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집 뭐지?"
강원도 묵호진동 논골담길 거의 끝까지 올라가자 매우 독특한 집 한 채가 나타났어요.
강원도 동해시 묵호진동 논골담길에 있는 가옥들은 벽화가 조성되기는 했지만 매우 수수한 풍경이었어요. 소박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논골담길에서 이 집만 유독 장식이 엄청나게 많고 화려해서 눈에 확 들어왔어요.
"여기 뭐 하는 집이지?"
내부를 살짝 들여다봤어요. 기념품점이었어요. 안으로 들어갔어요. 기념품점 안에는 여러 가지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어요. 계산대 앞에는 흙으로 빚어서 구워 만든 작은 집이 수북히 쌓여 있었어요.
"동해시 마그네틱도 있네?"
기념품점 이름은 등대그집이었어요. 등대그집 안에는 동해시 관광 기념품으로 냉장고 자석도 판매하고 있었어요.
"우리나라 기념품, 정말 많이 발전했어?"
예전에는 우리나라 각 지역 관광 기념품이 별로 없었어요. 아주 예전에는 그래도 본토 전역 공통 관광기념품과 제주도 관광기념품으로 나누어져 있었어요. 여기에 어렴풋 기억나기로는 경주는 경주 기념품이 있었어요. 제주도는 현무암으로 만든 기념품과 제주도 전통의상 입은 여자 도자기 인형이 있었어요. 물허벅 짊어진 여인과 해녀 인형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리고 현무암으로 만든 돌하루방과 물에 뜨는 부석으로 만든 돌거북이가 있었어요. 경주는 석굴암 본존불상 모형과 다보탑 모형 같은 것이 있었구요. 나머지는 한국 전체를 통틀어 만든 기념품이었어요.
2000년대 들어서서 한국 관광 기념품은 참담한 수준까지 굴러떨어졌어요. 관광기념품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어요. 오히려 1990년대가 오히려 관광기념품은 더 나았어요. 2000년대 한국 관광기념품은 거의 전부 중국 수입제품 및 동남아시아 수입제품이었어요. 이게 대체 어떻게 한국 관광기념품이라고 봐야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어요. 딱 봐도 중국 것 티 팍팍 나는 중국 문화 관광기념품이 한국 관광기념품으로 팔리고 있었어요. 한국 관광기념품이라고 판매중인 불상을 보면 우리나라의 살집 있고 잘 드신 부처님 불상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못 먹어서 삐쩍 골은 부처님 불상이었어요. 이는 단순히 제 경험에 의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보도된 사실이었어요. 해외여행 가서 관광지 가보면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사진엽서, 마그네틱 같은 것조차 제대로 없었어요.
그러다 2010년대 중반 넘어서부터 한국 관광기념품이 매우 다양해지기 시작했어요.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과 상당히 큰 관련이 있어요. 서울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면서 원래 일반인들이 거주하던 낡은 동네들에 조그마한 카페, 공방들이 몰리며 관광지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어요. 이때 공방들이 초기에는 조그만 악세사리를 많이 팔았어요. 이후 관광객들이 몰려오자 관광기념품도 이것저것 만들어서 판매하기 시작했어요. 이때부터 한국 관광기념품이 매우 다채로워졌어요. 지금은 한국 관광 기념품도 관심 갖고 보면 매우 다양해요.
'동해시 마그네틱은 여기서 구해가야겠다.'
다른 곳에서는 판매할 거 같지 않았어요. 묵호 동쪽바다 중앙시장은 아직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아서 당연히 관광기념품 같은 게 없었어요. 묵호에서 관광지라고 할 만한 곳은 논골담길과 묵호항 정도일 건데, 묵호항에서 관광기념품을 팔지 의문이었어요. 동해시 냉장고 자석은 현지에서 쉽게 못 구할 기념품이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마그네틱을 모으는 친구에게 주기 위해 동해시 마그네틱을 구입했어요.
오른쪽에 있는 마그네틱은 묵호등대, 추암 촛대바위, 무릉계곡, 동해안 백사장이었어요. 묵호등대는 이제 갈 거였고, 추암 촛대바위는 갔다 왔어요. 무릉계곡은 이번에 못 가고, 동해안 백사장은 동해시 와서 한섬해변도 봤고 추암 해변도 봤지만 저렇게 생긴 곳은 못 봤어요. 망상해수욕장쪽이 저렇게 생겼다면 저기도 못 가본 곳이었어요.
왼쪽에 있는 동해묵호등대 여행 기념품 마그네틱은 도장처럼 생겼어요. 이것은 색이 여러 가지 있었어요.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색상 조합인 초록색과 파란색으로 골랐어요. 논골마을과 묵호등대 주변이 다 산이라 초록색이었거든요.
동해시 여행 기념품 마그네틱은 매우 예쁘게 생겼어요.
논골담길 기념품점에서 나왔어요.
그림이 매우 재미있었어요. 고양이가 창문 틈으로 들어와서 오징어 한 마리 훔쳐가고 있었어요. 역시 도둑고양이였어요. 요즘은 길고양이라고 하지만 저는 지금도 '길고양이'라는 표현보다 '도둑고양이'라는 표현이 훨씬 더 좋아요.
벽화에 나와 있는 메뉴를 보면 문어달구지회, 문어내장숙회, 오징어내장탕, 오징어회, 곱세기뭉탱이고기가 있었어요.
"이게 여기 음식들인가?"
문어 내장 숙회와 오징어 내장탕은 못 봤어요. 만약 저런 음식을 지금도 진짜 팔고 있는 곳이 있다면 한 번 가서 먹어보고 싶었어요.
강원도 동해시 묵호진동 논골마을 등대그집을 뒤로 하고 묵호등대 전망대로 갔어요.
묵호 등대 전망대 안으로 들어갔어요.
안에는 장작불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었어요.
'예전 아제르바이잔 바쿠 여행 갔을 때 떠오르네.'
묵호 등대 전망대에 있는 조형물을 보자 아제르바이잔 바쿠에 갔을 때가 떠올랐어요. 아제르바이잔은 별명이 '불의 나라'에요. 카프카스 3국은 각각 별명이 있어요. 아제르바이잔은 불의 나라, 아르메니아는 돌의 나라, 조지아는 물의 나라에요. 그렇게 광활하지 않은 공간에 국가 세 곳이 있는데 불의 나라, 돌의 나라, 물의 나라처럼 문화와 언어가 완전히 달라요. 이 중 아제르바이잔은 불의 나라로, 실제로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을 하고 있는 산유국이에요. 또한 옛날부터 천연가스전에서 새어나오는 천연가스에 불이 붙어서 꺼지지 않는 신성한 불이라고 조로아스터교의 성지였다고 해요. 아제르바이잔 바쿠를 가보면 불을 형상화한 모습이 여기저기 있어요.
그래서 강원도 동해시 묵호등대 전망대 안에 있는 장작불 조형을 보자 아제르바이잔 바쿠가 떠올랐어요.
묵호등대에서 바라보는 동해시는 전망이 매우 시원하고 아름다웠어요.
묵호등대 전망대 바로 옆에는 도째비골 스카이밸리가 있었어요.
"저기 가자."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는 유료였어요. 입장료는 성인 2천원, 청소년 및 어린이 1600원이었어요.
북평오일장에서 묵호로 넘어올 때 택시기사 아저씨께서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도 이야기해주셨어요. 처음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건설할 때 뭐하러 저렇게 많은 세금 쏟아가면서 그런 거 만드냐는 불만도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완성된 후 동해시 주민들이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가본 후 건설비로 들어간 돈값 하게 잘 만들었다고 의견이 바뀌었다고 해요.
너네는 오늘 출입금지입니다.
응? 왜?
정기 휴일입니다.
정기휴일이었어요.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입구는 잠겨 있었어요.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는 매주 월요일에 정기휴일이에요. 이날은 2022년 7월 18일 월요일. 정확히 월요일이었어요. 일요일에 동해시 와서 화요일에 서울로 돌아가는 일정으로 왔더니 금요일과 토요일에 열리는 동쪽바다 중앙시장 야시장도 놓치고 월요일에는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정기휴일에 딱 걸려버렸어요. 다음날 아침에 와서 들어가는 방법이 있기는 했지만, 다음날 아침에는 망상해수욕장에 가보기로 했어요. 그러니 갈 시간이 없었어요.
"우리 좀 쉬자."
친구가 덥고 힘들다고 조금 쉬자고 했어요. 사람들이 조형물 앞 계단에 앉아서 쉬고 있었어요.
"등대 안 올라가?"
"나는 안 올라가. 저기 계단 힘들 거 아냐."
친구는 계단 올라가기 싫다고 등대에 안 올라가겠다고 했어요.
"그러면 너는 여기에서 쉬고 있어. 나 혼자 올라갔다 올께."
"어."
친구에게 쉬고 있으라고 하고 혼자 등대 안으로 들어갔어요.
"어우, 여기 계단 뭐야?"
이번에는 우즈베키스탄 히바 여행할 때가 떠올랐어요. 우즈베키스탄 히바에는 높은 첨탑이 여러 개 있어요. 제가 우즈베키스탄 히바 여행 갔을 때 히바 이찬 칼아 안에 있는 높은 첨탑은 대부분 다 올라갈 수 있었어요. 첨탑 내부에 있는 계단은 경사가 매우 심했고 난간 폭이 매우 좁았어요.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밟고 올라갔는지 계단이 아주 반들반들하게 닳았어요. 첨탑 내부는 앞이 잘 안 보였어요. 햇볕 안 들어오는 곳은 컴컴했어요. 여기에 우즈베키스탄 히바는 건조기후라 낮에 햇볕이 매우 강했어요. 첨탑 중간 중간 창이 있는 부분은 너무 밝고, 그 다음 컴컴한 곳으로 가면 눈이 밝은 곳에 있다가 갑자기 깜깜한 곳으로 들어가니까 더 깜깜하게 느껴지고 잘 안 보였어요.
묵호등대는 우즈베키스탄 히바에서 첨탑 기어올라가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계단이 정신없이 뱅뱅 돌아올라가야 했어요. 밖에서 보면 높이 자체는 별로 안 높아보이는데 내부에서 계단 올라가려고 하니 힘들었어요.
계단을 다 올라와서 아래를 봤어요. 끼에엑 소리 나오게 생겼어요. 아름다운 나선형이었어요. 올라와서 보니까 아름다운 나선형이라고 말하지, 올라갈 때는 힘들었어요.
등대 맨 꼭대기는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이었어요. 등대에서 일반인 관람객이 올라갈 수 있는 제일 높은 곳에서 동해시를 조망했어요.
"여기 왜 이렇게 제주시 느낌이지?"
정확히는 제주시 동지역 느낌이었어요. 아무리 봐도 예전 북제주군과 제주시가 통합되기 전 제주시 지역과 묘하게 비슷한 느낌이 있었어요. 동해시와 제주시는 닮은 구석이 단 하나도 없는 도시인데 인문지리 공간구성적 특성과 풍경에서 묘하게 제주시 동지역을 떠올리게 만들었어요.
심지어 동해시 어디에서나 보이는 태백산맥조차 묘하게 제주시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처럼 생겼어요. 위 사진을 보면 오른쪽 태백산맥에서 높은 산이 하나 있어요. 다른 산들과 겹쳐서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높고 완만한 산등성이에 뾰족한 봉우리 하나가 튀어나와 있어요. 제주시 동지역에서 바라본 한라산 모습이 저 모습과 꽤 비슷해요. 제주시 동지역에서 바라본 한라산도 완만하고 높은 산등성이에 가운데에 뾰족한 분화구가 있는 봉우리 하나 튀어 나와 있는 모습이거든요.
등대에서 내려왔어요. 앉아서 쉬고 있는 친구한테 갔어요.
"이제 내려가자."
친구가 내려가자고 했어요.
"그래, 이제 여기 윗쪽으로 돌아서 맞은편으로 내려가자."
친구에게 이 오르막 끄트머리로 가서 맞은편을 통해 내려가자고 했어요.
"시장 가서 닭강정 사게."
"닭강정? 거기 늦었어."
오후 5시 10분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아까 동쪽바다 중앙시장 닭강정집 가기에는 늦었어요.
"거기 아까 7시까지 한다고 했어. 가서 닭강정 사게."
"거기 늦었다니까. 아까 5시에 닫을 수 있다고 했잖아. 지금 벌써 5시 넘었어."
"7시까지 하는데 뭐가 늦어?"
"거기 딱 봐도 5시에 닫게 생겼더만. 거기까지 가려면 너무 늦었어."
친구는 이제 내려가서 아까 동쪽바다 중앙시장에 있는 닭강정집 가서 닭강정 사자고 했어요. 그러나 오늘 구입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어요. 닭강정집 사장님께서는 원래 7시에 닫지만 오늘은 5시에 닫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사장님 말씀의 뉘앙스는 시장 분위기와 닭강정집 분위기를 봤을 때 아무리 봐도 이제 곧 닫을 거라는 완곡한 표현이었어요. 5시에 도착했어도 가게 끝났다고 닭강정 없을 분위기였어요. 진열된 닭강정이 몇 개 있지도 않은데 닭을 튀기고 있지 않았어요. 주방은 아주 깔끔히 치워진 상태였어요. 시장 파장할 때 가보면 남은 것만 팔고 문 닫으려고 하는 분위기 있잖아요. 딱 그 분위기였어요. 그 닭강정집만 그런 게 아니라 아예 시장 자체가 5시 되면 철시하게 생겼어요. 동쪽바다 중앙시장에 있던 닭강정집이 묵호등대 바로 옆에 있는 것도 아니고 거기까지 가려면 또 열심히 한참 걸어야 했어요. 이건 완전히 늦어버렸어요.
친구에게 닭강정 사러 가는 짓은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문 닫았을 게 뻔한데 왜 지금 당장 닭강정을 사러 가요. 그러자 친구는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고 했어요. 친구는 제가 닭강정 사러 가는 건 절대 안 된다고 강력하게 반대하자 삐졌어요. 그래도 성공할 확률이 없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더욱이 저녁 먹을 시간도 이제 얼마 안 남아서 닭강정 산 후도 문제였어요.
"여기는 카페가 별로 없네?"
올라오면서 본 논골담길은 관광지화가 별로 안 되었어요. 벽화로 예쁘게 꾸며놓기는 했지만 올라오는 길에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는 거의 못 봤어요. 문 닫은 교복 대여해주는 가게와 동해시 마그네틱 구입한 등대그집 정도가 전부였어요.
묵호등대 전망대에서 나왔어요. 전망대에서 나오자 카페가 몇 곳 있었어요. 친구에게 카페 가서 조금 쉬겠냐고 물어봤어요. 친구는 닭강정 사러 안 가서 단단히 삐졌는지 아주 심퉁하게 안 간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저한테 가고 싶은 곳 가라고 했어요.
묵호등대에서 나와서 계속 윗쪽으로 걸어올라갔어요. 윗쪽으로 조금 더 가면 덕장이 나오고 논골담길 올라갈 때 보였던 바로 옆 달동네로 내려갈 수 있었어요.
동해 경로당까지 왔어요.
버스 정류장이 인상적이었어요.
"여기서 바라보는 경치도 멋진데?"
길가에는 연리지 카페 가는 길 표시가 있었어요. 아까부터 계속 연리지 카페 가는 길 표시가 간간이 보이고 있었어요.
'연리지 카페 유명한가?'
지도를 보니 연리지 카페로 가서 쭉 내려가면 되었어요. 이러면 논골쪽은 깔끔히 다 보고 갈 수 있었어요.
묵호동 행정복지센터에서 맞은편으로 넘어갔어요.
"여기 뭐 공사하나?"
아시바로 만든 철골 구조물이 잔뜩 서 있는 곳이 나왔어요. 아시바는 공사장에서 가설재로 쓰는 속이 빈 쇠파이프로, 한국어로 '비계'라고 해요. 아시바로 만든 철골 구조물이 잔뜩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에 뭐 큰 건물 만들 공사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공사장. 전망 좋은 지점이니 커다란 건물 지어놓으면 관광 명소, 랜드마크 되긴 할 거에요.
아까 올라가며 구경했던 강원도 동해시 달동네 논골마을을 보며 내려갔어요. 논골마을 맞은편에서 본 논골마을 풍경은 매우 예뻤어요. 등대까지 있어서 더욱 예뻤어요.
사진을 찍으며 논골마을 전경을 감상했어요. 하늘도 바다도 묵호등대도 논골마을도 모두 색이 너무 예뻤어요.
위 사진을 보면 논골마을이 있는 곳은 산등성이에요. 이 산등성이가 말발굽형으로 푹 파여 있어서 맞은편으로 넘어가기 쉽지 않아요. 중간에서 골짜기를 건너가기는 어렵고, 맨 아래까지 내려가서 넘어가든가 위까지 올라가서 넘어가든가 해야 해요.
"여기는 사과가 많네?"
강원도 동해시 와서 놀란 점 중 하나는 도처에 사과나무가 흔히 보였다는 것이었어요. 사과로 유명한 도시는 대구에요. 대구는 동해시에서 멀어요. 강원도 동해시에서 사과 많이 재배한다는 말은 못 들어봤어요. 동해시에서 사과나무 흔히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동해시 도착해서 돌아다니며 옥수수만큼은 아니지만 사과나무를 꽤 많이 봤어요. 식물에 대해 몰라도 사과 매달려 있으면 사과나무란 건 알아요. 마침 여름이라 사과 열매가 매달려 있었어요. 사과 열매 매달린 사과 나무가 강원도 동해시 도처에서 쉽게 목격되었어요. 어째서 동해시에 사과나무가 이렇게 많은지 신기했어요.
제가 찍은 사진을 보며 매우 만족했어요. 푸른 하늘, 더 푸른 바다, 묵호등대와 논골담길, 여기에 동해시 와서 곳곳에서 흔히 보이던 사과나무까지 한 장에 다 들어가 있었어요. 오징어, 옥수수, 감자 같은 것은 없지만요. 오징어, 감자는 못 먹었고, 옥수수는 먹었고 옥수수를 도처에서 봤지만 옥수수는 어쩔 수 없어요. 이 사진에서 옥수수가 아예 하나도 없는 건 아니에요. 사진 맨아래에서 정중앙 쪽을 보면 빨긴 지붕 집이 있어요. 빨간 지붕 집 왼쪽에 있는 초록색 풀 덩어리 같은 게 옥수수에요. 옥수수도 들어가 있기는 해요. 옥수수 비중이 사진에서 너무 적고 잘 안 보이기는 하지만요.
풍경이 매우 좋았어요. 날씨도 너무 좋았어요. 너무 좋다못해 살을 빠르게 검게 태우고 있었어요. 이게 어디를 봐서 강수확률 80%짜리 날씨에요. 소나기는 고사하고 여우비도 안 내리게 생겼어요. 이쯤 가면 기상청 슈퍼 컴퓨터보다 노인정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오늘 관절 쑤시냐고 여쭈어보고 일기예보하는 게 훨씬 더 잘 맞겠어요. 슈퍼 컴퓨터 살 돈으로 전국 노인당에서 어르신들께 오늘 날씨 어떨 거 같냐고 여쭈어보는 최첨단 휴먼 빅데이터 활용 방식이 훨씬 더 나을 거에요.
"우리 어디로 가는 거?"
친구가 제게 어디로 가야하냐고 물어봤어요.
"여기 연리지 카페 유명한 거 닮으니까 연리지 카페 갔다가 내려가면 돼. 이상한 길로 가는 거 아냐. 여기에서 내려가면 우리 논골담길 가던 길로 내려가."
친구에게 지금 이상한 길로 가는 게 아니라고 다시 한 번 알려주고 안심시켰어요. 정말로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었어요. 단지 조금 멀리 돌아갈 뿐이었어요. 묵호등대에서 논골담길을 따라 바로 쭉 아래로 내려가서 바닷가 포구 길을 따라 걷는 게 아니라 묵호등대에서 옆마을로 넘어와서 바닷가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왔어요. 옆마을로 넘어가는 방향도 방향을 보면 원래 친구와 가기로 한 방향으로 가는 거 맞았어요.
게다가 여기는 방향을 잘못 잡고 길을 잃어버리기도 어려웠어요. 가야하는 곳이 많이 이상하거나 엉뚱한 곳이라면 그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와 친구가 가야할 곳은 바닷가 쪽이었어요. 길에서 바닷가는 아주 훤히 잘 보였어요. 지도에 의존할 필요가 아예 없었어요. 바다만 보고 내려가면 그게 맞는 방향이었어요. 세부적인 곳에서 길이 끊어지고 집이 가로막고 있어서 살짝 돌아가야할 수는 있겠지만 그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엉뚱한 방향이 아니라 연리지 카페로 가서 바닷가 방향으로 내려가면 되었어요.
거대한 공사장처럼 생긴 아시바 구조물이 매우 많은 곳을 지나서 연리지 카페가 있다고 한 곳까지 왔어요.
"야, 이거 뭐야?"
"뭐지? 왜 불탔어?"
눈 앞에 있는 연리지 카페는 예쁜 카페가 아니라 화재로 전소해 흉측해진 콘크리트 덩어리였어요.
"여기 화재 나서 다 타버렸나 보다."
논골마을 가까이에 오면 연리지 카페 가는 길이라는 표시가 여러 개 눈에 띄었어요. 그래서 연리지 카페가 매우 유명한 곳인줄 알고 왔는데 홀라당 불타버린 콘크리트 폐건물이 맞이해줬어요.
"잠깐만, 여기 누구 사나 본데?"
연리지 카페 1층에는 매트리스와 전기 밥통이 있었어요. 누가 여기 1층에서 사는 것 같았어요.
"안에 들어가지 말자."
"어, 빨리 가자!"
화재로 홀라당 불탄 건물 1층에 매트리스와 전기 밥솥이 있는 것을 보자 갑자기 오싹해졌어요. 친구와 급히 도망치듯 걸으며 연리지 카페에서 빠르게 멀어져갔어요.
멀리 묵호항이 보였어요.
"여기도 예쁘다."
조금 전까지 닭강정 사러 안 가고 멀리 돌아간다고 조금 삐져 있던 친구도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어요. 논골담길처럼 예쁘게 꾸며놓지는 않았지만 여기도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이쪽에서 보는 풍경은 묵호항과 논골마을이었어요. 논골담길 올라갈 때 보며 경치 예쁘다고 했던 마을이 지금 있는 곳이었어요. 반대로 지금 있는 곳에서 보는 풍경은 논골담길이 있는 논골마을 풍경이었어요.
이제 다 내려왔어요. 골목길에서 논골담길을 바라본 풍경도 예뻤어요.
친구와 바닷가쪽으로 걷기 시작했어요.
"저기 염소다!"
흑염소 한 마리가 매여 있었어요.
"저거 누가 사진 찍으라고 매어 놓은 건가?"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쟤는 올해 복날에 염소탕?"
"야, 설마!"
왜 흑염소 한 마리가 여기에 있는가?
친구와 신기해서 염소를 쳐다봤어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어요. 강원도 고양이는 이렇게 생겼어요. 보다 더 날렵하거나 야성이 느껴지기를 바랬는데 고양이는 고양이였어요. 갑자기 졸지에 동물의 왕국이 펼쳐졌어요.
"아, 여기는 산제골이구나!"
공사판처럼 생긴 곳까지 올라가서 연리지 카페였던 자리를 지나 내려오면서 여기도 논골마을인지 의문이었어요. 규모로 봐서는 하나로 묶여서 논골마을이라고 불러도 되기는 했지만 하나의 마을로 보기에는 조금 애매했어요. 결정적으로 길이 이어지지 않았어요. 산등성이 꼭대기와 맨 아래쪽 외에는 서로 이어지지 않았어요. 만약 둘 다 하나의 논골마을이었다면 이쪽부터 논골마을이라고 소개했을 거에요. 그런데 논골담길 올라갈 때 논골담길 입구에 있는 소개문을 보면 이쪽은 논골마을로 포함시키고 있지 않았어요.
주소 표지판을 보고 깨달았어요. 저와 친구가 내려온 동네는 산제골 마을이었어요. 논골 마을 논골담길 올라가면서 예쁘다 예쁘다 연호하며 봤던 마을 풍경은 산제골 마을이었고, 산제골 마을에서 내려오며 논골담길 있는 쪽 풍경 좋다고 하며 본 풍경은 논골 마을이었어요. 쉽게 말해서 논골 마을 논골담길 올라가며 보는 맞은편 마을 풍경은 산제골 마을이고, 산제골 마을에서 보며 예쁘다고 하는 맞은편 마을은 논골 마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