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역사문화공원 해설사분께 철원 이야기를 듣는 중이었어요. 해설사분께서는 철원은 오후 5시 넘어서 갈 만한 곳이 별로 없고, 특히 저녁 6시 이후로는 갈 만한 곳이 거의 없다고 하셨어요. 심지어 은하수교도 오후 6시면 입장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주셨어요.
"그러면 고석정 꽃밭은요? 그건 고석정 근처에 있나요?"
"아니에요. 고석정에서 동쪽으로 더 가야 있어요."
해설사분께서는 고석정 꽃밭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어요. 고석정 꽃밭은 원래 군부대 훈련장이었다고 알려주셨어요. 민간에 반환된 후 고석정 꽃밭을 개발하려 했지만 유적 조사 때문에 개발하지 못했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유적 조사 또한 제대로 할 수 없다 보니 공터를 그대로 방치하기 그래서 꽃밭을 조성했는데 워낙 넓은 지역에 크게 꽃밭을 조성해서 철원의 명소가 된 곳이라고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고석정 꽃밭이 조성된 후에도 발굴 조사 등으로 인해 몇 차례 꽃밭을 뒤엎었었다고 이야기해주셨어요. 고석정 꽃밭은 봄에도 아름답지만 가을에 가면 정말 황홀하게 아름다운 곳이라 가을에 꼭 가봐야하는 곳이라고 하셨어요. 제가 철원 여행을 갔던 2023년 5월 12일은 4월말에 뜬금없이 매우 늦은 꽃샘추위가 찾아와서 철원군에서 고석정 꽃밭 축제를 일주일 연기한다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던 때였어요.
백마고지 전적지 하나만 갔다가 가기는 아쉬웠어요. 백마고지역은 완전히 폐쇄되었고, 은하수교도 도착할 때는 잠가서 다리로 못 올라갈 거라고 하셨어요. 해설사분께서는 마지막으로 백마고지 전적지를 갔다가 서울로 돌아가면 될 거라고 하셨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한 곳 더 가고 싶었어요.
"승일교는요?"
"아, 승일교도 좋아요. 거기는 저녁에 조명을 예쁘게 잘 해놔서 저녁에 가면 매우 아름다워요."
승일교가 있다!
소이산 모노레일 못 탄 아쉬움은 백마고지 전적지에서 철원평야 풍경 감상하는 것으로 달래고 은하수교 못 가서 아쉬운 것은 승일교로 달래기로 했어요.
'승일교까지 보면 오늘 하루 너무 완벽한 철원 여행인데?'
한탄강 주상절리길, 고석정, 철원역사문화공원, 철원 노동당사, 백마고지 전적지에 승일교. 하루에 철원 관광지 중 여섯 곳을 둘러보는 일정이 되었어요. 이 정도면 매우 만족스러웠어요. 소이산 모노레일과 은하수교 못 가기는 했지만 이건 나중에 와서 가면 되요. 해설사분께서 가을에 고석정 꽃밭 꼭 가보라고 하셨기 때문에 가을에 가면 될 거에요. 철원도 관광자원이 여러 가지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하루에 다 보고 가는 건 무리에요.
백마고지 전적지는 해설사분께서 마지막으로 가보라고 강력히 추천하신 곳이었어요. 가서 보니 해설사분께서 강력히 추천할 만한 곳이었어요. 백마고지 전적지에서 저녁에 바라본 철원 풍경은 매우 아름다웠어요. 철원 여행의 마무리로 가기 매우 좋은 곳이었어요.
백마고지 전적지를 본 후 철원 여행 마지막 여행지인 승일교로 갔어요. 여행 다닐 때는 몰랐지만 알고 보니 승일교는 고석정 꽃밭 근처에 있었어요. 이때는 백마고지 전적지에서 차로 가는데 꽤 가야 해서 중간에 보이는 시가지가 신철원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뭔가 이상해서 다시 확인해보니 신철원이 아니라 구철원이었어요. 백마고지 전적지는 구철원 북쪽 끄트머리였고, 승일교는 고석정 근처였으니 꽤 많이 가야 했어요.
2023년 5월 12일 저녁 6시 48분, 승일교가 있는 승일공원에 도착했어요.
승일교로 가는 길에는 주상절리 모양 벽장식이 있었어요.
'승일교도 진짜 오랜만이네.'
승일교는 예전 아주 오래 전에 철원 여행 왔을 때 달리는 차에서 차창 너머로 바라본 게 전부였어요. 그 당시 철원 노동당사는 당연하고 승일교 일대도 아무 것도 없었어요. 승일교 옆에 새로운 다리가 있었고, 승일교는 차량이 지나다니지 못하는 다리였어요. 승일교는 차에서 내려서 직접 걸어보지 않고 달리는 차에서 차창 너머로 보며 저게 승일교라고 보고 지나갔어요. 차가 빠르게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거나 자세히 감상할 틈도 없었어요.
철원 노동당사는 서태지와 아이들 3집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와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등장해요. 그러나 승일교는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만 등장한 곳이에요.
'그 책 참 대단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처음 나왔을 때 우리나라에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어요. 책 자체가 재미있었고, 우리나라 문화유산 설명을 일반인들도 재미있게 읽고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그렇게 잘 다룬 책이 그 이전까지는 딱히 없었어요. 그래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출간되자 한동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온 유적들을 찾아다니는 여행이 유행했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온 문화유적들이 상당히 인기 좋은 관광지가 되고 크게 재평가받았어요.
저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2부까지만 읽었어요. 2부까지는 매우 재미있어서 열심히 몇 번을 읽었지만, 그 후에는 2부까지의 재미만큼 못 해서 안 읽었어요. 그리고 1부와 2부 다 합쳐서 철원 편이 가장 재미있었어요. 철원 편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재미있었던 이유는 나머지는 전부 옛날 유적을 다루었고, 대체로 국사 시간에 한 번은 듣는 유적들인데 철원 편은 국사 시간때 전혀 들어보지 못한 유적들이었고, 철원 노동당사와 승일교는 오래전 유적이 아니라 한국 분단 및 한국전쟁과 관련된 현대 유적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처음 듣고 접하는 신기한 유적이었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었어요.
한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전국민 필독서였어요. 많은 사람들이 학창 시절에 1부와 2부를 읽었을 거에요. 지금은 과거만큼 인기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여러 지역 시리즈로 계속 출간된 건 아는데 인기가 그만큼 좋고 재미도 그만큼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원래 이런 것들은 2부까지 재미있게 써도 진짜 대단한 거거든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그 당시 왜 그렇게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는지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면 위에서 말한 대로 '재미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당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센세이션에 대한 여러 분석과 이유들이 있지만 일단 재미있었어요. 그 이전까지는 그런 책이 없었거든요.
보다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이전에는 문화유산 관련된 책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중인 남한과 북한만큼 완전히 양극단이었어요. 하나는 너무 딱딱하고 전문적이라 더럽게 재미없는 책. 이런 책은 덤으로 한자가 무지 많은 책이 꽤 많았어요. 너무 전문적이고 딱딱하고 더럽게 재미없는데 한자까지 수두룩하니 일반인들이 보자마자 저건 사학과나 보는 책이라고 멀리하게 되는 책이었어요.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가벼운 책. 읽어서 남는 게 없는 매우 가벼운 이야기에 문화재가 곁다리로 들어간 책이었어요.
그에 비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독자들의 흥미 유발을 위해 저자의 가벼운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문화재 이야기로 들어가고, 문화재 이야기에서도 최대한 문외한들이 어려워하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이야기 진행이 매우 실력좋은 가이드가 관광객을 인솔하며 설명해주는 방식이었어요. 그래서 재미있었고, 인기가 많았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들고 문화유적 답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져서 신드롬 소리까지 나왔어요.
승일교를 이렇게 관광자원으로 만든 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요. 그리고 현대 것들도 문화유산이라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준 것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구요.
승일교는 철원이 북한 통치령이었던 1948년 8월부터 공산당 치하에서 철원 및 김화지역 주민들이 노력공작대라는 명목하에 총동원되어 건설되기 시작한 다리였어요. 이후 한국전쟁으로 건설이 중단되었다가 한국전쟁 후 철원이 대한민국 영토가 되고 나서 공사를 이어서 진행해 1958년년에 완공된 다리에요. 그래서 일부는 북한이, 일부는 남한이 건설한 매우 특이한 다리에요.
승일교는 북한이 건설한 부분은 둥근 아치형이고, 우리나라가 건설한 부분은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아치형이에요. 그래서 다리를 잘 보면 아치 모양이 달라요.
한탄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었어요.
한탄강을 구경하다 승일교 위로 올라갔어요.
한글로 '승일교'라고 적힌 석비가 있었어요.
승일교는 북한이 공사를 진행할 때 이름은 한탄교였어요. 철원이 수복된 후 이름이 승일교로 바뀌었어요. 승일교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김일성이 짓기 시작해서 이승만이 완공했다는 承日橋 설과 한국전쟁 영웅 박승일 대령을 기리기 위한 昇日橋 설이 있어요. 1954년에 한국군이 시멘트 교각 위에 나무판을 깔아서 승일교를 이용할 때는 承日橋라고 불렀다고 하고, 1985년 10월 1일 국군의 날에 세워진 기념비에 나와 있는 다리 명칭 유래는 昇日橋라고 나와 있었다고 해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도 승일교 이름에 대한 위와 같은 견해가 나와 있어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는 원래 박승일 대령을 기리기 위한 昇日橋 였는데 이후 承日橋로 와전되었을 거라고 나와 있어요.
그런데 오히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가장 근거 없는 설이라고 보았던 김일성을 이기자는 다리 勝日橋가 어쩌면 진짜 원래 승일교 명칭의 유래일 수도 있어요. 다리는 1958년에 완공되었고, 그 이전에는 미군이 1952년 봄에 미완성구간을 목조가교로 지어서 사용했어요. 1954년에 承日橋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1952년 봄부터 미완성구간을 목조가교로 지어서 사용하고 있었으니 그때 이름이 뭔가 있기는 했을 거에요. 철원지역이 한국전쟁에서 매우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던 지역임을 고려하면 의외로 김일성을 이기자는 다리 勝日橋가 정말로 승일교 이름의 진짜 원래 유래일 수 있어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김일성을 무찌르기 위해 건너는 다리'에서 '김일성이 시작해서 이승만이 완성한 다리'에서 '한국전쟁 영웅 박승일 대령을 기리기 위한 다리'로 와전되었다고 보면 각각의 시대상과 맞아떨어지거든요.
승일교 명칭의 유래는 여전히 미스테리에요.
승일교 위에는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어요. 조명이 켜지면 매우 아름다울 거였어요.
승일교를 마지막으로 철원 여행을 끝마쳤어요. 마지막까지 매우 재미있고 아름다운 풍경 많이 감상한 철원 여행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