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보니 가파른 계단이 나왔어요. 옆에는 어린왕자 부조가 있었어요.
"이 계단 따라 올라가면 카페 간다는데?"
가파른 계단을 따라 걸어올라가면 '묵꼬양 CAFE'라는 곳이 나온다고 나와 있었어요.
"이걸 기어올라가서 카페?"
갑자기 도전정신이 생겼어요. 이런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올라가서 있는 카페는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했어요.
"우리 이따 가보자."
"어, 여기 가보자."
친구와 논골담길 갔다가 돌아올 때 가파른 계단 꼭대기에 있는 '묵꼬양 CAFE'라는 곳을 가보기로 했어요.
이번에는 묵호시장 입구가 나왔어요. 시장 안으로 들어갔어요.
묵호시장은 동쪽바다 중앙시장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북평오일장이 워낙 큰 장이다 보니 다른 시장은 다 사람이 없는 것 같았어요. 묵호시장은 일반적인 장터라기 보다는 해산물 파는 식당들이 모여 있는 식당가였어요.
묵호시장을 대충 쭉 둘러봤어요. 아마 이따 저녁 먹으러 이쪽으로 와야 할 거 같았어요. 식당 중 확 끌리는 식당은 안 보였어요. 그렇게 크게 볼 게 있는 시장은 아니었어요. 시장 길은 매우 단순했어요. 시장 길은 직선에 가까웠고, 이 길은 논골담길 가는 방향이었어요.
묵호시장에서 나왔어요.
어업 도구가 보였어요. 이제 진짜 바닷가 근처였어요.
"논골담길 다 왔다."
바로 앞에 동해시 묵호 논골마을이 있었어요.
논골마을 입구에는 안내문이 적힌 표지판이 서 있었어요.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묵호동'의 이야기
묵호(墨湖)라는 지명은 강릉 부사 이유용이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말기, 오이진에 큰 수해가 나자 이유응이 현장을 시찰한 후, 마을 주민들과 촌장을 만났다. 이유응이 이 포구에 검은 새와 바위가 많아서 그런지 포구가 유난히 검다고 하자, 촌장은 그것이 이 마을을 오진, 오이진(烏耳津)이라 부르는 까닭이라고 하였다. 이유응은 이웃 마을의 이름을 물었다. 촌장은 청주한씨들이 많이 산다고 하여 발한(發韓)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이에 이유응은 옛 기록에 있는 '문한과 필묵(붓과 먹으로 글을 쓰거나 짓는다)'이라는 말을 이용해 발한(發韓)ㅇ르 발한(發翰, 선비들이 많이 나기를 기원함)으로 고쳐주고, 오진에는 산과 물이 어우러진 곳에서 멋진 경치를 보며 조은 글씨를 쓰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의미로 '묵호(墨湖)'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묵호는 "유행의 첨단도시", "술과 바람의 도시" 동해안 제1의 무역항으로서 서간과 시멘트를 실어 나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화주와 선원, 지역 주민들이 한 데 엉켜 요정과 백화점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유행의 첨단 도시가 되었고, 또한 예부터 명태, 오징어 등의 어획량이 풍부한 전통적인 어촌 도시였다.
하지만 1983년경 동해항이 성장함에 따라 묵호 쇠퇴기가 시작되었고, 더불어 명태의 어획량까지 감소했다. 명태가 더 이상 잡히지 않아 요즘은 부산에서 냉동 원양어를 사 오게 되었다.
논골담길과 담화
이곳 묵호진동은 묵호항을 중심으로 어부와 그의 가족들이 많이 살았다. 때문에 산비탈 전체가 블럭으로 벽을 올리고 그 위에 판자와 돌, 루핑, 슬레이트지, 양철 등으로 지붕을 올린 판잣집들이 즐비했다. 그래서 외항선이 밤에 묵호항에 입항하면 산비탈 언덕에 있는 이들 판자촌 불빛이 마치 고층 빌딩 숲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곳에는 현재도 논산골 위쪽에 '덕장길'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듯이 산비탈 비좁은 공간에 소나무로 만든 덕장이 즐비했었다. 이 덕장에 오징어와 대구, 가오리 등 고기를 대규모로 말렸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무슨 무슨 덕장집이란 택호가 많았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묵호 등대마을에 '논골담길' 벽화마을을 조성했다. 오래된 마을에 다양한 테마와 묵호만의 이야기를 담은 벽화마을길이 조성되었다.
논골담길에선 옛 향수를 느끼며 논골 주민들의 삶을 공감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4갈래로 나눠진 골목마다 다양하게 그려진 벽화와 소품들로 채워져있어 논골담길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오르다 보면 논골담길의 정상에 있는 묵호등대에 다다른다.
"누가 염주 걸어놨네?"
어떤 사람이 돌담에 염주를 걸어놨어요.
논골담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여기도 이거 있네?"
'행복상회'라는 곳이 있었어요. 카페처럼 먹거리도 팔고 옛날 교복을 대여해주는 가게였어요. 문이 닫혀 있었어요. 이날만 문을 닫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어요. 그러나 왠지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문을 닫은지 조금 된 것 같았어요.
"여기 유명한 곳 아닌가?"
바로 입구에서부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런 가게가 있다는 것은 여기가 사람들 꽤 오는 관광지였다는 것을 의미했어요. 그런데 정작 지금 여기에 놀러온 관광객은 저와 친구 뿐이었어요. 관광객은 고사하고 마을 주민분들도 안 보였어요. 사람들 다 떠난 폐가만 모여 있는 동네 같지는 않았어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였어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모두 바로 몇 초 전에 증발해버린 것처럼 사람 사는 흔적은 많은데 정작 사람은 하나도 안 보였어요.
비탈길을 따라 걸어올라갔어요.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다 몸을 돌려서 주변을 바라봤어요.
"경치 예쁘네."
경치가 예뻤어요. 비탈진 언덕에 형성된 마을이니 달동네라고 할 수 있어요. 서울에서 돌아다녔던 달동네와는 달리 '산뜻한' 느낌이 있었어요. 비탈길 중간에서 둘러보는 주변 풍경도 매우 아름다웠어요. 역시 동해 바닷가였어요.
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어요. 벽화 상태도 꽤 양호했어요. 이런 벽화 마을 조성사업해놓은 곳 보면 일회성으로 벽화를 그려놓은 후 방치해서 벽화가 아주 흉물인 곳도 꽤 많아요. 특히 서울에 있는 벽화 조성 사업 지역 상당수가 벽화가 방치되어서 오히려 더 보기 싫게 되었어요. 반면 동해시 묵호 논골담길 벽화는 관리가 꽤 잘 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야, 저거 너를 위한 벽화다."
"뭐?"
앞서 혼자 성큼성큼 가는 친구를 불렀어요. 벽화를 가리키며 이건 너를 위한 벽화라고 했어요.
아래 적힌 표어가 친구를 위해 아주 딱 맞는 표어였어요.
이길 저길 구별말고
앞만 보고 걸어가자
저와 여행을 같이 간 친구는 눈이 별로 안 좋아요. 여기에 길을 갈 때 정신을 자꾸 엉뚱한 데에 둬요. 밤이면 눈이 안 보여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하는데 멀쩡한 백주대낮에도 혼자 엉뚱한 데로 시선 돌리고 정신 딴 데 두고 걷다가 혼자 발 삐끗하고 자빠지고 난리피우기 일쑤에요. 심지어 카페 가면 음료 받아올 때 음료 받아서 갖고 오다가 정신 딴 데 팔다 음료 쏟는 일도 종종 있어요. 오죽하면 이 친구와 만날 때 절대 음료수 들고 오게 시키지 않는 게 저와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불문율이에요. 음료 들고올 때 이솝우화 속 소금 짊어지고 가던 당나귀처럼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멀쩡한 길도 종종 휘청해서 이 친구가 음료 들고 올 때마다 엄청 불안하거든요.
옆에서 같이 다니며 친구를 보면 자기가 정신 딴 데 팔고 걷다가 자빠지고 삐끗하는 건데 친구는 그럴 때마다 길을 엄청 욕해요. 욕할 때도 레파토리가 있어요. 길을 누가 이 따위로 만들었냐부터 시작해서 이건 대놓고 넘어지라고 만든 거 아니냐, 이거 관리하는 사람 뭐하냐 등등 불만이 쏟아져나와요. 물론 옆에서 보면 자기가 엉뚱한 데 보고 바로 앞은 안 보고 걷다가 혼자 삐끗하고 휘청한 거라 웃음을 참아야 하지만요. 이건 제가 엄청 잘 따라해요. 친구한테 장난으로 실실 약올릴 때 제가 잘 써먹어요.
이렇게 길 갈 때 정신 항상 엉뚱한 데에 두는 친구를 위해 아주 딱 어울리는 표어였어요. 정신 딴 데 두지 말고 무조건 앞만 똑바로 보고 가자. 앞을 똑바로 보고 걸어야 발 헛디디지 않고 안 넘어지고 잘 가죠.
"뭐?"
친구가 아주 퉁명스럽게 한 마디 뱉고 또 혼자 성큼성큼 기어올라가기 시작했어요.
'다른 친구 하나랑 같이 왔으면 엄청 웃었을 건데.'
단 둘이 와서 이 재미있는 표어 앞에서 깔깔 웃을 수가 없었어요.
갈림길이 나왔을 때 보다 험하고 좁아보이는 길로 가기로 했어요. 어느 길로 가나 다 종착지는 묵호등대일 거였어요.
묵호항이 잘 보였어요. 눈 앞의 해안선을 쭉 따라가다 보면 한섬해변까지 이어질 거였어요.
아주 예전에 논골담길은 장화가 필수였다고 해요. 해산물을 짊어지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길이 맨날 진흙탕길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이 동네 살 때는 장화가 꼭 있어야 했대요.
논골담길에서 보는 옆마을 풍경이 매우 예뻤어요.
'이따가 저 옆마을로 내려가야겠다.'
이따 내려갈 때는 건너편 마을길로 내려가기로 마음먹었어요. 논골마을과 옆마을은 말굽형으로 생긴 산비탈에 형성된 마을이었어요. 논골마을에서 바로 옆마을로 넘어갈 수는 없었어요. 논골마을에서 맨 위 묵호등대로 올라가서 거기에서 넘어가든가 논골마을 맨 아래로 다 내려와서 옆 마을로 넘어가야 했어요.
폐가가 나왔어요.
"이 집은 옛날 형태 그대로 간직하고 있네."
강원도 동해시 묵호진동 논골마을에 있는 가옥들을 보면 대부분 개보수된 집이었어요. 이 폐가는 옛날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벽에 벽화와 부조로 꾸며놓은 것 중에는 당연히 오징어도 있었어요.
한여름 무더위 땡볕 아래에서 비탈길을 올라가니 땀이 엄청 많이 났어요. 머리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어요.
"아야!"
왼쪽 눈에 땀방울이 들어갔어요. 눈이 따가웠어요. 손으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았어요. 카메라로 사진 찍을 때 양눈을 번갈아가며 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이때부터는 계속 오른쪽 눈으로 파인더를 보며 사진을 찍었어요. 왼쪽 눈에 땀이 들어가서 따끔거렸고, 그쪽으로 계속 땀방울이 흘러내렸어요.
반바지 안 입고 왔으면 엄청 고생할 뻔 했어요. 논골담길 길을 올라가며 구경하는 것은 매우 재미있었어요. 벽화도 과하지 않고 적당하게 잘 조성해놨고, 비탈길에서 둘러보는 주변 풍경도 매우 아름다웠어요. 하지만 한여름에 오니까 엄청나게 더웠어요. 습도는 말할 필요도 없었어요. 바닷가에 있는 마을이니 당연히 습도가 매우 높았어요. 긴 바지 입었으면 옷 위 아래 전부 세탁기 갓 돌린 축축한 옷처럼 푹 젖을 뻔 했어요.
논골담길 꼭대기까지 거의 다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