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석탄의 길 1부 28 - 강원도 삼척시 신기역에서 동해시 동해역으로 무궁화호 1682 기차 타고 가기

좀좀이 2023. 2. 1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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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다!"

 

다행이다?

아닙니다.

살았습니다.

살아서 완주했습니다.

 

운탄고도1330 8길은 아직 제대로 조성되지 않은 구간이기는 했지만 크게 위험한 구간은 없었어요. 덤프트럭이 많이 다녀서 신경 거슬릴 때가 많기는 했어도 덤프 트럭에 치일 수도 있겠다고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구간은 딱 하나 - 마차리에서 철로 밑 다리를 지나갈 때 뿐이었어요. 그거 외에 너무 위험해서 못 걷겠다고 한다면 그건 엄살이었어요. 사람들이 무리지어서 걸을 수 있는 길은 아니었지만 한 명이 걸어간다면 걸어갈 수 있는 길이었어요.

 

그러나 신기역을 보고 입에서 나온 소리는 '다행이다'가 아니었어요. '살았다'였어요.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비 때문에 중간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계속 걸었어요. 마지막에는 두 발을 질질 끌면서 걸었어요. 이러니 '다행이다' 소리가 나와야 하는 상황인데 '다행이다' 소리가 아니라 '살았다'는 소리가 입에서 나왔어요. 발에 맞는 신발 신고 여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주 절실히 체감했어요.

 

빨간 구두 속 소녀는 두 다리를 자르고 나서야 저주에서 풀려났습니다.

나는 그렇게 저주에 빠지기 전에 이 신발 벗을 거야.

 

신기역을 보자 마음이 놓였어요. 언제든 들어가서 신발을 벗고 쉴 수 있었어요. 이거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여유로워졌는지 몰라요.

 

붉은 벽돌 모양 타일로 외관이 장식된 신기역

 

 

신기역에 왔으니 신기역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어요. 제가 타고 가야 하는 강원도 삼척시 신기역에서 동해시 동해역 가는 기차는 오후 3시 12분에 신기역에서 출발할 예정이었어요. 아직 오후 2시 10분도 채 안 되었어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어요.

 

신기역 버스 정류장

 

신기역 앞에는 신기역 버스 정류장이 있었어요.

 

강원도 삼척시 신기역 역전

 

"여기 아무 것도 없어?"

 

강원도 삼척시 신기역 역전에는 민가만 있었어요. 식당, 숙소 같은 것은 아예 없었어요.

 

'설마 저기까지 가야 하나?'

 

강원도 삼척시 신기 터미널

 

멀리 삼척시의 자랑이자 신기역의 존재 이유인 환선굴, 대금굴 진입로 입구가 보였어요. 황토빛 아치처럼 생긴 것이 환선굴, 대금굴 가는 길 입구에요. 저 입구에서 환선굴까지 또 한참 멀어요. 카카오맵으로 보면 환선굴, 대금굴 진입로 쪽에 식당과 여관이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지도상으로 존재하기는 하는데 영업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어요. 역병 사태 이후 네이버 지도, 카카오맵 모두 틀린 정보가 매우 많아졌어요. 역병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폐업 및 단축 영업에 들어간 식당, 숙소가 많지만 이런 정보가 네이버 지도, 카카오맵에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멀리 보이는 식당과 여관은 직접 가보지 않으면 영업하는지 알 길이 없었어요.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였어요. 아직 기차 시간까지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다녀올 수 있었어요. 게다가 이날 새벽에 출발해서 여태까지 먹은 음식이라고는 새벽에 태백시에서 먹은 육회비빔밥 한 그릇이 전부였어요. 그거 말고 먹은 음식이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하나도 없었어요. 간식조차도 안 먹었어요. 들고 온 간식이 없었고, 도계읍 늑구리부터는 가게도 없었어요.

 

가야 할 이유는 충분히 많았어요. 운이 더럽게 없다면 동해시 가서 저녁도 못 먹을 거였어요. 이게 단순히 운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제가 동해시에서 갈 지역은 묵호였어요. 묵호 지역의 발한동 일대를 돌아다니다 묵호항으로 갈 계획이었어요. 지금 이 발과 다리 상태로는 빨리 걸을 수 없었어요. 발과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히 걷고, 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무조건 신발 벗고 쉬면서 다녀야 했어요. 당연히 일정 진행이 느려질 건데, 묵호는 횟집 말고는 오후 6시면 식당이 다 닫아요. 그러니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먹어야 했어요.

 

'저기는 때려죽여도 못 가겠다.'

 

신기 터미널까지 가는 것은 포기했어요. 도저히 무리였어요. 발이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발을 질질 끌고 천천히 걷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동해시 가서 또 돌아다닐 것을 고려하면 신기역에서 추가로 신기 터미널까지 걸어갔다 올 것이 아니라 빨리 신기역 안으로 들어가서 의자에 앉아서 신발 벗고 쉬어야 했어요. 조금이라도 더 쉬어야 발과 다리 통증이 줄어들어서 동해시에서 보다 덜 고통스럽게 다닐 거였어요.

 

삼척시

 

신기역 옆에는 삼척관광지도와 운탄고도 8길, 운탄고도 9길 지도가 설치되어 있었어요.

 

운탄고도1330

 

신기역은 운탄고도1330 8길 종점이자 운탄고도1330 9길 시작점이에요.

 

운탄고도1330 8길 지도

 

운탄고도1330 8길 지도를 들여다봤어요. 제가 걸어온 길이었어요.

 

운탄고도1330 9길 지도

 

운탄고도1330 9길 지도를 들여다봤어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아직 안 가본 길이었어요.

 

삼척 관광지도

 

삼척시 관광지도를 들여다봤어요. 해안가에는 관광지가 빼곡히 몰려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그에 반해 내륙쪽에는 홍보하는 관광지가 거의 안 보였어요.

 

'운탄고도1330 8길이 공식적으로 개통되면 달라질 건가?'

 

운탄고도1330 8길은 너무 멋진 길이었어요. 늑구리 은행나무 보러 기어올라가지만 않으면 지형적으로 힘든 부분이 하나도 없었어요. 어르신들도 지팡이 짚고 걸어갈 수 있는 길이었어요. 물론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은 8길 전체 완주는 어렵겠지만요.

 

운탄고도 조성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운탄고도1330 8길에서 걸을 수 있는 공간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 거에요.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지 않는 한 답이 나올 수 없는 구간이기는 하지만 차선규제봉이라도 박고 차량 조심하라는 경고문이라도 여기저기 붙여놓기는 해야 할 거에요.

 

운탄고도1330 8길이 정식 개통된다면 찾는 사람들도 꽤 늘어날 거에요. 힘들지 않게 걸으면서 산과 오십천, 영동선 철도가 어우러져 만드는 비경들을 구경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귀한 몸 안 힘들고 아름다운 풍경 감상할 수 있는 구간이니 인기도 괜찮을 거에요. 길이 오직 하나 강원남부로 뿐이지만 대신에 이 길은 버스가 다녀서 힘들면 버스 타고 중간에 그만두면 되요. 버스 정류장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버스 타고 빠져나올 수 있어요.

 

그렇게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삼척시가 바다만 볼 만한 것이 아니라 내륙 지역도 아름답다고 소문날 거고, 그렇게 된다면 이 지도가 또 달라질 수도 있을 거에요.

 

신기역 역 앞 풍경

 

신기역 앞에는 민가 몇 채 있는 것이 전부였어요.

 

신기역 안으로 들어갔어요. 식당, 숙소 같은 것이 있는데 제가 못 찾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없었어요.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신기역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신기역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 사진을 찍었어요. 소인 부분 디자인은 환선굴 내부였어요.

 

신기역 역사 내부

 

신기역 안에서 앉을 자리를 찾아봤어요. 매표소 바로 앞에 의자가 있었어요. 의자에 앉았어요. 신발을 벗었어요. 신발을 벗는 것만으로 통증이 확 날아가는 기분이었어요. 발이 신발의 구속에서 해방되자 발을 파고들던 통증이 증발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여기는 콘센트 없네?"

 

의자 근처에 콘센트가 없었어요. 스마트폰을 보조배터리로 충전하기 시작했어요.

 

"캔커피 마셔야지."

 

배낭을 열고 집에서 출발할 때 들고 온 캔커피를 꺼냈어요. 캔커피를 쭉 들이켰어요. 캔커피 한 캔이 점심밥이었어요. 캔커피도 매우 훌륭한 비상식량이에요. 캔커피로 열량을 보충했으니 점심을 먹었어요. 고체 대신 액체로 된 점심 식사를 했어요.

 

캔커피 캔을 버리기 위해 다시 신발을 신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쓰레기통에 캔커피 캔을 버렸어요. 바깥을 다시 봤어요.

 

연탄 배달 트럭

 

신기역 앞 민가 앞에 연탄을 실은 트럭이 정차해 있었어요. 연탄을 실은 트럭을 몰고 온 분께서 연탄을 트럭에서 내려서 민가로 배달하고 있었어요.

 

'연탄의 길이네.'

 

석탄 생산의 길은 도계읍 늑구리에서 벗어나며 끝났어요. 지금 제가 있는 길은 냉정히 말해서 시멘트의 길, 석회석의 길이었어요. 그러나 태백, 삼척에서 생산된 석탄은 영동선 철도를 타고 동해시 묵호역으로 가요. 그러니 '운탄고도'라는 말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어요. 운탄고도는 한자로 運炭古道에요. 석탄 생산의 길인 채탄고도가 아니라 석탄 나르던 길 운탄고도에요.

 

신기면은 석회석과 시멘트 생산지역이라고 운탄고도에서 석탄 관련은 석탄을 나르는 영동선만 남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연탄 배달 트럭이 아니라고 알려줬어요. 그래요. 연탄을 사용하는 곳이었어요. 연탄의 길이었어요.

 

다시 신기역 안으로 들어왔어요.

 

신기역 역사 내부 사진

 

신기역은 무궁화호 열차와 동해산타열차가 정차하는 기차역이에요. 신기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는 하루에 동해시까지 가는 열차 4회, 영주시까지 가는 열차 1회, 서울 청량리역까지 가는 열차 3회, 부전역까지 가는 열차 1회 운행되요.

 

다시 의자에 앉았어요. 신발을 벗었어요. 1초라도 더 신발을 벗고 쉬어야 했어요. 발바닥을 바닥에 대었어요. 사람들이 얼마나 안 왔는지 바닥이 아주 깨끗하고 물기가 있는 부분이라고는 제가 걸은 곳 뿐이었어요. 신기역 바닥은 도끼다시 - 인조석 타일 바닥이었어요. 차가운 바닥에 발바닥을 대어서 냉찜질을 했어요.

 

신기역 내부 사진

 

"잠깐만, 저거 콘센트 아냐?"

 

승강장으로 나가는 문 왼쪽에 나무 의자와 나무 테이블이 있었어요. 나무 의자 옆 벽에 콘센트처럼 생긴 것이 있었어요. 다가가서 봤어요. 콘센트였어요. 배낭을 들고 나무 의자로 갔어요. 배낭에서 스마트폰 충전기를 꺼내서 콘센트에 꽂은 후 스마트폰에 충전기를 연결했어요.

 

"된다!"

 

스마트폰을 콘센트에 충전 케이블 꽂아서 충전하자 보조배터리로 충전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되게 빠른 속도로 스마트폰이 충전되기 시작했어요. 이때가 2시 50분이었어요.

 

"진작에 잘 찾아볼걸!"

 

너무 아쉬웠어요. 제가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는 기차 시간까지 40분 여유가 있었어요. 스마트폰을 콘센트에 충전기 연결해서 40분 충전하면 충전 매우 많이 할 수 있어요. 기차 안에서도 콘센트가 있어서 충전할 수 있어요. 이 점까지 고려하면 만약 신기역 도착하자마자 충전을 시작했다면 기차가 동해역에 도착해서 기차에서 내릴 때는 스마트폰 배터리가 엄청나게 많이 충전되어 있었을 거였어요.

 

신기역 대합실

 

다리와 발의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어요. 운탄고도1330 8길이 준 감동 위를 새까맣게 덮고 있던 다리와 발의 통증이라는 때가 벗겨져 나가기 시작하자 감동이 다시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흥분시켰던 여행을 얼마만에 다시 해본 거지?'

 

오십천과 영동선 철도, 강원남부로를 따라 걸으며 본 삼척 풍경은 굉장한 비경이었어요. 아름다운 풍경을 봤다는 이유만으로 흥분하고 감동한 것이 아니었어요. 운탄고도1330 8길은 아직 미개통 상태에요. 지도를 보고 길이 어떻게 될지 추리해서 직접 길을 찾으며 걸었어요. 운탄고도1330 8길은 있는 길이면서 동시에 아직 없는 길이었어요. 그 길을 찾아다닌 재미와 모험이 있었어요.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삼척은 해안 도시로 알고 있어요. 대부분의 일반인 뿐만 아니라 삼척시도 삼척 관광은 바닷가 항구와 해수욕장을 적극 홍보중이에요. 오십천 계곡 따라 가는 내륙 산간지방 계곡 길에 대해서는 별 홍보 없어요. 삼척도 딱히 홍보할 생각이 없어보이고 사람들도 잘 모르는 삼척의 숨겨진 보물을 발견했어요. 엘도라도를 발견한 스페인 탐험가의 전율을 운탄고도1330 8길 걸으며 느꼈어요.

 

'운탄고도1330 8길 또 걷고 싶다.'

 

운탄고도1330 8길을 다 걸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걷고 싶어졌어요. 이번에는 신기역에서 도계역으로 되돌아가며 걸어보고 싶었어요. 도계역으로 돌아가서 도계역에서 기차 타고 동해시 동해역으로 넘어가도 되었어요.

 

'언젠가 또 오게 되겠지? 설마 올해 늦가을에 단풍 보러?'

 

지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도계역을 향해 걸어가는 것은 무리였어요. 아무리 다리와 발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다고 해도 운탄고도1330 8길 코스 전구간을 다 걸을 상태가 아니었어요. 운탄고도1330 8길을 다시 가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어요. 지금 당장도 또 걷고 싶기는 했지만 이건 정말 무리였고, 언젠가 다시 이 길로 또 돌아올 거에요. 이제 한 번 걸어봐서 길도 다 알고 충분히 걸을 만한 길이라는 점도 알고 있으니 다음에 오면 아주 편하고 힘들지 않게 완주할 수 있을 거였어요. 급할 거 없었어요. 2023년 10월 6일 이후에도 이 길은 계속 그 자리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요.

 

대합실 천장을 바라봤어요.

 

신기역 대합실 천장

 

운탄고도1330 8길을 다 걷고 삼척시를 떠나지만 하나도 안 아쉬웠어요. 기차를 타고 동해역으로 가는 것이 이 여행의 끝을 의미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었어요. 동해시에서 또 대탐험을 한 판 벌여야 했으니까요.

 

'동해시 여행도 이만큼 재미있겠지?'

 

운탄고도1330 8길과는 성격이 다른 여행이었어요. 운탄고도1330 8길은 코스 자체는 설정되어 있었지만 아직 여행자들이 와서 다닐 수 있게 준비가 완료되지 않은 길이었어요. 반면 이번 동해시 여행 계획은 제가 궁금한 곳을 찾아가서 궁금했던 것의 답을 발견해내는 과정이었어요.

 

한편으로는 동해시로 가서 진짜 석탄이 이동하는 운탄고도를 따라가는 길이기도 했어요. 운탄고도1330 엔딩은 석탄과 별 관련 없어요. 그러나 제가 가는 길은 오늘날까지도 석탄이 운반되는 진짜 운탄고도, 석탄의 길이었어요.

 

신기역 대합실에 안내 방송이 나왔어요. 대합실에 저 혼자 아무 말 없이 있었기 때문에 안내 방송이 아주 웅장하게 울려퍼졌어요. 안내 방송은 신기역 출발 동해역 도착 무궁화호 1682호는 8분 지연되어서 15시 19분에 신기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었어요.

 

"스마트폰 충전 조금 더 하겠다."

 

기차 연착은 보통 좋은 소식이 아니에요.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더 좋았어요. 조금이라도 스마트폰을 더 충전하고 갈 수 있었어요.

 

2022년 10월 6일 15시 13분, 신기역 대합실에서 나와서 신기역 승강장으로 갔어요.

 

신기역 승강장 입구

 

어서오우야

 

신기역 승강장 입구에는 '어서오우야'라고 적힌 나무판이 매달려 있었어요. '어서오우야'는 처음 보는 말이었어요.

 

'이 지역 방언인가?"

 

대충 '어서오세요'라는 말일 거에요.

 

'어서오우야'라는 말을 태어나서 처음 봐서 신기한 것도 있었지만, 사투리를 글로 적어놓으면 더 못 알아먹기 때문에 더욱 신기해보인 것도 있었어요. 사투리는 글로 쓰는 일이 거의 없다 보니 글로 써놓은 사투리 보면 매우 어색해요. 심지어 제가 제주도에서 살 때 일상회화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제주도 방언조차 글로 써놓으면 이게 뭔 소리를 적어놓은 건가 한참 봐도 못 알아볼 때가 종종 있어요. 이런 것은 소리내서 따라읽어보고 그제서야 '아, 이걸 이렇게 써놨구나!' 하고 이해하곤 해요. 특히 방언은 '표준 방언'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다 보니 글로 써놓은 것과 실제 들을 때의 괴리가 상당히 커요. 진짜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 급이 많아요.

 

어서오우야?

나 지금 여기 떠나는데?

 

신기역에서 나와서 승강장으로 가는데 제게 '어서오우야'라고 하고 있었어요. 나는 지금 신기역을 떠나기 위해 이 등나무 아치를 통과하려는데 등나무 아치가 제게 하는 말은 어서오우야. 나도 여기를 떠나며 '어서오우야'라고 인사하고 떠나야 하는 걸까.

 

 

플랫폼에서 신기역 역사를 바라봤어요.

 

영동선 철도

 

철도 너머에는 밭이 펼쳐져 있었어요. 밭 너머에는 산이었어요. 운탄고도1330 8길을 완주하며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쉬지 않고 감상한 제게 눈 앞의 풍경은 그냥 강원도 풍경 1에 불과했어요. 만약 강원도 오자마자 여기로 바로 왔다면 기차역부터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 시작되었다고 매우 좋아했을 거였어요.

 

신기역 주변 풍경 사진

 

다시 신기역을 바라봤어요.

 

신기역 승강장 입구

 

등나무 아치에 매달려 있는 나무판은 앞뒤 모두 '어서오우야'라고 적혀 있었어요.

 

강원도 기차 여행

 

입간판식 역명판에는 신기역 다음 기차역이 북쪽 동해역과 남쪽 도계역이라고 나와 있었어요.

 

강원도 삼척 철도

 

기차가 들어오니 안전을 위해 노란선 안쪽으로 물러나 있으라는 방송이 나왔어요. 신기역으로 들어오는 제가 타고 갈 기차 사진을 찍기 위해 갤럭시노트10+를 꺼냈어요. 기차가 들어올 방향을 바라보며 가만히 섰어요. 기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렸어요.

 

영동선 무궁화호 열차

 

석탄의 길 1부 28 - 강원도 삼척시 신기역에서 동해시 동해역으로 무궁화호 1682 기차 타고 가기

 

2022년 10월 6일 오후 3시 20분, 신기역으로 무궁화호 제1682호 열차가 들어왔어요. 기차를 탔어요.

 

무궁화호 열차 콘센트

 

기차에 타자마자 좌석 앞에 있는 콘센트에 충전기를 꽂고 스마트폰을 충전시키기 시작했어요.

 

신기역에서 동해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에는 승객이 거의 없었어요. 제가 탄 객차에는 승객이 저 하나 뿐이었어요.

 

창밖을 바라봤어요. 옥빛 하천이 힘차게 흐르고 있었어요.

 

강원도 오십천

 

상정역, 미로역을 지나갔어요. 모두 폐역이었어요.

 

"이제 운탄고도1330이 아니라 진짜 석탄의 길로 간다."

 

미로역을 지나서 조금 더 가면 마평교가 나와요. 여기에서 운탄고도1330과 현재까지도 석탄이 운반되는 길이 갈라져요. 석탄이 운반되는 길인 영동선 철도는 도경리역을 지나 동해역으로 가요. 반면 운탄고도1330은 오십천을 따라 삼척항으로 가요.

 

다시 갤럭시노트10+를 켰어요.

 

2022년 10월 6일 오후 3시 38분, 무궁화호 제1682호 열차가 도경리역을 지나가기 시작했어요.

 

도경리역

 

비취색 지붕에 하얀 벽 건물인 강원도 삼척시 영동선 폐역 도경리역

 

 

"와, 성공이다!"

 

도경리역 사진이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나름 괜찮게 잘 찍혔어요. 도경리역도 폐역이에요. 그리고 도경리역이 영동선 북쪽 방향 삼척시 마지막 기차역이에요. 도경리역을 넘어서 터널을 통과하면 그때부터는 동해시에요.

 

'저기는 내가 갈 일이 없으니까.'

 

도경리역은 기차 타고 지나가며 본 것으로 만족했어요. 도경리역은 제가 갈 일이 아예 없었어요. 이런 것은 기차 타고 가다가 창밖 풍경으로 구경하면 그만이었어요. 도경리역이 예쁘게 생기기는 했어요. 에메랄드색 지붕에 하얀 벽으로 된 조그마한 역사였어요. 그러나 이거 하나 보자고 오지는 않을 거였어요.

 

도경리역은 가기 매우 애매한 곳에 위치해 있어요. 대중교통도 거의 없어요. 운탄고도1330 9길은 도경리역 반대편으로 진행되요. 도경리역을 가려면 마평교까지 가서 거기에서 걸어들어가야 했어요. 도경리역을 가려면 순수하게 진짜 도경리역 하나 보기 위해 도경리역으로 가야 하는데 제가 갈 리가 없었어요. 제가 기차와 철도 관련된 곳에 열광하는 철도 매니아도 아니구요. 기차 안에서 잘 봤으니 그걸로 되었어요. 파란색 화물 운송 차량에 실려가는 석탄도 도경리역을 지나가고 저도 도경리역을 지나갔어요.

 

무궁화호 제1682호 열차가 동해시로 들어왔어요.

 

"어? 어? 어?"

 

너 X된 거야

야, 어서 도망가!

 

기차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어요. 빗방울은 유리창에 부딪히면서 '너 X된 거야.', '야, 어서 튀어!'라고 신호를 보내왔어요. 쉬지 않고 계속 제게 도망가라고 외치고 있었어요. 갈 수록 빗방울이 제게 '야, XX 너 진짜 X되었다니까!', '빨랑 튀어!'라고 거칠고 험악하게 신호를 보냈어요.

 

"이거 싸한데?"

 

차창 밖으로 하천이 보였어요. 전천이었어요. 머리가 뜨겁고 어지러워지기 시작했어요.

 

'이거 진짜 망한 거 아냐?'

 

동해시 하천인 전천이 이게 하천인지 바다인지 분간도 안 되게 무섭게 불어나 있었어요. 무슨 홍수난 것처럼 물이 무섭게 콸콸 흐르고 있었어요.

 

'아직 몰라. 윗쪽도 비 왔으니까.'

 

동해시 하천 전천은 아주 바다가 되었지만 아직 몰랐어요.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어요. 패는 까봐야 아는 거에요. 기차역에서 내려봐야 알아요. 전천 물이 무섭게 불어나 있었지만 윗쪽도 비가 와서 윗쪽에서 물이 내려와 전천 하류 쪽이 물이 크게 불어난 거일 수도 있었어요. 동해역에서 내려서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었어요. 삼척 신기까지는 비가 안 온다고 하기도 그렇고 비가 온다고 하기도 그런 날씨였어요. 삼척시에서 동해시가 뭐 얼마나 된다고 날씨가 확 변해요. 삼척시와 동해시 사이에 산이 있기는 하지만요.

 

삼척시 도계, 신기는 비가 오는둥 마는둥 하고 산 하나 넘어 옆동네 동해는 아주 다 떠내려가게 비가 퍼붓는다? 충분히 가능하기는 했어요. 제가 살고 있는 의정부도 도봉산, 수락산을 경계로 바로 아래 남쪽 서울 도봉구, 노원구와 날씨가 극단적으로 다를 때가 가끔 있거든요. 서울 도봉구, 노원구에는 폭설,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데 도봉산과 수락산 너머 옆동네 의정부는 눈, 비가 오는둥 마는둥 하는 때가 간간이 있어요. 아예 남쪽 도봉구, 노원구는 비 좍좍 눈 펑펑인데 의정부역에서는 해 떠 있는 경우도 가끔 있구요. 그래도 제발 아니기를 바랬어요.

 

2022년 10월 6일 15시 46분, 동해역에 도착했어요.

 

무궁화호 제1682호 열차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지 않고 무궁화호 제1682호 열차에서 내렸어요.

 

동해역 플랫폼

 

"우왁, 씨발!"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씨발 소리부터 나왔어요.

 

동해역

 

 

빨리 튀어!

 

빗방울 씨알이 아주 남다르게 컸어요. 커다란 빗방울이 무섭게 쏟아지고 있었어요. 샤워기로 물을 뿌리는 수준이 아니라 살수차로 물을 쏴대는 수준이었어요.

 

걸어가려 했지만 뛰어야 했어요. 가방에서 우산을 안 꺼냈기 때문이었어요. 여기에서 가방 열었다가는 가방 안에 있는 짐도 순식간에 비 맞아서 다 젖을 거였어요.

 

동해역으로 달려들어갔어요. 아니, 동해역 역사 대합실로 도망쳤어요.

 

강원도 동해시 송정동 동해역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

 

동해역에 들어오자마자 강원도 동해시 송정동 동해역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를 사진으로 찍었어요. 지난 여름에 동해역 왔을 때 동해역 스탬프는 못 찍고 지나갔어요. 이번에 와서 찍었어요.

 

강원도 동해시 동해역 망상해수욕장역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

 

동해역에는 여름 휴가철 한정으로 운영될 때도 있다는 망상해수욕장역 스탬프도 비치되어 있었어요. 기차로 망상해수욕장은 지나가기만 했었어요. 지난 여름에 서울 청량리역에서 동해시 동해역으로 KTX 타고 올 때 본 바닷가 중에 망상해수욕장도 있을 거였어요.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 사진을 잘 보면 스탬프 쥐고 있는 손이 흠뻑 젖은 것이 보일 거에요. 손으로 빗물을 닦아내서 손이 흠뻑 젖은 것이 아니었어요. 동해역 플랫폼에서 사진 딱 3장 대충 찍고 동해역으로 달려오는 동안에 이렇게 젖어버렸어요. 그 잠깐 사이에 물에 빠진 생쥐가 되었어요.

 

가방에서 우산을 꺼냈어요. 동해역 앞 조그마한 광장 너머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것조차 우산 없이 갈 엄두가 안 났어요. 과장 하나 없이 진짜 폭우였어요.

 

강원도 동해시 기차역 동해역

 

다 떠내려간다!

다 쓸려내려간다!

 

동 트는 도시 동해?

용궁의 도시 동해다!

 

폭우로 동해 바다와 하나 되는 도시

용궁의 도시 동해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환한 미소+꺄르르 웃음 소리)

 

이런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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