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이랑 가리봉이 많이 쇠락했다구?'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대림과 가리봉이 많이 쇠락했다는 뉴스를 봤어요. 중국인들이 대림동, 가리봉동에서 경기도 시흥시, 안산시 등으로 많이 이전해서 대림동과 가리봉동이 예전처럼 중국인들이 엄청나게 바글거리지 않고, 인력을 구하기도 어렵다는 내용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중국인들이 많이 빠져나갔다는 말은 언론을 통해 많이 접했어요. 대림동, 가리봉동에서 중국인들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말도 들었구요. 그래서 과거와 달리 대림동, 가리봉동이 많이 조용해졌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하지만 중국인들이 서울 남서부 금천구, 구로구, 영등포구에서 경기도 시흥시, 안산시 등으로 이주하고 있다는 건 이때 기사를 보고 처음 알았어요. 중국인들이 경기도 남서부권으로 많이 이동하고 있다고 해요. 수원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수원에도 최근 들어서 중국인들이 꽤 많이 늘어난 거 같다고 했어요. 중국인들이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 뿐만 아니라 거주지도 서울 남서부에서 경기도 남서부로 이동중이라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한 번 가볼까?"
대림동과 가리봉동은 예전에 갔었어요. 마지막으로 간 게 2020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때만 해도 대림동과 가리봉동은 중국인이 매우 많은 곳이었어요. 그 후 어떻게 바뀌었고, 요즘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졌어요.
귀찮다.
하지만 대림동과 가리봉동을 가려면 귀찮음을 무릅쓰고 가야 했어요. 서울 남서부라서 의정부에서 가려면 진짜 지루함을 참아가며 가야 해요. 심리적 마지노선 노량진역을 지나서 또 한참 가야 하니까요. 의정부 기준으로 가리봉동은 1호선을 타고 도봉산역으로 가서 도봉산역에서 7호선 남구로역으로 가야 하고, 대림동은 대림역으로 가야 해요. 지하철 노선도상으로는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지하철 노선도를 잘 봐야 해요. 지하철 노선도에서 지하철 7호선을 보면 도봉산역에서 고속터미널역 사이에 역이 매우 촘촘히 있어요. 그러니까 시간 무지 걸리고 엄청 지루해요. 가뜩이나 지하철로 가야 해서 창밖 보이는 것도 없는데 그걸 또 한참 타고 가야 하니까요.
"오늘 서울 가서 밤새 놀아볼까?"
배스킨라빈스에서 2024년 2월 이달의 맛 아이스크림인 바삭한 쫀꾸렛 아이스크림을 먹고 카페 가서 글을 쓰고 유튜브에 영상을 업로드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 6시가 되었어요. 배스킨라빈스 갈 때 혹시 마음이 오늘 나가서 놀라고 권유할지 몰라서 오즈모포켓3을 챙겨서 나왔어요.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어요. 진짜로 밤새 서울을 걸으며 놀고 싶었어요. 의욕이 불타오르고 있었어요.
이렇게 의욕이 불타오를 때는?
제일 귀찮은 것부터 한다.
밤새 서울을 돌아다녀야겠다는 의욕이 불타올랐기 때문에 서울에서 제일 가기 귀찮은 곳을 가기로 했어요. 의정부 기준으로 서울에서 가장 가기 귀찮은 구는 두 곳 있어요. 하나는 서울 남동부 끄트머리 강동구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 남서부 끄트머리 금천구에요. 강동구와 금천구는 의정부에서 지하철 타고 갔다가 이건 아닌 거 같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던 곳이었어요. 지하철을 한참 타고 가야 해서 도착하기도 전에 지루하다 못해 질려버렸는데, 문제는 갔으면 의정부 돌아와야 하잖아요. 제가 살고 있는 의정부 기준으로 가장 가기 귀찮은 곳은 금천구와 강동구인데, 이 중 금천구를 가보고 싶었어요. 전에 뉴스에서 금천구, 구로구, 영등포구에 살던 중국인들이 시흥시, 안산시 등으로 이주해서 중국인들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해서요.
"가자!"
전철을 타고 금천구 가장 남쪽에 위치한 전철역인 석수역으로 갔어요. 석수역부터 북쪽으로 걸어올라가며 서울의 골목길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어요. 이게 저녁 8시였어요.
그리고 날이 바뀌고 새벽 3시 반이 되었어요.
"아, 죽겠네."
저녁 8시부터 걷기 시작해서 한 번도 안 쉬고 새벽 3시 30분까지 걸어다니며 서울의 골목길 영상을 촬영했어요. 7시간 반을 걸었으면 종로 청계광장에서부터 걷기 시작해도 청게천과 중랑천 타고 의정부역까지 가요. 과장이 아니라 예전에 이렇게 걸어본 적이 있거든요. 하지만 석수역에서부터 영상 촬영하면서 걸었더니 고작 온 게 대림역이었어요. 이것도 원래는 못 올 뻔했어요. 시흥동에서 도저히 못 빠져나와서 시흥동 북부와 독산동 거의 다 제껴버리고 가리봉동으로 넘어가서 가리봉동과 구로동을 대충 돌아다니고 대림동으로 넘어온 게 3시 30분이었어요.
다리가 아픈 건 아니었지만, 발 뒷꿈치가 갈라져서 걸을 때마다 매우 따가웠어요. 더 걷기 힘들었어요.
'대림동도 완전히 죽었네?'
힘들어서 대림동 골목길 영상 촬영은 안 했지만, 대림동도 돌아다녔어요. 예전의 대림동이 아니었어요. 예전에는 대림동이 심야시간에도 불야성이었어요. 왜냐하면 밤 늦게 일이 끝나는 중국인들이 식사하고 술 마시고 놀려고 매우 늦게 오곤 했거든요. 여기에 새벽 4시가 되면 중국인들이 인력시장으로 나가기 때문에 이때부터 새벽 장사를 하는 가게들이 있구요. 하지만 제가 갔을 때 대림동은 가게들이 거의 다 문을 닫았어요. 24시간 영업이라고 적혀 있는 가게는 많았지만, 문 열고 장사하는 가게는 큰 길 쪽 몇 곳 외에는 없었어요.
'대림동에 왔으니 뭐 먹고 갈까?'
대림역 12번 출구 옆 골목길을 보며 아주 늦은 저녁이자 매우 이른 아침으로 밥이나 먹고 갈지 고민했어요. 대림동은 의정부에서 멀어요. 하지만 대림동은 중국인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보니 한국화가 덜 된 중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에요. 의정부에서 마라탕을 즐겨 먹곤 하지만, 그건 한국화 많이 된 마라탕이고, 진짜 중국의 맛에 가까운 음식을 먹으려면 중국인들 밀집 지역인 대림동 쪽으로 가야 해요.
'라즈지? 여기까지 왔으니 라즈지 먹고 싶긴 한데...'
중국 양념치킨이라 할 수 있는 라즈지를 팔게 생긴 가게가 안 보였어요.
'탄탄면 파는 곳 없나?'
라즈지 아니면 탄탄면을 먹고 싶었어요. 마라탕은 별로 먹고 싶지 않았어요. 중국의 맛 강한 마라탕은 원래 그리 즐겨먹지 않았어요. 예전에 중국의 맛을 느끼려고 대림동 오곤 할 때도 저는 마라탕이 아니라 탄탄면을 먹었어요. 오랜만에 탄탄면을 먹고 싶었어요.
"저기 꽤 오래되었을 건데?"
대림역 12번출구 바로 옆 골목 입구에서 대림역을 등지고 왼쪽을 보면 아주 좁고 짧은 길이 하나 있어요. 이 길 끝에는 '미국가주우육면대왕'이라는 식당이 있어요. 대림역 미국가주우육면대왕은 대림동에서 나름 오래된 식당이에요. 제가 처음 대림동 갔었을 때도 미국가주우육면대왕은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2010년대 내내 있었던 식당이에요. 단점이라면 길 바로 옆에 안 있어서 모르고 지나가기 쉬운 식당이에요.
"저기 가서 탄탄면 있나 물어봐야겠다."
미국가주우육면대왕 식당은 24시간 식당이었어요. 미국가주우육면대왕으로 갔어요. 안에 손님이 두 테이블 있었어요.
"여기 탄탄면 있나요?"
여직원분은 한국어를 몰랐어요. 대신 남자 사장님으로 추정되는 분은 한국어를 매우 잘 하셨어요. 그래서 남자 사장님과 대화했어요.
"탄탄면은 없어요."
메뉴를 봤어요. '마른고추볶음밥'이라는 신기한 메뉴가 있었어요.
"마른고추볶음밥 많이 맵나요?"
"예, 그건 많이 매워요."
마른고추볶음밥은 많이 맵다고 하셨어요. 매운 것을 먹고 싶지는 않았어요. 탄탄면은 없었고, 마른고추볶음밥은 많이 맵다고 하니 지금은 영 아니었어요. 그러면 남는 메뉴가 계란볶음밥이었어요.
"혹시 볶음밥에 같이 먹을 만한 거 다른 거 없나요?"
그러자 사장님께서 메뉴판을 건네주셨어요.
'라즈지다!'
중국식 양념치킨인 라즈지가 있었어요. 라즈지 가격은 18000원이었어요.
"계란볶음밥에 라즈지 주세요."
계란볶음밥과 라즈지를 주문했어요.
밑반찬이 나왔어요. 밑반찬은 소금을 뿌린 볶은 땅콩과 짜사이였어요. 소금 뿌린 볶음 땅콩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식사 나오기 전에 숟가락으로 다 퍼먹었어요. 짭짤하고 고소해서 매우 맛있었어요.
제가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어요.
먼저 계란볶음밥은 위 사진과 같이 생겼어요.
"여기 볶음밥 잘 한다."
계란볶음밥은 매우 포슬포슬했어요. 밥알이 떡지지 않았어요. 오이와 당근이 들어가 있었어요.
'중국 여행에서 먹었던 맛이랑 비슷한데?'
미국가주우육면대왕의 계란 볶음밥으 중국 여행에서 먹었던 볶음밥 맛과 비슷했어요. 맛 차이는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식감에서는 약간 차이가 있었어요. 식감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쌀 차이 때문일 거에요. 중국 여행에서 먹었던 볶음밥보다 밥알이 조금 더 찰기가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똑같았어요.
"여기 볶음밥 진짜 잘 한다."
우리나라에서 먹어본 볶음밥 중 여기가 제일 맛있게 잘 만들었어요. 밥알이 떡지지 않고 전부 떨어져 있었고, 밥알 하나하나 다 잘 볶아져 있었어요. 불향이 엄청나게 강하지는 않았지만, 밥을 매우 잘 볶았어요. 이렇게 밥 잘 볶아서 볶음밥 만드는 집은 매우 귀해요. 제가 먹어본 볶음밥 중 이곳의 계란볶음밥은 손에 꼽도록 잘 볶은 볶음밥이었어요. 당근, 오이와 계란이 들어간 단순한 조합이지만 맛있었어요.
'여기는 볶음밥 맛집인데?'
우리나라에서 중국 식당이 우리나라 식당보다 볶음밥은 매우 잘 만들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중국 식당에서 먹는 볶음밥 맛은 중국 현지에서 먹었던 볶음밥 맛보다 현저히 떨어졌어요. 중국 현지에서 먹었던 볶음밥 맛을 가장 가깝게 잘 구현해낸 곳이 여기였어요. 이러니까 매운 거 먹고 싶은 마음 없어서 안 고른 마른고추볶음밥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졌어요. 계란 볶음밥을 이렇게 잘 만든다면, 마른고추볶음밥도 분명히 맛이 상당할 거였어요.
다음은 중국식 양념치킨인 라즈지였어요. 라즈지도 맛있었어요. 라즈지 맛 역시 중국 여행 갔을 때 먹었던 맛과 거의 비슷했어요. 미국가주우육면대왕의 라즈지는 맵지는 않았어요. 마른 고추가 많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렇게 맵지는 않았고, 산초가 많이 들어가 있지 않아서 먹을 때마다 쌔하게 얼얼한 맛이 강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초록색 줄기는 마늘쫑이었어요. 마늘쫑은 혀를 아리게 하는 매운 맛이 있었어요.
미국가주우육면대왕의 라즈지는 짭짤했어요. 아무 것도 없이 라즈지만 먹기에는 조금 짰어요. 술안주나 저처럼 볶음밥 시키고 밥반찬으로 먹기에는 좋은 맛이었어요. 라즈지가 원래 이거 자체를 식사로 판매하는 메뉴가 아니라 안주로 파는 메뉴이고, 라즈지는 중국에서 먹었을 때도 짭짤했어요. 짭짤하고 고소하고, 다양한 종류의 매운맛이 가볍게 섞인 맛이었어요.
라즈지는 밥반찬으로 먹으면 밥도둑이었어요. 계란 볶음밥과 매우 잘 어울렸어요.
라즈지와 계란볶음밥을 매우 맛있게 먹었어요. 계산을 한 후 사장님께 여기 오래되지 않았냐고 여쭤봤어요. 사장님께서는 15년 되었다고 하셨어요. 대림역 미국가주우육면대왕은 2010년대 내내 계속 한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제 기억이 맞았어요.
대림역에서 24시간 운영하는 맛집을 찾는다면 대림역 12번 출구 입구에 미국가주우육면대왕이 있어요. 그런데 여기는 네이버 지도에서 찾으려면 '미국가죽우육면대왕'으로 찾아야 해요. 식당 이름이 미국가'주'우육면대왕이 아니라 미국가'죽'우육면대왕으로 잘못 등록되어 있어요. 카카오맵에서는 아예 검색되지 않고 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