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미분류

감귤주스와 옥수수수염차

좀좀이 2013. 3. 2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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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돌아온 후, 계속 코 때문에 고생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잘 때 콧물이 목으로 내려와서 아침마다 가래 뱉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한국 와서 코 속에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이유는 아직 모르겠다. 하여간 코에 문제가 생겨서 잘 때마다 비강에서 생긴 분비물이 목으로 내려가 목을 자극해 목이 매우 안 좋다. 그렇다고 앉아서 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자꾸 목이 아프다보니 물을 많이 마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음료수 안 사먹기로 결심한지 며칠 되지도 않아 음료수를 사왔다.




콜라를 제외하고 내가 가장 많이 사서 마시는 두 음료수. 이것들을 즐겨 마시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먼저 감귤주스.


나는 신 것을 못 먹는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신 것은 싫다. 어렸을 때에는 신 것을 아예 못 먹었기 때문에 귤, 사과는 입에 대지도 못했다. 아무리 달다고 해도 내가 먹어보면 셔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제 사과는 조금 먹지만 귤은 아직도 입에 대지도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귤은 그냥 고역이었다. 고향이 고향인 만큼, 귤을 먹을 기회는 종종 있었다. 그 말은 곧 내게는 종종 고문같은 시간이 펼쳐졌다는 것이었다. 친구집에 놀러가면 간식이라고 귤을 주시는데, 한 조각도 건드려본 적이 없다. 친구들이 귤을 맛있게 까 먹으며 왜 귤을 안 먹냐고, 빼지 말고 어서 먹으라고 하면 당당하게 '나는 귤 싫어해'라고 말했다. 누군가 집에 귤을 가져다주면 그날부터 마음이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집에서는 귤을 먹으라고 하는데 집어넣고 씹으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에는 반드시 귤을 먹어야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씹지도 않고 그냥 삼켜버렸다. 고향에는 귤이 너무 달기만 하면 '싱겁다'고 안 좋아하고 적당히 신 맛이 있는 것을 맛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분들께서 맛있다고 하는 귤을 우리집에 나누어주시는 날에는...내게 그것들은 그나마 참아낼 수 있는 것조차 아니었다.


오렌지 주스도 마찬가지. 집에서 오렌지 주스를 사주면 사약 받듯이 받아 마셨다. 혀가 저릿저릿해지는 그 느낌. 그게 너무나 괴롭고 싫었다. 어디선가 선물로 델몬트 오렌지 주스가 들어오면 집에 사약을 쌓아놓고 언제 사약이 내려지나 기다리는 그런 기분이었다. 고작 한 병 있는 오렌지 주스도 내게는 사약 한 드럼처럼 보였다.


아마 델몬트였을 거다. TV에서 오렌지를 덥썩 베어무는 광고가 나왔는데, 그거 볼 때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 신 것을 어떻게 저렇게 베어먹지? 미친 거 아니야? 저러고도 웃을 수 있어? 그 광고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웠다. 차라리 차력사들이 차력 하는 게 더 덜 괴로워 보였다.


그런데 귤의 친구들 중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게 생겼으니, 그건 바로 한라봉. 한라봉이 처음 나왔을 때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는 한라봉이 엄청난 사치였다. '나 어제 한라봉 먹었다!'라고 학교 와서 당당히 자랑하고, '오늘 한라봉을 먹었다. 참 맛있었다'라고 일기를 써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던 때였으니까. 생긴 것도 기묘하게 생겨가지고 가격은 말도 못하게 비쌌기 때문에 그것은 일단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도 한라봉만큼 커다란 충격을 주었던 우리나라 과일은 보지 못했다. 요즘 누가 학교 와서 '나 어제 무슨 과일 먹었다!'라고 자랑한단 말인가.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께 가끔 옛날 바나나가 사치의 대상이었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아마 그 정도쯤 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그때 귤이 남아돌았던 내 고향에서 한라봉 남았다고 가져다주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집에 돌아오셔서 현관에서 내게 뭔가 주셨다. 그때 우표를 모으고 있어서 아버지께서 가끔 우표를 떼서 가져다주시곤 하셨는데, 그날 내게 주신 것은 우표가 아니었다.


바로 한라봉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모여서 한라봉을 까 먹었다. 아버지께서는 그냥 드셨고, 어머니께서는 귤보다 향이 좋다고만 하셨다. 그리고 나는? 나는 이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비싸서? 천만의 말씀이다. 내가 놀란 이유는 바로...


내가 먹을 수 있어!


신 맛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향긋하고 달 수가 없었다. 아니, 세상에 이런 과일이 존재하다니! 아무리 한라봉이 비싸고 맛있다고 해도 귤의 사촌처럼 생겨서 시큰둥했다. 주변에서 아무리 한라봉 먹었다고 자랑해도 시큰둥하게 반응하고 하나도 안 부러웠던 이유는 귤을 끔찍하게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요즘 먹어본 한라봉은 신 맛이 약간 있던데, 예전에 - 대학교 저학년 시절까지 - 가끔 맛보던 것들은 정말 사기꾼, 사기 캐릭터 같은 존재였다.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가끔 어렸을 때 귤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았겠다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웃으며 귤 싫어해서 귤 안 먹는다고 하면 꽤 신기해한다. '귤을 하도 먹어서 질려서 그러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서 이야기하지 않을 뿐, 지금까지도 귤을 먹는다는 건 내게 고문이다. 아무리 개량종이 나와서 맛있고 시지 않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내게 전부 역치를 벗어나버린 영역에 있는 것들이다.


아직도 귤은 전혀 못 먹는다. 이건 노력해도 안 되더라. 우즈베키스탄은 과일이 모두 한국보다 훨씬 달아서 귤도 도전해보려 했지만 무리였다. 시장에서 맛 한 번 보고는 바로 뒤돌아섰다. 아무리 억지로 밝은 표정을 지으려 해도 괴로워서 눈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요즘 나오는 것들은 안 시다는데 먹을 때마다 '먹지 말았어야 했어' 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귤 향기도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귤 향기는 매우 좋아했다. 즉, 귤은 내게 입에만 안 넣으면 좋은 것이었다. 그런데 귤을 까서 알맹이는 버리고 껍질에서 향기만 맡을 수는 없다는 게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 내가 감귤 주스를 먹게 된 이유는 오직 하나. 모처럼 고향 내려갔는데 나를 반기고 있는 것은 삼다수 감귤주스였다. 어머니께서 전혀 안 시니까 한 컵 마시라고 따라주시는데 일단은 마시기로 결심했다. 일단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왕 먹고 괴로울 거 급히 삼켜버려야 덜 괴로우니 벌컥벌컥 마시려는데...당연히 주스가 그리 쉽게 넘어갈 리는 없었다. 결국 맛을 다 느끼며 마실 수 밖에 없었는데...


마셔보니 이건 어렸을 때 먹었던 오렌지 주스처럼 괴롭지 않았다. 물론 신 것을 어렸을 때보다 잘 먹게 된 것도 있지만, 확실히 달기는 달았다. 감귤은 그렇게 괴로운데 왜 이건 안 괴롭고 맛있지? 분명 100%라는데? 처음 감귤 주스 먹으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혹시 혀 양쪽 끝에만 닿지 않으면 되는 것인가? 귤도 즙을 짜서 먹으면 먹을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귤 껍질을 홀라당 벗기고 알맹이만 앞니로 살살 뜯어먹으면 먹을 수 있다는 것인가? 하여간 충격과 미스테리였다. 분명 100% 감귤 주스라는데 대체 왜 내가 맛있게 먹을 수 있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감귤주스는 삼다수에서 나온 것이다. 그게 맛은 제일 좋았다. 그런데 그건 육지로 안 올려보내는 건지, 마트에 안 들여놓는 건지 구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있는 대로 감귤 주스를 사 마시고 있다. 그리고 감귤 주스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오렌지 주스까지는 마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귤은 못 먹는다...한라봉 주스를 처음 보았을 때 어렸을 때 처음 한라봉 먹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 정도로 충격적으로 맛있을까? 내심 기대하고 맛본 한라봉 주스는 감귤주스보다 맛없었다...하긴, 진짜 괜찮은 한라봉으로 주스 만들면 그 가격에 팔 수가 없지. 그래서 지금도 한라봉 주스는 안 사먹는다. 감귤주스가 훨씬 맛있다.


그리고 옥수수 수염차


이건 감귤 주스같은 이야기는 없다.


옥수수 수염차가 처음 나왔을 때 당연히 안 사 먹었다. 그냥 왜 돈을 주고 차를 사 마시나 했다. 내게 '차'라는 것은 그냥 '마시는 것'에 불과했다. 차를 마실 바에는 커피를 마셨다. 어렸을 적 녹차가 매우 맛있을 거라 상상했는데 마셔보니 쓰기만 하고 별로였다. 그렇다고 향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도 아니었다. 어렸을 적, 집에는 언제나 보리차가 있어서 보리차만 매우 많이 마셨다. 밥도 말아먹고, 그냥 마시기도 하고...내가 상상하던 그 '차의 맛'은 대학교 3학년 때에서야 찾았다. 그것은 바로 수국차. 설탕 하나도 안 넣었는데 달더라.


"오! 이게 바로 내가 찾던 차야!"


그래서 수국차를 구입했는데...맛은 좋았다. 단지 티백을 두 번째 우려내면 그때부터는 단 맛이 거의 없다는 게 흠이었을 뿐. 한 번만 우리고 티백을 버려야한다니 뭔가 아쉬워서 안 사게 되었다. 사실 뭔가 아쉬워서가 아니라 정확한 이유가 있었다. 커피를 입에 달고 사는데, 수국차를 커피 대용으로 삼기에는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커피 대용으로 수국차를 마신다면 두 세 번은 우려내야 경제적으로 비슷해질 텐데 두 번째부터 맛이 확 떨어져버리니 매번 마실 때마다 새 티백을 꺼내야 했고, 그러면 금전적으로 너무 큰 무리였다. 지금도 수국차는 매우 좋아한다. 한 모금 삼킨 후 입에 활짝 피어나는 달콤한 향이 너무 좋아서.


그 다음 괜찮게 마신 것은 현미 녹차. 이건 왠지 보리차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하지만 이것은 그냥 거기에서 끝이었다. 커피 대용으로 삼기에는 너무 약했고, 그렇다고 보리차 대용으로 삼기에는 맛이 별로였다. 수국차는 커피 대용품으로 삼기에 딱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가격에서 밀려나 버린 데에 비해, 현미 녹차는 그 무엇도 대체할 수가 없었다. 참 애매한 위치랄까. 가끔 마시기는 한다. 커피를 하도 많이 마셔서 속이 울렁거릴 것 같을 때.


대학교 졸업하고 잠깐 회사를 다닐 때였다. 대학생 때부터 인스턴트 커피는 입에 달고 살았다. 그 버릇이 어디 갈 리 없었다. 그래도 커피는 많이 줄였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대학생 때에는 집에 있을 때 툭하면 작은 보온병에 인스턴트 커피 믹스 2~3개씩 부어서 미지근하게 만들어 후루룩 들이키고는 했는데, 회사에서는 종이컵에 타 마셔야 해서 종이컵에 인스턴트 커피 믹스를 2~3개씩 부어서 마실 수는 없었다. 그래도 참 열심히 회사의 인스턴트 커피를 축내었다. 종이컵에 인스턴트 커피 믹스 1개 넣고 미지근하게 만들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일하다가 식으면 한 번에 후루룩 마시는 걸 하루에 대여섯 번은 했으니까.


그때 회사에는 커피 외에 녹차도 있었고, 옥수수 수염차와 2% 부족할 때 복숭아맛도 비치되어 있었다. 2% 부족할 때가 처음 나왔을 때는 엄청나게 많이 사 마셨다. 애들이랑 1.5리터 짜리 하나 사서 같이 돌려먹기도 하고 그랬는데, 고등학교 때 하도 많이 마셔서 질려버렸다. 옥수수 수염차는 '그거 왜 먹지?'라고 생각했다. 다이어트에 좋다고 하는데 내가 다이어트를 할 일은 없었다. 게다가 내 머리 속에 '옥수수 수염'이라는 것은 약재였지, 그냥 먹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열심히 회사를 다니며 열심히 커피를 축내고 있던 어느 날. 출근하자마자 커피를 마시려고 갔는데 커피가 없었다.


'아놔...어떻게 하지?'


퇴근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그냥 참든가 하겠는데 이제 출근한 상황. 그런데 커피는 없었다. 커피 없는 오전을 어떻게 보내야 한단 말인가! 녹차는 커피의 대용품이 될 수 없었다. 게다가 아침부터 썩 좋아하지도 않는 녹차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일단 뭔가 마시고는 싶은데 녹차를 제외하고 나니 남는 것은 2% 부족할 때와 옥수수 수염차 뿐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고민이네...


그래도 이미 질려버린 2% 부족할 때보다는 옥수수 수염차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옥수수 수염차를 집어들고 자리에 와서 앉았다. 아침부터 기분 잡쳐버렸다고 속으로 툴툴대며 시큰둥하게 옥수수 수염차를 따서 한 입 마셨다.


"어? 이거 맛있네?"


구수한 맛과 거기서 살짝 느껴지는 달콤한 향기. 뭐 먹을 게 없어서 옥수수 수염 달여낸 물이나 마시고 있냐는 나의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차도 있구나 싶었다. 부담스러운 맛도 아니고, 작은 패트병 하나 가져다 놓으면 자꾸 커피 타려고 들락날락거릴 필요도 없었다. 500ml 짜리 패트병 하나면 반나절을 보낼 수 있었다. 게다가 이걸 자꾸 마시니 커피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이때부터 나의 회사 생활은 아침에 와서 옥수수 수염차 하나 집어들고 자리에 가서 일하다가 10시에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가져다놓은 옥수수 수염차 마시다가 점심 시간 될 때 한 통을 끝내고 점심 먹고 와서 옥수수 수염차 또 한 통 가져다놓고 그거 마시다 3시쯤 되면 또 커피 한 잔 마시고 또 계속 옥수수 수염차 마시다가 퇴근 시간 되면 남은 옥수수 수염차 다 마시고 퇴근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신기한 게 옥수수 수염차는 맨날 2통씩 마셔도 질리지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온 주변에서 그렇게 커피를 줄이라고 잔소리를 해 대서 심히 짜증난 상태였는데 이걸 마시니 자연스럽게 커피가 줄었다. 당연히 회사에서 두 잔만 마신다고 하니 더 이상 내게 커피를 줄이라고 잔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싹 없어졌다.


그렇게 열심히 옥수수 수염차를 축내던 어느 날. 어머니와 대화하다 요즘 옥수수 수염차 마셔서 커피 이제 많이 안 마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그거 너무 많이 마시지 마. 옥수수 수염차도 너무 많이 마시면 몸에 안 좋다고 하더라. 하루에 그거 한 통만 마셔."


그래서 옥수수 수염차를 한 통만 마시기로 했다. 일단 아침에 가서 한 통 가져온 후, 아침은 하던 대로 옥수수 수염차 한 통과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점심을 먹고 나면 예전처럼 커피를 또 열심히 축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옥수수 수염차는 간간이 사 마셨다. 특히 여름에 목 마르면 잘 사 마셨다.


우즈베키스탄에 있었을 때, 인스턴트 커피는 거기도 있었기 때문에 종종 타 마셨다. 희안하게 식혜는 매우 그리운데 옥수수 수염차는 그립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래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 방을 잡고 마실 거 사러 가게에 갔더니 옥수수 수염차가 있었다. 예전에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서 사서 마셔 보았는데 역시나 맛있었다.


그런데 왜 내가 집에서 옥수수 수염차 티백 사서 끓이면 이 맛이 안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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