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첫 걸음 (2007)

첫 걸음 - 01

좀좀이 2011. 11. 30.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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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한다?


드디어 여행 시작이다!


다른 사람들의 여행은 1월 20일 시작. 그러나 저는 고향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이틀 먼저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좋아 좋아 다 좋아. 드디어 해외여행 시작. 그러나 아직까지는 시작이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해외여행 시작은 1월 22일. 저는 고시원에서 짐을 싸고 인천공항으로 가기 위해 이틀 먼저 여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집에서 짐을 대충 싸니 검은색 여행 가방으로 딱 한 개가 나왔습니다. 무게도 얼마 되지 않아서 수하물로 맡길 필요도 없었습니다. 공항으로 가기 직전, 집 옥상에 올라가서 담배 한 대 태우며 집 주변 풍경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와서 이 풍경은 얼마나 변해있을까요? 일단 여행이 끝나서 한국에 돌아오면 달이 바뀌어요. 한국에 돌아오면 2월. 출국할 때는 1월. 이미 진달래가 핀 것까지 보았는데 얼마나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났을지 궁금합니다. 이름모를 나무에 꽃이 피었습니다. 돌아왔을 때는 저 꽃들이 모두 떨어져 있겠죠. 설마 20일 넘게 계속 피어있겠습니까.


제주공항에 가서 창가 좌석을 달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꽉 차서 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공항에 조금 늦게 나간 것도 있었지만, 확실히 방학중 토요일 비행기에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냥 좌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이지요. 좌석을 받았는데 처음으로 비상구가 있는 줄의 한가운데 좌석을 받았습니다.


진정한 면벽수행이구나!


눈 앞에 벽말고 뵈는 것이 없어요. 정말 보이는 것이 없어요. 아무 것도 안 보여요. 고개를 돌리지 않는 이상 벽 말고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정말 답답했습니다. 두 다리를 다른 좌석들보다 쭉 펼 수 있다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시야가 딱 막혀서 다리를 펼 수 있다는 것보다 훨씬 답답했습니다. 저에게는 쪼그리고 앉아서 앞 사람의 머리카락을 보는 것이 훨씬 편해요. 눈 앞이 막히는 것은 정말 참을 수 없어요.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제주-서울 구간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한 시간 조금 넘게만 참으면 되었습니다. 면벽수행으로 저의 여행은 시작된 거에요. 염주만 있었다면 아마 정말로 비행기 안에서 염주를 굴리며 무언가 중얼중얼 거렸을지도 몰라요. 정말 그런 분위기로 왔습니다.


김포공항에서 내려서 전철을 타고 신길에서 1호선으로 갈아탔습니다. 서울은 아직도 겨울이더군요. 나무가 앙상합니다. 옷도 따뜻하게 입고 왔는데 서울은 추웠습니다. 이래서 서울이 싫어요. 서울의 추위는 정말 견디기 힘들어요.


전철을 갈아타고 고시원에 들어가는 순간...


아무 것도 없는 거다.


정말 아무 것도 없더군요. 충격 그 자체. 방에 있는 것이라고는 책과 옷, 먹다가 해결 못한 3분카레 하나, 밥에 뿌려먹는 가루 한 봉지, 참기름 한 통, 올리브유 한 통...컴퓨터도 고향에 놓고 왔습니다. 볼 만한 책도 모두 고향에 놓고 왔습니다. 들고온 책이라고는 Lonely planet의 모로코 방언 교재와 불어 회화 교재 한 권...이걸로 이틀을 버틸 수는 없어요. 너무 심심해요. 여행 가기 전에 벽과 진지한 대화를 시작할 것 같아요. 텔레비전도 없어요. 자명종도 없어요. 짐을 줄이기 위해 핸드폰은 들고 오고 충전기는 들고오지 않았어요. 즉 저의 본능에 맞추어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인데 제 시각에 본능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아직 이틀이나 남았건만 벌써부터 잠자다가 여행을 못간다는 공포가 엄습해오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선이라면 돈을 날리더라도 다른 비행기 잡아서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선은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어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몰라요. 출국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입국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아무 것도 몰라요. 영어라고는 '안녕하세요' '이거 얼마에요' 정도 수준이에요. 눈치코치로 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관문입니다. 


그래서 바로 친구에게 전화했습니다. 그 친구 집에서 이틀간 신세지기로 했습니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양해를 구하고 바로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튀니지, 모로코, 스페인의 날씨가 어떤지 전혀 몰랐습니다. 우리나라 서울의 11월 날씨라고 들었는데, 11월 날씨라는 말로 인해 더더욱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11월은 날씨가 정확히 양분되는 달이에요. 11월 초는 10월과 같고, 11월 말은 12월과 같아요. 그러면 11월의 초에 맞추어야 할까요, 말에 맞추어야 할까요? 어느 쪽을 따르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짐을 싸고 친구집으로 이동했습니다. 친구는 드라마를 보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동안 인터넷을 하며 놀았습니다. 한참 인터넷을 하며 놀고 있는데 갑자기 땅이 덜덜 흔들리기 시작하더군요. 처음에는 제가 착각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진동이 계속 되고 스탠드가 흔들리더군요. 그래서 옆집이나 윗집이 한밤중에 공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공사를 한다면 소음이 있어야 하는데 소음은 없더군요. 친구가 장난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친구를 보니 친구는 바닥에 드러누워서 드라마를 보고 있었습니다.


'대체 뭐지?'


잠시 후...뉴스가 뜨더군요.


'지진발생'


우오옷! 여행 시작부터 면벽수행과 지진이다! 너무 상큼하고 상쾌해! 여행가서 맨날 잠자느라 정신이 없어서 할 말이 없더라도 나중에 '여행 첫날 면벽수행과 지진을 경험했어!'라는 말로 매우 특별한 여행이었던 것처럼 이야기할 수 있잖아!


여행을 가기 전부터 시차가 사람을 얼마나 많이 피곤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차 적응을 위해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나는 생활을 하기 위해 밤을 새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서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자는 생활을 했더니만 밤을 새려고 하니 너무 피곤하더군요. 그래도 아침 7시가 되어서 잠이 들었습니다.


허리가 너무 아퍼. 끊어지게 아퍼. 도저히 누워있지 못하겠어.


허리가 아파서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오후 2시였습니다. 생활리듬 바꾸기는 완벽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친구가 점심으로 김밥을 사왔더군요. 김밥을 먹고 인터넷을 하며 놀다가 튀니지, 모로코, 스페인의 전압을 알아보았습니다.


220볼트


220볼트? 농담이지? 정말 농담이지? 나 돼지코 안 가져왔어. 110볼트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돼지코 안 가져왔어.


그러나 220볼트였습니다. 일요일...가게 문이 열린 곳이 있을까? 반드시 가져왔어야했던 돼지코를 판단착오로 안 가져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상태로 여행을 떠나면 건전지 값으로 불필요한 지출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나고 말 것이었습니다. 건전지를 팔 지도 의문이었구요. 그래서 무작정 밖으로 나갔습니다. 다행히 친구 집 근처의 전파사가 문을 열었더군요. 돼지코가 있냐고 물어보자 그냥 하나 주었습니다. 공짜로 돼지코 획득했습니다. 여행이 무사히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런 식의 진행이라면 매우 즐겁고 신나고 편한 여행이 될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제가 생각한 것보다 잘 풀리고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저녁은 친구와 고기부페에 가서 폭식을 했습니다. 여행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스테미너 충전을 위한 폭식이었습니다. 먹고나니 정말 힘이 솟구치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다시 밤을 새기 위해 인터넷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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