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망상 속의 동해 (2022)

망상 속의 동해 - 14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도째비골 해랑 전망대

좀좀이 2022. 8. 24. 09:00
728x90

"우리 어디 갈 거?"

 

친구는 내심 숙소로 돌아가서 쉬고 싶어하는 눈치였어요. 힘들다고 하고 있었어요.

 

"아까 도째비골에서 바다쪽에 있는 전망대까지 가자."

"거기?"

"거기까지만 갔다가 돌아가자. 내일 망상 갈 건데 다 보고 가야지."

 

친구에게 아까 묵호등대 옆에 있었던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아래에 있던 해변에 만들어진 전망대까지만 가자고 했어요. 그 이상은 저도 갈 생각이 없었어요. 딱 거기까지만 갔다가 숙소로 돌아갈 생각이었어요.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아래에 있는 바닷가에 있는 전망대는 도째비골 해랑 전망대였어요. 다음날은 이쪽으로 오지 않을 거였어요. 오전에 망상해수욕장 갔다가 바로 묵호역으로 가서 서울로 돌아갈 계획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묵호항 근처에 있는 볼 것은 다 보고 가야 했어요. 대충 도째비골 해랑 전망대까지만 보면 될 거 같았어요.

 

"거기 멀지 않아?"

"안 멀어. 딱 거기까지만 갔다가 돌아가면 돼. 그러면 여기 다 보잖아."

 

친구도 좋다고 했어요. 바닷가 따라서 평지를 쭉 걸어가는 길이었어요. 잡담하면서 가면 금방 갈 거리였어요. 그렇게 먼 길이 아니었어요. 밤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어가면 되었어요. 숙소까지 돌아가는 길도 쉽고 평탄한 편이었기 때문에 무리해서 가는 길이 아니었어요.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더 걸어가면 묵호항 일대에서 볼 곳을 다 보고 갈 수 있었어요.

 

친구와 묵호항을 향해 걸었어요. 바닷바람이 뜨뜻했어요. 보통 여름밤 바닷바람이 시원하다고 하지만 하나도 안 시원했어요. 선선한 게 아니라 뜨뜻한 바닷바람이었어요. 더운 날씨였어요.

 

"내일 비 안 내릴 거 같지 않아?"

 

밤하늘에는 별이 떠 있었어요. 비구름 닮게 생긴 게 하늘에 하나도 없었어요. 구름이 살짝 끼기는 했지만 이 정도 구름도 안 낀 날은 여름에 오히려 없었어요. 낮이고 밤이고 항상 볼 수 있는 솜털 같은 구름 몇 점만 하늘에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어요. 이 정도 구름으로는 비가 내릴 리 없었어요. 태백산맥에서 갑자기 엄청난 먹구름이 밤새 넘어온다면 모르겠지만요.

 

'아무리 봐도 내일 비 안 올 거 닮은데...'

 

일기예보는 도통 믿을 수 없었어요. 일기예보를 보면 다음날도 비가 내릴 걱정을 해야 했어요. 밤하늘을 보면 내일 비가 올 수 있다는 기상청 일기예보는 이거 다 새빨간 거짓말인 거 알지 않냐고 하고 있었어요. 비가 올 거라면 엄청 뜨뜻하고 공기가 상당히 습해야 했어요. 밤공기가 습하기는 했어요. 당연했어요. 바닷가를 걷고 있었으니까요. 바닷가라서 공기가 습한 정도였지, 비가 내리려고 습한 건 아니었어요. 비가 내리려고 습한 거라면 바닷가에서 걷고 있으니 진짜 조금만 걸어도 물범벅이 되는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묵호항 쪽으로 가자 카페가 한 곳 나왔어요. 카페 내부를 살짝 들여다봤어요. 카페가 괜찮게 생겼어요. 카페에서 나온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또 들어가지 않았어요. 도째비골 해랑 전망대를 향해 계속 걸어갔어요.

 

 

방파제까지 다 왔어요.

 

"여기 아무리 봐도 제주시 느낌인데?"

"응?"

"봐. 여기 완전 탑동 아냐."

 

전날 천곡동에서 동해시가 왠지 제주시랑 닮은 느낌이 있다고 했을 때 친구는 강하게 부정했어요. 아까 묵호 동쪽바다 중앙시장 근처에서 제주시와 닮은 느낌이 있다고 했을 때도 친구는 부정했어요. 전날 천곡동 보고 신제주 비슷하지 않냐고 했을 때보다는 덜 강해졌지만 그때도 부정하기는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나 이제 방파제 와서 동해시 느낌이 제주시와 비슷하지 않냐고 하자 긴가민가하고 있었어요.

 

'진짜 제주시랑 뭔가 닮았네.'

 

천곡동 = 신제주

묵호 = 구제주

동쪽바다 중앙시장 = 동문시장

묵호 도째비골 해랑전망대 방파제 = 탑동

멀리 보이는 태백산맥 제일 높은 산 = 한라산

 

진짜 느낌이 비슷했어요. 논골마을, 산제골 마을은 제주도에서 볼 수 없는 달동네이지만요. 그거 빼고는 왠지 비슷했어요. 물론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북평오일장은 천곡동에서 멀지만 제주시 민속오일장은 신제주에 있어요. 다 같을 수는 없죠. 완벽히 같다는 것이 아니라 뭔가 구조가 비슷한 느낌이라는 말이에요.

 

 

바다는 파도가 세게 치고 있었어요. 이쪽도 파도가 매우 강했어요. 제주도 파도와는 비교가 안 되게 강한 파도였어요. 멀리 빛나고 있는 곳은 천곡동 쪽이었어요.

 

"오징어배 다 어디 갔지?"

 

예전에 다른 친구와 속초 여행 갔을 때였어요. 밤바다에 오징어배가 많이 떠 있었어요. 오징어배의 반짝이는 밝은 불빛이 바다 위에 뜬 별 같았어요. 제주도에서는 이 시기에 한치잡이 배가 바다에 많이 떠 있어서 마찬가지로 밤바다를 보면 깜깜한 바다 바로 위에 별이 많이 뜬 것처럼 보여요.

 

동해시 묵호항 앞바다는 그냥 깜깜했어요. 오징어잡이 어선의 밝은 탐조등이 하나도 안 보였어요. 여름철 동해 바다의 상징 같은 오징어잡이 어선 탐조등은 하나도 안 보이고 그저 거센 파도만 출렁대는 시꺼먼 바다였어요.

 

 

도째비골 해랑 전망대 쪽에는 횟집이 여러 곳 있었어요. 카페도 몇 곳 있었어요. 묵호 중심가에서 논골담길까지는 길가에 좌석이 있는 카페가 거의 없었는데 여기 오니까 좌석이 있는 카페가 몇 곳 있었어요.

 

 

"여기는 고양이가 상징인가?"

 

가로등 장식이 고양이였어요. 잘 보면 이게 그냥 고양이가 아니라 도둑고양이에요. 어디에서 전리품으로 훔친 생선을 한쪽에 끼고 우산을 들고 승리의 포즈를 취하고 있었어요.

 

 

논골마을은 어두웠어요.

 

"해랑전망대 가자."

 

친구와 도째비골 해랑 전망대로 올라갔어요.

 

 

"여기 매우 잘 만들었는데?"

 

도째비골 해랑전망대는 입구부터 꽤 예뻤어요. 아래에는 시꺼먼 바닷물이 출렁거리고 있었어요.

 

 

도째비골 해랑 전망대에서 육지 쪽을 바라봤어요. 도째비골 스카이밸리가 빛나고 있었어요. 사람이 두 팔 벌리고 있는 전쟁 승리 조형물 같은 모습이었어요. 다르게 보면 사람이 바다에 낚싯대 드리우고 있는 모습 같기도 했어요.

 

 

진짜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동해시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져요. 예전에 간첩들이 밤에 동해안 지리를 파악하러 왔었대요. 멀리서 동해시를 보고 동해시에 어마어마하게 큰 빌딩이 있다고 보고했대요. 그런데 나중에 간첩들이 낮에 침투하려는데 커다란 빌딩이 없어서 당황했대요. 밤에 간첩들이 동해시 바다 멀리에서 본 어마어마하게 큰 빌딩이 바로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달동네인 논골마을이었다고 해요.

 

이 이야기는 간첩이 밤에 보고 엄청난 빌딩이 있다고 했는데 낮에 와서 보니 달동네였다는 말도 있고, 미군이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진짜 잘 만들었다."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다 위를 걸으며 논골마을과 묵호항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도째비골 해랑 전망대 자체도 매우 예뻤구요. 이건 정말 지방자치단체가 돈 써서 만든 가치가 있었어요.

 

도째비골 해랑전망대를 매우 만족스럽게 잘 보고 내려왔어요. 이제 숙소에 돌아갈 때가 되었어요.

 

 

묵호항 활어센터는 깜깜했어요.

 

"여기 관광객 왜 이렇게 없지?"

 

당황스러울 정도였어요. 동해시가 관광지로 알려져 있고 KTX도 들어오는 곳인데 관광객이 거의 안 보였어요. 길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차만 조금 다니고 있었어요. 전날 천곡동에서 사람이 거의 없었던 거야 일요일에 도심 번화가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월요일이었어요. 게다가 묵호항도 나름 관광지에요. 장마가 끝나고 피서철이 되었구요. 그런데도 사람이 참 없었어요.

 

 

버스 정류장이 나왔어요.

 

"저기서 잠깐 쉬었다 가자."

 

친구가 잠시 쉬었다가 가자고 했어요. 그러자고 했어요. 버스 정류장에 앉았어요. 뒤를 돌아봤어요. 버스 시간표가 있었어요.

 

 

버스 시간표를 보니 막차가 18시 52분이었어요.

 

잠시 쉬다가 다시 일어나서 숙소를 향해 걸어갔어요.

 

 

 

 

동쪽바다 중앙시장까지 왔어요.

 

 

"우리 예전에 통영에서 시장 가지 않았었나?"

"아, 그때? 그건 남해."

 

친구가 휑한 동쪽바다 중앙시장을 보며 예전에 같이 통영 여행 가서 밤에 시장 돌아다니지 않았냐고 했어요. 친구와 같이 여행 갔을 때 밤 늦은 시간에 사람 없는 시장을 돌아다닌 적이 있었어요. 그러나 그건 통영이 아니었어요. 통영에서도 저녁에 시장을 돌아다닌 적이 있었지만, 통영에서 돌아다닐 때는 아주 늦은 시간이 아니라서 시장에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친구와 여행가서 심야시간에 시장을 돌아다닌 것은 통영이 아니라 통영 바로 전에 갔던 남해시였어요.

 

"그거 내 블로그에 여행기 있어."

"그래? 그거 봐봐야겠다."

 

친구가 제 블로그에 들어가서 예전에 남해시와 통영시 여행 갔을 때 여행기를 찾아서 보기 시작했어요.

 

 

묵호역 사거리까지 왔어요.

 

 

이제 숙소까지 거의 다 왔어요.

 

뒤를 돌아봤어요.

 

 

아주 멀리 산제골 마을, 논골마을이 있는 쪽은 아주 깜깜했어요.

 

 

"저기는 24시간 하는 거 진짜인가 보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혼자 불 켜진 식당이 있었어요. 아까 낮에 지나갈 때 보니 24시간 영업한다고 하고 있었어요. 요즘은 24시간 영업한다고 적혀 있어도 24시간 영업하지 않는 식당이 꽤 많아요. 과거에는 24시간 영업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시기에 24시간 영업을 안 하면서 지금도 계속 24시간 영업을 하지 않고 있는 식당, 카페가 매우 많아요. 저 식당은 진짜 24시간 영업을 하는 것 같았어요.

 

 

기찻길이 지나가는 굴다리까지 왔어요.

 

 

기차가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어요.

 

'외국 여행 온 기분인데?'

 

지금까지 동해시를 돌아다니면서 외국 여행 중이라는 느낌은 아예 안 받았어요. 제주시 동지역과 뭔가 비슷하다는 느낌은 강하게 들고 있었지만, 해외여행 다니는 기분은 단 하나도 안 들었어요. 그런데 어둠 속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지는 기차 안내 방송을 듣자 기차 안내 방송이 공항에서 듣는 비행기 안내 방송과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행기 안 탄 지도 꽤 되었네?'

 

외국 여행을 마지막으로 갔던 것은 2019년 여름이었어요. 2016년에 중국 여행 갔다온 후 외국 여행을 안 가다가 2019년에 일본 여행 다녀왔고, 그 이후 해외여행은 한 번도 안 갔어요. 제주도는 마지막으로 간 것이 2020년 초봄이었어요. 마지막으로 비행기 탄 것이 2020년 초봄에 제주도 가느라 비행기 탔던 거였으니 비행기 안 탄 지 꽤 되었어요. 비행기 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한때는 매해 한 번 이상은 꼭 타던 비행기였어요.

 

'내년이면 외국 여행 갈 수 있을 건가?'

 

2022년은 비행기표 가격이 너무 비싸고 아직까지는 코로나 검사가 있어서 해외여행 갈 생각이 전혀 없어요. 2023년이 되면 어떻게 될 지 모르겠어요. 비행기표 가격도 다시 예전처럼 낮아지고 코로나 검사도 없어지면 그때라면 정말 오랜만에 외국 여행 한 번 갈 수도 있어요.

 

'가긴 갈까?'

 

솔직히 외국 여행을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되어도 외국 여행을 갈 지 모르겠어요. 궁금한 나라가 없어요. 궁금한 게 있어야 가는데 궁금한 게 없어요. 제가 궁금해하던 나라는 거의 다 가봤어요. 이제 남은 곳이라고는 세네갈, 말리, 소말리아 뿐인데 말리, 소말리아는 위험한 나라라서 갈 수가 없어요.

 

'일본?'

 

블로그 지인 중 일본에서 거주하고 계신 블로거분이 계세요. 그분이 올리시는 일본 곳곳을 보면 가보고 싶은 곳이 꽤 있어요. 그런데 도쿄에서 멀어요. 왠지 일정이 하루 이틀로는 택도 없을 거 같아요. 일본도 작은 나라가 아니고, 특히 일본은 교통비와 숙박비가 비싼 나라에요.

 

'그러고 보면 여권 바꾸고 나서 절묘한 타이밍에 다녀왔어?'

 

여권을 바꾼 후 가본 나라는 중국과 일본. 둘 다 타이밍이 절묘했어요. 중국은 제가 다녀온 후 신장위구르자치구가 엄청 살벌한 동네로 바뀌었어요. 중국 전역이 하루가 다르게 극도의 감시 사회로 비뀌어갔구요. 일본은 당시 노재팬 반일선동 광풍이 불고 있을 때 다녀왔어요. 그리고 몇 개월 지나서 코로나 사태가 터져서 해외여행을 사실상 아예 못 가게 되었어요. 그러니 중국, 일본 둘 다 거의 마지막에 막차를 타고 다녀왔어요.

 

'가기는 할까?'

 

가슴 떨리게 흥분시키는 호기심이 발동하는 곳을 아직까지도 못 찾았어요. 무려 중국 여행을 다녀온 2016년부터 지금까지 계속요. 처음 외국 여행을 갔던 2007년부터 거의 10년간 항상 호기심이 넘쳤고 호기심을 풀려고 여행을 갔으니 궁금한 게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것도 당연했어요. 아메리카 대륙은 한 번도 못 가봤지만 아메리카 대륙은 정말로 눈꼽만큼도 안 궁금하고, 아프리카는 궁금하기는 하지만 정작 가보고 싶은 나라인 말리, 소말리아 같은 곳은 위험해서 못 가요.

 

 

더워서 친구와 편의점으로 들어갔어요. 음료수를 하나 사서 밖으로 나왔어요.

 

 

"버스 다닌다!"

 

밤 9시 13분이었어요. 버스가 다니고 있었어요. 역시 동해시는 시골이 아니라 시였어요. 이 시각까지 버스가 다니면 시에요.

 

친구와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어요. 길 건너편에 불이 켜져 있는 분식집이 있었어요.

 

"저기 갈까?"

 

친구가 제게 물어봤어요.

 

"아니. 지금도 배불러."

"아니, 이따가라도."

"봐서."

 

친구는 길 건너편에 불이 켜져 있는 분식집에 가보지 않겠냐고 했어요. 만약 배가 부르지 않았다면 가봤을 거에요. 그러나 여전히 배는 너무 부른 상태였어요. 그래서 안 가겠다고 했어요. 친구는 이따 숙소에 있다가 혹시 야식 먹고 싶어지면 가보지 않겠냐고 했어요. 친구 말에 그러자고 했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