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석탄의 길 1부 01 - 그곳이 나를 다시 불렀다

좀좀이 2022. 12. 2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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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남부 탄광지역 여행기를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있었어요. 여행 가기 전에 강원도 남부 탄광지역에 대해 공부를 하기는 했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많이 공부하지는 않았어요. 대충 제가 가는 곳이 어떤 곳이고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정도만 봤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이 탄광지역이고, 탄광지역의 특색을 보기 위해서는 무엇을 봐야하는지 찾아보고 그에 대한 정보와 자료만 간략히 보는 수준이었어요.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시작이다.

 

여행기를 쓸 때는 순수하게 여행에서 겪었던 것과 생각한 것만 쓰지 않아요. 여행 돌아와서 공부하고 알게 된 것도 여행기 내용에 추가되요. 여행기를 쓰려면 여행 중 촬영한 사진과 기록해놓은 것을 정리하고 추가로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자료를 수집해요. 모든 것을 다 완벽히 알고 떠나는 여행은 없어요. 제게 여행기를 쓰는 일은 여행 다녀온 후 새롭게 공부하는 과정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한 것과 공부한 것을 통합해서 정리하는 과정이기도 해요.

 

강원도 남부 탄광지역은 2022년 여름에 도계 여행 간 것이 처음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안 가봤어요. '탄광지역'이 아니라 '강원랜드'라는 곳조차도 한 번도 안 가봤어요. 탄광은 고사하고 광산도 제주도에 없어요. 그러니 거의 백지 상태에서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솔직히 강원도 남부 광산업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중학교과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태백산 공업지역이라고 외운 게 전부였어요. 광산 자체를 안 가봤기 때문에 도계 다녀온 경험 하나 가지고 광산 지역에 대해 자료를 모으고 공부해나가기 시작했어요.

 

난이도가 차원이 다릅니다.

서울 달동네 난이도와는 비교 불가입니다.

 

"이거 뭐 이렇게 어려워?"

 

강원도 남부 탄광지역 공부는 서울 달동네 공부와는 차원이 달랐어요. 의정부에서 서울 달동네 가는 난이도와 강원도 남부 석탄 지대 가는 난이도보다도 난이도 차이가 훨씬 컸어요. 난이도 차이가 크다 작다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비교 불가였어요. 예전에 서울 달동네 여행기 '사람이 있다' 쓸 때 수준일 거라고 추측했지만 완전히 오산이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과거에 비해 폼이 많이 떨어졌는데 난이도는 비교 불가로 높았어요. 이건 한창 서울 달동네 여행기 쓰면서 폼이 엄청 좋았을 때 쓰더라도 너무 어렵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난이도였어요. 그걸 2년간 여행도 안 가고 여행기도 하나도 안 쓰면서 폼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에서 쓰려고 하니 죽을 맛이었어요.

 

광산에 대해서는 이해했어요. 예전에는 광산이라고 하면 막연히 광산 1개라고 여겼어요. 실제로는 아니었어요. 정확히는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석탄이 있으면 이쪽에서도 파들어가면서 캐내었고, 저쪽에서도 파들어가면서 캐내었어요. 여기저기에서 여러 회사가 땅을 파고 석탄을 채굴했어요. 광산회사도 대기업 같은 곳이 있고 중소기업 같은 곳이 있었고, 원청회사가 있고 하청회사가 있었어요.

 

다 없어져버렸소.

다 사라져버렸소.

 

강원도 남부 탄광지역의 역사를 쭉 보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었어요. 강원도 남부 탄광 대부분이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사라져버렸어요. 폐광 후 아주 빠르게 복구 작업이 이뤄져서 흔적도 안 남아 있었어요. 위성 지도를 아무리 뚫어져라 바라보고 샅샅이 찾아봐도 과거 광산이 있었던 흔적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나름대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카카오맵의 로드뷰로도 흔적을 찾기 힘들었어요.

 

과거 광산이 있었던 곳은 국가광물자원지리정보망에서 검색해서 찾는 방법이 있었어요. 그러나 이것도 완벽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매우 부실했어요. 강원도 남부에는 엄청나게 많은 탄광이 있었어요. 영세탄광인 쫄딱구덩이부터 수갱이 설치된 초대형 탄광까지 상당히 많은 탄광이 존재했어요. 석탄산업합리화정책 이전에 사라진 탄광도 여러 곳 있었어요. 이런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탄광 위치가 국가광물자원지리정보망 사이트에 나와 있지는 않았어요.

 

한국 석탄 산업에 대한 자료를 찾아서 봐봐야 자료에 나오는 탄광이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으니 소용 없었어요. 말이 좋아서 강원도 남부 탄광 지역이지, 실제 범위로 보면 영월부터 삼척까지 이어지는 꽤 큰 지역이에요. 면적 자체도 상당히 넓은 데다 전부 매우 험준한 산악지역이에요.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고 왕래가 잦은 지역이 아니라 하나 하나 고립된 지역에 가까웠어요. 영월 탄광 마을의 이야기와 삼척 탄광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지역 이야기였어요.

 

여행기를 쓰기 위해 열심히 자료를 찾고 공부하던 중이었어요.

 

 

"운탄고도? 거기가 운탄고도였어?"

 

강원도에서 '운탄고도1330'이라는 트래킹 코스를 개발해서 홍보하고 있었어요. 제가 갔던 예미, 함백, 도계가 운탄고도1330 코스에 들어가 있었어요. 강원도에서는 운탄고도1330에 대해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었어요. 특히 영월군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홍보중이었어요. 강원도에서도 운탄고도1330을 성공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어요.

 

강원도 남부 탄광지역이 망한 가장 큰 이유는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을 통해 무수히 많은 탄광을 폐광시킬 때 대체산업 육성에 실패했기 때문이었어요. 광산촌에 몰려든 사람들은 대부분 외지에서 탄광에서 일하며 목돈을 모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었어요. 지역에 대한 애착심이 매우 낮았고, 인구 유입 동기가 고소득 직업인 광산업 종사자였어요.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탄광이 폐광되자 탄광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은 거의 전부 마을을 떠나버렸어요. 애초에 지역에 대한 애착심도 매우 낮았고, 오직 일자리만 보고 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일자리의 원천인 탄광이 없어지자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났어요. 이들을 잡기 위해서는 석탄 산업을 대체할 다른 산업이 필요했지만, 대체산업 육성은 모두 처참하게 실패했어요. 이로 인해 강원도 남부 탄광지역은 순식간에 몰락했어요.

 

강원도 남부 지역은 광산업 외에 딱히 발전한 산업이 없어요. 그나마 해볼 만한 것이 관광업인데 관광업 중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는 솔직히 강원도 정선군 사북 강원랜드 뿐이에요.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많은 탄광이 폐광되던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강원도 남부 지역은 대중교통 접근성이 매우 떨어졌어요. 여기에 그 당시에는 SNS가 발달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홍보도 오늘날보다 매우 어려웠어요.

 

강원도에서는 관광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려고 하고 있어요. 노력은 꾸준히 하고 있어요. 속수무책으로 몰락해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던 강원도 남부 지역 경제를 관광업으로 다시 키워보기로 마음먹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어요. 그래서 만든 것이 운탄고도1330 트래킹 코스인 것 같았어요.

 

'할 만 하기는 하지?'

 

운탄고도1330 코스를 보니 영월에서 삼척까지였어요. 예전이라면 많이 어려웠을 거에요.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 달라요. 먼저 KTX 때문에 강원도 원주시가 엄청나게 성장했어요. 예전에는 군인들의 한이 서려 있고 치악산 등산하러나 가는 원주시였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홍보도 이제는 SNS가 발달했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홍보할 수 있어요.

 

자료를 찾다가 운탄고도1330 코스를 쭉 봤어요. 운탄고도1330은 총 아홉 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이건 뭐 방법이 없잖아?"

 

코스들이 모두 대중교통 접근성이 매우 떨어졌어요. 당일치기로 끝낼 방법이 안 보였어요. 시작점으로 가는 방법이 고약하거나 종점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 고약했어요. 하여간 시작점이든 종점이든 하나는 반드시 고약했어요. 차를 몰고 가서 시작하지나 않으면 답이 안 보이게 생긴 코스들이었어요.

 

 

운탄고도 8길 소개가 내 마음을 잡아당겼다.

 

"이거 되겠는데?"

 

운탄고도 8길은 소개문부터 마음을 확 사로잡았어요. 운탄고도 8길 소개문은 '간이역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어요.

 

도계가 나를 부른다.

 

시작점은 무려 '도계'라는 곳이었어요. 올 여름 여행 가서 정말 모처럼 여행의 재미를 느끼고 온 곳이었어요. 바로 그곳에서부터 시작이었어요. 도계라면 또 가고 싶었어요. 여행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게 만들어줄 이야기가 가득한 곳이었어요. 그때는 맛보기조차 제대로 못 하고 온 곳이었기 때문에 다시 가고 싶은 곳이었어요.

 

폐역이 되어버린 간이역을 보며 걷는 길.

 

제주도에 간이역이 있을 리 없잖아.

 

탄광 마을을 궁금해했던 이유는 제가 고등학교까지 살았던 제주도에 탄광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간이역 또한 마찬가지였어요. 폐역, 간이역 전부 제주도에는 없는 것들이에요. 궁금했어요. 내 인생에 없었던 것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끌렸어요.

 

"여기다!"

 

길은 또 다시 도계로 향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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