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친구와 숙소로 돌아왔어요.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어요. 친구는 드러눕더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어요. 저는 제 스마트폰을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어요.

 

"여기 뭐 있나 한 번 찾아볼까?"

 

다음날 오전 일정은 망상해수욕장이었어요. 저는 여기에 뭐가 있는지 더 찾아볼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일정은 정해져 있었어요. 만약 망상해수욕장을 안 간다면 논골마을과 묵호항이나 갔다올 생각이었어요. 다음날은 숙소에서 체크아웃한 후 짐을 다 짊어메고 다녀야 했어요. 짐이 많지는 않았지만 돌아다닐 때 거추장스러웠어요. 게다가 뜨거운 여름이라서 조그만 짐이라도 몸에 붙어 있으면 더 뜨겁고 땀이 좍좍 날 거였어요.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있다!"

"어? 진짜?"

 

친구가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동해시 편을 찾았어요. 친구는 스마트폰으로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동해시 편을 보기 시작했어요. 친구와 같이 침대에 드러누워서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동해시 편을 보기 시작했어요.

 

"여기 덕장 있었어?"

 

동해시에서 만드는 북어는 '묵호태'라고 부른대요. 묵호태는 11월부터 3월까지 명태를 겨울 바람에 자연적으로 말려서 만드는 북어에요. 지금까지 완전히 자연적인 겨울 차가운 해풍에 말려서 북어를 만드는 곳은 동해시가 유일하다고 나왔어요. 과거에는 명태 덕장이 많았지만 지금은 많이 사라졌대요. 그래도 아직까지도 논골마을 꼭대기에는 덕장이 남아 있다고 나왔어요.

 

"우리 왜 명태 덕장 못 봤지?"

 

분명히 논골마을 꼭대기에 있는 묵호등대까지 올라가서 멀리 뱅 돌아서 산제골 마을로 내려왔어요.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는 논골마을 꼭대기에 명태 덕장이 있다고 했어요. 논골마을 꼭대기까지 갔으니 분명히 명태 덕장을 봤어야 했어요.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명태 덕장은 본 기억이 없었어요. 덕장처럼 생긴 것 자체를 못 봤어요. 논골마을 꼭대기에서 산제골 마을로 넘어가는 길에는 무슨 공사장과 화재로 불타버린 건물만 있었어요.

 

"내일 시간 되면 명태 덕장 가보자!"

 

묵호 와서 반드시 가봐야 하는 명태 덕장을 못 갔어요. 논골마을 꼭대기까지 다 올라가서 명태 덕장을 가지 않고 바로 산제골 마을로 내려가 버렸어요. 이건 반드시 봐야 했어요.

 

'대체 어디 있다는 거지?'

 

논골마을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산제골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 명태 덕장 비슷하게 생긴 것을 못 봤어요. 명태 덕장이 어디 있을지 추측해봤어요.

 

'설마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쪽인가?'

 

논골마을에서 묵호등대로 가는 길은 4가지 있었어요.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방향 길은 안 가봤어요. 만약 논골마을 꼭대기에 명태 덕장이 있다면 아마 저와 친구가 가보지 않은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쪽 어딘가에 있을 거였어요.

 

친구와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동해편을 다 보고 나서 바로 잠들었어요.

 

참고로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동해시 편 '눈부시다 푸르른 날들'은 2022년 2월 5일에 방영되었어요. 시청률은 역대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전체 1위로, 9.6%를 기록했다고 해요.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는 KBS 홈페이지에서 다시보기로 볼 수 있어요.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어요. 엄청 깊게 잤어요. 정신 차리고 보니 아침이었어요.

 

"주식 확인해봐야겠다."

 

친구와 여행 오기 전이었어요. 토요일 새벽에 미국 20년 장기채 3배 숏 ETF인 TMV를 매수했어요. 7월에 한국 주식 단타치다가 본 손실을 만회해야 하는데 자꾸 어느 정도 만회하면 무너지기를 반복하고 있었어요. 얌전히 TQQQ 매수해서 가만히 놔뒀다면 진작에 손실 다 만회하고 수익이었겠지만 계속 샀다 팔았다 손절했다 난리피워서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어요. 가만히 놔두면 환율 때문에 손실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TMV가 많이 하락했길래 TMV를 매수했어요.

 

이후 여행이 끝날 때까지 주식을 안 보기로 마음먹었었어요. 그러나 그 결심은 아침이 되자 바뀌었어요. 증권 계좌에 들어가봤어요.

 

"되었다!"

 

운이 좋았어요. TMV가 너무 많이 떨어진 거 같아서 매수했는데 제가 찍은 게 맞았어요. 계좌 잔고가 입은 상처는 발행어음이나 채권으로 6개월 묵히면 자연치유될 수준까지 치유되었어요. 이제 TMV를 팔아야 했어요.

 

"아, 애프터장 끝났지?"

 

이때는 NH투자증권은 미국 주식 매매를 아침 9시까지 지원하는 것을 몰랐어요. 당연히 다른 증권사들처럼 새벽 6시까지만 애프터 마켓을 지원해주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이건 나중에 이따 저녁에 봐서 매도할지 결정하기로 했어요.

 

"살았다."

 

1년도 아니고 6개월만 NH투자증권에 들어 있는 돈을 발행어음이나 채권 매수해서 가만히 놔두면 원금 회복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거였어요. NH투자증권에 있는 돈은 6개월만 안 건드리고 가만히 놔두면 끝이었어요. 전체적으로는 수익중이었기 때문에 꼭 NH투자증권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을 건드려야 할 일도 없었어요. 올해 주식 단타 쳐서 돈을 잃지 않았고, NH투자증권 계좌 잔고에서 발생한 손실을 꼭 또 주식 단타 매매로 만회시켜야한다는 법도 없었어요. 6개월이면 연초에 채권 잘못 사서 제대로 물렸다고 퉁치면 되는 수준이었어요.

 

친구가 잠에서 깨어났어요.

 

"일어나, 망상 가려면 이제 슬슬 출발해야 해."

"더 잘래."

 

친구는 졸리다고 더 자고 싶다고 했어요.

 

"망상 가지 마?"

 

친구는 잠이 덜 깨서 몽롱한 상태에서 고민했어요. 저도 망상해수욕장보다는 명태 덕장이 더 보고 싶었어요.

 

"아침에 가봐야 사람도 없을 건데 이따 명태 덕장이나 보러 갈까?"

"어."

 

친구에게 망상해수욕장 대신 명태 덕장 보러 가지 않겠냐고 하자 친구가 그러겠다고 했어요. 친구에게 조금 더 자라고 했어요.

 

친구가 자는 동안 샤워하고 짐을 다시 챙겼어요. 친구가 일어났어요. 친구에게 이제 나가자고 했어요.

 

"너 진짜 잘 자더라."

"나?"

"어. 순식간에 잠들던데?"

 

제가 원래 잠은 진짜 잘 자요. 웬만해서는 잠을 못 자는 일이 없어요. 지하철에서 손잡이 잡고 서서 잘 때도 있는데요.

 

친구와 숙소에서 체크아웃하고 나왔어요. 숙소에서 나왔을 때는 2022년 7월 19일 아침 9시 10분이었어요.

 

"어디 가지?"

"논골담길 쪽으로 슬슬 걸어가자."

 

그떄였어요. 바로 앞에 성당이 보였어요.

 

"우리 성당 가자."

"그래."

 

친구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에요. 어려서부터 성당을 다녔어요. 지금도 성당을 다니고 있어요. 친구에게 성당에 가자고 하자 친구는 좋다고 했어요.

 

 

길을 건너서 성당으로 갔어요.

 

 

숙소 앞에 있는 성당은 강원도 동해시 가톨릭 성당 천주교 춘천교구 바다의 별 묵호성당이었어요.

 

동해시는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어요. 동해시 북부 가톨릭 교구는 춘천교구에요. 동해시 남부 가톨릭 교구는 원주교구에요. 천주교 원주교구는 1965년 춘천교구 일부가 관할로 분리되며 형성되었어요. 이때만 해도 동해시는 아직 존재하지 않을 때였어요. 동해시는 1980년에 명주군 묵호읍과 삼척군 북평읍이 통합되며 생긴 시에요. 그래서 묵호쪽은 춘천교구 소속이고 북평쪽은 원주교구 소속이에요. 전날 갔던 북평성당은 춘천교구 소속이고, 이날 간 묵호성당은 춘천교구 소속이에요.

 

 

"여기도 북평성당이랑 거의 똑같이 생겼네?"

 

바다의 별 묵호성당은 북평성당과 거의 비슷하게 생겼어요.

 

 

천주교 춘천교구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묵호 성당 역사는 다음과 같아요.

 

묵호 성당은 1948년 6월 임당동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나 6.25 당시 공산군에 의해 성당이 점거되고 주임 신부인 라 파트리치오(Patrick Reilly) 사제가 순교하는 시련을 겪었다. 1954년부터 삼척 성내동 본당(1965년 교구분리에 따라 현재 원주교구 성당)관할 공소였다가 1957년 6월 현재의 성당 건물을 준공하면서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주보는 ‘바다의 별’이다.

 

묵호지역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1931년으로 1940년에는 임당동 본당의 관할 공소로 설정되어 일본식 가옥을 매입하여 성당으로 사용하였으며 1945년 해방 후에는 묵호 해군 사령부의 군종 신부가 부임하여 사목을 하였다. 1948년에 본당으로 승격한 묵호성당은 이듬해 라 파트리치오 신부가 부임했는데 한국 전쟁 중 공산군이 성당을 점령하자 당시 전교회장의 집에 잠시 피신해 있다가 체포되어 강릉으로 이송도중 밤재굴에서 순교하였다. 1950년 8월 이후 본당은 거의 폐쇄되었으며, 1954년에는 삼척 성내동 본당 묵호공소가 되었다.

 

1957년 본당이 다시 설립되면서 성당 내에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 일부를 모시게 되었고 신자들의 신앙심 고취를 위한 피정 및 재교육에 몰두하였으며 1962년 7월에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가 묵호성당에 진출하였다. 묵호성당은 지역사회의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목적으로 1968년 11월 남호실업중고등학교를 인수하여 남호고등공민학교로 개명하고 교육 사업을 진행하였으나 15년 후인 1982년 2월에 폐교하였다. 1962년에 묵호성당에 진출했던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는 1977년에 철수하고, 1979년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진출하여 현재까지 사목을 돕고 있다.

 

묵호 성당 설립 이래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사제들이 부임해 사목을 해오다가 1981년에야 비로소 한국인 사제가 부임하여 본당 내 소공동체를 활성화시키고 각종 단체도 신설하는 등 활동을 하며 활기가 넘치는 본당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92년 1월에는 원주교구 소속의 천곡동 본당이 아파트 밀집 지역에 신설되면서 한 지역에 2개 교구의 본당이 존재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관할 구역내 신자들의 교적 정리가 이루어졌으며 묵호성당은 교세의 감세추세로 돌아서게 되었다.

 

2002년 태풍 루사로 지붕이 파손되어 성당 안까지 물이 들어와 지붕 철거 공사를 하였으며 이를 시작으로 2003년에는 성당 안팎 모든 곳을 공사하였다. 2008년에는 본당 설립 60주년을 기념하여 기도문을 만들어 매 미사마다 기도문을 묵상하였고 이듬해 본당 설립 60년사를 발간하였다. 묵호성당은 순교자를 모시고 있는 공동체로서 본당 신자들이 순교자 라 파트리치오 신부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으며 순교자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도 끊임없이 드리고 있다. 1974년 라 파트리치오 신부 순교비를 처음 건립하였다가 2003년 성당 앞마당 성모상이 있던 자리에 순교비를 새로 건립하였다. 또한 라 파트리치오 신부의 거룩한 순교 신앙을 기리기 위하여, ‘파트리치오’ 상을 1994년 8월 29일 제정하여 본당 신자 가운데 이웃과 사랑을 나누며 실천하는 교우에게 수여하기도 하였다.

 

성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친구는 조용히 기도드렸어요. 저도 이번에는 기도를 드렸어요.

 

"오늘 일정 무사히 잘 끝내게 해주세요. 그리고 친구 다시 건강해지게 해주세요."

 

간단히 빌었어요. 대박을 빌지 않았어요. 그저 오늘 일정을 친구와 다투는 일 없이 잘 끝낼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그리고 건강을 많이 상한 친구가 다시 건강해지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저는 천주교도가 아니라서 예수님께서 이 정도 소원만 들어주셔도 감지덕지였어요.

 

 

기도를 간단히 마치고 친구를 봤어요. 친구는 계속 기도드리고 있었어요.

 

 

성당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의 길 그림을 봤어요. 단순하지만 꽤 매력적인 그림이었어요. 십자가의 길 그림은 매우 현대적인 스타일 그림이었어요. 크리스마스 기념 우표로 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그림이었어요.

 

 

친구가 기도를 마쳤어요.

 

"나가자."

 

친구가 나가자고 했어요.

 

 

날은 전날보다 더 맑았어요. 아주 햇볕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아침이었어요.

 

반응형

Posted by 좀좀이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