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강원도 동해시 발한동 묵호항선 묵호항역 묵호항 부두 마을 - 석탄의 길 3부 12

좀좀이 2023. 4. 2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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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시장 입구에서는 가자미를 매달아서 건조시키고 있었어요.

 

 

향로시장 안으로 들어갔어요. 향로시장은 지난 번에 왔을 때 다 둘러본 시장이었어요. 향로시장 상가는 대부분 문을 닫았어요. 그렇게 크게 볼 것이 있는 시장은 아니에요. 그래도 나름 묵호지역 역사를 추리할 때 중요한 시장이기는 해요.

 

묵호항역 역세권은 여객 업무 담당하는 기차역이 묵호역으로 바뀌며 몰락했다?

 

묵호항역은 원래 묵호역이었어요. 그러나 묵호역이 현재 묵호역 자리에 신설되면서 원래 묵호역은 묵호항역으로 바뀌었고, 여객업무는 취급하지 않고 화물만 취급하는 기차역이 되었어요. 이러면 사람들은 보통 묵호항역 역세권은 몰락했을 거라 추측해요. 대체로 기차역 위치가 바뀌면 기존 기차역 자리 앞에 형성되어 있던 역세권 상권은 무너지거든요.

 

그렇지만 이쪽 지역의 얼마 안 되는 자료들을 모아서 보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어요. 묵호 지역에서 여객 취급하는 기차역이 묵호역으로 이동했지만, 묵호항역 역세권이 그때 몰락하지는 않았어요. 묵호항역 역세권이 몰락한 것은 묵호역이 신설된 후로부터도 한참 뒤에 발생한 일이에요. 묵호항역 구내에 있는 묵호항역에 제주도 돌하르방이 있게 된 사연을 봐도 대충 짐작할 수 있어요. 돌하르방이 묵호항역 역전 식당에서 구내로 이전된 것은 빠르게 봐도 1990년대 일이에요. 식당 주인이 30여년간 애지중지했다고 하니까 1990년대에 돌하르방이 묵호항역 역전 식당에서 구내로 이동했다고 가정해도 식당 주인이 돌하르방을 제주도에서 동해시로 가져온 시기가 1960년대 일이거든요.

 

향로시장은 동해시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문을 닫았다고 했어요. 동해시에 대형마트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그래도 나름 장사가 되었다고 했어요. 그리고 향로시장에서 굴다리 너머 서쪽에 있는 향로봉 마을은 과거에 건주 - 생선 말리는 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다고 해요.

 

이런 사실로 미루어봤을 때 묵호항역 역세권이 몰락한 것은 빨라야 1990년대 일일 거에요. 묵호역은 1961년 5월 5일에 개업했어요. 그러니 묵호역 개업과 묵호항역 역세권 몰락은 그렇게 큰 관련이 없어요. 만약 묵호항역 역세권이 묵호역 때문에 몰락했다면 향로시장은 진작에 망해서 아예 흔적도 안 남아 있었을 거고, 묵호역 상권도 현재보다 훨씬 커야 했을 거에요. 현재를 기준으로 파악하기에는 동해시 묵호 지역 지리가 과거와 꽤 많이 변했어요.

 

일례로 국토정보플랫폼에서 동해시 발한동 묵호항역 일대 1969년 항공사진을 보면 지형이 지금과 상당히 달라요.

 

 

 

위 사진은 1969년 동해시 발한동 묵호항역 일대 1969년 항공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현재 카카오맵에서 본 항공사진이에요. 묵호항역을 보면 1969년 항공사진에서의 묵호항역은 오늘날 정동진역처럼 바닷가에 완전히 붙어 있어요. 1969년 항공사진을 보면 영동선이 강릉역까지 연장될 당시 철로가 바다와 지나치게 가까워서 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과 묵호항역 역세권이 발달했다는 것 등으로 인해 묵호역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원래 묵호역이 묵호항역으로 개명되었다는 말이 이해되요.

 

한편 평능신호장이 묵호역 입구에 찰싹 달라붙어 있어서 그쪽이 원래 평능신호장 위치하던 곳 맞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요. 이에 대해서는 1969년 6월 17일 철도청고시 제123호로 추적해보면 위와 같은 결과가 나와요.

 

 

철도청고시 제123호 내용은 다음과 같아요.

 

철도청고시 제123호

영동선 북평-묵호간 영기 152.4키로지점 평능신호소를 1969년 6월 23일부터 사용중지함을 고시한다.

 

위 고시에서 북평은 오늘날 동해역이에요. 묵호역은 기점 영주역에서 153.6km 거리에요. 즉, 153.6km에서 152.4km를 빼면 1.2km이고, 여기가 바로 평능신호소 위치에요. 묵호역에서 동해역 방향으로 1.2km 쯤 내려가면 위와 같은 위치가 나와요.현재 동해빵명장, 파스쿠찌 동해해안도로DI점, 할리스 동해묵호점이 위치한 자리 어딘가에요.

 

향로시장 안으로 들어갔어요. 전에 보기만 하고 들어가지 않았던 굴다리가 나왔어요.

 

 

"굴다리 한 번 지나가볼까?"

 

굴다리 너머에는 어떤 곳이 있는지 궁금했어요. 여기는 굴다리라고 하기도 애매했어요. 진짜 지하보도인 토끼굴이었어요. 통과 높이는 고작 1.7m에 불과했어요.

 

'뭐 있나 잠깐 보고 와야지.'

 

토끼굴 안으로 들어갔어요.

 

 

토끼굴 벽은 하얗게 칠해져 있었어요. 벽에 듬성듬성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었어요. 천장이 매우 낮았어요. 허리를 펴고 걸으면 머리를 천장에 박게 생겼어요. 허리를 굽히고 토끼굴을 지나갔어요. 천장이 낮아서 정말로 토끼굴이었어요.

 

토끼굴에서 빠져나오자 평상이 나왔어요.

 

 

제가 빠져나온 토끼굴 출구를 바라봤어요.

 

 

토끼굴 출구에는 '향로시장입구'라고 적힌 현판이 붙어 있었어요.

 

 

가옥이 있었어요. 가옥 옥상에는 감을 매달아 홍시를 만들고 있었어요. 가옥 너머로 높은 묵호항 기중기가 보였어요.

 

 

"여기 대체 뭐지?"

 

새마을슈퍼가 있었어요. 장사를 안 하는 것 같았어요. 충격적인 점은 새마을슈퍼 아래에 붙어 있는 전화번호였어요. 전화번호가 31-6136이었어요. 전화번호 국번이 무려 두 자리 수였어요. 1998년에 지역번호를 광역자치단체별로 새로 만들면서 한두자리수 국번은 사라졌기 때문에 두 자리 수 국번은 박물관 가서나 볼 수 있는 진귀한 유물이었어요. 더 이상 볼 수 없는 두 자리 수 국번이 붙어 있었어요. 세 자리 수 국번인데 맨 앞에 있는 숫자가 떨어진 게 아니라 원래부터 두 자리 수 국번이었어요.

 

 

 

'여기는 무슨 마을이라고 불러야 하지?'

 

향로시장에서 바닷가쪽으로 토끼굴 너머에 있는 마을 이름은 전혀 알 수 없었어요. 묵호항선 철길 마을이라고 부르자니 해파랑길 33길에 있는 향로봉길에 위치한 마을 이름이 애매해졌어요. 묵호항역 마을이라고 부르자니 여기는 묵호항역 철길 너머 바닷가 마을이었어요. 묵호항 마을이라고 부르자니 묵호항 바로 뒷편에 마을이 있었어요. 그 마을들이 바로 게구석마을, 산제골마을, 논골마을이었어요.

 

'묵호항 부두 마을?'

 

지금 걷고 있는 길은 부두길이었어요. 그러니 묵호항선 부두 마을, 묵호항 부두 마을 쯤으로 부르면 될 거 같았어요.

 

 

묵호항과 여객선이 보였어요.

 

묵호항 부두 마을을 계속 돌아다녔어요.

 

 

 

 

묵호항 대형 크레인이 매우 가까워졌어요.

 

 

 

묵호항 부두 마을에서 묵호항으로 바로 들어갈 수 없었어요. 철망으로 담을 쳐놨어요.

 

"돌아가야겠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토끼굴로 갔어요.

 

 

토끼굴을 통과해 다시 향로시장으로 돌아왔어요.

 

 

 

'동해시는 진짜 신기하단 말이야.'

 

아무리 봐도 동해시는 매우 신기한 곳이었어요. 특히 묵호 지역은 더욱 신기한 곳이었어요. 뭔가 미로 같은 느낌도 있고, 여기저기 보물이 숨어 있어서 보물찾기하는 기분도 드는 곳이었어요.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것이 자꾸 튀어나왔어요. 조금 전 다녀온 묵호항 부두 마을은 철도를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두 번이나 건너야 갈 수 있는 마을이었어요. 영동선 철도를 건너고 묵호항선 철도도 건너야 했어요. 이런 곳이면 마을이 없기 마련인데 마을이 있었어요. 빈 가옥도 여러 곳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었어요.

 

향로시장에서 나왔어요.

 

 

묵호항역에서 묵호역으로 들어가는 철길 아래 굴다리가 나왔어요. 이 굴다리 너머에는 묵호항선 철길마을이 있었어요.

 

 

굴다리를 통과했어요.

 

 

"여기 원래 이런 색이었구나."

 

전에 왔을 때는 어두침침해지고 있었을 때였고 비도 억수로 퍼붓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 동네 색이 이런 색인 줄 몰랐어요. 이제서야 여기가 이런 색이라는 걸 알았어요.

 

향로봉길을 따라 발한삼거리를 향해 걸어갔어요. 해리슈퍼가 나왔어요.

 

 

해리슈퍼는 전에 왔을 때 '라면 (끓여줌)'이라는 글자가 유리창에 붙어 있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던 가게였어요.

 

'들어가서 음료수 사서 마셔야지.'

 

안에 들어가서 음료수 하나 사서 마시고 가기로 했어요. 할머니께서 가게를 지키고 계셨어요. 음료수를 봤어요. 무난하게 콜라 캔을 마시기로 했어요.

 

"할머니, 이거 콜라 캔 얼마에요?"

"1200원."

 

콜라 캔 가격은 1200원이었어요.

 

'동전 남기기 싫은데...'

 

주머니에 동전은 없었어요. 여행 다닐 때 동전 들고 다니기 귀찮아요. 바지 주머니에 넣으면 동전 때문에 다리가 옷에 쓸려요. 외투 주머니에 넣으면 뭐 꺼낼 때마다 동전이 걸리적거려요.

 

"천원 짜리 음료는 없나요?"

"그거 그냥 천원에 줄께."

"아뇨, 그게 아니라 동전 생기는 거 싫어서 딱 천원 지폐 내는 음료로 마시려구요."

"그거 천원에 가져가."

 

할머니께서는 제가 돈이 없어서 천원짜리 찾는 줄 아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동전 생기는 거 싫어서 천원짜리 음료수 찾고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괜찮으니 콜라 캔을 1000원 내고 가져가라고 하셨어요. 콜라캔을 챙기고 할머니께 천원 드렸어요.

 

"할머니, 여기 길에 사람들 많이 다니나요? 해파랑길이던데요."

"예전에는 많았는데 지금은 자전거길 조성해서 자전거 타는 사람이나 몇몇 지나가."

 

할머니께서는 예전에는 향로봉길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지만 지금은 거의 안 지나다니는 길이라고 하셨어요.

 

"묵호역이 저기로 이전하면서부터요?"

"아니야. 그건 아주 오래 전이구."

 

할머니께서는 향로봉길로 사람들이 안 다니기 시작한 건 묵호역이 새로 생긴 후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라고 하셨어요.

 

"할머니, 예전에 구역사 앞에 역전 매우 번화했나요? 저기 구역사가 원래 묵호역이라고 하던데요."

"옛날에 구역사가 묵호역일 때는 앞에 가게도 여럿 있었구, 그 앞에서 주변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이 작물 가져와서 많이 팔았어."

"향로시장은요? 향로시장도 예전에는 컸어요?"

"향로시장도 예전에는 컸지."

"거기는 묵호역 저쪽으로 이전한 거 때문에 저렇게 되었어요?"

"아냐, 향로시장은 마트 생기면서 완전히 망했어."

 

할머니께서는 묵호역이 생기기 전 묵호항역이 묵호역이었던 시절에 묵호항역 앞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고 붐볐다고 했어요. 그때는 향로봉길과 묵호항역 앞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지나다니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하셨어요. 묵호항역 앞에는 주변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이 작물을 가져와서 판매했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묵호항역 앞에 시장은 없었다고 하셨어요. 향로시장은 마트 생기면서 망했다고 하셨어요.

 

"여기 기차역 생긴 순서가 묵호항역, 묵호역, 동해역 순이야."

 

할머니께서는 묵호역이 생기기 전부터 이곳에서 거주하셨다고 하셨어요. 매우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거주하셨기 때문에 이곳의 변화를 꿰고 계셨어요.

 

할머니께서는 이 동네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원래는 향로봉길 마을이 고립된 곳이 아니었는데 현재 묵호역으로 이어지는 철로가 생기면서 향로봉길 마을이 고립된 곳처럼 되었다고 하셨어요. 예전에는 묵호가 동해시 전역에서 최고로 번화한 지역이었다고 하셨어요. 천곡동이 그렇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던 일이라고 하셨어요.

 

묵호항에 한창 석탄 들어올 당시에는 향로봉길 일대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바람 불 때마다 석탄 가루 날려서 고생 많이 했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매우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셨어요.

 

"요즘은 시가 어달을 개발하려고 해."

"어달요? 묵호 너머 저기 망상 가는 그쪽이요?"

"그래!"

"거기 완전 외지 시골 아니에요? 거기 뭐 없지 않나요?"

"그렇다니까! 그런데 거기를 개발하려고 해."

"여기는 왜 놔두고요? 여기가 묵호역 있으니까 개발하면 서울에서 사람들 엄청 놀러올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가 무슨 옛날 석탄 가루 날린 거 보상해달라는 거도 아니고, 저 앞에 보기 싫은 사일로 치우고 여기부터 천곡까지 쭉 연결해서 개발하면 얼마나 좋아!"

 

할머니께서는 요즘 들어서 동해시가 묵호는 방치하고 어달항 쪽을 개발하려고 하고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어달은 가본 적은 없지만 알기는 아는 곳이었어요. 동해시에 있는 24시간 무인 카페가 어달리에 있어요. 그리고 저와 교류하는 블로거분께서 제가 글을 썼을 때 어달리가 매우 작은 시골 어촌 마을이라고 하시며 제가 어달 지역을 아는 걸 신기해하셨어요. 묵호 개발해도 끝도 없을 건데 어달 개발에 힘쓰고 있다니 이해가 안 되었어요.

 

"요즘은 또 부산에서 KTX 연결하면서 묵호역 이전한다 만다 말이 많아. 차고지가 이쪽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나."

"묵호역을요? 왜요? 관광객들 묵호역 있어서 여기 더 올 건데요?"

 

할머니께서 부산에서부터 KTX 연결하면 묵호역을 엉뚱한 곳으로 이전하고 차고지가 이쪽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는 말이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것은 묵호역 신역사 건설이 아니라 동해선 삼척역~강릉역 구간 직선화 이슈였어요. 동해시에서는 동해선 삼척역~강릉역 구간 직선화 이슈로 꽤 시끄러운 모양이었어요. 만약 직선화된다면 KTX가 동해시에서 묵호역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강릉역으로 연결될 거라고 해요. 이게 과연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요.

 

영동선 KTX는 현행대로 유지되고 동해선 KTX가 신설되는 거라면 괜찮겠지만 동해선 KTX가 신설되면서 영동선 KTX가 폐션된다면 이건 매우 나쁜 사업이에요. 영동선 KTX에는 정동진역, 묵호역 등 관광 수요가 엄청나게 많고 관광지 및 상권 발달도 꽤 잘 되어 있거든요. 더욱이 관광에 의존하고 있는 지역들이구요.

 

기차역 엉뚱한 곳으로 이전해서 지역 경제도 크게 타격입고 기차 이용 승객이 감소해서 코레일도 손해보고 있는 사례가 한둘이 아니에요. 수도권 집중 현상이 나날이 심해지며 지역 소멸 위기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인데다 한국 관광 경쟁력이 형편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대중교통 접근성이 형편없다는 점인 점을 고려하면 기차역 이전 문제는 단순히 속도 문제가 아니라 지역 사회 및 지역 경제에 끼칠 영향도 크게 고려해야 해요.

 

해리슈퍼 할머니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할머니께 인사드리고 해리슈퍼에서 나왔어요. 콜라를 마셨어요. 궁금했던 것을 많이 알게 되어서 시원했고, 콜라 자체도 시원했어요.

 

 

2022년 11월 1일 오후 4시 34분, 발한삼거리에 도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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