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항을 향해 걸어갔어요.
"여기는 뭐하던 동네지?"
삼척항이 가까워지자 매우 허름하고 낡은 동네가 나왔어요.
"적산가옥인가?"
모양이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있었어요. 여기도 적산가옥이 있어도 하나도 안 이상한 동네였어요. 삼척항도 일제강점기에 개발된 곳이기 때문이었어요.
"삼척항 가면 식당 있겠지?"
쉬고 싶었어요. 발과 다리가 너무 아팠어요. 어디 앉아서 쉬고 싶은데 쉴 만한 곳이 안 보였어요.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났어요. 슬슬 오후 2시가 되어 가고 있었어요. 하루 종일 음료수 제외하고 먹은 거라고는 삼립 크림단팥빵 1개가 전부였어요. 삼척항 근처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면 삼척해수욕장 가서 식사할 만한 곳을 찾아봐야 했어요. 삼척해수욕장보다는 그래도 삼척항 근처가 밥 먹을 만한 식당이 있을 것 같았어요.
"식당 있으면 점심 먹으면서 쉬어야겠다."
이대로 계속 걷는 건 무리였어요. 통증이 너무 심해서 당장 쉬어야 했어요. 쉴 만한 곳이 없어서 못 쉬고 계속 걷는 중이었어요. 어떻게 삼척해수욕장까지는 걸어갈 거에요. 아직 날이 저물려면 시간이 매우 많이 남았으니까요. 그 대신 숙소 들어가서 신발 벗는 순간부터 힘들어서 그대로 누워버릴 거였어요. 다음날도 제대로 걸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구요. 찜질방에서 잔다면 냉탕 가서 냉찜질하며 통증을 빨리 가라앉히겠지만, 이날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잘 예정이라 냉찜질도 못 하고 버텨야 했어요. 그러니 점심을 먹는 것은 단순히 식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발과 다리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어요.
"저기가 나릿골 감성마을이네."
앞에 언덕이 하나 보였어요. 언덕에 달동네가 있었어요. 안내표시판 없어도 바로 저기가 나릿골 감성마을이라고 알아챌 수 있었어요. 나릿골 감성마을을 향해 걸어갔어요.
"여기는 다 2인분 이상이네?"
정라항으로 가는 길에는 식당이 여러 곳 있었어요. 문제는 사실상 전부 2인분 이상 음식만 판매하는 식당이었어요. 저는 혼자 여행왔어요. 혼자서 2인분을 먹을 수 있기는 한데 굳이 무리해서 2인분 먹고 싶지는 않았어요. 딱 1인분만 먹고 싶었어요. 배고파서 식당에서 점심을 사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앉아서 쉬고 싶었지만 마땅히 앉아서 쉴 만한 공간이 안 보여서 점심을 먹으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아까 거기에서 아무 거나 뭐 먹고 와야 했어.'
아까 걸어오면서 서사가 이상하게 변한 운탄고도1330 9길의 충격 때문에 입맛이 사라졌어요. 삼척 시내에 진입하자 오십천 따라서 식당이 몇 곳 있었어요. 식당을 보며 들어가서 밥을 먹고 갈지 잠시 고민하다가 입맛도 사라졌고 딱히 배고프지 않은데 삼척항 가서 점심 먹으며 쉬기로 했어요. 최악의 오판이었어요. 혼자 여행와서 운탄고도1330 9길을 걷는다면 삼척항보다 삼척시립박물관, 삼척장미공원 근처에서 점심을 먹어야 했어요.
만약 이런 것을 알고 있었다면 저도 삼척 시내 들어와서 점심을 먹고 남은 구간을 걷기 시작했을 거였어요. 그러나 이와 관련된 정보는 없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이때 - 2022년 10월 21일은 운탄고도1330 9길이 정식 개통하기 전이었어요. 정식 개통 전에 미리 와서 걸어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정보랄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당연했어요. 삼척항 와서야 만약 혼자 운탄고도 9길을 걷는다면 삼척항 오기 전에 점심을 먹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너무 늦었어요.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렸어요.
"여기는 왜 이렇게 말린 생선이 많지?"
심지어 말린 상어도 있었어요.
"다른 지역이랑 많이 다른데?"
저도 고향이 바닷가에요. 제주도 출신이니까요. 고향 제주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바닷가를 여러 곳 다녀봤어요. 바닷가 동네 가면 생선 말리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어요. 그러나 말린 생선보다는 아무래도 생물이 더 많이 보여요. 하지만 삼척은 아니었어요. 삼척항에 오니 온통 말린 생선 투성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어요. 다른 지역이었다면 수족관과 살아있는 물고기, 생물 물고기가 많이 보였을 건데 삼척은 희안하게 말린 생선이 엄청나게 많이 보였어요. 생물 생선은 별로 안 보였어요.
'이건 묵호랑도 너무 다른데?'
삼척 바로 윗동네 동해시의 어촌 마을인 묵호도 가보면 어시장이 있고 생물 생선이 많이 보여요. 동해시도 생선 말리는 장면을 볼 수 있기는 하지만 말린 생선이 삼척만큼 지천에 바글거리는 정도는 아니었어요. 동해시 묵호 지역도 한때 덕장에 명태, 오징어를 많이 말렸다고 하고, 지금도 동해시에서 말린 명태인 묵호태를 만드는 덕장이 있어요. 그래도 동해시만 해도 건어물 판매하는 가게에서나 말린 생선이 좀 보였지, 삼척처럼 도처에 말린 생선 투성이 소리 나올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물론 황태 덕장은 겨울에 운영되고 제가 동해시 갔을 때는 늦여름과 가을이기는 했지만요.
우리나라는 동해안, 서해안, 남해안 생선이 달라요. 동해안 생선은 잘 몰라요. 뭔지 잘 모르는 동해안에서 잡히는 생선이 건조되어 있으니 진짜 무슨 생선을 말려놓은 건지 알 수 없었어요.
삼척항 한쪽에서는 가자미를 말리고 있었어요.
정라항 한쪽에서는 오징어를 줄에 매달아서 말리고 있었어요.
삼척항을 대충 둘러봤어요. 여전히 제가 밥 먹을 만한 식당은 없었어요.
'이사부 광장 새천년 해안도로로는 안 간다.'
운탄고도1330 9길을 제대로 걸으려면 이사부 광장을 지나 새천년 해안도로로 가야 했어요. 이건 진짜 안 내켰어요. 코리아둘레길 해파랑길 32코스 삼척 정라항 나리골길 코스로 잠시 빠져도 코리아둘레길 해파랑길 32코스와 운탄고도1330 9길은 새천년 해안도로에서 겹쳐요. 어째서 바닷가 걷는 길인 해파랑길이 산으로 가고 산 걷는 길인 운탄고도1330이 바닷가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길이 이렇게 되어 있어요. 아주 이상해져서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운탄고도1330 9길 끝자락을 걸을 바에는 차라리 삼척 온 김에 나릿골 감성마을이나 관통해서 산 넘어 가는 게 더 나았어요.
'뭐라도 먹고 쉰 후에 가야 할까, 그냥 가야 할까?'
이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문제가 아니다.
엄마가 싫어, 아빠가 싫어 문제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는 반드시 하나 골라야 한다면 눈 질끈 감고 찍으면 되요. 선택당하지 못한 한쪽이 삐진 척 하면 그쪽도 좋다고 소리치면 되요. 그러나 '엄마가 싫어, 아빠가 싫어' 질문을 주고 반드시 하나 골라야 한다고 하면 이건 문제가 완전히 달라요. 찍는 순간 인생이 달라져요.
밥 먹으려면 편의점 가서 편의점 도시락 사먹는 수밖에 없었어요. 멀리 삼척으로 여행 와서 편의점 도시락이라니 한숨만 나왔어요. 하지만 편의점 도시락을 먹지 않는다면 눈앞에 보이는 코리아둘레길 해파랑길 32코스 삼척 정라항 나리골길 코스를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다리와 발 통증을 그대로 끌어안고 기어올라가야 했어요.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은데 하나 골라야 했어요.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다? 그것도 운이 따라줘야 해요. 편의점 도시락은 무슨 하루 종일 아무 때나 편의점 가면 있는 줄 아나요. 편의점 도시락도 있을 때 가야 먹어요.
'편의점 들어가자.'
편의점으로 들어갔어요. 편의점 도시락이 있는지 봤어요. 하나 있었어요. 편의점 도시락을 하나 집어들고 콜라도 하나 집어들었어요.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어요. 의자에 앉았어요. 신발을 벗었어요. 신발을 벗자 발 통증이 빠르게 줄어들어갔어요. 그러나 워낙 통증이 심했기 때문에 통증이 빠르게 줄어든다고 해도 많이 아팠어요. 단순 근육통 같은 것이 아니라 신발이 길이 안 들고 볼이 너무 좁아서 발 뼈가 아픈 거라 완전히 가라앉으려면 최소한 하루 종일 신발 벗고 맨발로 지내야 할 거였어요. 이 정도로 신발 잠시 벗고 있는다고 해결될 통증이 아니었어요.
편의점 도시락과 코카콜라를 먹기 시작했어요.
'여기까지 와서 이게 뭐 하는 거지?'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어요.
망해버린 여행 엔딩
삼척 여행 와서 식사가 편의점 도시락
'왜 사냐건 웃지요'라는 전설의 싯귀가 어울리는 상황이었어요. 편의점 도시락을 다 먹었어요. 콜라를 마시며 조금 더 의자에 앉아 있었어요.
도계가 그리웠어요. 신기가 그리웠어요. 아니, 아까까지만 해도 도계, 신기에 비해 밋밋하고 시시하다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미로 읍내 풍경이 그리워졌어요.
나 동해시 묵호 논골마을 얼마 전에 보고 왔단 말이야!
바로 옆 나릿골 감성마을도 눈에 들어올 리 없었어요. 강원도 동해시 묵호 논골마을 보고 온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정확히는 동해시 묵호 게구석 마을, 산제골 마을, 논골 마을로 이어지는 커다란 바닷가 달동네 마을 풍경을 보고 왔어요. 묵호항 터미널 앞 주차장 묵호항선 잔존 부분 있는 쪽에서 내륙쪽을 보면 파노라마처럼 넓고 길게 쫙 펼쳐져 있는 동해시 묵호 게구석 마을, 산제골 마을, 논골 마을로 이어지는 커다란 바닷가 달동네 마을 풍경을 볼 수 있어요.
동해시는 3개
삼척시는 1개
3과 1 중 누가 더 크다?
3이요!
마을 3개가 합쳐진 동해시의 바닷가 달동네 풍경과 마을 1개인 삼척시의 바닷가 달동네 풍경. 마을 3개짜리부터 보고 왔으니 눈에 안 들어왔어요. 동해시 묵호 바닷가 언덕 달동네는 알록달록하게 칠해놓고 꾸며놨는데 삼척시 바닷가 언덕 달동네는 그런 것도 없었어요. 그러니 더욱 밋밋하고 특별한 감상이 안 느껴졌어요.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어쨌든 아직 길이 남아 있었어요. 갈 길은 가야 했어요. 운탄고도 완주고 나발이고 예약한 숙소가 삼척해수욕장에 있었어요. 예약 취소하면 위약금 물어요. 아무리 운탄고도1330 9길 엔딩이 마음에 완전히 안 들어서 충격받았더라도, 기껏 멀리 삼척까지 왔는데 식사로 먹는 게 편의점 도시락이라 기운 쭉 빠지더라도 위약금 물고 여기에서 바로 여행 끝내고 바로 의정부로 돌아갈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그만큼 위약금 물고 예약취소하고 싶지 않았어요.
나릿골 감성마을 중앙에 있는 나리골길을 따라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고양이가 아주머니께 생선을 팔려고 생선 바구니 끌고 왔지만 앉아 있는 아주머니가 전혀 관심을 안 보이는 벽화가 있었어요.
나릿골 감성마을 지도가 있었어요.
나릿골 감성마을 중앙에 있는 가파른 나리골길 비탈길을 뛰어올라갔습니다.
마음 속으로만요.
발 아파 죽겠는데 어떻게 뛰어가요.
그것도 평지도 아니고 가파른 비탈길인데요.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한 발 한 발 내딛었어요. 편의점에서 편의점 도시락 먹으며 잠시 앉아서 쉬기를 잘 했어요. 그때 신발 잠깐 벗고 쉬지 않았으면 발이 너무 아파서 바닥만 보며 걸었을 거였어요.
뒤를 돌아봤어요.
전망이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사진을 찍고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갔어요.
나릿골 감성마을 꼭대기까지 거의 다 올라왔어요.
까치가 보였어요. 제가 이 동네 반가운 손님이었는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