 저와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 한 개는 입만 버리는 것이고, 식사로 먹으려면 어차피 두 개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갯수가지고 고민할 필요는 없어요.


다른 비빔면들도 먹어 보기는 했지만 제게는 전부 별로라서 한국에 있을 때 날이 조금만 따뜻해지면 팔도비빔면을 열심히 먹어대었어요. 비빔면을 끓일 때에는 면을 평소보다 더 익히고, 짜파게티를 끓일 때에는 면을 평소보다 덜 익히는 게 제가 라면 끓이는 방법이라면 방법.


그리고 작년. 저는 우즈베키스탄에 있었지요.


"비빔면 먹고 싶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비빔면을 먹을 수는 있었어요. 하지만 단 한 번도 먹지 못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비빔면 구하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타슈켄트에 한국인이 하도 많이 살고 있어서 한국 식품 웬만한 건 그냥 구할 수 있었거든요. 한국보다 가격이 비싸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손 벌벌 떨며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어요.


정작 우즈베키스탄에서 비빔면을 단 한 번도 끓여먹지 않고 돌아온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어요.


식수 소비가 너무 커!


아마 우리나라에서 파는 라면 중 물 소비량은 비빔면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어요. 먼저 그냥 국물 라면은 처음 냄비에 부은 물로 끝. 처음 냄비에 부은 물이 국물이 되기 때문에 딱 그거만 소비하면 되죠. 그 다음 물이 아까운 라면은 짜파게티, 스파게티처럼 면을 삶아서 비벼먹는 라면. 이것도 처음 냄비에 부은 물만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 물을 버려야한다는 점에서 버릴 때 물이 아깝기는 해요. 한국에서야 그냥 수돗물 받아서 끓이고 먹고 하면 되기 때문에 별 상관이 없긴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생수를 사서 마셔야 하니까요. 석회 성분은 끓인다고 공기중으로 날아가지 않아서 생수를 써야 했지요. 여담이지만 우즈베키스탄 가서 한국 음식들이 물을 상당히 많이 소비하는 음식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밥을 지어 먹을 때와 빵을 사서 먹을 때의 물 소비량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더군요. 물값이 그렇게 크게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네슬레에서 물을 주문해야하는데 이게 일주일에 한 번 오는 것이다보니 이것도 은근 신경이 쓰이기는 했어요.


문제는 비빔면. 이건 면 삶을 때 물이 들어가고, 면을 헹구고 식히기 위해서 두 번 정도 물을 더 냄비에 부어주어야 해요. 당연히 삶을 때, 헹구고 식힐 때 모두 생수를 써야 했죠. 그래서 아예 안 먹었어요.


하지만 저는 지금 한국. 당연히 날이 더우니 팔도비빔면이 먹고 싶었어요.




비빔면, 짜파게티 끓이는 순간만은 나도 요리사!


이건 뭐 하루 이틀 끓여본 게 아니라 끓이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어요. 1년 안 끓여보았다고 '내 손이 예전 그 손이 아니야!'라고 절규할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었어요.


"역시 한국에서 여름에는 비빔면이 최고야!"


요리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제게, 그리고 요리보다 항상 설겆이 생각을 먼저 하는 제게 비빔면은 여름 한정 최고의 음식. 이건 설겆이도 쉬워요. 게다가 끓이는 시간이면 다 먹고 설겆이까지 끝낼 수 있어요. 말 그대로 초간편 요리.


비빔면을 먹고 나서 드는 생각은 딱 하나였어요.


여름이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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