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석탄의 길 1부 34 -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묵호항선 철도 유적

좀좀이 2023. 2. 2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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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시장에서 나와서 묵호항을 향해 걸어갔어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이놈의 하늘은 대체 뭐가 그리 슬퍼서 이렇게 눈물을 쏟아붓고 있는지 몰랐어요.

 

'오늘 내가 사연 있는 동네들 골라서 다녀서 그런가?'

 

2022년 10월 6일에 돌아다닌 지역은 강원도 삼척시 내륙지역과 동해시 묵호 지역이었어요. 둘 다 사연이 참 많은 지역이에요. 거기에다 이 지역들 중에서도 가장 사연 많은 동네로만 돌아다녔어요. 밝은 사연이 아니었어요. 한결같이 슬픈 사연이었어요. 과거의 번창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쇠락한 지역, 사라진 지역들이었어요. 직접 듣지 않아도 모든 풍경이 씁쓸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어요.

 

어쩌면 그래서 날이 더욱 이 모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너무 나쁘게만 볼 것 없었어요. 씁쓸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 동네들을 다니는데 하늘이 거기에 맞춰서 같이 울어주고 있었어요. 사연 있는 동네 사진을 찍는데 쨍하고 밝고 명랑하게 나오면 이 맛이 덜할 거였어요. 후에 여행기를 쓸 때 여행기 내용과 사진이 따로 노는 어색한 모습이 나올 거였어요. 그러나 이날은 날이 너무 흐리고 비가 좍좍 퍼부어서 씁쓸한 이야기가 담긴 동네 사진답게 사진이 한결같이 아주 우중충하고 침침했어요. 사진만 봐도 사연 있는 동네라고 알아볼 수 있게요.

 

'그래, 좋게 생각하자.'

 

여전히 쏟아지고 있는 비. 좋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비가 쏟아지기 때문에 사연 있는 동네들을 다닌 여행기에 너무나 어울리는 사진들을 찍었어요. 먼 훗날 제가 이 여행기를 다시 읽을 때 사진들을 보며 그곳들은 참 사연 있는 동네였다고 회상하기 딱 좋은 사진들이었어요.

 

한편으로는 날씨가 안 좋아서 꽤 고생했어요. 그래서 더욱 짜릿하고 자극적인 여행이 되었어요. 모처럼 혼자 저 자신을 마음껏 불태우는 여행을 했어요. 날씨 때문에 짜증나고 육체적으로 힘들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힘들었기 때문에 더욱 투지와 오기가 생겨서 일정을 양보 없이 강행했어요. 내 모든 것을 다 쏟아부으며 돌아다녔기 때문에 너무 재미있었어요. 남들과 다닐 때는 절대 이렇게 못 다니고, 안 다녀요. 저 혼자 다닐 때도 이 정도로 극한까지 몰아붙이며 여행하지는 않아요.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든데 그래도 오기로 열 걸음 스무 걸음 내딛고 있었어요.

 

이런 고통, 너무 오랜만이야.

 

여행하며 이런 고통을 마지막으로 느낀 건 인생에 딱 한 번 있었어요. 예전에 지하철 타고 덕계역으로 가서 경기도 양주시 산북3동에 있는 중랑천 발원지로 가서 중랑천이 한강과 합류하는 지점까지 갔다가 의정부까지 다시 걸어서 돌아온 적이 있었어요. 그날 61km를 걸었어요. 그때도 한강에서 의정부로 돌아오는 길에 눈이 펑펑 내려서 쉬지 못 하고 걸어야 했고, 결국 진짜 도저히 걷는 게 무리라서 살기 위해 발곡역 가서 경전철 타고 자취방으로 돌아왔었어요.

 

그때보다는 당연히 훨씬 덜 힘들었어요. 그러나 그 당시에는 발이 아프지 않고 다리만 끊어지게 아팠지만, 이번에는 다리도 아프고 발이 미치도록 아팠어요. 송곳으로 발뼈를 쑤셔서 꿰어버리는 고통이었어요. 양쪽 발 다 아팠기 때문에 절룩거리며 걷지도 못했어요. 영화 속 좀비처럼 두 발을 질질 끌며 걸었어요. 그래도 솔직히 즐거웠어요.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며 여행하는 게 너무 오랜만이었거든요. 자주 할 짓은 아니지만 어쩌다 한 번 하는 것은 좋아요. 대신 한동안 푹 쉬어야하지만요.

 

아직 살아있음을 느꼈어요. 역병 사태 2년 동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참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역병 사태 이전에 비해 몸도 많이 약해졌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피곤했었어요. 그 2년 동안은 저나 주변이나 다 힘들었기 때문에 무소식이 희소식이었던 시절이었어요. 그 2년의 고통을 하나씩 마취 없이 잡아뜯어내며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과정이었어요. 나 아직 살아있고, 나 아직 힘이 있어요.

 

마지막 일정인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묵호항선 철도 유적까지 얼마 안 남았어요. 거의 다 왔어요. 결승점이 코 앞이었어요. 기어가도 이 밤이 끝나기 전에 도착할 거리였어요. 하늘은 마지막까지 함께 하자며 눈물을 흘리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었어요.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지막까지 하늘이 계속 울어줬으면 좋겠다. 여기에서 갑자기 하늘이 씨익 웃으며 비구름 다 걷히고 별이 빛나는 밤이 되면 그것도 웃기잖아.

 

큰 길로 나와서 길을 건넜어요. 묵호항 어시장으로 갔어요.

 

묵호항 어시장

 

묵호항 어시장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이 매우 흔들렸어요. 다시 찍었어요.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어시장

 

2022년 10월 6일 18시 48분,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어시장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불 켜진 상점이 하나도 없었어요. 묵호항 어시장이 일찍 닫기는 하지만 이 시각에 모든 상점이 다 문을 닫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이날은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묵호항 어시장이 완전히 문을 닫았어요.

 

묵호항 포구로 갔어요. 어선들이 정박해 있었어요.

 

묵호항 포구

 

'오늘은 회 먹으러 여기 온 사람 없겠지?'

 

묵호 지역 전체가 저녁 7시도 안 되었는데 불이 다 꺼져 있었어요. 멀리 논골마을과 묵호전망대 활어회센터는 빛나고 있었어요. 논골마을이야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옥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니 집 안에 사람들이 있을 거였어요. 이날 지금 묵호전망대 활어회센터에 회 먹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 지 궁금했어요. 묵호 분위기 보면 아무도 없을 거 같았어요.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다음날 동해시는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있었어요. 모든 어선이 다 항구로 피항해 있었어요.

 

동해안 어선

 

어선을 보며 2022년에 동해안은 오징어 흉년이었다는 뉴스가 떠올랐어요. 해류 온도가 변해서 오징어들이 다 서해안으로 가버렸대요. 그래서 강원도 오징어 상인들도 서해안 가서 오징어 사오고 있다고 했어요. 풍어의 꿈을 기원하는 밝은 바다가 아니라 흉어로 고통받는 악몽이 현실이 된 바다였어요. 날이 흐리니 이런 현실도 사진에 아주 잘 나타났어요.

 

강원도 어선

 

배를 보며 걸었어요. 이제 정말로 마지막 목적지까지 다 왔어요. 여유로웠어요. 여유로울 수 밖에 없었어요. 묵호 일대가 전부 철시에 파장이었기 때문이었어요. 무엇을 더 하고 말고가 없었어요. 이렇게 걷다가 숙소 들어가는 일만 남았어요.

 

'저녁 어떻게 하지?'

 

그 와중에 저녁 식사를 어떻게 할지 고민되었어요. 여행 오기 전에 찾아본 식당은 분명히 밤 9시까지 영업한다고 네이버 지도에 나와 있었지만 문을 닫았어요. 묵호항 일대에 있는 식당은 주로 회와 매운탕을 파는 식당들로, 이런 곳은 기본이 2인분이에요. 1인분 파는 식당도 있겠지만 1인분 파는 식당은 아마 다 문을 닫았을 거였어요. 횟집들이 몰려 있는 묵호시장도 싹 다 닫았는데요.

 

저녁을 먹으려면 최소한 묵호역까지 다시 걸어가야 했어요. 힘들어서 더 걷기 싫었어요. 힘드니까 배도 안 고팠어요. 그거 이렇게 걷다가 숙소 들어가서 쉬고 싶은 마음만 존재했어요.

 

강원도 동해시 야경

 

계속 어선이 가득 정박해 있는 묵호항을 구경했어요.

 

강원도 동해시 야경 사진

 

"오, 이거 멋있다!"

 

날이 안 좋아서 피항한 선박이 많으니 이런 사진을 건질 수 있었어요. 사진이 매우 마음에 들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여기가 동해시라고 보여주기 위해 엽서로 만들어서 보내주고 싶었어요. 저 혼자 이 장면을 감상하는 것이 아쉬웠어요. 딱 이 한 장면만 본다면 매우 아름다운 동해시 묵호항이었어요. 주변이 깜깜하고 비 내리고 물 웅덩이 투성이에 아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는 거야 이 사진 속에서 안 나오니까요.

 

이렇게 보면 번창하는 어업 도시 묵호인 줄 알 거에요.

 

묵호항 여객터미널 쪽으로 걸어갔어요.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묵호항선 철도 유적은 묵호항 여객터미널 앞에 있어요.

 

묵호 철도

 

"다 왔다!"

 

2022년 10월 6일 19시 01분, 이 여행의 종착지인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묵호항선 철도 유적에 도착했어요.

 

묵호항 묵호항선 철도

 

철도는 묵호항역을 향해 뻗어 있었어요?

 

끊겨 있었어요. 그러니까 철도 유적이에요.

 

예전에는 묵호항선이 묵호항 안까지 연결되어 있었어요. 그 흔적이 바로 이 묵호항 묵호항선 철도 유적이에요.

 

지금도 카카오맵으로 보면 묵호항선이 묵호항 안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나와 있어요.

 

 

위 지도를 보면 묵호항역에서 이어지는 철도가 묵호항 여객터미널 앞을 지나 묵호항 주차장까지 이어진다고 나와 있어요.

 

 

하지만 이 지역을 항공사진으로 보면 묵호항 여객터미널 및 묵호항 주차장에 철도가 없어요.

 

카카오맵 스카이뷰를 2012년으로 설정하면 묵호항 여객터미널 자리 앞을 지나가는 철도를 확인할 수 있어요.

 

 

카카오맵 스카이뷰로 묵호항 항공 사진을 보면 2014년부터 묵호항 여객터미널이 있는 자리에서 공사가 시작되었고, 2017년이 되면 현재 묵호항 여객터미널 앞 묵호항선 철도가 완전히 사라져 있어요.

 

묵호항 여객터미널 공사를 하면서 묵호항선 철도를 철거했고, 묵호항 여객 터미널 앞에만 아주 일부 남겨놓았어요. 그러나 이것이 왜 남아 있어야 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없어요. 이렇게 레일만 덜렁 남아 있을 뿐이에요.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묵호항선 철도

 

"이 철도 끄트머리에서 사진 찍을까?"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묵호항선 철도 유적 끄트머리에서 사진을 찍으면 더 괜찮게 나올 거 같았어요. 철도 끄트머리로 가기로 했어요. 철도 끄트머리는 잔디밭에 있었어요. 잔디밭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어요.

 

"앗, 이거 다 물 진창이잖아!"

 

겉보기에는 잔디밭이었지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완전히 늪지로 변해 있었어요. 겉으로 보면 잔디가 자라 있는 평범한 땅이었지만 잔디밭 전체가 물웅덩이였어요. 발목 높은 신발 신고 온 게 천만다행이었어요. 평범한 운동화 신고 왔으면 발이 푹 빠져서 신발이 속까지 푹 젖어버렸을 거였어요. 마지막까지 한순간의 방심도 용납하지 않고 모든 것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는 여행 일정이었어요.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묵호항선 철도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묵호항선 철도 유적 끝자락에 와서 사진을 찍었어요.

 

'드디어 석탄의 길 끝났네.'

 

강원도 남부 태백, 삼척에서 생산된 석탄은 기차를 타고 여기 묵호항으로 운반되었어요. 묵호항으로 이동한 석탄은 선박으로 대한민국 여러 지역으로 운송되었어요. 선박으로 운송해야 하는 석탄은 전부 묵호항으로 운송되었다고 보면 되요. 일본이 묵호항이 건설한 이유도 강원도 남부 삼척 탄전에서 생산된 석탄을 운송하기 위해서였어요. 석탄 이동의 마지막 지점이 바로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이었어요.

 

한편 묵호에서 잡힌 많은 생선과 해산물은 기차를 타고 삼척시 내륙지역, 태백시로 팔려갔어요. 과거에는 동해시 묵호에서 삼척시 도계읍, 태백시로 생선을 팔기 위해 생선을 가지고 기차 타고 묵호에서 도계, 태백으로 가는 아주머니가 정말 많았대요.

 

강원도 동해시 묵호 지역도 역시 한때 개도 만원짜리 물고 다니는 지역이었다고 해요. 물고기가 많이 잡혔던 과거에는 손 빠른 사람이 돈을 쓸어담아갔다고 해요. 생선 한 마리 배를 따고 내장 발라내고 손질하는 일은 생선 손질한 마리 수대로 돈을 받았기 때문에 손 빠른 사람이 생선 배 엄청 따고 돈을 엄청 쓸어담아갔다고 해요. 여기에 생선도 많이 잡혔고, 배후에 그 당시 엄청난 소비시장인 활황기의 탄광촌 지역들이 있었으니 생선 가지고 삼척시 도계읍, 태백시 가서 팔면 그게 또 돈이 되었다고 해요. 그러니 동해시 묵호 지역 - 발한동, 묵호진동 등은 과거에 엄청나게 번성하고 잘 나가던 지역이었어요.

 

또한 묵호항으로 석탄이 철도를 통해 계속 들어오고 선박을 통해 계속 반출되니 이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이 사람들은 진짜 석탄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하지만 동해시 바다에서 생선이 잘 안 잡히기 시작했고, 배후의 막강한 소비시장인 탄광촌 지역도 몰락하면서 동해시 묵호 지역도 덩달아 쇠락한 지역으로 전락했어요. 그러니 석탄산업의 흥망의 영향을 동해시 묵호 지역도 받았어요.

 

여기에 동해시 내부에서는 동해시가 신설되면서 농업과 공업 중심의 남쪽 북평, 어업 중심의 북쪽 묵호가 아니라 중간지역 천곡을 중심지로 삼아 개발하면서 상권의 중심이 천곡동으로 옮겨가 상권이 몰락한 것도 있구요.

 

운탄고도 8길에서부터 시작한 석탄의 길은 한때 석탄 실은 기차가 탄가루 날리며 열심히 달리던 묵호항선으로 끝났어요. 묵호항 묵호항선 철도 유적은 석탄의 길 종착지였어요. 싱그러운 풀 냄새 나무 냄새로 시작된 석탄의 길 이야기는 비릿하고 찝찔한 바다 냄새로 끝났어요.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서 땅에 입맞춤해야 하나.

 

예전 외국 영화를 보면 목적지에 힘들게 도착한 사람들이 땅에 무릎꿇고 앉아서 대지에 입맞추는 장면이 나오곤 했어요. 그 인물들 심정이 이해갔어요. 너무 힘들게 와서 결국 끝을 봤기 때문에 무릎 꿇고 주저앉아서 이 철도에 결국 다 왔다고 입맞춤해야 하나 살짝 고민되었어요. 당연히 안 했어요. 아무리 혼자 감동적인 순간이었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맑은 날 왔어도 안할 짓인데 지금 하면 바지 다 젖어요.

 

좀좀이의 여행 티스토리 블로그 강원도 여행기 석탄의 길 1부 34 -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묵호항선 철도 유적

 

"비 그쳤다!"

 

놀라운 일이 펼쳐졌어요. 거짓말 같이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묵호항선 철도 유적을 보고 떠나는 순간 비가 멎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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