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앙아시아 생존기 (2012-2013)

외풍을 막는 방법

좀좀이 2012. 12. 1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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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추운 집을 가스레인지를 켜는 방법으로 어떻게 급히 해결하기는 했지만...(관련글 : http://zomzom.tistory.com/594)


문제는 이것을 하루 종일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댓글을 달아주신 많은 분들의 걱정보다는 훨씬 안전하지만, (사실 가스불을 켜놓는 것보다, 1. 가스불 켜기 전에 가스가 새고 있다든가 2. 가스불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아서 그게 타버릴 경우가 훨씬 위험합니다. 태울 수 있는 게 없도록 주변을 싹 치우고 불 자체만 켜놓으면 크게 위험하지 않아요. 더욱이 당연히 저희 집에 애는 없어요. 결혼도 안 했고, 혼자 살거든요.) 이게 미봉책이라는 것. 일단 첫 번째로 방까지 따스해지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가스레인지를 켜 놓아야 하고, 두 번째로 아무리 가스 요금이 싸다 해도 돈 아까운 건 어쩔 수가 없었어요. 결정적으로...


방은 어짜피 추워!


부엌으로 주요 활동 거점을 옮기고 싶기는 한데, 그렇다고 부엌에서 먹고, 자고, 공부하는 등 모든 것을 해결할 수도 없는 일. 사실 할 수는 있는데, 그러려면 부엌 바닥부터 청소를 해야 해서...그리고 이렇게 되면 집에서 그나마 활동할 수 있는 곳이 부엌으로 너무 제약이 되어 버려요. 사람이 참 무서운 것이, 사람이 있는 방과 없는 방은 단지 사람의 유무에 따라 너무나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에요. 특히 겨울에 방을 아예 비우고 부엌으로 이동하면 방도 싸~해지는 건 시간문제.


일단 집이 살만해지자 근본적 원인을 찾기 시작했어요.


왜 방은 미치도록 추운가?


라디에이터는 설설 끓는데 방은 너무 추워 견딜 수가 없었어요. 이것은 무언가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 아니, 그 이전에 왜 하필 라디에이터는 창문 바로 아래 있는가?


힌트는 바로 '라디에이터는 왜 창문 바로 아래 있는가?'에 있었어요.


외풍이 미치도록 들어오고 있잖아!


커튼을 걷으니 어이쿠야...창문 연 거나 다름 없는 강추위가 예전 살던 집의 바퀴벌레처럼 득실득실 서식중. (지금 집은 바퀴벌레 없어요. 예전 집에는 정말로 많아서 나중에는 포기하고 살았답니다.)


즉, 문제는 외풍. 이건 어쩔 수가 없는 것이, 창문이 나무로 되어 당겨서 여닫는 구조라 어쩔 수 없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샷시 창문'은 의외로 보기 어려워요. 그 샷시 창문을 만드는 대표적 회사가 바로 Akfa. 즉, 웬만한 집에서는 외풍 문제가 생긴다는 거에요. 이 동네에서 외풍을 막는 법은 커튼 치기.


하아...


중앙아시아, 카프카스 모두 추위를 막기 위해 하는 게 바닥과 벽을 카펫으로 발라버리고, 창문은 커튼을 치는 거에요. 물론 저 역시 여름부터 계속 커튼을 쳐 놓고 있었어요. 여름에는 햇볕을 막아야 집이 시원하기 때문이었고, (이것을 깨우쳤을 때에는 이미 더위가 한풀 꺾였을 때였어요. 50도까지 올라갈 때에는 멍청하게 매일 커튼 열고 있었어요. 일광소독도 확실히 되고 저도 확실히 소독되었어요. 새벽 3시에 24도까지 낮추고 에어컨 끄면 30분만에 방 온도가 35도까지 치솟는 나날들이었어요.) 지금은 찬 바람을 그나마 막아보기 위해서였어요.


왜 라디에이터가 창문에 있는지 알게 되었어요. 외풍이 들어오는데, 뜨거운 라디에이터 열기로 그걸 좀 익혀보자는 의도. 문제는 이게 수지타산이 전혀 안 맞는다는 것이었어요. 덜 익혀진(?) 공기가 슁슁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방은 계속 차가워지고 있었어요. 창밖이 웬만히 추워야 효과가 있지, 창밖이 영하 10도인데 그 잠깐 라디에이터로 데워진다 해봐야 얼마나 데워지겠어요.


내가 이 날을 위해 준비한 것이 있다.


지금까지 타향생활만 10년이 넘었어요. 고시원, 옥탑방 등등 겨울만 되면 외풍과의 전쟁을 치루어보았어요. 외풍에 최고 효과를 보이는 최신 첨단 하이퍼 테크놀로지 소재는 바로!


비닐봉지


솔직히 이날을 위해 모아놓은 건 아니에요. 자취생활을 하며 터득한 삶의 한 가지 지혜라면 바로 비닐봉지는 웬만큼 더럽지 않다면 - 특히 음식, 식재료 담아온 봉지가 아니라면 절대 버리지 말고 모아놓을 것. 비닐봉지가 있을 때에는 별 거 아닌데 없으면 사람 골때리게 하거든요. 이게 버리기는 참 쉽지만, 급히 필요할 때 없으면 뒷목잡게 하는 그런 존재에요. 


이 비닐봉지가 창문으로 들어오는 외풍 막는 데에는 가장 강력한 효과를 보여줘요. 크게 어려울 것도 없고, 비닐봉지 외의 다른 재료도 전혀 필요하지 않아요.





이렇게 비닐봉지를 접어서 창틀 사이에 끼워놓았어요. 대충 쑤셔박으면 이게 외풍에 부풀어 빠지기 때문에 약간 꽉꽉 접어서 쑤셔넣어야 해요. 이러면 펴져서 틈을 꽉 막아버리거든요. 자취할 때 단열에 좋다고 스티로폼도 끼워보고 했는데, 결국 아귀가 안 맞는 공간이 생겨서 다 소용 없더라구요. 열 전도율도 떨어지고 틈을 남기지 않는 것으로는 비닐봉지만한 것이 없어요. 그냥 집에 굴러다니는 비닐봉지 모아서 외풍 들어오는 곳에 잘 쑤셔박아 놓으면 끝. 게다가 이것을 붙인 것이 아니니 필요하면 봉지 빼내고 창문을 열어도 되고, 제거 시에도 간단해요. 비닐봉지만 다 빼내면 끝나요.


시공비 : 없음 (혼자서 해도 얼마 안 걸림)

재료비 : 없음 (굴러다니는 비닐봉지 없을 경우 시장에 장 보러 가면 됨)


효과요? 저는 지금 가스레인지 틀어놓지 않고 방에서 살고 있어요. 최고입니다. 외풍이 거의 완벽히 차단되니 이제 창밖에 눈이 쌓이는 풍경을 느긋히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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