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잊혀진 어머니의 돌 (2022)

잊혀진 어머니의 돌 - 20 강원도 정선군 운탄고도 4길 함백 안경다리 탄광마을

좀좀이 2022. 11. 2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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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카로 빌린 아반떼에 올라탔어요. 이번에 갈 곳은 함백 안경다리였어요. 친구가 운전하기 시작했어요. 차 안에서 둘 다 말이 없었어요. 영월역에서 쏘카로 빌린 아반떼를 탄 이후부터 둘 다 말이 거의 없었어요. 대화 소재도 없었고, 딱히 할 말도 없었어요. 제가 뭐라고 말해도 친구는 별 반응 없었어요.

 

'내 이럴 줄 알았어.'

 

이래서 이 친구와 둘이서 가는 자동차 드라이브 여행을 무지 싫어해요. 서로 엄청나게 대화할 게 아니라면 여행이 엄청 심심해져요.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거나 걸어서 돌아다니면 가면서 보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거 가지고 잡담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자동차 드라이브 여행으로 가면 정말 목적지 도착할 때까지 고립된 공간에서 있어야 해요. 게다가 벌써 지겹고 졸린데 조수석에 앉아 있다가 졸면 친구가 분명히 엄청 삐질 거였어요. 잠과도 싸워야했어요. 피곤하거나 졸리지는 않았지만 차에 타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도 엄청나게 지루해서 잠이 막 쏟아졌어요.

 

다행히 안경다리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안경다리가 있는 강원도 정선군 조동리 안경다리 마을까지 와서 주차할 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어요. 주차할 만한 곳이 안 보였어요. 이런 시골에 공영주차장 같은 것을 기대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였어요. 차를 서행으로 이동시키며 주차할 공간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봤어요. 자동차가 모두 노상주차중이었어요.

 

"우리도 길가에 세우자."

 

차를 길가에 세우고 돌아다니기로 했어요. 길가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렸어요.

 

 

입간판이 보였어요. 입간판에는 여기가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동8리이고 기록사랑마을로 지정된 곳이라고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어요.

 

 

나무에는 푸른 이끼가 물을 먹어서 더옥 초록색이 되었어요. 이끼를 만져봤어요. 매우 부드러웠어요.

 

 

입간판이 하나 또 나왔어요. 여기가 안경다리 탄광마을이라고 알려주는 입간판이었어요. 근처에는 함백역, 두위봉, 새비재, 삼시세끼 촬영지가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안경다리로 왔어요. 여기는 운탄고도 4길이에요. 안경다리는 쌍굴다리 모습이 안경 같다고 안경다리에요. 쌍굴다리 중 하나는 하천이 흘러가는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차도가 이어지는 길이었어요.

 

"다리 넘어가볼래?"

"아니, 별로."

 

친구에게 다리를 지나가서 더 가보겠냐고 물어봤어요. 친구는 다리 너머로 가보는 것에는 시큰둥했어요. 이 다리를 지나서 더 가면 엽기소나무가 나온다고 했어요. 안경다리를 지나 엽기소나무를 거쳐서 새비재로 가는 길이 운탄고도 4길이에요.

 

 

자동차만 아니었다면 여기에서 안경다리를 지나서 더 올라가도 되었어요. 그렇지만 자동차 때문에 결국 자동차를 주차해놓은 곳으로 돌아와야 했어요. 자동차가 없다면 마음대로 걸어다니다가 적당히 서울로 가는 방법을 찾아서 가면 되었어요. 버스를 타고 예미역으로 돌아가서 예미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도 되었고, 그 외에도 방법을 찾으면 여러 가지 있을 거였어요. 그러나 친구 주장대로 차를 끌고 왔기 때문에 무조건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걸 고려하면 걸어서 간 길의 2배를 이동해야 한다고 계산해야 했어요. 차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야 하니까요.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이 차에 묶여 있는 상태로 마치 요요처럼 돌아다녀야 했어요.

 

차를 세운 길 뒷편 마을을 돌아다녀보기로 했어요.

 

 

천천히 동네를 구경하기 시작했어요.

 

 

 

 

함백도 빈 집이 여기 저기 있었어요.

 

 

 

 

입간판이 하나 또 나왔어요.

 

 

입간판에는 '신동 안경다리 근현대 역사마을'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대체 얼마나 습한 거야?

 

입간판에는 마을 약도가 붙어 있었어요. 마을 약도 위를 투명한 아크릴판이 덮고 있었어요. 대체 얼마나 비가 많이 오고 습해졌는지 마을 약도를 덮은 아크릴판에 습기가 차서 약도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어요. 약도를 보며 어떻게 돌아다녀야 하는지 보고 싶었지만 도저히 볼 방법이 없었어요. 뿌옇게 습기가 차서 잘 안 보이는 지도를 잘 봤어요. 옛우물터까지 걸어가면 이 동네를 대충 다 볼 수 있었어요. 옛우물터까지 갔다가 차를 세워놓은 곳으로 돌아와서 조동철교를 보러 가기로 했어요.

 

 

 

마을 안쪽으로 진입하는 곳에는 국어책과 자연책 조각이 있었어요. 자연책은 덮혀 있었어요. 국어책은 바둑이 동시가 새겨져 있었어요.

 

사라진 바둑이를 찾아서.

 

예전에는 개는 멍멍이, 바둑이 같은 이름이 잘 등장했고, 고양이는 야옹이, 나비 같은 이름이 잘 등장했어요. 개 이름, 고양이 이름을 신경써서 붙이거나 멋들어지게 짓는 사람은 그렇게 많이 않았어요. 멍멍이, 바둑이보다 조금 더 신경쓰면 이름 가운데 돌림자 뒤에 '돌'자를 붙이는 식이었어요. 요즘은 개 이름, 고양이 이름이 아주 멋져요. 오히려 멍멍이, 바둑이 같은 개 이름과 야옹이, 나비 같은 고양이 이름이 더 귀한 이름이 되었어요.

 

 

마을 입구에는 광산이 있던 시절을 표현한 부조가 있었어요.

 

'여기는 이제 폐광 마을이라고 해야겠지?'

 

마을 이름은 '안경다리 탄광마을'이었어요. 그렇지만 이 마을 경제의 중심을 넘어서 이 마을의 중심 그 자체,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는 오래 전에 폐광했어요. 신동읍 뿐만 아니라 정선군 전역에 더 이상 가동중인 탄광은 없어요. 탄광이 없어진지 오래된 동네이기 때문에 '탄광마을'이 아니라 '폐광마을'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거에요. 진짜 탄광마을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같은 곳이구요. 도계는 정말로 탄광이 지금도 가동되고 있는 지역이니 정말로 탄광마을이에요.

 

 

함백광업소 산업전사 추모비가 있었어요.

 

 

과거에는 탄광에서 인명사고가 종종 발생하곤 했어요. 탄광에서 일하는 도중에 위에서 이슬처럼 미세한 탄가루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갱도가 무너지는 붕락사고 위험이 있어서 급히 대피하곤 했다고 해요. 그리고 탄광에서는 쥐를 잡지 않고 쥐에게 밥을 나눠주고 잘 대해줬다고 해요. 쥐가 사고 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존재라서 탄광 안에서는 쥐를 매우 잘 대해줬다고 해요.

 

탄광에서는 여러 사고가 많이 터졌어요. 화약이 폭발해서 인명사고가 발생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갱도가 무너지는 붕락사고까지 도처에 인명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어요. 이 중 광부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고는 물통 사고였어요.

 

탄광에서 캐내는 석탄 중 물기를 많이 머금은 묽은 탄을 '죽탄'이라고 해요. 그리고 갱내에 고여 있는 지하수를 '물통'이라고 불렀다고 해요. 채탄이나 굴진 작업 도중에 물이 찬 벽을 얇게 하면 물의 압력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사고가 발생했어요. 광부들은 이렇게 지하수가 한 번에 터져나오는 사고를 '물통 사고'라고 불렀고, 언론이나 감독기관에서는 '출수 사고'라고 불렀다고 해요.

 

물통이 터지면 엄청난 압력으로 지하수가 터져나왔기 때문에 쇠로 만든 광차와 레일이 엿가락처럼 휘어버렸다고 해요. 물통 사고가 한 번 발생하면 여기에 휩쓸리면 살아남기 매우 어려웠고,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았다고 해요. 물통이 터져서 탄에 묻히면 호흡하거나 움직이기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생존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어요. 그래서 건탄 지역의 붕락 사고보다 죽탄 지역의 물통 사고가 인명 피해가 훨씬 더 컸어요.

 

 

 

 

이렇게 사고가 터져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사망자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공식 보상액은 사망 직전 한 달 월급 총액을 평균한 일당의 1,000일치를 일시불로 지급하고 장례비용을 추가로 지급하는 것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월급은 기본급제와 도급제를 병행했기 때문에 보상 담당자가 출근일수를 조작하거나 주차와 월차 수당을 제외하면 그 액수가 많이 달라지곤 했어요.

 

광산에서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보상 담당자는 우선 사망자의 친인척 중 배경이 좋은 사람이 있어서 도와줄 사람이 있거나 도와줄 권력자가 있는지부터 살펴봤어요. 조력자가 있어보이는 사망자는 보상액이 늘어났고, 조력자가 없어보이는 사망자는 보상액이 줄어들었어요. 광산까지 몰려든 사람들 중 배경이 좋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광산에서도 광부를 뽑을 때 배경 좋은 사람을 광부로 잘 뽑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부분은 제대로 합의를 못 하고 억울한 보상금을 받았어요.

 

여기에 광산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광업소는 보안센터나 노동부 등 감독기관으로부터 감사를 받았어요. 감사를 받을 때마다 광업소에서는 회사 편이 되어줄 증인을 매수해 놓고 사고 현장을 긴급 보수한 뒤에 검사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이 때문에 사고 발생 후 감사 결과는 대부분 광부 개인의 부주의로 처리되곤 했다고 해요.

 

 

 

 

광산은 상당히 위험했고, 인명사고 외에 진폐증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광부들은 항상 자신의 안전과 건강에 신경쓰고 안전과 건강을 스스로 챙겨야만 했어요.

 

 

 

 

조동8리 사무실이 나왔어요.

 

 

계속 마을을 돌아다녔어요.

 

 

 

 

마을에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매우 조용했어요. 습한 공기가 온몸을 꽉 껴안고 있었어요. 하늘이 흐려서 덥지는 않았지만 습기 때문에 몸에서 땀이 났어요.

 

 

 

 

"여기 연탄재 있네?"

 

 

연탄재가 있었어요. 연탄재 자체는 놀라울 것 없었어요. 우리나라에서 낙후된 곳, 소외된 곳, 가난한 곳 가보면 아직도 연탄 사용하는 곳이 꽤 있어요. 서울 달동네만 가도 연탄재는 흔히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여기가 과거에 탄광 지역이었다는 점이 떠오르자 연탄재가 매우 인상적이고 눈에 확 들어왔어요.

 

연탄재 사진을 찍고 걸어가는데 매우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하나 나왔어요.

 

 

'이 건물 뭐지?'

 

건물은 매우 낡았어요. 완전히 버려진 건물은 아니었어요. 완전히 버려진 건물이라고 보기에는 유리창이 너무 멀쩡했어요. 건물 외관을 보면 페인트칠이 오래되어서 벗겨지고 뜯어지고 있었어요. 건물 모양을 보면 무슨 사무실이나 학교처럼 생겼어요. 학교라고 보기에는 건물 규모가 너무 작았어요. 일반적인 가옥이나 창고로 지어진 건물이 아닌 건 틀림없었어요.

 

마침 할머니 한 분께서 지나가고 계셨어요. 할머니께 다가갔어요.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인사를 드렸어요.

 

"안녕하세요."

 

할머니께서 인사를 받아주셨어요.

 

"할머니, 저 건물은 무슨 건물이었어요?"

 

할머니께서는 귀가 어두우셔서 제 말을 잘 못 들으셨어요.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여쭈어봤어요.

 

"할머니, 저 건물은 예전에 무슨 건물이었어요?"

"탁아소."

"아, 저 건물 탁아소였어요?"

"응."

 

할머니꼐서는 방치된 창고처럼 생긴 건물이 예전에 탁아소 건물이라고 알려주셨어요.

 

"저기가 탄광 근무자들 자녀들 탁아소였어요?"

"응."

 

아주 허름한 무슨 사무실처럼 생긴 건물은 과거 탁아소였어요. 이 탁아소는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와 연관된 건물이었어요. 이 동네 주민들 대부분이 함백광업소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었어요. 여기에서 거주하던 사람들의 자녀들이 가던 탁아소 건물이었어요. 동네를 돌아다니며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건물은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만약 설명과 사전지식, 그리고 동네 입구에 있는 추모비와 벽화가 없었다면 여기가 탄광촌인 줄 몰랐을 거에요. 그만큼 과거 탄광의 흔적은 거의 다 지워져 있었어요. 낡은 옛 탁아소 건물은 안내 같은 것은 없었지만 몇 남지 않은 소중한 과거 탄광촌의 흔적이었어요.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다시 갈 길을 가려는데 맞은편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시고 계셨어요. 건물이 뭔지 여쭤봤던 할머니께서 귀가 잘 안 들리셔서 큰 소리로 말해야했는데 이것 때문에 더욱 신경을 끌었어요. 이럴 때 대처방법은 오직 하나였어요.

 

칼 같이 90도 허리 꺾으며 공손히 인사드리기.

 

서울 달동네 돌아다니며 갈고 닦은 기술. 돌아다니다 동네 주민과 눈 마주쳤을 때 뭔가 조금이라도 느낌이 이상하다면 눈 마주쳐깍듯이 인사하는 게 좋아요. 깍듯이 공손하게 인사를 드리자 인사를 받아주셨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갔어요.

 

"저 건물이 예전에 탁아소였어요?"

"응."

"아, 저 건물이 함백광업소랑 관련있는 건물이었어요?"

"응."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맞다고 대답하셨어요. 이때 저와 떨어져서 걷던 친구도 제 옆으로 왔어요.

 

"여기가 함백광업소 마을인가요?"

"응, 맞아."

"할아버지께서도 탄광에서 근무하셨어요?"

"당연하지!"

 

할아버지께서는 함백광업소에서 몇십년간 근무하셨다고 하셨어요. 잠시 기다려보라고 하시더니 집 안으로 들어가서 뭔가 가져와서 보여주셨어요. 광산 인감증이었어요.

 

"이 동네가 예전에 탄광 가동될 때는 엄청 큰 곳이었어요?"

"여기? 어마어마했지. 제2의 서울이라고 불리던 곳이야."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함백이 과거에는 제2의 서울로 불리던 엄청나게 번성한 곳이었다고 하셨어요.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가 폐광하면서 사람들이 다 떠나가며 급격시 쇠락했고, 지금은 노인들만 남아 있는 동네로 전락했다고 알려주셨어요.

 

"어디에서 왔어?"

"제주도요."

"제주도? 그 먼 곳에서? 여기는 왜?"

"어르신께서 아시다시피 제주도는 탄광이 없잖아요. 그래서 탄광 지역이 궁금해서 와봤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제 대답에 바로 납득하셨어요. 제 고향은 정말로 제주도에요. 제주도에는 광산이 아예 없어요. 현무암, 송이 같은 것이 많이 반출되기는 하지만, 그걸 광산까지 만들어서 파가지는 않아요. 제주도에 광산이 없다는 사실은 전국민이 다 알아요. 제주도에서 왔고, 광산을 본 적이 없어서 광산 지역 궁금해서 와봤다고 하자 바로 고개를 끄덕이셨어요. 정말로 제주도 출신에 지금까지 제대로 광산 지역을 다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탄광 지역인 도계를 가보기로 결심했어요.

 

"차 가져왔어?"

"예? 예..."

"그러면 내가 이 동네 안내해줄께. 옛날 갱 입구, 추모비 같은 곳 다 보여줄께."

 

할아버지께서는 탄광 지역 궁금해서 왔다고 하자 매우 기뻐하시며 자기가 안내해주시겠다고 했어요.

 

'어? 이거 완전 횡재인데?'

 

엄청난 기회였어요. 여행하면서 동네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분의 안내 받는 기회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에요. 특히 여기는 현재도 탄광이 가동되고 있는 지역이 아니라 정확히는 폐광 지역이었어요. 도계는 지금도 탄광이 가동되고 있기 때문에 스카이뷰, 로드뷰 등을 보며 한참 씨름하면 탄광 위치를 찾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폐광 지역은 탄광 위치를 지도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전혀 찾을 수 없어요. 폐광된 지역 마을의 흔적은 그래도 찾아볼 수 있지만 과거 갱 입구 같은 것은 전혀 찾을 수 없어요.

 

게다가 사전에 조사했을 때부터 바로 전날 이 지역 정보를 찾을 때 뼈저리게 느낀 점은 이 지역에 대한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었어요. 그래도 다녀간 사람들이 조금 있어서 대충 무엇이 있고 무엇을 보면 되는지 정도는 대충 파악할 수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어요. 이런 정보들조차 위치에 대한 설명이 엉망이었어요. 이게 조동리에 있다는 건지 예미리에 있다는 건지 뒤죽박죽으로 써놓은 경우가 많았어요. 조동리는 함백이고 예미리는 예미에요. 비록 옆동네이기는 하지만 다른 동네에요. 아무리 차를 빌려서 왔다고 해도 무턱대고 여기저기 들쑤시며 발견물 찾듯 돌아다닐 곳은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광산은 산에 있고, 폐광된 지역은 복구 작업과 자연적 회복을 통해 완전히 숲속으로 바뀌었어요.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산에 들어가서 산 속을 헤메고 들쑤시고 다니지나 않으면 찾기 엄청 어려워요.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직접 길안내를 해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친구를 바라봤어요. 친구 표정이 떨떠름한 표정을 넘어서서 아주 썩어문드러지고 있었어요. 운전을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친구가 하기 때문에 친구도 동의해야만 했어요. 친구는 엄청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었어요.

 

"애들끼리 다니게 놔둬요."

 

할머니께서 할아버지께 저와 친구 둘이서 다니게 놔두라고 하셨어요. 친구는 인사드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허락받고 옥수수 사진 찍고는 바로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던 가옥에서 조금 멀리 걷자 친구에게 물어봤어요.

 

"야, 왜 거절했어?"

"그게 우리 돌아갈 거 생각하면 시간도 없고..."

 

지랄하네.

 

아직 오후 2시 채 되지도 않았어요. 무슨 돌아갈 거 생각하면 시간이 없어요. 넘치는 게 시간이었어요. 아무리 영월역으로 돌아가야한다고 해도 아직 시간 매우 많이 남아 있었어요. 이 동네는 이제 다 봤어요. 조동철교 정도 보면 끝이었어요. 오히려 이제 어디로 가고 무엇을 보며 시간을 때워야할지 고민해야하는데 무슨 돌아갈 시간을 걱정해요.

 

"어르신은 한 번 말 시작되면 끝도 없단 말이야. 돌아다니면 막걸리 값이라도 드려야 하구."

 

이 새끼, 되도 않는 변명 둘러대는 거 봐라?

 

말도 안 되는 헛소리와 변명. 무슨 할아버지가 칼 들고 내 말 다 안 들으면 찔러버리겠다고 협박할 것도 아니고, 또 무슨 막걸리값이에요. 무슨 전문 가이드한테 호객당한 것도 아니구요. 만약 너무 먼 곳을 가고 할아버지 말씀이 너무 길어져서 시간이 정말 부족해진다면 할아버지께 양해를 드리고 빨리 돌아와서 할아버지 내려드리고 영월역으로 가면 될 것이고, 정말 너무 진심으로 고마워서 뭐라도 보답하고 싶다면 막거리값 드리고 싶다면 동네 슈퍼 가서 막걸리에 안주로 드실 거 뭐 사드리면 되요. 이거 뭐 얼마나 한다구요.

 

친구의 말도 안 되는 변명 들으며 상당히 열받았어요. 그냥 솔직히 이야기하면 괜찮은데 말도 안 되는 헛소리와 변명으로 둘러대려고 하자 이 태도에 더 화가 났어요. 친구는 할아버지 연설이 싫고 돌아다닌 후 할아버지께 돈 드리기 싫어서 싫다고 한 게 아니었어요.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지 마

 

딱 이거였어요. 친구의 눈빛, 표정, 태도, 행동 등 모든 것에서 확 느껴졌어요. 연인이 다른 사람에게 자기들 사이에 끼어들지 말라고 신호주는 거 있잖아요. 딱 그거였어요. '우리끼리만 놀자, 나만 바라봐줘, 나만 위해줘, 나랑만 놀아줘' 이런 짓을 하고 있었어요.

 

이 미친놈이 불알 다 뜯어내었나, 왜 나랑 데이트하려고 지랄인데?

 

진짜 이때는 '내가 씨발 너랑 데이트하러 왔냐?'라고 쏘아붙이려고 하다가 꾹 참았어요. 친구는 도계에서부터 계속 이러고 있었어요. 국내 여행이 해외 여행보다 좋은 점은 지역 주민분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며 노는 재미도 있어요. 일반 관광지가 아닌 동네라면 이런 재미가 매우 쏠쏠해요. 한가할 때는 그 분들도 잡담 상대 왔다고 좋아하시곤 해요. 특히 고령화가 많이 진행되어 노인분들만 남은 동네는 이런 성향이 상당히 강해요. '사람 고파하는 분들, 대화 고파하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솔직히 이런 맛에 국내 여행 가요. 이런 저런 잡담도 하고 동네 이야기도 듣고 하는 재미요.

 

그런데 친구는 도계에서부터 계속 제가 지역 주민분들과 이야기하려고 하면 엄청 싫은 티를 팍팍 내었어요. 그렇게 싫으면 혼자 주변 돌아다니고 사진찍고 놀다가 다시 오든가 하면 될 건데 그것도 아니고 바로 옆에 와서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신호를 보내서 분위기 망쳐놓고 있었어요. 무슨 거창한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계고 예미고 함백이고 아주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적당히 동네 돌아다니고 사람들과 잡담하며 놀다 가도 충분했어요. 정확히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오히려 시간이 엄청 남았어요. 친구한테 대화 사이에 끼어들지 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생활 좀 해봤으면 적당히 어울려서 잡담하며 같이 놀면 되었어요. 오히려 이런 잡담 자리를 만드는 게 오히려 어렵고 기술이구요. 인사를 잘 하고 처음에 말꼬를 트는 게 어렵지, 대화가 시작되기 시작하면 이 사람도 오고 저 사람도 오고 다 같이 잡담하며 놀아요. 그 재미에 한국 여행 다니는 거구요. 하지만 친구는 제가 동네 주민분과 대화하려고 하면 무조건 싫은 티를 엄청 팍팍 내었어요.

 

그렇다고 친구가 저와 둘이 있을 때 무슨 대화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무슨 여행 준비를 잘 해와서 코스를 재미있게 짜는 것도 아니고, 뭘 알아보려는 탐험가적 자세를 보이며 어디로 돌진하자고 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계속 자기 재미있게 해달라고 보채기만 하고 있었어요. 자기랑만 놀아달라고 말없이 떼쓰고 있었어요. 이런 건 자기 애인한테 해야지, 왜 이걸 저한테 하고 있냐구요.

 

더 짜증나는 것은 친구가 하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마음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친구가 하고 싶은 것은 그냥 현실도피, 방황 이런 거였어요. 나한테 와서 '나도 내 마음 모르겠어' 이러면 나보고 어쩌라구요. 내가 무슨 예수님 부처님 알라후 아크바르도 아니고 본인도 모르는 자기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저 '떠나는 것'이 하고 싶다고 하는데 이걸 뭐 어쩌라는 거에요.

 

이때는 정말로 짜증 엄청 났어요. 도계에서부터, 그 이전 동해에서부터 쭉 이어지고 있는 친구의 이런 태도는 계속 제 신경을 박박 긁고 있었어요. 그래도 꾹 참았어요. 제가 싫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저와 친하다고 느껴서 그러는 거라 화를 낼 수도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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