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우즈베키스탄 관련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은행을 잘 사용하지 않는 이유

좀좀이 2013. 6. 1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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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우즈베키스탄 이야기를 하네요.


가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한국에서 은행을 이용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답니다.


To'pa to'g'ri.


우즈벡어로 '정말로 맞아'라는 말이죠.


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은행을 가끔 이용했어요. 이용한 이유는 오직 하나였답니다. 한국에서 송금받은 달러를 찾기 위해서. 타슈켄트에는 기업은행 지점이 있는데, 여기에 계좌를 개설하면 한국에서 달러를 송금받아 달러로 찾을 수 있지요. 다른 은행도 되기는 하나 여기가 수수료가 저렴한 편이랍니다. 당연히 은행에서 달러만 찾아 나와서 바로 시장으로 가곤 했지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은행 이용을 참 안해요.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답니다.


먼저 우즈베키스탄 숨의 가치에 대한 매우 큰 불신이 자리잡고 있어요. 우즈베키스탄 숨은 정부가 노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환율이 꽤 크게 왔다갔다 해요. 그래서 웬만하면 달러로 돈을 가지고 있으려 하지요. 공식환율-암시장 환율의 차이도 큰데, 암시장 환율은 툭하면 요동치기 때문에 숨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거의 도박과 같죠. 암시장에서 숨을 사서 은행 가서 공식 환율로 달러를 사면 누워서 떡먹기 수준으로 돈을 벌 수 있을 거 같지만 정부도 그 정도로 머리가 안 돌아가지는 않아요.



우즈베키스탄_화폐우즈베키스탄 가서 처음 찍은 사진. 100달러 환전한 건데 돈뭉치를 받을 줄은 나도 몰랐다. 게다가 저건 그나마도 쓰고 남은 돈.



그리고 관광객이 느끼는 요동치는 환율과 현지에서 사는 사람이 느끼는 요동치는 환율의 체감 차이는 엄청나게 달라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즈베키스탄은 농업이 매우 발달한 나라라서 농산물은 매우 저렴한데, 외국인 관광객이 우즈베키스탄에 와서 감자 사서 볶아 먹고 할 일은 없죠. 우즈베키스탄 물가는 농산물, 공산품을 떠나 '우즈베키스탄에서 나오는 것은 무지 저렴하고, 수입제품은 비싼 편'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그래서 우즈베키스탄 숨의 가치를 설명하려면 참 어렵답니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은행 이용을 참 안하는 진짜 이유는 이런 숨의 가치에 대한 매우 큰 불신보다 은행 자체에 대한 매우 큰 불신이 더 크기 때문이에요.


들어올 때는 자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이게 진짜 이유죠. 입금은 자유롭지만 출금은 자유롭지가 못해요. 더 웃긴 것은 이게 절차상 무지 복잡해서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웬만큼 절차가 복잡한 것은 익숙해지면 그만이에요. 외국인한테 절차가 복잡하면 그야말로 답 없는 지옥이겠지만, 현지인한테 절차가 복잡하고 처리가 느리다면 익숙해지면 되는 문제이죠. 그리고 이런 '불편한 느낌'은 상대적인 것이구요.


문제는 이게 절차상 문제가 아니라 '은행에 돈 없다고' 출금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에요. 절차가 복잡하면 근성으로 해결하기라도 할텐데, 은행에 돈 없으니 출금 안 된다고 하면 이건 그냥 답이 없는 것이에요.


왜 이런 희안한 현상이 생겼느냐에 대헤서는 몇 가지 추측해볼 수 있는 단서가 있기는 해요. 여러 추측성 견해를 제외하고 확실한 사실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숨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에요. 게다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생각만큼 엄청나게 가난하지도 않다는 것이구요.


우즈베키스탄에 처음 간 사람들이 한결같이 놀라는 점은 100달러 환전했는데 최소 돈뭉치 3개를 쥐게 된다는 사실이에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최고액권이 1000숨인데, 공식환율로 해도 500원 수준이거든요. 이래서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엄청나게 많은 1000숨 짜리 지폐가 필요한데, 필요한 만큼 시장에 화폐를 공급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달러로 거래를 하자니 현지인들끼리 달러로 거래하는 것은 엄격하게 단속하구요. 이것을 놓고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어요.


먼저 공급이 부족하다보니 달러 대 숨의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이 막히기는 하는데, 문제는 이렇게 되면 어딘가의 장부에는 구멍이 날 수 밖에 없다는 것 - 즉 실제 숨 보유량과 장부상의 숨 보유량에 차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이지요. 그리고 그 구멍은 국가 소유인 은행에 나 있을 확률이 다분히 높지요. 마치 군대에서 숟가락이 하나 없어지면 서로 훔쳐서 채워넣지만 그런다고 없어진 숫가락이 다시 탄생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시장에서 부족한 숨은 돌고 돌아 어떻게 채워진 듯 한데 실제로는 은행에서 구멍이 나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로 정부에서 시장에 숨이 무제한적으로 풀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은행에 들어온 숨은 꽉 쥐고 안 놓아준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다 시장에 너무 숨이 부족해지면 조금 풀어주는 식으로 통화량을 조절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무조건 가난하고 한달 수입이 200불 채 안 되는 것도 아니에요. 시급 자체만 놓고 보면 매우 낮기는 해요. 하지만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일을 두 개 이상 하기도 하고, 맞벌이 부부도 있어요. 게다가 많은 우즈벡인들이 해외에서 일하며 고국 가족들에게 송금해주고 있지요.


정부의 은행들은 이렇게 출금이 자유롭지 못해서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섣불리 은행에 돈을 집어넣으려 하지를 않아요. 그러면 외국계 은행들의 경우는 어떨까요?


외국계 은행들의 경우는 또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답니다. 바로 언제 갑자기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죠. 외국계 회사들이 우즈베키스탄에 진출했다가 어느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망하는 일이 있어요. 어느 정도 자주 발생하는지는 모르겠지만 MTS 사태 때처럼 http://zomzom.tistory.com/364 아무리 큰 회사라도 하루 아침에 갑자기 휙 사라져버릴 수 있지요. 그러다보니 외국계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폭탄을 머리 맡에 올려놓고 자는 기분인 것이죠. 어느 날 아침 기분좋게 눈을 떴는데 갑자기 '은행 망했음.' 딱 떠버리면 은행에 입금했던 돈은 되돌려받을 길이 없으니까요. 그냥 날리는 것이죠.


이러니 우즈베키스탄에서 일반인들은 은행을 잘 이용하지 않아요. 그나마 은행 이용을 할 원인이라도 될 '대출'은 일단 절차 자체가 극악으로 어렵고 승인 나는 것은 또 극악으로 가능성이 희박해 웬만해서는 엄두도 못 낸다고 하구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일반인들은 은행에서의 예금 인출이 자유롭지 못하다보니 일반인은 은행을 이용할 일이 거의 없고, 은행에 예금하는 것 자체를 싫어할 수 밖에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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