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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는 갈 수록 더 강해졌어요. 길을 보면 차가 별로 안 다닐 거 같은데 차가 계속 다녔어요. 다행히 양쪽에서 동시에 달려오는 일은 별로 없었어요. 한 쪽에서 휙 달려오고, 그 다음에는 맞은편에서 휙 달려오는 식이었어요. 만약 양쪽에서 동시에 차가 달려왔으면 차 피하기 고약했겠지만 다행히 한 쪽 방향에서만 차가 달려와서 차가 올 때마다 적당히 옆으로 비켜서며 걸었어요.

 

"내 신발!"

 

잘 가던 친구가 소리질렀어요. 잠깐 옆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어요. 친구는 길 옆에 물이 고여 있는 곳을 제대로 밟았어요. 물이 꽤 고여 있었어요. 발등까지 잠길 정도로 물이 고여 있었어요. 친구는 발이 거기에 제대로 빠졌어요. 앞만 보고 가다가 모르고 물이 고인 곳을 제대로 밟았어요. 방수가 잘 되는 신발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발 안쪽까지 젖었을 거였어요.

 

"괜찮아?"

"신발 완전 버렸네."

 

친구 표정이 매우 안 좋아졌어요. 그래도 의외로 별로 짜증내지 않았어요. 평소 친구라면 이렇게 물 제대로 밟아서 신발 젖으면 엄청 짜증내고 신경질냈을 거였어요. 아주 레파토리가 있어요. 길에 왜 물이 이렇게 고이도록 도로를 놔두고 있냐, 공무원은 이런 거 하나 제대로 발견 못 하고 뭐 하고 있냐, 이거 사람 걸어갈 때마다 발 다 빠져서 젖지 않겠냐 등 일장 연설이 시작되요. 그런데 그게 없었어요.

 

'신기하네.'

 

친구가 별 말 없고 툴툴거리지도 않는 걸 보자 매우 신기했어요.

 

 

'까막동네'라는 글자가 붙어 있는 입간판과 철길 건널목이 나왔어요.

 

 

"길 건너서 가보자."

 

철길을 건너서 맞은편 동네로 가보기로 했어요.

 

 

철길 건널목에서 도계역 방향을 바라봤어요. 멀리 화차가 정차되어 있었어요.

 

 

철로를 건너자 조형물이 등장했어요.

 

 

조형물은 2012년 도계읍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사업 기념 조형물이었어요.

 

 

철로 맞은편을 바라봤어요.

 

 

 

까막마을 입구에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6호 도계역 급수탑이 있었어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6호 도계역 급수탑은 1940년에 건설되었어요. 도게역 급수탑은 강원도에 영동선이 개통할 때 도계역을 경유하는 증기기관차에 필요한 물을 기관차에 공급하기 위해 건설되었어요. 증기기관차는 연료로 물을 끓여서 수증기가 가진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전환시켜서 움직여요. 그렇기 때문에 일정 구간 이동하면 기관차에 물을 공급해줘야 해요. 도계역 급수탑은 바로 1940년 영동선이 건설되었을 때 도계역에 경유하는 기차의 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세워진 시설이에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6호 도계역 급수탑은 철근 콘크리트 원통형에 상부 급수탱크와 하부 기계실로 구성되어 있어요. 도계역 급수탑 높이는 8m에요. 바닥 면적은 16제곱미터이고, 급수용량은 28.5입방미터에요. 도계역 급수탑 높이가 다른 급수탑보다 낮은 이유는 도게역 급수탑 위치가 철로면보다 4m 높은 곳이기 때문이에요. 급수탑이 철로면보다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적정수압을 낼 수 있도록 높이를 조정했어요.

 

도계역 급수탑 물탱크 지붕은 돔 형태로 되어 있어요. 물탱크 지붕에는 환기구로 사용된 반원형 창문 4개가 있어요. 도계역 급수탑 하부 기계실 출입구는 아치형 문틀로 이뤄져 있어요. 도계역 급수탑이 급수탑 시설사용이 중단된 후에 하부 기계실은 창고로 사용되었어요.

 

도계역 급수탑 문은 잠겨 있었어요. 밖에서 대충 보고 까막마을 안쪽으로 들어갔어요.

 

 

 

1914년, 조선총독부의 나카무라(中村新太郞)는 강원도의 지질조사 결과를 보고했어요. 이때 강원도에는 당시 삼척, 정선, 영월, 강릉 탄전이 보고되었다고 해요. 이 보고를 토대로 삼척 지질소사소와 연료선광연구소 합동조사반은 1925년 9월부터 1928년까지 4년에 걸쳐 도계읍 지역과 고사리 지역 탄광 개발에 관한 정밀 조사를 추진했어요. 이 당시 도계읍 지역은 '소달'이라고 불렸어요.

 

 

일본 군부에게 삼척탄전 개발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어요. 삼척탄광을 개발하면 삼척탄광에서 생산된 석탄을 일본으로 수송할 계획이었어요. 동해안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삼척탄전이 개발된다면 여기에서 생산된 석탄을 묵호항으로 운반해 일본으로 공급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이 당시에는 일본이 전쟁 수행을 위해서 석탄 증산이 매우 시급한 때이기도 했어요.

 

그러나 문제가 있었어요. 도계 지역은 험준한 산맥 속에 위치한 지역이었어요. 도계에서 석탄 생산은 가능하지만, 다른 지역으로 수송하기 매우 어려웠어요. 지도상으로는 도계에서 일본 본토까지 거리가 가깝지만, 도계에서 생산된 석탄을 묵호항으로 운반하려면 험준한 태백산맥을 내려와야 했어요.

 

삼척 탄광은 본격 개발 직전인 1934년 조선무연탄주식회사(미쓰비시 계열 자본)가 개발 검토에 나서면서 조선전력주식회사와의 신경전 끝에 1935년 도계 지역 16개 광구를 등록했어요. 1935년 말에 가서 개발 계약을 체결하고 삼척탄전의 석탄 광구를 조선총독부로부터 넘겨받은 후 개발 선발대를 현지에 파견했어요. 그렇지만 지리적 악조건으로 인하여 개발 착수도 못하고 광구권을 다시 조선총독부에 반납했어요.

 

 

일본 군부는 조선총독부가 삼척 탄전 개발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일본 전력재단인 조선전력주식회사를 삼척탄전 개발 기업으로 선정했어요. 조선무연탄주식회사의 광구권은 1935년 12월에 조선전력주식회사에 양도되었어요. 조선전력주식회사는 1936년 4월에 자본금 4,500만원을 투자해서 삼척개발주식회사와 삼척철도주식회사 설립하고 삼척탄광의 본격적인 개발과 북삼화학 경영에 들어갔어요.

 

미쓰이와 미쓰비시 등의 재벌 기업은 삼척탄광을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에 돌입했어요. 조선총독부는 이 경쟁에 개입해서 일종의 컨소시엄 형태로 설립을 허가했어요. 미쓰비시, 미쓰이, 조선전력 등은 조선총독부의 개입으로 공통출자를 통해 삼척개발주식회사를 설립했어요.

 

조선총독부에서는 삼척 북평 지대에 대단위 북삼중화학공업단지 조성을 계획하고 있었어요. 삼척 북평 지대에 북삼중화학공업단지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연료 공급창 역할을 담당할 삼척 탄광 개발이 매우 시급한 문제였어요. 당시 조선총독부의 삼척지역 산업도시화 구상은 삼척 탄광에서 생산된 무연탄으로 삼척화력발전소를 가동하고, 삼척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으로 비료공장인 북삼화학, 양양철광에서 생산된 철광석을 활용하는 북평제철소, 오노다 시멘트 공장 등을 운영하려고 했어요.

 

 

비가 좍좍 퍼붓는 가운데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도계역 까막동네를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던 중이었어요. 얼핏 보면 딱히 눈에 띄는 게 없는 평범한 대문이 보였어요.

 

 

"너가 왜 여기 있어!"

 

강원도 산골짜기에 있는 도계읍에 돌하루방이 웃고 있었어요. 대문 양 옆 벽에 조그마한 돌하루방이 각각 한 기씩 서 있었어요. 대문 담장 위에 세우고 떨어지지 않게 시멘트로 돌하루방 기단을 감쌌어요.

 

'이 돌하루방들은 어떻게 여기 왔지?'

 

대문 양쪽 문설주 위에 돌하루방이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며 빙긋 웃었어요.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어요. 제주도에서 여기로 여행오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처럼 도계에서 제주도로 여행가는 것도 어르신들에게는 나름대로 크게 결심하고 다녀온 것일 거에요. 그래서 제주도 다녀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문설주 위에 돌하루방을 붙여놨을 수 있어요. 또는 정말로 제주도 출신이거나 부모님이 제주도 출신일 수도 있어요. 제주도 출신이 수가 적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녀보면 어디든 한 명은 있어요. 게다가 해안지역에는 옛날에 해녀로 일하러 가서 정착한 제주도 할머니들이 계세요.

 

전혀 신기할 것이 없고 고향에서 살 때 정말 질리게 본 돌하루방이었지만 전혀 예상도 못한 곳에서 보자 엄청나게 신기했어요. 강원도 탄광 마을인 도계읍에서 볼 줄은 몰랐어요. 돌하루방도 광산에서 석탄 캐러 넘어오던 곳이었나봐요.

 

돌하루방을 신기해서 잠시 서서 보다가 다시 까막동네를 걸으며 동네 구경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 동네는 탄광이 어디 있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은 탄광 지역이에요. 아까 장미사택에서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탄광은 못 갔어요. 그렇지만 이 지역에 탄광이 하나만 있을 거 같지는 않았어요. 탄광이 몇 곳 더 있을 거 같았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는 탄광이 두 곳 있어요. 하나는 경동 상덕광업소에요. 경동 상덕광업소는 무려 민영 탄광이에요. 다른 하나는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에요.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는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삼척개발주식회사가 개광한 삼척탄광을 모태로 하고 있어요.

 

 

 

 

삼척 탄광은 광복 후 1950년에 출범한 대한석탄공사에 이관되었어요. 이후 삼척 탄광 규모가 커지자 1951년에 도계광업소와 장성광업소로 분리되었다. 여기에서 장성광업소는 오늘날 태백시에 있어요. 태백시 장성동에 있는 장성광업소와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도계광업소가 과거에는 하나였어요.

 

 

 

여기에서 알아두면 매우 좋은 것이 하나 있어요. 아주 예전에는 태백시, 삼척시, 동해시 남부가 모두 삼척군이었어요. 삼척군에서 태백시와 삼척시가 갈라져 나왔고, 삼척군 북부 북평읍과 강릉 남부 묵호읍이 합쳐져서 동해시가 되었어요. 그래서 이쪽 탄광 및 역사를 볼 때 '삼척'이라고 하면 그 다음 지명을 잘 봐야 해요. 이 '삼척'이 오늘날 태백시일 수도 있고, 삼척시일 수도 있고, 동해시일 수도 있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위치한 도계광업소는 1987년 도계갱과 동덕갱, 흥전갱, 나한갱, 점리갱 등으로 분리되어 운영되었어요.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정책이 시행된 뒤 가장 먼저 1990년 2월 점리갱이 폐쇄되었어요. 그 다음에는 1994년부터 흥전갱과 나한갱이 통합되어 도계생산부, 동덕생산부, 중앙생산부 체제로 운영되었어요. 현재는 도계갱과 동덕갱만 운영되고 있어요.

 

 

 

 

도계에 있는 탄광은 채굴이 이루어지는 심도는 지하 454m, 최하부의 심도는 지하 612m에 이른다고 해요. 대한석탄공사가 운영하는 3개 광업소 중 가장 탄질이 높은 무연탄을 생산하는 광업소로,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에서 생산하는 무연탄은 1kg당 평균 열량이 4715kcal이라고 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은 1950년대 이후 강원도 석탄 생산량의 32%를 차지하는 주요 석탄 산지가 되었어요. 또한 1975년까지는 서독에 파견하는 광부들의 훈련소 역할을 하기도 했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은 탄광을 중심으로 광산 취락도 발달했어요. 1950~1960년 사이에 인구는 무려 3배 이상 급증했어요. 1963년에는 도계리가 도계읍으로 승격되었어요.

 

1978년에는 도계읍 흥전리에 광산사택으로 3층 연립의 희망아파트가 건립되었어요. 도계읍 흥전리에 건설된 희망아파트는 태백시 장성광업소의 화광아파트와 더불어 탄광촌 아파트형 사택의 효시에요.

 

 

 

 

그러나 석탄 산업의 몰락과 함께 도계읍도 급격히 몰락했어요.

 

 

 

 

'왜 이렇게 검어보이지?'

 

아무리 봐도 풍경이 검었어요. 비가 내릴 수록 채도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진한 검은색이 아래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어요. 아침에는 제가 '탄광 지역'이라는 것 때문에 괜히 이상하게 보는 것 아닌가 했어요. 그렇지만 비가 좍좍 내리고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여기는 비가 내리면 풍경이 채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검은색이 올라온다는 생각이 가벼운 느낌과 추측에서 확신으로 바뀌어갔어요.

 

 

 

친구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제가 가니까 가는 거였어요. 영혼을 잃은 껍데기만 돌아다니는 모습이었어요. 어쩌면 친구는 자기가 생각해도 기차 시간까지는 많이 남았고, 갈 곳은 딱히 안 떠올라서 멍하니 걷고 있었을 수도 있어요.

 

 

 

빗소리만 매우 우렁차게 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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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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