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석탄의 길 1부 18 - 운탄고도 8길 강원도 태백시에서 출발하기 - 태백시에서 아침식사와 카페 즐기고 버스로 삼척시 도계 가는 방법

좀좀이 2023. 1. 29.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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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은 확실히 추워."

 

새벽의 태백시. 공기가 차가웠어요. 온탕에 들어가서 몸을 뜨겁게 데우고 나와서 별로 춥지는 않았어요. 깜깜한 어둠 속 차가운 공기는 이제 곧 겨울이라고 제 귀에 속삭였어요. 월동준비를 해야 할 때였어요.

 

잠깐만, 지금 10월 이제야 시작되었는데?

 

이날은 2022년 10월 6일. 10월 시작된 지 엿새째였어요. 만추를 즐겨야할 때인데 벌써 겨울이라니 말도 안 되었어요. 그러나 강원도 태백시 새벽 공기는 너무 차가웠어요. 영하까지는 안 떨어졌지만 곧 영하로 떨어져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추위였어요. 제 고향 제주도 기준으로 보면 강원도 태백시 기온은 겨울 기온이었어요. 지금은 의정부에서 살고 있으니 태백이 추운 남쪽 지역이지만, 제 고향 기준으로 본다면 추운 북쪽 지역이었어요. 제 고향 제주도 기준으로 보나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의정부 기준으로 보나 태백시는 추운 곳이었어요.

 

 

안녕히 가십시오

Good-bye

 

전혀 이상할 거 없는 멀쩡한 안내표지판이었어요. 우리나라 도처에 '안녕히 가십시오' 표지판이 있어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아주 흔한 표지판이에요. 국경, 도 경계, 시 경계, 공항 및 터미널 같은 곳에서 흔히 보이는 표지판이에요. 표지판만 보면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표지판이었어요. 흔하디 흔한 안내 표지판 중 하나였어요. 무시하고 지나가도 되는 표지판이었어요.

 

'어디를 가라고 안녕히 가십시오 Good bye 하고 있는 거지?'

 

매우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표지판 자체는 이상할 것이 없었어요. 중요한 것은 이 표지판이 서 있는 곳이었어요. 여기는 태백시 번화가인 태백 중앙로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었어요. 태백시 외곽 같은 곳이 아니었어요. 태백역, 태백버스터미널 바로 근처라고 하기에는 조금 걸어야 했어요. 태백역 역전이라고 할 곳이 아니었어요. 여기에서 한참 가도 여전히 태백시였어요.

 

설마 황지동을 떠나서 '안녕히 가십시오'?

 

여기에 왜 '안녕히 가십시오' 표지판이 있는지 의문이었어요. 여기는 '안녕히 가십시오' 표지판이 있을 곳이 아니었어요. 찜질방 입구에 '안녕히 가십시오' 표지판이 서 있다면 차라리 이해되겠지만, 여기는 저 표지판이 서 있을 자리가 아니었어요. 여기에서 가봤자 태백시인데요. 태백역, 태백버스터미널 있는 삼거리도 아니구요.

 

 

2022년 10월 6일 새벽 4시 26분. 거리에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찜질방 갈 때 걸었던 길이었어요. 찜질방 갈 때는 가게에서 술 마시는 손님들이 조금 있었어요. 그러나 새벽 4시 반 즈음에는 아무도 없는 길이었어요. 사람이 없다고 놀랄 것은 없었어요. 오히려 이 시각에 길거리에 사람이 없는 것이 당연했어요.

 

 

"저기 설마 24시간 하는 가게인가?"

 

태백월마트는 불이 켜져 있었어요. 가게 안 카운터에는 사람이 있었어요. 영업중이었어요.

 

태백역과 태백버스터미널이 있는 곳을 향해 게속 걸어내려갔어요.

 

 

 

 

'여기 왜 이렇게 도계랑 비슷해 보이지?'

 

성지사우나에서 태백역과 태백버스터미널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길 풍경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 풍경과 상당히 유사했어요. 차이점이라면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가 규모가 더 작고 문 닫은 가게가 더 많았다는 것 정도였어요. 분위기 뿐만 아니라 풍경 자체가 꽤 비슷해서 계속 주변을 보며 전에 갔었고 이제 또 가야 하는 도계를 떠올렸어요.

 

'둘 다 탄광지역이라 그런가?'

 

강원도 태백시 전역과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탄광지역이에요. 탄광이 개발된 시기도 비슷하고, 지금도 두 곳 모두 가동중인 탄광이 있어요. 지역 경제, 사회 중심에 탄광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똑같구요. 애초에 태백시와 삼척시 도계읍은 산 너머 옆동네에요. 둘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이 붙어 있어요. 단지 태백시와 도계 사이에 높은 고개가 자리잡고 있을 뿐이에요.

 

태백의 과거가 도계일까?

 

태백시의 과거가 오늘날 도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태백시 옛날 풍경을 보고 싶다면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 가라고 하면 될 거 같았어요. 전날 태백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계속 느끼고 생각했던 거였어요. 철암동에서는 까치발 건물을 보존한다고 몇 채 남겨놨지만 도계읍 전두리 전두시장 일대에는 오십천 주변에 여전히 사용중인 까치발 건물이 꽤 있어요.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의 풍경도 태백시라서 조금 더 번화해보일 뿐이지, 전두리 가면 똑같이 있었어요.

 

도계의 미래가 태백시?

그건 모르겠습니다.

 

태백시 과거 모습이 현재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라고 보면 맞을 거였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의 미래 모습이 태백시라고 보는 건 무리가 있었어요.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가 발전해서 오늘날 태백시 번화가 풍경으로 바뀔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발전한다 해도 다른 모습으로 발전할 수도 있으니까요. 과거야 고정되어 있고 불변이지만 미래는 어떻게 되고 어떻게 변할 지 몰라요.

 

 

연탄재 수거함이 있었어요. 여기가 탄광 도시라는 것이 확 와닿았어요.

 

'여기는 벌써 연탄 많이 때고 있네.'

 

연탄재 수거함에는 연탄재가 많이 들어 있었어요. 타지역이라면 아직 연탄을 땔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역시 깊은 산 속 추운 태백시였어요. 이날 태백시 최저 기온은 0도 언저리였어요. 이 정도면 보일러를 틀기는 해야 해요.

 

연탄재 수거함 속 수북히 쌓여 있는 연탄재는 태백시가 탄광 도시라고 알려줬고, 태백시가 추운 지역이라고도 알려줬어요.

 

 

지금까지 밤에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어요. 태백의 밤풍경은 다른 지역 밤풍경과 다른 풍경이었어요. 과거에는 여기도 밤에 사람들이 꽤 있었을 것 같았어요. 많은 탄광이 3교대로 가동될 때는 늦은 시각에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많았을 거고, 여기도 활력이 넘치는 곳이었을 거에요.

 

유독 추운 새벽 공기와 다른 지역 도시와는 다른 탄광촌 도시 풍경이 신기했어요.

 

'여기에 왜 24시간 카페와 24시간 식당이 있을까?'

 

더 신기한 점은 이렇게 거리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데 태백에 24시간 카페와 24시간 식당이 있다는 점이었어요. 24시간 카페는 그래도 무인카페니까 이해할 만 했어요. 무인 카페니까 열어두고 시간 되면 주인이 와서 잠시 정리하고 관리하고 가면 그만이거든요. 역병 사태 당시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절멸당하다시피 했던 그 때도 무인 카페 중 24시간 영업하는 곳들이 여러 곳 있었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24시간 식당이 있는 것은 신기했어요. 무슨 김밥천국 같은 곳이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24시간 식당이 황지자유시장에 있었어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데 이 시각에 24시간 식당 가서 밥을 먹는 사람이 있을지 궁금했어요. 물론 저처럼 당장 첫 차를 타고 도계 가서 운탄고도 8길을 걸어야하는 사람이라면 24시간 식당 가서 밥 먹어야 하지만, 운탄고도 8길은 아직 완공도 안 되었어요. 그 이전에 첫 차 타고 가는 사람들을 위한 식당이라면 함바집도 같이 하는 식당들도 있어요. 이런 식당은 새벽부터 열어요. 하지만 정말 심야시간에도 문을 열고 영업하는 24시간 식당이 있었어요.

 

 

태백역 앞까지 왔어요. 아직도 더 걸어가야 했어요. 태백역은 당연히 불이 꺼져 있었어요. 태백역은 지금 불이 켜져 있을 일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여객 업무 기준으로 보면 태백역은 새벽에 문을 열 필요가 전혀 없는 기차역이에요. 아직 동해시에서 출발한 무궁화 열차가 올 시각도 아니었고, 청량리에서 출발한 무궁화 열차가 올 시각은 더더욱 아니었어요. 화물 열차라면 혹시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순수하게 화물 열차만 지나가고 있는 시각이라면 굳이 여객 업무를 위한 커다란 태백역 역사 전체를 불켜놓을 일은 없어요.

 

 

연탄재 발로 차지 마라.

그래서 연탄재 담긴 통을 발로 찼냐?

 

이런 천재가 있었나!

 

보고 웃었어요. 연탄재 발로 차지 말라는 싯귀를 보고 어떤 천재가 연탄재를 직접 차지 않고 연탄재 담긴 커다란 고무통을 쓰러뜨려버렸어요. 어쨌든 연탄재는 안 찬 셈이었어요. 쓰러져 있는 연탄재 담긴 빨간 고무통 보고 웃어버렸어요. 어떤 사람이 정말로 연탄재 발로 차지 말라는 싯귀를 보고 연탄재 담긴 통을 엎어버렸다면 노벨 문학상 줘야할 거에요. 물론 저 연탄재 담긴 통 주인한테는 등짝 제대로 처맞을 각오 해야겠지만요.

 

 

 

태백 진폐 상담소와 광산진폐권익연대 태백지회가 걸어놓은 현수막은 태백시가 탄광 도시라고 외치고 있었어요.

 

나이 있는 사람들에게 태백시 이미지는 탄광 도시에요. 그러나 요즘 사람들에게 태백시 이미지는 관광 도시 이미지가 더 강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 중 태백에 있는 탄광인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아는 사람과 바람의 언덕, 몽토랑 산양목장, 태백산 국립공원 아는 사람 중 누가 더 많겠어요. 태백시에 탄광 구경하고 탄광에서 일하러 오는 사람과 주요 관광지 구경하고 놀려고 오는 사람 중 누가 더 많겠어요. 제게도 태백시는 탄광 도시보다 관광 도시 이미지가 더 강해요.

 

저 역시 태백시 여행다니며 탄광, 저탄장, 광부사택 같은 것을 보면서 여기도 탄광 도시라고 알게 되었어요. 태백은 저와 그 어떤 인연도 없는 도시였고, 제가 대학교 진학해서 서울 올라왔을 때는 이미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인해 강원도 남부 무수히 많은 탄광이 폐광한 후였어요. 한국의 석탄산업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갖지도 않았고, 강원도 남부 태백산 공업지역 배울 때도 석회석, 시멘트, 상동 텅스텐 정도로 배웠어요. 그래서 태백시는 그저 고산지대 관광도시 쯤으로 알고 있었어요. 기껏해야 석회석 좀 생산되구요. 그렇지만 실제 와보니 태백은 한국 강원도 남부 석탄산업의 중심지였어요.

 

'그래도 사북보다는 여기가 훨씬 낫다.'

 

지난 번 도계, 사북, 함백 여행 갔을 때 봤던 사북의 풍경들이 떠올랐어요. 사북은 과거 국내 최대 민영탄광이 있었던 전형적인 탄광촌이었어요. 지금은 강원랜드로 도박의 마을이 되었지만요. 도박중독 상담 및 치료 현수막과 진폐증 관련 현수막이 같이 붙어 있는 장면은 사북이 어떤 곳인지 한 번에 다 알려주는 명장면이었어요. 보자마자 넋이 나가버리는 장면이었어요.

 

그에 비해 태백은 아주 건전하게 관광과 석탄산업의 도시였어요. 사북 간다고 하면 백이면 백 모두가 한 판 땡기러 가냐고 하지만 태백 간다고 하면 등산하러 가냐고 물어봐요. 태백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라면 누가 뭐래도 태백산이라서요. 태백 간다고 해서 극단적으로 부정적으로 바라본다고 해봐야 요즘 무슨 힘든 일 있어서 자연 속에서 힐링하고 요양 좀 즐기고 싶냐는 거구요.

 

 

 

'태백시 너무 매력적인데?'

 

전날 태백시 여행 일정은 너무 재미있고 신났어요. 태백은 다시 또 오고 싶었어요. 태백은 너무나 매력적인 곳이었어요. 우리나라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만약 알았다면 매해 여름 태백시로 놀러갔을 거에요.

 

'나중에 바람의 언덕도 가볼 수 있겠지?'

 

태백시 바람의 언덕도 기회가 되면 한 번 가보고 싶어졌어요. 태백산도 한 번 가보고 싶어졌어요. 태백시 시내권은 대충 돌아다녔고, 이제 어떤 곳인지 대충 파악했어요. 하지만 태백시 외곽지역은 아직 못 가봤어요. 태백시에서 자랑하는 관광자원 보면 태백시 외곽 지역에도 멋진 곳이 여러 곳 있었어요. 언젠가는 태백시 관광지 싹 다 돌아보고 태백시 여행 마스터 소리를 듣고 싶었어요.

 

왜 태백시가 우리나라 배낭여행 명소로 안 알려졌지?

 

나 이거 진지하게 너무 궁금해졌어.

이렇게 배낭여행 스타일로 다니기 좋은 도시가 우리나라에 진짜 별로 없는데 왜 별로 안 알려졌을까?

 

한편으로는 매우 신기하고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우리나라는 배낭여행 스타일로 다니기 쉬운 곳이 별로 없어요. 속초가 유명 관광지로 크게 뜰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속초가 배낭여행 스타일로 돌아다니기 좋은 도시이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관광의 최대 단점이자 약점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배낭여행 스타일로 다닐 만한 지역이 거의 없어요.

 

태백시도 외곽에 있는 관광지는 대중교통으로 갈 수는 있지만 그렇게 편하지 않을 거에요. 하지만 태백시는 도처가 산이고 계곡이라 시내권에도 관광자원이 꽤 있었고, 태백시 시내버스 빗자루 노선인 1번 버스와 4번 버스를 이용하면 아주 편하게 다닐 수 있었어요. 동해시도 배낭여행 스타일로 다니기 좋은 곳이니 태백시와 동해시를 묶어서 홍보하면 매우 많은 사람들이 갈 거 같은데 왜 이 두 도시가 배낭여행 명소로 안 알려졌는지 의문이었어요.

 

 

수소수 정수기 가게가 있었어요. 수소수 광고는 예전에 몇 번 본 적 있어요. 딱 거기까지였어요. 수소수 정수기 판매점은 처음 봤어요.

 

 

2022년 10월 6일 새벽 4시 40분, 강원도 태백시 유일의 24시간 카페인 티타임 커피에 도착했어요.

 

 

태백시 중심가는 아주 조용했어요. 고요함과 적막함만 흐르고 있었어요.

 

 

티타임 커피 안으로 들어갔어요.

 

 

"여기 꽤 좋은데?"

 

카페에 사람 대신 커피 자판기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개인 카페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아주 조그마한 개인 카페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티타임커피에서는 무려 비스켓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어요. 카페 자체도 무인카페이지만 소형 개인카페와 같았는데 여기에 무료 비스켓까지 있는 매우 좋은 카페였어요. 정확히는 24시간 '무인' 카페였지만 24시간 카페라고 해도 되는 곳이었어요.

 

"아오, 사우나에서 20분만 일찍 나올걸!"

 

인생에 만약이란 없어.

인생에 '만약'이 존재했으면 누구나 다 억만장자 되었지.

 

카페 왔으니 반드시 무언가 마셔야 했어요. 카페 와서 음료 안 먹고 사진만 찍고 가는 놈이 어디 있어요. 음료를 마시기는 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했어요. 사우나 온탕 좋다고 안 나오고 밍기적거렸더니 역시 등가교환의 법칙이었어요. 20분만 사우나에서 일찍 나왔다면 아주 여유롭게 카페를 즐기고 밥도 먹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흘러가버린 20분이었어요. 사우나에서 끄어어어 으어어어 좋다 좋아 행복해한 것은 미래를 땡겨쓴 대가였어요. 만약 아까 사우나 들어갔을 때로 돌아간다면 사우나에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러면서 탕에서 나가지 않고 밍기적거리는 제 자신을 머리끄댕이 잡고 탕에서 끄집어내었을 거에요.

 

하지만 세상에 과거로 돌아가는 게 가능할 리 없었어요. 그게 되는 세상이라면 누가 돈 걱정해요. 2020년 삼성중공우, HMM, 신풍제약, 박셀바이오, 2021년 쎄미시스코, 2022년 현대사료 등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영웅 주식이 얼마나 많았고, 2021년 코인 대세 펌핑 폭등장이 얼마나 굉장했는데요. 그때로 돌아가서 다 풀매수때리고 고점에서 짝 팔면 되는데요. 정답을 알고 있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니 정답을 모르는 미래에 대한 고민과 근심을 달고 살아야만 해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어요. 아까 목욕탕에서 즐겁게 사우나를 즐긴 청구서를 받아들었어요.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별로 없는 시간 안에 카페에서 음료도 마시고 식당 가서 밥도 먹어야 했어요. 먼저 당장 급한 문제는 카페에서 빠르게 마실 음료를 골라서 쭉 들이키는 거였어요.

 

'빠르게 마시려면 아이스야.'

 

원래부터 뜨거운 음료를 주문할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은 제 선호, 취향과 상관없이 무조건 아이스로 마셔야 했어요. 특히 빠르게 마시려면 커피가 아니라 주스로 마셔야 했어요. 그래서 청포도 에이드를 골랐어요.

 

"으, 머리야!"

 

청포도 에이드는 맛있었어요. 맛있는 것은 좋았지만 느긋하게 음미하며 마실 상황이 아니었어요. 빨리 마시고 나가야 했어요. 얼음은 커피빈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매우 잘은 얼음이었어요. 얼음을 씹어먹는 맛이 좋았어요. 힘차게 얼음을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었어요. 체온이 급격히 떨어졌어요. 머리도 아팠어요. 음료는 어떻게 다 마셨지만 얼음은 도저히 다 못 먹었어요. 원래 얼음도 다 먹는 편인데 후딱 먹고 나와야 하다보니 얼음까지 다 먹는 건 무리였어요.

 

 

2022년 10월 6일 새벽 4시 55분,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24시간 카페 티타임커피에서 나왔어요.

 

"진짜 시간 없네."

 

태백버스터미널에서 도계행 첫 차는 새벽 5시 50분에 있었어요. 다음에 갈 곳은 강원도 태백시 24시간 식당인 부래실비식당이었어요. 여기도 마찬가지로 식당 앞만 찍고 오는 게 아니라 안에 들어가서 밥을 먹고 나와야 했어요.

 

강원도 태백시 24시간 카페인 티타임커피에서 음료는 꼭 마실 필요까지는 없었어요. 그래도 카페에 갔는데 음료를 안 마시고 내부만 휙 둘러보고 가는 건 아니라서 음료도 한 잔 마시고 나왔어요. 하지만 강원도 태백시 24시간 카페인 부래실비식당은 달랐어요. 당장 여기에서 아침을 못 먹으면 아침을 못 먹을 거였어요. 점심도 굶는다고 봐야 했고, 심하면 저녁도 굶을 수 있었어요. 전날 점심으로 물닭길비 2인분을 혼자 먹었고, 저녁으로 찐빵 6개를 먹어서 대비하기는 했지만 아침은 반드시 챙겨먹어야 했어요. 그래야 운탄고도 8길 걷고 동해시 발한동 탐험도 다 할 수 있었어요.

 

 

 

태백 황지동 우체국이 나왔어요.

 

 

만약 전날 일정을 빨리 마무리지었다면 태백 황지동 우체국에서 제게 엽서 한 통 부쳤을 거에요. 이것 역시 전날 일정을 모두 보낸 대가로 포기해야 했어요.

 

 

태백 영프라자 버스 정류장까지 왔어요. 전날 여기에서 본격적인 태백시 여행이 시작되었어요.

 

"뭐야, 벌써 5시야?"

 

태백버스터미널까지 가는 시간도 있으니 5시 30분 정도에는 식당에서 나와야 했어요. 이러면 밥을 아주 들이마시듯 먹어야 했어요.

 

 

황지연못 앞까지 왔어요.

 

"9도!"

 

이러니 태백시가 춥지.

 

황지연못 앞 비석에 달린 온도계는 현재 태백시 기온이 9도라고 나와 있었어요. 정말 쌀쌀한 날씨였어요. 아까 카페에서 차가운 음료까지 한 컵 쭉 들이켜고 나와서 더 추웠어요.

 

2022년 10월 6일에 태백시가 유독 더 춥게 느껴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위는 2022년 10월 의정부 날씨에요.

 

 

위는 2022년 10월 태백시 날씨에요.

 

2022년 10월 5일 의정부 기온은 최저 14도, 최고 22도였어요. 2022년 10월 6일 태백 기온은 최저 9도, 최고 13도였어요. 이렇게 단순히 비교해도 의정부보다 태백이 훨씬 추운 동네였어요.

 

단순 비교해도 의정부보다 태백이 진짜로 훨씬 기온이 낮았는데 그 전도 봐야 했어요. 2022년 9월은 뜬금없이 늦더위가 찾아와서 9월 내내 무지 더웠어요. 역대급 더위가 찾아올 거라고 했던 8월은 오히려 역대급 여름 장마가 찾아온 바람에 사람 돌아버릴 정도로 맨날 비가 퍼부었고, 대신 기온은 그렇게 높지 않았어요. 대신 9월이 상당히 더웠어요. 9월말까지 의정부 온도는 거의 30도에 육박했어요. 그나마 10월이 시작되며 또 비가 며칠째 연달아 퍼부으며 기온이 떨어진 것이 20도 중반이었어요. 그러니까 더위에 아직 익숙한 몸인데 갑자기 태백 와서 10도 언저리의 기온을 느끼니 무지 추웠어요.

 

 

태백 황지자유시장 입구로 갔어요. 불이 켜진 식당이 안 보였어요.

 

'네이버 지도에 영업시간 잘못 나와 있었던 거 아냐?'

 

역병 사태가 남긴 후유증 중 하나가 카카오맵, 네이버 지도에 나와 있는 카페와 식당 영업 시간이 엉망이 되어버렸어요. 안 맞는 게 매우 많아졌어요. 네이버 지도는 그래도 어느 정도 많이 수정되었지만 카카오맵은 틀린 게 너무 맞아서 영업시간을 아예 믿을 수 없을 지경까지 나빠졌어요. 태백시에 24시간 식당이 있다는 게 이상했어요. 아무리 봐도 24시간 식당이 있게 생긴 심야시간 거리 풍경이 아니었어요. 24시간 식당은 고사하고 24시간 김밥천국도 없게 생긴 풍경이었어요.

 

 

황지자유시장 입구 옆으로 더 걸어갔어요.

 

"진짜 있네?"

 

 

식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식당 안에는 이 시각에 쇠고기를 구워먹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손님이 한 테이블 있었어요. 가방을 내려놓고 사장님을 찾았어요. 빨리 주문해야 했어요. 메뉴를 봤어요.

 

'육회비빔밥은 준비하는 데에도 시간 안 걸리고 먹는 것도 시간 얼마 안 걸리겠지?'

 

이제부터는 1분 1초가 소중했어요. 메뉴 중 가장 빨리 나오고 가장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육회비빔밥이었어요. 이 야심한 시각에 쇠고기를 구워먹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지만 그런 거에 신경쓸 때가 아니었어요. 빨리 주문해서 빨리 음식 받아서 빨리 먹고 뛰쳐나가야 했어요.

 

식당 내부에는 손님들만 있었어요. 식당 안쪽 외부로 이어지는 복도로 들어갔어요. 할머니 한 분이 계셨어요.

 

"사장님, 육회비빔밥 하나 주세요!"

 

육회비빔밥을 주문했어요.

 

 

자리를 잡고 식당 내부 사진을 한 장 찍었어요. 2022년 10월 6일 새벽 5시 5분이었어요.

 

'빨리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새벽 5시 5분. 도계역 가서 버스표 끊는 데에 얼마 안 걸리겠지? 버스터미널까지 대충 10분 잡으면 5시 50분 빼기 15분이니까 5시 35분. 육회비빔밥 먹는 데에 걸리는 시간 10분 잡아. 육회비빔밥을 10분에 다 먹는다고 하면 5시 25분.

 

5시 25분까지만 육회비빔밥이 나오면 됩니다!

 

10분이면 충분하다구욧!

밥을 누가 Eating하나요? 밥은 Drinking하는 거에요!

 

스스로 자기 최면 이빠이 베리 머취 투 머취 걸기. 22세기 인류는 밥을 Eating 하는 것이 아니라 Drinking 한다. 나는 시대를 앞서서 미래 인류로써 육회비빔밥을 10분만에 드링킹하겠다.

 

그건 밥이 25분까지 나왔을 때 이야기구요.

 

식당 안쪽 주방과 시계를 계속 번갈아봤어요. 초침이 한 칸 한 칸 옆으로 이동할 때마다 심장도 콩닥 콩닥 뛰었어요. 머리 속으로 계속 끊임없이 계산했어요. 버스터미널까지 10분이 아니라 15분 걸릴 거라 보는 게 좋았어요. 그러면 육회비빔밥은 20분에 나와야 했어요. 육회비빔밥 한 그릇 먹어치우는 데에 10분이면 충분했어요.

 

그러나 5분에 다 먹어치우는 건 힘들었어요. 그래도 식당 왔는데 최소한 맛은 봐야할 거 아니에요. 5분에 다 먹으려고 하면 말만 밥을 원샷 드링킹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밥을 드링킹해야 했어요. 가능하기는 해요. 입에 밥 넣고 씹지도 않고 물 한 모금 입에 부어서 바로 삼켜버리면 되니까요. 그러면 어찌저찌 5분에 다 먹을 수 있을 거였어요. 그런데 이러면 이건 뭐 먹은 것도 아니고 그보다 더 문제는 탈날 수 있었어요. 밥 먹고 체하면 그건 그거대로 일정상 큰 문제였어요. 그러니 10분이 마지노선이었어요. 빨리 먹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인간적으로 좀 씹으면서 먹어야 했어요.

 

'이건 뭔 군대도 아니고 밥을 10분에 다 처먹어야 돼?'

 

자업자득이었어요.

 

'사우나에서 10분만 일찍 나올걸!'

 

10분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사우나에서 10분만 일찍 나와서 출발을 10분 빨리 했다면 이렇게 음식 안 나온다고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갈 이유가 하나도 없었어요. 더도 덜도 말고 딱 10분이었어요. 10분만 여기에 일찍 왔다면 아무 걱정 없이 밥 먹고 태백버스터미널로 가는 매우 안정적인 일정이었어요. 10분만 더 있었어도 여유로운 아침이었는데 그 10분 차이로 아침부터 전쟁 같은 하루가 되었어요.

 

그렇다고 할머니께 빨리 달라고 재촉할 수도 없었어요. 음식 주문 들어간지 몇분 되지도 않았어요. 할머니가 알고보니 인공지능 로보트라서 손놀림이 광속일 리도 없고, 그렇다고 할머니가 검술의 달인이라 식칼 한 번 탁 내리치자마자 고기가 다 채쳐져서 육회 고기가 될 리도 없었어요. 그런 걸 따지기 이전에 주문한지 고작 5분 지나갔어요. 나에게는 지금 5분이 5년 흘러간 것처럼 애가 타고 초조하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는 딱 5분 지나갔을 뿐이었어요.

 

주방을 쳐다봤어요. 주방에서는 할머니께서 열심히 제 육회비빔밥을 만들고 계셨어요. 제 마음 급한 건 마음 급한 거고 멀쩡한 식당이라면 제 급한 마음에 맞춰서 음식이 무슨 주문 들어가자마자 바로 테이블에 딱 나오면 안 되죠. 그러면 모든 걸 다 미리 만들어놨다가 손님 올 때마다 준다는 건데요. 할머니께서는 계속 제가 주문한 육회비빔밥을 만들고 계셨어요. 저만 1분을 10년으로 느끼는 이상한 사람이고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이 세계 시간은 정상적으로 흘러가고 있었어요. 아주 그냥 아인슈타인 상대성 원리대로 시간이 저의 시간은 따로, 나머지 사람들의 시간은 따로 돌아가고 있었어요.

 

'할머니, 제발! 할머니, 제발!'

 

무슨 음식 주문한지 5분 지났는데 벌써 음식 안 나온다고 시계와 주방 번갈아보며 간절히 비는 나 자신. 1초가 지나갈 수록 그만큼 더욱 간절해졌어요.

 

'진짜 20분에는 나와야 하는데...'

 

 

나왔다!

5시 14분!

 

2022년 5시 14분, 할머니께서 육회비빔밥을 제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셨어요. 5시 5분에 주문했으니까 9분 걸렸어요.

 

 

'와, 살았다!'

 

5시 14분에 나왔으니까 여유가 있었어요. 씹으면서 먹어도 되었어요.

 

부래실비식당 육회비빔밥은 육회가 담긴 양푼과 공깃밥이 따로 나왔어요. 원한다면 육회를 반찬삼아서 먹어도 되었어요. 그러나 저는 육회비빔밥으로 먹고 싶었기 때문에 공깃밥을 육회가 담긴 양푼 안에 집어넣었어요.

 

 

육회비빔밥을 쓱쓱 비볐어요. 고추장은 집어넣지 않고 비볐어요. 맛을 본 후에 고추장을 넣기로 했어요.

 

 

"뭐야? 엄청 맛있잖아!"

 

고추장 넣지 않고 비빈 육회비빔밥은 엄청나게 맛있었어요. 육회 자체가 매우 맛있어서 고추장 없는 육회비빔밥도 입에서 완전 녹았어요. 고소하고 달콤한 맛에 부드러운 살코기 씹는 맛까지 최고였어요.

 

'간장 없나?'

 

고추장보다는 간장으로 간만 살짝 맞추면 최고일 거 같았어요. 고추장 없이 비벼먹은 육회비빔밥은 육회 맛이 환상적이라 맛있기는 했지만 간이 안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몇 숟가락 먹지 않았는데 금방 물렸어요. 육회 자체가 원래 느끼한 맛이 있는 음식인데 흰 쌀밥까지 더해지자 짠맛을 찾게 되었어요. 간장이 안 보였어요. 된장찌개라도 있으면 맛이 화려하지만 안 짠 육회비빔밥 한 입 먹고 된장찌개로 짠맛 보충하는 식으로 먹으면 아름다운 아침 식사가 될 거였어요. 그러나 된장찌개가 없었기 때문에 고추장을 넣어야만 했어요.

 

 

고추장을 넣고 비비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된장찌개를 가져다 주셨어요.

 

"할머니, 저 이거 빨리 먹고 나가야해서 계산부터 할께요."

 

할머니께서 된장찌개를 가져다주시자 할머니께 카드를 드리며 계산부터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밥 먹고 주방에 가 계신 할머니 찾아서 계산해달라고 하고 계산하는 거 기다리는 시간도 절약해야 했어요. 할머니께서는 바로 계산을 해주셨어요.

 

"여기 배추김치는 배추밭으로 돌아가겠다."

 

부래실비식당 배추김치는 매우 아삭했어요. 배추 본연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고 아삭거렸어요. 배추김치 양념에서는 젓갈 맛과 향이 전혀 안 느껴졌고, 짠맛도 싱겁다고 할 정도로 약했어요. 육회비빔밥에 고추장을 넣어야 했던 이유도 김치가 짠맛이 약했기 때문이었어요. 부래실비식당 배추김치는 배추김치보다 배추버무리에 훨씬 가까운 맛이었어요.

 

'이 김치 내 스타일이다!'

 

김치는 호불호 크게 탈 맛이었어요. 저는 이런 김치를 매우 좋아해요. 젓갈 냄새 진짜 싫어하고 발효 냄새도 상당히 싫어해요. 나이 먹으며 취향이 변한 것이 아니라 아주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상당히 싫어해요. 여기 김치는 매우 깔끔했어요. 너무 깔끔하고 배추가 가만히 놔뒀다가는 고랭지 배추밭으로 다시 도망쳐서 뿌리 내리고 무럭무럭 자라게 생겼어요.

 

'예전 태백 지역 배추 김치가 이런 맛이었을 건가?'

 

과거에 산간 지역은 소금, 젓갈이 매우 귀했어요. 그래서 산간 지역에서는 김치를 담글 때 젓갈을 아예 안 넣거나 극소량만 넣었고, 소금도 최대한 아껴서 넣었다고 해요. 과거 산간 지역에서 김장할 때 소금을 매우 조금 사용하고 젓갈은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꽤 있었다는 말을 어르신들로부터 매우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게 왠지 태백시 옛날 김치와 비슷한 맛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로 10분만에 다 먹었어요. 너무 맛있었어요. 왜 제가 사는 의정부에는 이런 식당이 없는지 너무 아쉬웠어요. 만약 다음에 태백시 오면 또 여기에서 육회비빔밥 한 그릇 먹고 싶었어요. 부래실비식당 육회비빔밥은 잠기운이 다 깨었다는 전제 하에 아침 식사로 먹기에도 매우 좋았어요.

 

태백시 24시간 식당인 부래실비식당에서 나왔어요. 태백버스터미널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갔어요.

 

'태백 여행 와서 먹을 거 다 챙겨먹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태백 여행은 음식도 100점이었어요. 물닭갈비 먹었어요. 한우는 육회비빔밥으로 먹었어요. 태백도 고랭지 배추가 유명한데 고랭지 배추는 아주 싱싱한 배추김치로 먹었어요. 물닭갈비 먹었지, 한우 먹었지, 고랭지 배추 먹었지 뭐 하나 빠뜨린 게 없었어요. 여기에 안 알려진 태백시 별미 옥수수 찐빵까지 챙겨먹었어요. 혼자 와서 태백시 미식 여행 제대로 즐겼어요.

 

 

태백시에서 옥수수는 못 먹었어요. 괜찮아요. 옥수수 찐빵에 옥수수 가루 들어갔으니까요. 그리고 강원도는 옥수수를 정말로 많이 재배해서 옥수수 없는 곳이 없고, 그 옥수수 중에서 독보적으로 유명한 옥수수는 홍천 찰옥수수에요. 홍천은 태백에서 아주 멀어요. 태백도 옥수수 키우는 것을 여기저기에서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옥수수가 태백 명물이라고 할 건 아니에요.

 

 

2022년 10월 6일 5시 36분, 드디어 태백버스터미널에 도착했어요.

 

스스로 위기를 만들고 스스로 위기를 해결했습니다.

그래, 이래야 여행할 맛이 나지.

 

사우나에서 10분 늦게 나오는 바람에 새벽에 태백시 24시간 카페 가서 음료 마시고 24시간 식당 가서 아침밥 먹는다는 계획에 위기가 찾아왔어요. 제가 자초한 위기였어요. 그러나 어떻게 잘 풀어내었어요. 없는 카페, 식당을 제가 세우는 것도 아니고 있는 식당, 있는 카페 가서 먹고 마시고 오는 것이 뭐가 어려워요. 이렇게 타임어택으로 가야 흥분이 되고 재미가 있죠.

 

물론 남들과 같이 가면 이런 짓 절대 안 해요. 저 혼자 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남들과 같이 갔는데 시간 없어서 음료는 원샷으로 들이켜고 밥은 10분에 다 먹고 뛰쳐나가게 만들면 당연히 욕 바가지로 처먹고 두고 두고 안 좋은 기억으로 회자될 거에요. 저도 원래는 이렇게 시간 엄청 촉박하게 다니지 않고 그렇게 계획짜지도 않아요. 여유시간 왕창 줘서 뛸 일 자체를 안 만들게 여행 계획을 짜요. 그놈의 사우나에서 좋다고 4시에 나올 계획을 미루고 미뤄서 4시 22분에 나온 게 문제의 시작이었어요.

 

태백버스터미널에서 삼척시 도계버스터미널로 가는 첫 차는 5시 50분. 무려 14분이나 남았어요. 아주 여유로웠어요. 버스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어요.

 

 

먼저 도계행 버스표부터 발권했어요. 태백버스터미널에서 도계버스터미널로 가는 시외버스 버스표는 예매가 안 되었어요. 검색은 되지만 현장 발매만 되었어요. 버스표를 보면 시간은 선착순이라고 나와 있었고, 좌석도 지정 좌석이 아니었어요.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기 때문에 버스 터미널 자리에 앉아서 터미널 내부를 둘러봤어요. 이 시각에 터미널 안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제가 타고 갈 버스는 태백버스터미널의 첫 차가 아니었어요. 첫 차는 동서울종합버스터미널행 버스로, 새벽 5시 25분 출발이었어요.

 

 

앉아 있다가 다시 일어나서 매표소로 갔어요. 버스 노선을 봤어요.

 

 

태백-춘천 직행 버스는 없다.

 

강원도의 중심은 춘천시에요. 도시 규모는 원주시가 더 크지만 강원도청이 춘천시에 있어요. 직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곳을 경유해서 가는 버스가 있을 것 같지만 태백시에서 춘천시까지 이어지는 버스 노선은 없어요. 의정부에서 태백시까지 가는 버스는 있어요. 원주, 제천, 사북-고한 정류장을 경유하는 버스이지만 의정부에서 버스 타고 환승 없이 바로 태백까지 갈 수 있어요. 의정부와 태백시를 연결해주는 버스는 있는데 정작 강원도 행정 중심지 춘천시와 태백시를 연결해주는 버스는 없어요. 춘천과 태백을 연결하는 버스 노선은 무조건 원주 터미널에서 환승해야 해요.

 

 

태백 버스터미널 승차장으로 갔어요. 1번 홈이 제가 타고 가야 하는 도계, 삼척, 동해, 강릉행 버스를 타는 곳이었어요. 2번 홈은 성남, 용인, 의정부, 고양, 일산 등을 가는 버스를 타는 곳이었어요. 만약 2번 홈에서 버스 타면 저는 의정부로 돌아가버려요.

 

 

2022년 10월 6일 새벽 5시 40분, 버스에 탑승했어요. 버스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기사님께서 표를 걷어가기 시작했어요.

 

"그냥 돈 내고 타도 되네?"

 

시외버스라서 반드시 표를 구입해서 탑승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태백시에서 강릉시 가는 버스는 꼭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버스 안에서 현금으로 버스 요금을 내도 되었어요.

 

버스 앞자리에는 노부부가 앉아 계셨어요. 버스 기사가 행선지를 물어봤어요. 강릉이라고 대답했어요. 버스 기사가 표를 달라고 했어요. 노부부는 고액권으로 지불했어요.

 

"혹시 잔돈 없으세요?"

"잔돈 없는데..."

"이거 거슬러드리려면 잔돈 많이 나가는데 그러면 다른 손님들에게 거슬러줄 잔돈이 없어요. 혹시 표 끊어서 오실 수 있으세요?"

"표 끊어서?"

"예, 매표소 열었으니까 거기 가서 표 끊어오시면 안 될까요? 이거 거슬러드리려면 잔돈 부족해질 거 같아요."

"지금 매표소 다녀올 시간 있어?"

"시간 충분해요."

 

기사분께서 노부부에게 버스 요금 거슬러주면 잔돈 부족해져서 곤란해지니 혹시 매표소 가서 표 끊어서 올 수 없냐고 물어봤어요. 노부부는 버스에서 내렸어요. 금방 되돌아왔어요. 버스 기사에게 표를 내었어요.

 

 

2022년 10월 6일 새벽 5시 50분, 태백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서 도계버스터미널, 신기터미널, 삼척종합버스터미널, 동해종합버스터미널을 들려서 강릉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첫 차가 출발했어요.

 

 

"이거 통리 가네?"

 

버스는 전날 4번 버스가 통리 가던 길을 그대로 달려갔어요. 버스는 통리를 거쳐 험한 산길로 들어갔어요.

 

"이거 오른쪽에 앉아야 하는구나!"

 

저는 버스 정면을 본 상태에서 왼쪽 좌석에 앉아 있었어요.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자리는 오른쪽 좌석이었어요. 오른쪽 좌석으로 옮기고 싶었어요. 버스가 무시무시하고 험한 산길을 고속으로 질주하고 있어서 자리에서 일어날 엄두가 안 났어요.

 

'운탄고도 7길은 무조건 완성되면 가야지.'

 

운탄고도1330 7길은 2022년에 개통되지 않았어요. 강원도의 운탄고도1330 조성 계획은 원래 2022년에 개통이었지만, 태백시부터 삼척시까지 구간인 7길, 8길, 9길은 계속 지연되어서 결국 2022년 가을 운탄고도1330 개통식 열 때까지 미개통 상태로 남았어요. 2023년까지는 완공된다고 하고는 있지만 운탄고도1330 조성사업 자체가 계속 지연되다가 2022년 가을에야 1길부터 6길까지 개통되었기 때문에 7길부터 9길까지는 2023년에 정식 개통될지 안 될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었어요.

 

이번에는 운탄고도1330 8길을 걸으러 가는 길이었지만 7길도 걸을 수 있으면 나중에 태백시 와서 걸어보고 싶었어요. 운탄고도1330에서 제 흥미를 끄는 구간은 정확히 7길과 8길이었어요. 7길도 역사적 의의가 상당히 깊은 곳을 많이 지나가는 길이에요. 그리고 상당히 험준한 태백과 도계 사이 산고개를 넘어가는 길이기도 하구요.

 

어둠 속에서 보이는 창밖 풍경은 아름다운 게 아니라 무서웠어요.

 

 

너무 어두워서 이 사진 한 장 건졌어요. 운탄고도1330 7길은 미개통 상황에서 공식 지도만 보며 길을 찾아가기 매우 난해한 코스였어요. 산 속으로 들어가서 미인폭포 찍고 하이원 추추파크로 내려가서 도계유리나라까지 가야 하는데 이게 길이 있는지 알 수 없었어요. 산 속에 길이 제대로 없으면 위험하기 때문에 차도로 대피해서 걸으려 하면 바로 지금 버스 타고 가는 길을 따라가야 했어요.

 

지금 이 길을 걸어서 가라고?

그건 진심 미친 짓이다.

 

버스에 타서 보는 길 자체가 무지 험했어요. 도로 양옆에 사람이 걸어갈 공간이 없었어요. 매우 험한 길 정도가 아니라 통리에서 고도를 더 높였다가 확 내리꽂는 길이었어요. 고도를 급격히 낮추는데 길은 또 무지 꼬불꼬불했고, 차는 익숙한 길이라고 매우 빠르게 달리고 있었어요. 이 신새벽에도 차가 달리고 있었어요. 버스 뿐만 아니라 다른 차들도 달리고 있었어요. 모두 이 길이 익숙한지 매우 빠르게 달렸어요.

 

운탄고도1330 8길은 어차피 길 나올 수 있는 곳이 강원남부로 하나 뿐이었고, 이것은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였어요. 공식 지도도 아주 미미한 부분 제외하고는 전부 강원남부로 따라가라고 나와 있었어요. 반면 운탄고도1330 7길은 강원남부로를 따라가는 길이 아니라 산 속에서 어떻게 길을 따라 도계로 내려가라는 길이었어요. 운탄고도1330 7길을 강원남부로 따라 내려가는 건 완전히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통리에서 도계로 걸어서 넘어가보자고 강원남부로를 걷기에는 태백에서 도계로 넘어가는 구간이 인간이 걸을 수 없는 길이었어요. 차도 가에로 걷기에는 공간이 너무 협소하고 경사도 꽤 있는 데다 차와 사람이 서로 비켜주고 말고 할 공간 자체가 없었어요. 차도도 차한테 비좁았어요. 사람이 비켜주려고 해도 한쪽은 절벽이 가로막고 있고 한쪽은 낭떠러지 같은 곳이라 비킬 방법이 없었어요.

 

운탄고도1330 7길은 매우 궁금하고 빨리 걸어보고 싶었지만 무조건 정식 개통하면 걷기로 다짐했어요.

 

 

드디어 좀 인간적인 경사가 나왔어요. 여전히 버스는 매우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어요. 도계였어요. 불과 한 시간도 채 안 되었어요. 저는 태백시에 있었어요. 이제 풍경만 보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 같아질 거였어요. 도계 풍경은 태백 옛날 풍경과 비슷하니까요.

 

 

2022년 10월 6일 새벽 6시 12분, 도계버스터미널에 도착했어요. 버스에서 내렸어요. 도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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