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동해안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에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구룡포항으로 갔어요. 이날 일정은 구룡포항에서 호미곶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 14코스를 걷는 것이었어요. 포항시에는 여행 갈 만한 곳이 여러 곳 있었어요. 그러나 그곳을 다 가는 건 무리였어요. 단 한 곳을 엄선해서 다녀와야 했어요. 제가 선택한 코스는 해파랑길 14코스였어요.
해파랑길 14코스는 구룡포항에서 호미곶까지 걷는 길인데, 대한민국 본토 동쪽 끝을 걷는다는 의미가 있었어요. 제가 알기로는 해파랑길 14코스가 해파랑길 코스 중에서 매우 인기 좋은 코스에요. 한반도 동쪽 끝을 걷는다는 의미도 있고, 호미곶과 구룡포항이 포항시를 대표하는 관광지이기도 해요. 코스 길이도 길지 않고, 난이도도 쉽구요. 포항시 대표 관광지를 구경하면서 걷는 길인데다 대한민국 본토 동단 끝자락을 걷는다는 의미까지 있으니 누구나 한 번 가볼 만한 곳이에요.
게다가 해파랑길 14코스를 걸으면 포항시 여행 일정으로 매우 좋았어요. 소요시간이 적당해서 아침에 출발하면 천천히 걸어도 늦은 점심에는 완주할 수 있었어요. 완주 후 호미곶 구경하고 버스 타고 구룡포로 돌아나오면 되었어요. 구룡포는 포항 시내에서 대중교통 접근성이 상당히 뛰어나요. 그러니 포항 1일 여행 코스로는 해파랑길 14코스만한 곳이 없었어요.
구룡포항에 도착해서 구룡포를 먼저 구경하고 해파랑길 14코스를 걸을지 고민했어요.
'아냐, 그냥 해파랑길부터 걷자.'
경상북도 포항시 구룡포는 구경할 것이 많은 곳이지만, 아직 아침이라 가게들이 문을 열지 않았어요. 막 아침 9시가 넘었어요. 그래서 해파랑길 14코스부터 걷기 시작했어요.
"여기는 진짜 잘 왔다!"
해파랑길 14코스는 매우 좋은 길이었어요. 해파랑길 14코스는 아름다운 호미반도의 동쪽 해안가를 따라 걷는 길이에요. 길이 매우 쉽고 풍경은 상당히 아름다웠어요. 길 자체는 해안가 산책로라고 해도 되는 길이었어요. 평탄하고 포장된 길을 쭉 걸어가는 길이었어요.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코스 길이도 별로 길지 않아서 소요시간도 그렇게 엄청나게 많이 걸리는 길은 아니었어요. 해파랑길 14코스는 14.2km에요. 길이 쉽고 길이가 14.2km이기 때문에 누구나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는 길이었어요.
호미곶에 도착한 후, 호미곶 일대를 구경하고 9000번 버스를 타고 구룡포항으로 돌아왔어요. 구룡포항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되었어요. 원래는 이렇게 오래 걸릴 것이 아니었어요. 걷는 중에 영상 촬영한다고 시간을 많이 소요했고, 호미곶 가서 스탬프 모으느라 해파랑길 14코스보다 더 걷다 보니 시간이 걸렸어요. 호미곶에서 구경하며 노느라 또 시간이 걸렸구요.
"포항 마지막 식사는 진짜 잘 먹어야해."
포항의 마지막 식사이자 이번 경상북도 동해안 여행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정말 잘 골라야 했어요.
나 전날 하루종일 식사 망했단 말이야!
가장 큰 이유는 전날 식사를 완전히 망쳤기 때문이었어요. 전날 원래 계획은 장사시장에서 점심을 먹고 죽도시장에서 저녁을 먹는 거였어요. 그런데 장사시장 오일장은 제대로 열리지 않았어요. 오전에 야채 파는 할머니 한 분 왔다 가셨다고 하셔서 점심이 되기도 전에 파장했다고 했어요. 그래서 붕어빵 6개 먹는 것으로 점심을 때웠어요. 이후 포항 들어와서 죽도시장 갔더니 죽도시장도 시장 규모는 크지만 매우 일찍 닫는 시장이었어요. 그래서 죽도시장에서도 호떡 2개에 김밥 먹고 끝났어요.
전날 식사가 망했기 때문에 더욱 이날 식사는 잘 먹어야했어요.
"여기는 모리국수가 유명하다고 했지?"
경상북도 동해안 여행을 하면서 대게는 울진에서 먹었고, 과메기는 영덕에서 먹었어요. 그래서 포항에서는 과메기를 또 먹을 생각이 없었어요. 포항에서 먹을 것을 찾아봤더니 향토음식으로 모리국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모리국수를 먹기로 했어요.
구룡포항에 있는 모리국수 식당을 검색했어요. 가장 유명한 식당은 까꾸네 모리국수였어요.
"모리국수 먹어야겠다."
이 여행 마지막 식사로 까꾸네 모리국수 가서 모리국수를 먹기로 했어요. 까꾸네 모리국수로 갔어요.
까꾸네 모리국수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3시였어요. 식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식당 안에는 한 커플이 모리국수를 먹고 있었어요.
"할머니, 모리국수 지금 되나요?"
"안 돼. 모리국수는 2인분부터 팔아."
"저 혼자 2인분 먹으려구요."
방 안에 앉아 계신 할머니께서는 모리국수는 2인분부터 된다며 안된다고 하셨어요. 저 혼자 2인분을 먹을 거라고 했어요. 할머니께서는 말없이 계속 앉아 계셨어요.
"모리국수 2인분이요."
"가서 앉아."
"예?"
"이제 끓여야하니까 자리 가서 앉으라구."
할머니께 다시 한 번 저 혼자 2인분을 먹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가만히 서 있자 할머니께서는 계속 자리에 앉아 계시다가 일어나셨어요. 제게 자리 앉고 싶은 곳에 가서 앉으라고 하시고 주방으로 들어가셨어요.
까꾸네 모리국수는 조그마한 노포였어요. 식당 안에는 테이블이 4개 있었어요.
까꾸네 모리국수 가격은 2인분이 15000원이었어요.
'2인분에 15000원이면 저렴하네.'
바닷가 왔으면 바닷가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혼자 1인분 먹을 만한 음식은 가격이 15000원선이에요. 물회 1인분이 15000원이고, 홍게라면 1인분도 15000원이에요. 이건 거의 전국 공통일 거에요. 그런데 까꾸네 모리국수는 2인분이 15000원이었어요. 2인분이 도저히 못 먹을 만큼 양이 많다고 해도, 2인분에 15000원이면 먹다 남기면 되요. 2인분에 3만원이라면 무리지만, 2인분에 15000원이면 물회 한 그릇 먹은 것과 같은 가격이었어요. 그러니 2인분이 양이 매우 많다고 해도 혼자 가서 주문해서 먹어도 되는 가격이었어요.
까꾸네 모리국수가 보도된 신문이 액자로 만들어져서 걸려 있었어요. 신문 기사에는 모리국수의 유래와 까꾸네 모리국수의 가게명 유래가 나와 있었어요. 신문 기사에 나와 있는 내용을 보면 구룡포항에서 일하는 어부이 새벽판장에 올리고 남은 수산물들을 들고 와서 국수와 함께 끓여달라고 한 것을 끓여주던 것이 유래라고 해요. 그래서 초기에는 특별한 이름 없이 그냥 국수라고 불렀다고 해요.
'모리'는 어디에서 온 말인지 의견이 분분하다고 나와 있었어요. 여러 수산물을 들통 속에 몰아넣어서 '모리'라는 설도 있고, '내도 모른데이'라고 해서 '모리'라는 설도 있고, 일본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까꾸네 모리국수의 식당명은 이 식당으로 찾아온 어부들이 매우 어렸던 막내딸을 '까꿍까꿍' 어르다가 발음이 변해서 '까꾸네'로 되었다고 나와 있었어요. 아주 오래전에는 이 동네 사람들이 매우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이라고 까꿍네 국수라고 불렀는데, 후에 까꿍네는 까꾸네로, 막연히 국수라고 부르던 음식은 이름이 모리국수로 바뀌었다고 유추할 수 있었어요.
제 뒤에서 먹고 있는 커플은 연신 맛있다고 하고 양이 많다고 감탄하고 있었어요.
약 20분쯤 기다리자 제가 주문한 모리국수 2인분이 나왔어요.
'우왁! 이거 양 무지 많네?'
할머니가 왜 2인분부터 판다고 혼자 온 제게 절대 안 팔려고 하셨는지 바로 납득당해버렸어요. 혼자서 2인분 먹겠다고 하는데도 영 못마땅해하신 이유는 2인분도 양이 무지막지하게 많기 때문이었어요. 딱 봐도 두 명이 와도 남기고 가는 손님들이 꽤 있을 양인데 그걸 혼자 다 먹겠다고 했으니 말렸던 거였어요.
구수한 해물탕 냄새가 코를 자극했어요.
국자로 고춧가루를 잘 섞었어요.
"이거 다 먹을 수 있을 건가?"
칼국수 면도 많았고, 콩나물도 칼국수 못지 않게 많이 들어가 있었어요. 여기에 홍합, 동태가 들어 있었어요. 홍합도 많이 들어 있었고, 동태도 많이 들어 있었어요. 이건 두 명이 먹어도 남길 양이었어요. 그 이전에 할머니가 무슨 힘으로 이걸 들어서 제 탁자에 올려놓으셨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많은 양이었어요.
먼저 국물부터 먹어봤어요.
"어, 좋다!"
까꾸네 모리국수의 모리국수 국물맛은 시원하고 가볍게 얼큰했어요. 누가 옆에서 어서 시원하게 한 사발 쭉 들이켜라고 속삭이는 것 같은 맛이었어요.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속이 풀리는 기분이었어요. 동태 매운탕 같지만 동태 매운탕과는 맛에 차이가 있었어요. 콩나물과 홍합이 들어가서 그런 거 같았어요.
구수하고 가볍게 얼큰한 국물을 맛보고 국수와 명태, 홍합 등 해산물을 먹기 시작했어요. 양이 진짜 많았어요. 국물만 한가득이 아니라 엄청난 양에 국물이 또 그만큼 많이 들어 있었어요. 천만다행이라면 매우 맛있었어요. 맛있고 맛이 자극적이지 않아서 부담없이 먹을 수 있었어요. 칼국수 면발은 흐물흐물한 면발이 아니라서 그냥 국수 먹듯 후루룩 먹을 수 있었어요.
열심히 부지런히 먹었어요. 이건 정말로 혼자 먹을 양이 아예 아니었어요. 두 명이 먹어도 매우 배부르게 먹을 양이었어요. 일반 봉지 라면 기준으로 4개는 되는 양이었어요. 전날 식사를 부실하게 했고, 이날은 아침부터 먹은 게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먹은 게 전부라서 다 먹을 수 있었어요. 만약 전날 식사를 잘 했거나 아침에 뭐라도 먹었다면 저도 힘들었을 거에요.
일단 면발과 건더기는 다 건져먹었어요.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이건 혼자서 완전히 깔끔히 다 먹을 양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국물이 매우 맛있었기 때문에 국물을 한 그릇 떠서 마셨어요.
"할머니, 다 먹었어요!"
할머니께서 제가 국물만 남기고 깔끔히 다 먹은 것을 보시더니 놀라셨어요.
"이걸 다 먹었네! 국물이야 원래 이만큼 남는 거구!"
계산을 마치자 할머니께서 식당 안 불을 끄기 시작했어요.
"오늘은 오래 했네."
"예? 이제 4시인데요?"
"원래 3시에 닫아. 오늘은 오래 한 거야."
"아, 그러면 제가 운이 좋았네요!"
제가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3시였어요. 할머니께서 왜 처음에 저를 보고 그랬는지 완벽히 이해되었어요. 원래는 할머니께서 식당을 닫을 시간인 3시가 되었는데 모리국수를 먹고 있던 마지막 커플이 아직 한참 열심히 먹고 있었기 때문에 그 커플이 다 먹기까지 기다리고 계셨어요. 그런데 제가 들어와서 혼자 2인분 먹겠다고 하자 망설였던 거였어요.
까꾸네 모리국수는 구룡포 가면 일부러 한 번 찾아가서 먹을 만 했어요. 오후 3시까지만 하기 때문에 저녁으로 먹으러 가면 못 먹어요. 네이버지도에는 오후 5시까지 한다고 나와 있었지만, 제가 갔을 때 할머니께서는 3시까지 한다고 하셨어요. 그러니 오후 2시 넘어서 갈 생각이라면 몇 시까지 하는지 전화로 물어보는 것이 좋을 거에요. 그리고 양은 라면 4~5개 끓인 것과 맞먹었어요. 양이 무지 많았어요. 약간 얼큰하고 구수한 동태찌개에 칼국수 면을 듬뿍 넣어서 끓인 음식이라고 상상하면 대충 비슷할 거에요. 너무 배부르게 잘 먹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