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운탄고도 7길 종점 삼척 도계역에서 무궁화호 기차 타고 서울 청량리역 가서 의정부 돌아가는 길 - 석탄의 길 3부 25

좀좀이 2023. 4. 3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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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홀짝이며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마땅히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남은 일정은 기차 타고 청량리역 가서 청량리역에서 전철 타고 의정부로 돌아가는 것만 남아 있었어요. 몸도 쉬고 싶고 머리도 쉬고 싶었어요. 뭔가 하려고 하면 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어요.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서 열심히 글을 써도 되었고, 앞으로 여행기 쓸 준비를 해도 되었어요. 그러나 아무 것도 하기 싫었어요. 그저 쉬고 싶었어요.

 

카페 안으로 사람들이 계속 들어왔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 도계역 앞에 있는 카페 로이는 꽤 유명한 카페에요. 크기는 작지만 삼척 시내권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카페에요.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학생들이었어요. 도계에서 보는 대학생이라면 강원대학교 도계캠퍼스 학생일 거였어요. 학생들이 좌석을 잡고 앉아 커피도 마시고 빵도 먹기 시작했어요.

 

오후 5시가 될 때까지는 계속 멍하니 있었어요. 카카오톡으로 대화나 조금 하고 그 외에는 그냥 앉아 있었어요. 지쳤어요. 너무 원없이 여행했어요. 모든 걸 하얗게 불태웠어요. 뭔가 생각하는 거 자체가 싫었어요. 지금 이 시간만큼은 생각 없이 쉬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앞으로 기차 타고 돌아가는 길에 또 한참 이렇게 멍하니 시간을 보내야하지만 그래도 쉬고 싶었어요.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갤럭시노트10+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봤어요. 사진이 끝도 없었어요. 사진을 정말 많이 찍었어요. 갤럭시노트10+에 있는 사진은 지인들에게 당장 보여줄 방법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전화기로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은 갤럭시노트10+가 아니라 갤럭시노트5였어요. 갤럭시노트10+는 갤럭시노트5가 고장날 때를 대비해서 중고로 구입한 스마트폰이었고, 가만히 놔두기 아까워서 카메라 대용으로 사용하는 중이었어요. 갤럭시노트10+ 안에 있는 사진을 지인들에게 공유하려면 가방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서 갤럭시노트10+ 안에 있는 사진을 노트북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부터 해야 했어요. 가방 여는 것조차 귀찮았어요.

 

"여행 기록 정리해야겠다."

 

카카오톡으로 들어갔어요. '나와의 채팅'을 터치했어요.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은 메모 용도로 꽤 유용해요.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 어플에 접속해서 나와의 채팅으로 메모해놓은 후 3일 이내에 카카오톡 PC버전으로 접속해서 메모 내용을 한 번만 읽으면 PC에서 언제든 나와의채팅에 남겨놓은 메모를 계속 볼 수 있어요. 만약 3일 내에 카카오톡 PC버전으로 메모해놓은 것을 보지 않으면 스마트폰 카카오톡 어플에서만 볼 수 있지만, 이건 저 자신에게 다시 재전송하면 되요.

 

전날 동해시 24시간 찜질방인 금강산 건강랜드에서 있었던 일부터 차례대로 메모하기 시작했어요. 한섬해변에서 일출 봤을 때까지 메모를 썼을 때였어요.

 

'사람들 꽤 오네?'

 

카페 자리가 만석이었어요. 아직 오후 5시 반 채 안 되었어요. 기차 시각은 오후 6시 54분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어요. 한 시간 동안 또 돌아다닐 만한 곳도 없었고 발과 다리가 한 시간 동안 또 걸을 상태가 아니었어요.

 

카페 자리는 만석이었고, 커피 한 잔으로 2시간 앉아 있는 것은 조금 그랬어요. 카페에 아무도 없다면 커피 한 잔 주문하고 2시간 앉아 있다가 일어나도 상관없지만 카페 좌석이 만석이었어요. 더 앉아 있으려면 뭐라도 더 주문해야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주는 것이 예의였어요.

 

'저녁이나 먹을까?'

 

다시 밖으로 나가서 한 시간 동안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어요. 읍내 방향으로 걸어가봐야 새로울 것은 없었어요. 물닭갈비 먹으러 가기에는 거리도 있었고 시간도 매우 애매했어요. 카페에서 나가기는 싫고, 자리는 이제 만석에 가까우니 선택해야 했어요. 커피는 아직 많이 남아 있었어요. 커피가 많이 남아 있는데 음료를 또 한 잔 더 주문하는 건 별로였어요. 제일 좋은 선택은 카페 로이에서 판매중인 빵을 사먹는 거였어요. 도계역 카페 로이는 빵도 맛있다고 알려진 카페였어요. 저녁으로 카페 로이에서 빵을 사서 먹으며 남은 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어요.

 

빵 진열대로 갔어요. 빵을 이것저것 골랐어요. 원래 빵을 좋아하는데다 저녁 식사 대신 먹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껏 골랐어요. 음료 두 잔 가격보다 더 많이 주문했어요. 돈이 안 아까웠어요. 저녁 대신 먹고 카페에서 계속 앉아 있어도 되니까요. 빵을 여러 개 골라서 계산했어요. 뜬금없이 도계에서 혼자 빵 파티가 벌어졌어요.

 

빵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어요. 이제 한 시간은 눈치 하나도 안 보고 앉아 있어도 되었어요. 커피 2잔 가격보다 훨씬 많은 금액의 빵을 구입해서 먹고 있는데요. 이러면 한 시간은 또 무난히 앉아 있을 수 있어요. 게다가 저녁도 해결하니 일석이조였어요. 카페 로이에서 구입한 빵은 모두 맛있었어요. 빵을 조금씩 먹으면서 카카오톡으로 여행 기록을 계속 기록했어요.

 

카페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밝았던 세상이 어두워졌어요. 밖은 깜깜했고 내부는 밝았어요. 여행 기록도 다 정리했어요. 빵도 다 먹었어요. 커피만 남아 있었어요. 원래 카페에서 음료 주문하면 빨리 마시기도 하고 느리게 마시기도 해요. 빨리 마시고 싶으면 빨리 마시고 느리게 마시고 싶으면 매우 천천히 마셔요. 저는 카페에서 음료 마시는 속도는 특정 성향 같은 게 없어요. 이때는 굳이 급히 마시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홀짝이고 있었어요.

 

몇 시인지 봤어요. 2022년 11월 2일 오후 6시 30분이었어요. 카페 의자에 계속 앉아 있으니 답답했어요. 앞으로 몇 시간 기차 안에서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할 거였어요.

 

"이제 나가야겠다."

 

남은 커피를 한 번에 쭉 들이켰어요.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하루 종일 음료수값 제외하면 식비가 0원이었는데 카페 로이에서 식비를 꽤 지불했어요. 만족스러웠어요. 모처럼 제가 좋아하는 빵으로 저녁식사를 했고, 충분히 앉아서 휴식을 취했어요. 커피도 맛있었어요. 다 좋았어요. 카페에서 앉아서 시간을 보냈으니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고 할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만족도 매우 높게 잘 보냈어요.

 

카페 로이 밖으로 나왔어요.

 

 

도계역 광장 조형물에는 불이 들어왔어요. 불이 들어와 있지 않은 낮에 보면 검은색 곰팡이처럼 생긴 조형물이에요. 불이 들어오자 조형물의 검은색 머리 부분은 초록색으로 바뀌어 있었어요.

 

"덜 곰팡이스럽네."

 

조형물 머리 부분이 검은색에서 초록빛으로 바뀌자 낮에 볼 때보다는 덜 곰팡이스럽게 생겼어요. 그래도 저건 아무리 봐도 곰팡이 모양이에요. 나무 모양을 만들어놓은 건 알겠지만 과학 시간 곰팡이 사진과 너무 닮았어요.

 

 

도계역 내부에는 사람들이 조금 있었어요. 대부분 대학생이었어요.

 

'태백에서 통학하는 대학생들인가?'

 

이 시각에 도계역으로 온 사람들이라면 저와 같은 기차를 타고 갈 사람들이었어요. 태백시, 영월군이라면 강원대학교 도계캠퍼스로 기차 타고 통학해도 되요. 태백시 태백역은 바로 도계역 바로 다음역이고, 영월역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요. 제가 타고 갈 무궁화호 1640호 열차는 태백역에 19시 20분에 도착해요. 태백역에서 도계역으로 가는 첫 차는 아침 11시 16분에 있으니 통학이 불가능할 것 같지만, 태백시에서 도계는 버스로 가도 되요. 그러니 태백시민이라면 강원도 도계캠퍼스는 통학해도 되는 대학교에요.

 

도계역 바로 앞에 있는 다리이니 도계광교로 갔어요.

 

 

도계광교에 있는 장식은 예뻤어요. 이렇게 보면 도계역 광장 앞 조형물이 곰팡이가 아니라 나무 같이 보이기도 했어요. 물론 초록불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랬어요. 낮에 보면 시커먼 대가리에 기둥 있는 영락없는 검은 곰팡이 모양이에요.

 

오십천을 바라봤어요.

 

 

어둠이 내리깔린 도계. 오십천 물은 깜깜한 밤이 되자 석탄처럼 시커먼 빛이 되었어요. 낮에 보면 맑은 물이지만 밤에 보면 탄가루 잔뜩 섞인 시커먼 불 색이었어요.

 

 

하늘에는 달이 떠 있었어요. 밤공기가 조금 쌀쌀했어요. 산골짜기 마을이라 날이 저물자 기온이 내려가는 게 확 느껴졌어요.

 

"올해 여행은 이렇게 끝이네."

 

2022년 11월 2일 오후 6시 40분. 앞으로 14분 남았어요. 14분 후, 저는 서울 청량리역을 향해 달리는 무궁화호 기차 안에 앉아 있을 거에요. 시원하면서 아쉬웠어요. 석탄의 길 여행이 이렇게 끝나고 있었어요. 강원도 남부 지역 와서 너무 많은 것을 받았어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인생에서 최고로 재미있었던 여행 중 하나였어요. 국내여행만 놓고 보면 압도적으로 가장 재미있는 여행이었어요. 목표한 모든 것을 다 이룬 여행이었어요. 더 여행한다고 해서 더 얻을 것도 없을 만큼 모든 목표를 넘어서 막연히 한 번 봐보면 좋겠다고 한 것까지 다 이뤘어요. 그러니 아쉬울 게 없었어요. 하지만 아쉬웠어요. 이렇게 여행이 끝나는 것이 아쉬웠고, 너무나 매력적이고 중독성 강한 강원도 남부 지역 여행이 이렇게 끝난다는 게 아쉬웠어요. 이제 여기에서 기차를 타고 떠나면 한동안 다시 못 올 거에요. 다음해가 되고 날이 풀리고 계절이 바뀐 후에야 다시 올 거에요.

 

 

'여기 진짜 징하게 많이 왔어.'

 

도계에 처음 왔던 2022년 8월 29일 밤 11시 14분. 도계역에서 내리면서 도계를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어요. 2022년 8월 29일에 처음 도계에 왔고, 지금은 도계에 무려 세 번째 온 거였어요. 도계에 홀린 것처럼 도계에 계속 왔어요. 이제는 낯설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나중에 여기 다시 오면 어떻게 변해 있을까?'

 

아마 나중에 또 오게 될 거에요. 이때는 운탄고도1330 8길이 정식 개통되기 전이었어요. 운탄고도 8길은 길 나올 곳이 어차피 강원남부로와 오십천 따라 걷는 길 뿐이라서 정식 개통되기 전에도 지도 보고 운탄고도 8길을 유추해 걸을 수 있었어요. 그러나 언젠가는 운탄고도 8길이 개통될 거에요. 운탄고도 8길이 개통되면 그때 도계 모습은 어떨지 궁금했어요. 운탄고도 7길 종점이자 운탄고도 8길 시작점이 도계역이에요. 그러니 7길 걷는 사람과 8길 걷는 사람들이 여기로 모일 거에요. 그러면 그때는 어떤 풍경일지 궁금해졌어요.

 

'진짜 여기에 왜 반했지?'

 

밤하늘 어둠에 염색되어 까만 빛이 되어 흐르는 오십천 물줄기를 바라봤어요. 나도 모르겠어요. 어째서 도계에 홀딱 반했는지 나도 궁금해요. 처음에는 탄광촌이 궁금해서 왔고, 두 번째는 운탄고도1330 8길을 걸어보기 위해 왔어요. 앞서 두 번은 확실한 이유가 있어서 왔어요. 그러나 이번은 확실한 이유가 없었어요. 단지 이 여행의 마지막은 도계에서 끝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도계에 다시 가고 싶었기 때문에 왔어요. 이게 전부였어요.

 

'모르겠다. 좋으면 좋은 거지.'

 

좋은 데에 이유가 어디 있어요. 내 마음이 좋다는데요. 내 마음이 강원도 남부에 홀딱 반했다는데 뭘 이유 찾고 논리적으로 따져요. 내 마음이, 내 심장이 좋다잖아요. 그럼 된 거에요. 너무나 매력적이니까, 너무나 소중하니까, 너무나 찬란히 빛나니까 좋아요. 많은 이야기와 많은 아름다움이 있는 노다지잖아요. 너무나 가치 높은 보물들을 제발 좀 와서 가져가라고 삽도 아니고 포크레인으로 떠주잖아요.

 

"오늘 운탄고도 7길도 걸었네."

 

도계역으로 발걸음을 돌리려다 갑자기 떠올랐어요. 웃었어요. 도계전두시장은 운탄고도1330 8길이 아니라 운탄고도1330 7길이에요. 도계역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올라가는 길은 운탄고도 7길이고 북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8길이에요. 도계터미널도 운탄고도 7길에 있어요. 도계터미널에서 버스에서 내려서 도계를 돌아다니다 도계전두시장도 갔으니 운탄고도 7길도 아주 조금은 걸었어요.

 

"이놈의 운탄고도 7,8,9길은 대체 언제 정식 개통되는 거야?"

 

운탄고도 7길부터 9길까지는 다시 개통되면 반드시 와서 걸어볼 거에요. 어쩌면 그때가 되면 강원도 남부 지역 횡단 도보 여행 코스인 운탄고도1330 전구간을 다 걸어보려고 새로운 여행을 출발할 수도 있어요.

 

 

한자가 새겨진 비석이 있었어요.

 

石炭 産業戰士 安寧祈願碑

석탄 산업전사 안녕기원비

 

탄광촌답게 석탄 산업전사 안녕기원비가 있었어요.

 

 

도계역 소개문이 있는 안내판이 있었어요.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은 소개문이 적혀 있었어요.

 

석탄시대의 향수 도계역

 

역 이야기

 

영동선 석탄수송의 핵심역사, 서독 파견 광부들의 훈련소 역할

 

도계역은 1940년 8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영동선 석탄수송의 핵심역사였다. 도계역이 위치한 도계리는 세 갈래 길의 분기점에 있다 하여 길가말이라 불리던 이름이 와전되며 붙은 마을로 시외버스터미널과 철도역이 위치한 삼척의 주요마을이다. 광복 이후 대한석탄공사에 이관된 인근 탄광의 규모가 커지자 1951년 도계광업소와 장성광업소로 분리 운영되었는데, 당시 도계는 강원도 내 석탄 생산량의 32%를 차지하는 중요한 석탄 산지였으며 1975년까지 서독에 파견하는 광부들의 훈련소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바로 이 무연탄을 묵호항과 여러 도시로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역이 도계역이다.

 

지역 이야기

 

경험한 적 없는 설렘, 스위치백

 

스위치백은 급경사 산악지형을 지그재그로 철로를 연결해 통과하는 열차운행 시스템이다. 과거 도계역에서 통리역으로 가는 열차는 나한정역에서 멈춰 흥전역까지 거꾸로 올라갔다. 경험해본 적 없는 뒤로 가는 열차의 낯섦과 설렘.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문 운행방식으로 비록 불편도 컸지만 그만큼 추억과 낭만이 있던 열차였다. 이후 2012년 국내 최장 나선형 철도 터널 솔안터널(16.7km)이 개통되면서 스위치백 구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뒤로 가는 열차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서 그 추억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도계역 대합실로 들어갔어요. 도계역 대합실 안에 있는 매표소 앞에는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 중 도계역 스탬프, 흥전역 스탬프, 나한정역 스탬프가 비치되어 있어요.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를 또 사진으로 촬영하지는 않았어요. 전에 왔을 때 사진으로 한 번 찍었었어요.

 

열차 탑승 시간이 가까워졌어요. 2022년 11월 2일 오후 6시 47분, 기차를 타기 위해 도계역 대합실에서 나와 도계역 승강장으로 갔어요.

 

 

선로에는 화물 열차가 정차해 있었어요. 저 화물 열차는 석탄을 싣고 달릴 거에요.

 

 

도계역 건물쪽을 바라봤어요.

 

 

건물 너머로 아무리 봐도 곰팡이처럼 생긴 조형물이 보였어요. 도계와 작별할 시간이 계속 가까워지고 있었어요. 이 여행을 끝낼 시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어요.

 

 

기차역은 조용했어요. 어둠이 도계를 집어삼키고 있었어요. 하늘도 검고 선로 너머 뒷편도 검었었어요.

 

 

제가 타고 갈 무궁화호 제1640호열차가 승강장 안으로 들어왔어요.

 

 

기차를 탔어요. 자리에 앉았어요.

 

2022년 11월 2일 오후 6시 54분, 기차가 출발했어요.

 

 

"도계, 안녕!"

 

도계와 작별했어요. 기차는 어둠 속을 달리기 시작했어요.

 

'재미있는 여행이었어.'

 

한 달간 세 번에 걸친 여행 석탄의 길. 너무 재미있는 여행이었어요. 지난 일들이 하나 둘 떠올랐어요. 갤럭시노트10+에 있는 사진들을 하나씩 넘겨봤어요.

 

 

2022년 10월 7일 아침, 동해시가 떠내려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던 아침이었어요. 석탄의 길 1부 여행을 마치고 기차 타고 강릉시로 넘어갈 때였어요.

 

 

'이때 동해시를 또 갈 줄 몰랐지.'

 

석탄의 길 1부 여행을 마치며 동해시를 또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비 퍼붓는 동해시를 보며 참 사연 많은 곳 많이 돌아다닌 날이라 날씨도 딱 거기에 맞게 폭우 쏟아진다고 생각했어요.

 

 

그 다음날인 2022년 10월 8일, 친구와 동해시로 왔어요. 이날 친구와 묵호에서 놀면서 본 동해시 풍경은 이후 여행까지 합쳐서 최고로 아름다운 풍경이었어요.

 

사진을 쭉 넘겨봤어요. 이번에는 석탄의 길 2부 여행 뒤 제게 보낸 엽서가 집에 도착했을 때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어요.

 

 

'운탄고도 9길 엔딩 충격 때문에 삼척 오일장 사진 한 장도 안 찍었잖아.'

 

운탄고도 9길 엔딩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충격에 빠졌어요. 다음날 일어나서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서 삼척종합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갔어요. 삼척종합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삼척 오일장을 들렀어요. 마침 삼척 장날이었거든요. 하지만 사진을 단 한 장도 안 찍었어요. 운탄고도 9길 엔딩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삼척을 빨리 떠나고 싶었어요.

 

이때도 여행 마친 후 친구를 만나러 갔어요. 친구가 저를 보더니 깜짝 놀랐어요. 대체 뭐했길래 그렇게 시커멓게 탔냐고 했어요. 친구에게 내가 뭐가 그렇게 많이 탔냐고 하자 친구는 제 목 사진을 찍어서 보여줬어요. 한여름에 돌아다닌 것처럼 목 윗부분은 까맣게 탔고, 아랫쪽은 하얬어요.

 

석탄의 길 2부는 마지막에 돌아오며 촬영한 사진이 없었어요. 태백시에서 제게 보낸 엽서 두 통 사진을 찍은 것이 전부였어요.

 

"석탄의 길 여행기는 언제 쓰지?"

 

강원도 남부 도계, 사북, 예미, 함백 여행 여행기인 잊혀진 어머니의 돌 여행기도 까마득히 많이 남아 있었어요. 마침 잊혀진 어머니의 돌 여행기도 도계 여행 부분을 쓰고 있었어요. 이게 좋은 게 아니었어요. 이 여행기에서 도계 여행 부분은 앞부분이에요. 도계 둘러보고 사북 넘어가서 1박하고 다음날 예미, 함백을 둘러봤거든요. 석탄의 길 여행기는 고사하고 그 전 여행기도 완결내려면 한참 걸릴 거였어요.

 

'나중에 3부는 진짜 쓸 말 없는 거 아냐?'

 

세 차례 걸쳐 다녀온 여행의 여행기를 묶어서 하나의 여행기로 쓰기로 마음먹었어요. 석탄의 길 여행기는 총 3부일 거였어요. 1부와 2부는 그래도 쓸 말이 꽤 있었어요. 1부와 2부에서 가본 곳은 안 가본 곳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러나 문제는 3부 - 바로 지금 하고 있는 여행의 여행기였어요. 석탄의 길 3부 여행은 대부분 가봤던 곳을 다시 갔어요. 2022년 동해시 여행기인 '망상 속의 동해', 2022년 도계, 사북, 예미, 함백 여행기인 '잊혀진 어머니의 돌', 여기에 2022년 태백, 운탄고도 8길 동해시 여행기인 석탄의 길 1부, 2022년 운탄고도 3길, 운탄고도 9길 여행기인 석탄의 길 2부를 쓰면 석탄의 길 3부에서는 정보 제공 내용은 쓰려고 해도 쓸 게 남아 있지 않을 거였어요.

 

이번 여행인 석탄의 길 3부 여행에서 가본 곳은 한 번도 아니고 최소 두 번씩 가본 곳이 대부분이었어요. 석탄의 길 3부 여행은 어떻게 보면 2022년 강원도 남부 여행의 총정리편 여행 같은 여행이었어요. 보통 총정리라고 하면 앞서 있던 것들을 모두 대집약하기 마련이에요. 여행 자체는 그랬어요. 이미 몇 번 가봤기 때문에 운탄고도 9길 마평교 너머 부분이 마음에 안 들어서 도보 여행 코스를 스스로 만들어냈고, 이 길은 완전히 새로운 길이 아니라 제가 그동안 가봤던 곳들의 조합인 곳이 꽤 많았어요. 여행은 총정리편에 가까운 여행이었지만 여행기는 달랐어요. 정보 제공 내용은 쓸 게 안 남아 있었어요.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같은 지역 이야기가 몇 번 등장하겠지만 그런 거 신경 안 쓰기로 했어요. 알아서 될 거에요. 글 쓰다 보면 어떻게 해결될 문제였어요. 벌써 걱정할 필요 없었어요. 석탄의 길 3부 여행기 쓸 때 앞서 쓴 여행기에 담은 정보 제공 내용을 또 쓰고 싶으면 쓰는 거고, 중복이라 쓰기 싫으면 안 쓸 거에요. 그거야 글 쓸 때 마음 가는대로 쓰면 될 일이었어요. 벌써 석탄의 길 3부 어떻게 쓸지 걱정하는 건 쓸 데 없는 걱정이었어요. 석탄의 길 3부가 아니라 석탄의 길 1부도 쓰려면 멀었고, 당장 잊혀진 어머니의 돌 여행기부터 어떻게든 끝내야 했어요.

 

기차는 어둠 속을 계속 달렸어요. 많이 온 거 같지만 아직도 한참 더 가야 했어요. 무궁화호 열차였기 때문에 빠르게 달리는 거 같아도 청량리역까지 도착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어요.

 

'내년에는 어디 갈까?'

 

2022년 여행은 이렇게 끝났어요. 벌써 다음해에 어디로 여행갈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어요. 동해, 삼척, 태백은 또 가고 싶었어요. 동해, 삼척, 태백 말고 또 갈 만한 곳이 있는지 고민해봤어요.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었어요. 과연 동해, 삼척, 태백만큼 재미있는 곳이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거대한 대하소설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여행. 이런 게 가능한 곳이 우리나라에 과연 몇 곳이나 있을지 모르겠어요. 서사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아름다운 풍경과 맛있는 음식 먹으며 다니는 여행 코스는 정말로 만들기 어려워요. 풍경 보는 여행, 음식 먹는 여행, 서사의 흐름을 따라가는 여행 - 이렇게 따로 정한다면 여행 코스 짜는 게 어려울 거 없지만 이런 세 종류의 여행을 한 번에 다 할 수 있는 코스는 매우 드물어요.

 

'철길 따라 걸어봐?'

 

철도 따라 걸어보는 여행도 나름 괜찮을 수 있어보였어요. 태백역에서 시작해서 동백산역, 철암역을 지나 석포역, 승부역, 양원역, 분천역, 현동역, 임기역, 녹동역, 춘양역, 법전역, 봉성역, 거촌역을 거쳐 봉화역으로 가는 여행도 재미는 있을 거 같았어요. 그런데 걸어서 가는 여행이 될 지 모르겠어요. 걷다가 노숙해야 한다고 하면 불가능하거든요.

 

'글쎄...'

 

제가 철도 매니아, 기차 매니아라면 해보겠지만 아쉽게도 저는 기차에 대한 로망이 별로 없어요. 저는 원래 버스를 기차보다 훨씬 더 선호해요. 심지어 기차표 예매 어플인 코레일톡 어플조차 석탄의 길 여행하면서 처음 설치하고 가입했어요. 그 전에는 기차 타야할 일 있으면 기차역 가서 현장에서 구입하며 다녔어요. 웬만하면 버스 타고 다녀서요. 그러니 철도 따라 걸어가는 여행은 그렇게 크게 내키지 않았어요. 게다가 결정적으로 걸어서 가능할지 미지수였어요. 재미있을지도 의문이었구요.

 

경상북도에도 어마무시한 오지 시골이 많아요. 경상북도는 몇 번 안 가봤지만 교통 불편한 지역, 오지 시골 같은 곳이 매우 많은 지역이에요. BYC로 알려진 봉화군, 영양군, 청송군이야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강원도 삼척시 바로 아래에 있는 경상북도 울진군도 교통이 상당히 안 좋은 지역이라고 알고 있어요. 이런 지역들도 다 사연이 있는 지역일 거에요. 경상북도 여행도 왠지 재미있을 거 같기는 한데 뭔가 확 끌리는 게 안 보였어요.

 

다른 지역들도 떠올려봤어요. 그러나 동해, 삼척, 태백처럼 모든 재미를 다 주는 지역은 보이지 않았어요. 궁금하지 않으면 안 움직이는 제 성격상 이러면 어지간해서는 출발하지 않아요.

 

'밀린 여행기 다 쓰고 찾아보면 되겠지.'

 

어차피 여행기 밀린 거 다 쓰려면 최소 반년은 잡아야할 거였어요. 부지런히 쓴다면 반년까지는 안 걸릴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부지런히 써도 반년 넘게 걸릴 수도 있었어요. 여행기를 다 쓴 후 새로운 여행을 알아볼 거에요. 그러니 시간은 많았어요. 어차피 겨울에는 추워서 어디 다니지도 못 해요.

 

'동해, 삼척, 태백은 진짜 굉장한 곳이야.'

 

지금까지 여행을 꽤 했어요. 국내 여행도 여기저기 다녀봤고, 외국 여행도 여러 번 갔다 왔어요. 지금까지 해온 여행 중 석탄의 길 여행은 최고로 재미있는 여행 중 하나였어요. 우리나라 여행이 이렇게 외국 여행보다도 훨씬 더 재미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동해, 삼척, 태백은 국내 여행에 대한 기존 입장을 완전히 변화시켰어요. 이제라도 알게 되었고 이제라도 가봐서 천만다행이었어요. 이런 곳이 숨어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렇게 숨어 있는 고귀한 보석을 찾아내서 너무 기뻤어요. 아직 남들이 잘 모를 때 혼자 가서 배낭과 주머니 터지도록 보물을 잔뜩 쑤셔집어넣고 두둑히 챙겨서 온 기분이었어요.

 

'설마 몇 년 뒤에야 동해, 삼척, 태백이 우리나라 대표 관광지로 엄청 뜨는 거 아냐?'

 

제게는 일종의 징크스 같은 것이 있어요. 제가 여행 다녀오고 여행기를 쓰면 그때 딱 맞춰서 엄청 뜨고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여행기 다 쓴 후 몇 년 지나서 엄청 뜨고 주목받아요. 그래도 여행기 완결 시점과 제가 간 곳이 크게 뜨는 시점이 조금씩 비슷해지고 있기는 했어요.

 

2019년에 일본 여행 다녀와서 일본 여행기 써서 완결냈을 때는 일본이야 워낙 많은 사람들이 가는 나라라 완전히 늦어서 드디어 징크스가 깨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게 웬 일, 역병 사태 터지면서 제 일본 여행기가 무수히 많은 일본 여행기 중 막차가 되었고, 2년간 일본 여행 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 일본 여행 붐은 2022년부터 다시 일기 시작했어요.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많이 가서 그 어렵다는 일본조차도 졸지에 여행 붐이 일기 무려 2년이나 앞서서 여행기를 완결지은 셈이 되었어요.

 

'에이, 우리나라 관광지인데 이번에도 그러려구.'

 

깜깜한 창밖을 바라봤어요. 눈을 감았어요. 기차는 열심히 달리고 있었어요.

 

"아 맞다, 할머니께서 항은 일본 사람들이 쓰던 말이라고 했었지?"

 

문득 도계 까막마을에서 제게 커피를 한 잔 주신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말씀이 떠올랐어요. 항과 갱의 차이에 대해 인터넷 사전으로 한 번 찾아봤어요.

 

 

坑 이라는 한자는 발음이 무려 3개나 되었어요. 한자 坑은 구덩이 갱, 산등성이 강, 구들 항이었어요. 인터넷에서 조금 더 검색해봤어요. 1980년대에 한자 坑을 '항'에서 '갱'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대요. 이때부터 '항도'는 '갱도'로 바뀌었대요. 또한 많은 항이 갱으로 바뀌면서 '흥전항'은 '흥전갱', '도계항'은 '도계갱'으로 바뀌었어요.

 

비밀이 밝혀졌다!

 

계속 항과 갱에 차이점이 있을 거라고 여기고 있었어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왠지 항과 갱에는 차이가 있을 거라고 미약하게나마 추측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이건 제가 완전히 틀렸어요. 탄광 지역에서 항과 갱은 같은 말이었어요. 도계항과 도계갱, 동덕항과 동덕갱, 흥전항과 흥전갱 모두 완벽히 같은 의미였어요. 하지만 아직까지도 항과 갱이 혼용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항'이라는 표현을 워낙 오래 써왔고,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탄광들이 우루루 폐광하고 석탄산업 자체가 몰락했기 때문에 기존에 있던 표기에서 '항'을 '갱'으로 완전히 바꿔지지 않았어요. 오래된 표지판은 여전히 방치되어 '항'으로 표기되고 있었고, 고유명사처럼 굳어진 부분도 있어서 갱 대신 항이라고 부르는 분들도 꽤 계셨어요.

 

마지막까지 궁금했던 항과 갱의 차이도 알아내었어요.

 

갈 수록 점점 불빛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바깥이 조금씩 많은 조명 때문에 밝아져갔어요. 기차는 경기도로 들어왔고, 인구 밀집 지역을 달리고 있었어요.

 

 

 

2022년 11월 2일 밤 10시 40분, 기차가 청량리역에 도착했어요. 기차에서 내렸어요. 위로 올라갔어요.

 

 

제가 타고 온 무궁화호 열차를 바라봤어요.

 

 

기차는 이제 잠들 거에요. 저는 아직 길이 더 남았어요. 의정부로 돌아가야 했어요. 지하철을 탔어요. 의정부역으로 갔어요.

 

 

2022년 11월 2일 밤 11시 38분, 의정부역에 도착했어요.

 

이로써 2022년 가을, 저를 매일 흥분시키고 설레게 만든 석탄의 길 여행이 끝났어요.

이렇게 2022년 8월 29일부터 11월 2일까지 이어진 길었던 이야기가 막을 내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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