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망상 속의 동해 (2022)

망상 속의 동해 - 04 강원도 동해시 천곡동 한섬해수욕장

좀좀이 2022. 7. 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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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곡동굴에서 나와서 입구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았어요. 잠시 쉬고 가기로 했어요. 동굴 밖에 나오자 더위가 더 뜨겁게 느껴졌어요. 동굴 안이 워낙 시원해서 동굴 밖에 나오자 밖은 불가마였어요. 바닷가가 멀지 않아서 습도도 높았어요. 피부를 까맣게 태우는 소금기 있는 공기가 뜨끈뜨끈해져서 소금 마사지를 해주고 있었어요. 벤치에 앉아서 둘이 멍하니 있었어요.

 

"헛개수 마실래?"

"어."

 

친구에게 헛개수를 마시겠냐고 물어봤어요. 친구가 마신다고 했어요. 예전에 편의점에서 1+1 행사할 때 사서 하나는 마시고 하나는 가방에 넣어서 계속 들고 다니던 헛개수를 꺼냈어요. 친구와 헛개수를 나눠서 마셨어요.

 

"이제 우리 뭐할거?"

"해변이나 갈까?"

 

천곡동굴 이후 아무 계획도 없었어요. 2022년 7월 17일 일정은 오직 천곡동굴 하나 뿐이었어요. 그 다음에는 적당히 천곡동 안에서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어요. 시간이 묵호나 추암 갔다 오기에는 애매했어요. 이미 오후 4시였어요. 택시 타고 빠르게 다녀오면 다녀올 수 있기는 했지만 그쪽에 볼 것이 얼마나 있는지 전혀 몰랐어요. 추암에는 추암 촛대바위가 있고, 묵호는 논골담길이 있고 묵호항이 있다는 것만 알았어요. 특히 묵호는 묵호에서 위로 올라가면 망상해수욕장이 있었어요. 간다면 추암 쪽으로 내려갔다 와야 하는데 이게 빨리 다녀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어요. 특히 대중교통으로 간다면 더욱 어려울 거였어요.

 

억지로 무리해서 다닐 필요 없었어요.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었어요. 비록 일기예보에서는 다음날 오후부터 비가 엄청 퍼부을 거라고 하고 있기는 했지만요. 괜찮아요. 모레도 있어요. 오전에 추암 촛대바위로 내려갔다가 오후에 묵호로 올라간 후, 날씨 봐서 정말 날씨 안 좋다면 다음날에 묵호를 보고 떠나도 되었어요. 묵호는 묵호역이 있어서 서울로 돌아가기도 좋았어요.

 

헛개수를 다 마셨어요.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지도를 안 봐도 대충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았어요. 천곡동굴에서 바닷가까지도 멀지 않았어요. 천곡동에도 해수욕장이 있었어요. 한섬해수욕장이었어요. 숙소에서 창문으로 밖을 봤을 때 바다가 조금 보였어요. 방향은 다 알고 있었어요. 방향 잡기도 쉬웠어요. 바다는 동쪽, 산은 서쪽. 오른손을 바다로 향하게 하고, 왼손을 산을 향하게 해서 서면 눈 앞은 북쪽. 방위 찾기 참 쉬운 동네였어요.

 

천곡동굴에서 나가기 위해 천곡동굴 매표소로 갔어요.

 

"엽서 있네?"

 

천곡동굴 매표소 맞은편에는 사진엽서가 있었어요. 추암 촛대바위와 천곡황금박쥐동굴 엽서였어요. 글을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1년 후에 보내준다고 했어요.

 

저는 관광 기념품으로 가져가겠습니다.

 

1년을 어떻게 기다려요. 그냥 가져갈 거에요. 만약 근처에 우체국이 있다면 그냥 우표 붙여서 제 자취방으로 보낼 거에요. 엽서를 챙겨서 가방에 집어넣었어요.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공중전화박스 있네."

 

자세히 봤어요.

 

 

"와, 이게 아직도 있어?"

 

깜짝 놀랐어요. 공중전화카드를 사용해서 이용하는 공중전화기였어요. 예전에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제 취미 중 하나는 사용제 공중전화카드를 수집하는 거였어요. 이런 공중전화카드를 사용하는 공중전화기 위에 보면 다 쓴 공중전화카드가 있곤 했어요. 가끔 돈이 많이 남아 있는 공중전화카드가 있었어요. 이런 건 누나한테 잔액보다 아주 싸게 팔고 나중에 누나가 카드를 다 쓰면 제게 다 쓴 카드를 다시 돌려줬어요. 그리고 아주 가끔 컴퓨터용 싸인펜으로 마그네틱을 칠하면 갑자기 잔액이 생기는 공중전화카드가 있었어요. 저는 수집 목적이라 이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친구들 중 이렇게 해보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이런 마그네틱 선이 있는 공중전화카드를 사용하는 공중전화기는 2000년대 중후반까지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이 전화기 옆에 있는 공중전화기는 동전과 IC칩이 달린 IC 공중전화카드를 사용하는 공중전화기였어요. 이것은 나중에 등장했어요. IC칩이 달린 IC 공중전화카드는 2000년대에 등장해서 아주 잠깐 사용되다가 휴대폰 대중화로 인해 공중전화카드가 몰락할 때 같이 사라졌어요.

 

한때는 공중전화카드 수집이 유행이었어요. 예전에 프랑스어 공부할 때 프랑스에서도 공중전화카드 수집이 열풍이라고 들었었어요. 심지어 어떤 광고에서는 어떤 사람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대요. 마치 강도가 대상을 노리는 것처럼요. 공중전화부스에서 사람이 나오자 이 사람은 재빨리 공중전화부스로 들어가서 다 쓴 공중전화카드를 집어들고 나왔대요. 그리고 일본 공중전화카드가 디자인이 예뻐서 인기 좋았다고 해요.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에요. 공중전화카드 쓸 일이 없어지면서 공중전화카드 시세도 폭락했어요. 아무래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야 수집품의 가치도 유지되거든요. 요즘 외국 공중전화카드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저는 외국 공중전화카드는 없어요.

 

초등학생때부터 고등학생때까지 공중전화카드를 열심히 모았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제주도 살아서 이점이었던 유일한 것이 바로 공중전화카드 수집이었어요. 제주도 지역카드는 제주도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발행량 자체가 적고 타지역으로 유출되는 일이 별로 없어서인지 시세가 항상 높게 형성되었어요. 그래서 제주도 지역카드 중 여러 장 있는 것은 우표상 가서 다른 지역의 지역카드로 바꿔오곤 했어요. 과정 자체는 제주 지역카드를 팔고 타지역 지역카드를 사오는 식이었지만 사고 파는 과정 생략하면 바꿔오는 거였어요.

 

저는 공중전화와의 추억이 거의 없어요. 공중전화카드 수집을 제외하면 공중전화와 관련해서 할 말이 아예 없어요. 삐삐를 썼던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공중전화로 열심히 통화해야 할 일도 없었어요. 그러나 공중전화카드 수집이 워낙 소중한 추억이라 나름대로 이 전화기에 대한 추억이 있어요. 단지 남들이 갖고 있는 공중전화에 대한 추억과 다를 뿐이에요.

 

 

돌로 만든 축대가 있었어요.

 

 

고추가 빨갛게 익었어요.

 

 

누가 나무 아래에 해바라기를 심었어요. 해바라기는 머리가 작고 키가 큰 모델 몸매 해바라기였어요. 그런데 사람이 저러면 모델 몸매라고 하지만 해바라기는 꽃이 커야죠. 저러면 실속 없어요. 꽃이 작아서 강렬한 인상도 없고, 해바라기씨도 적게 맺혀요.

 

 

우체통이 있었어요.

 

"닭강정이다!"

 

친구가 닭강정집을 발견했어요.

 

"왜?"

"저기 왠지 맛집일 거 같은데?"

"그래?"

"저거 사자."

"그럴까? 바다 가서 먹을까?"

"그래도 되고, 숙소 가서 먹어도 되구."

 

친구가 닭강정집이 보이자 저기는 왠지 맛집일 거 같다면서 가서 닭강정을 사자고 했어요.

 

어째서 동해안 음식은 닭강정이 되었는가.

 

속으로 피식 웃었어요. 언젠가부터 동해안 대표 음식은 오징어도 감자도 옥수수도 아닌 닭강정이 되어버렸어요. 이유는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원래부터 한국 도시 중 배낭여행지로 잠재력이 아주 높았던 속초가 고속도로 뚫리면서 접근성이 엄청나게 좋아졌어요. 고속도로 없을 때는 서울에서 속초까지 3시간 넘게 걸렸지만, 고속도로가 개통되자 2시간대로 줄어들었어요. 그러자 사람들이 속초로 우루루 가기 시작했어요. 1박2일로 가는 사람들도 있고, 당일치기로 훌쩍 갔다가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속초는 산도 있고 바다도 있는데, 이 중 산이 무려 설악산이에요. 게다가 도시가 별로 크지도 않아서 배낭여행으로 가기도 좋고, 대중교통으로 돌아다니기도 좋아요. 현지 가서 차를 빌려서 다녀도 되구요. 단지 서울과의 접근성이 나빠서 강릉에 밀렸던 속초였는데 서울과의 접근성이 좋아지자 속초는 완전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어요.

 

이때 속초 중앙시장에 있는 만석닭강정이 엄청 유명해졌어요. 속초에는 여러 가지 음식이 있어요. 오징어 순대도 있고 냉면도 있어요. 이 중 만석닭강정이 아주 독보적으로 유명해졌어요. 여름에 맥주에 치킨이라 닭강정. 여기에 닭강정은 상하지 않으니 서울로 들고 오기도 좋아요. 만석닭강정을 시작으로 속초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완전히 닭강정의 도시처럼 굳어졌어요.

 

속초 대표 음식이 닭강정이 되자 속초 닭강정 열풍이 동해안을 따라 쫙 퍼졌어요. 동해안은 주로 여름에 놀러가는데 여름에는 맥주에 치킨, 치킨 대신 닭강정. 완벽한 논리에요. 이건 반박 불가에요. 동해안 놀러 가면 맥주에 치킨 대신 맥주에 닭강정 먹는다고 보면 되요. 강원도 동해안에는 유명한 해수욕장과 피서지가 매우 많아요. 그러니 닭강정이 이렇게 속초부터 시작해서 동해안 타고 강원도 남단 동해시까지 쫙 퍼져서 강원도 동해안 대표 음식이 된 건 너무나 자연스러워요. 억지로 닭강정을 키운 게 아니라 '여름에는 맥주에 닭강정'이라는 논리로 확 퍼진 셈이니까요.

 

친구와 닭강정집으로 갔어요. 닭강정집 이름은 동해닭강정이었어요. 저녁을 먹어야했기 때문에 작게 포장된 5천원짜리를 구입했어요. 5천원짜리도 양은 매우 착했어요. 둘이서 캔맥주 한두 캔 마실 때 안주 삼아서 먹을 양이었어요.

 

 

 

"여기도 있을 건 다 있네."

"여기 다 몰려 있나 본데?"

 

프랜차이즈 카페, 식당 등이 다 로타리 주변에 몰려 있었어요.

 

 

 

"이거 아무리 봐도 신제주 로타리 감성인데..."

 

혼자 중얼거렸어요. 여기에 KBS, MBC만 있으면 완전히 제가 어렸을 적 신제주로타리 감성이었어요. 신제주 로타리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는 게 아니라 느낌이 왠지 좀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이마트를 넘어 오르막길을 올라갔어요.

 

쪄 죽겠습니다.

오징어찜이 아니라 좀좀이찜 되겠습니다.

 

이날 저는 긴 바지에 외투까지 걸치고 갔어요. 원래 여름에도 외투를 잘 걸치고 다녀요. 외투 주머니에 스마트폰도 넣고 보조배터리도 넣고 휴지도 넣고 다녀요. 이것저것 다 넣고 다니는 편이에요. 그렇게 입고 동해시를 돌아다니려니 더워서 쓰러질 거 같았어요. 바지도 예전에 입던 바지가 아니라 다른 바지였는데, 이게 가을에 사서 전에 입던 바지보다 조금 두꺼웠어요. 이 미세한 두꺼움이 겨울에는 아무 차이 없이 똑같이 추운데 여름에는 확실히 차이나게 더웠어요.

 

게다가 긴 바지니까 다리에 찰싹 달라붙어서 더 덥고 더 걷기 어렵게 만들고 있었어요. 바지만 반바지여도 훨씬 더 쾌적하고 힘차게 걸을 거 같았어요. 그러나 숙소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을 수도 없었어요. 외투야 주머니 때문에 입는다고 해도 바지는 진짜 긴 바지 입고 다니려니 힘들었어요. 그렇다고 이 친구와 엄청 험한 곳을 갈 것도 아니었어요. 쯔쯔가무시 걱정해야 할 곳은 아예 안 갈 거였어요. 그러면 긴 바지 입을 필요도 없었어요.

 

서울과 의정부에서 돌아다니던 것처럼 입고 갔더니 혼자 찜통 더위였어요.

 

 

산책길로 들어갔어요.

 

 

"저기 기찻길 옆 오두막집 아냐?"

 

 

"저기 철도 소음 장난 아니겠다."

 

저는 보고 '기찻길 옆 오두막집 아기 잘도 잔다'라는 동요를 떠올렸는데 친구는 저 집은 철도 소음 장난 아니겠다고 했어요. 관점의 차이였어요.

 

 

 

하천이 나왔어요. 하천에서는 물고기떼가 헤엄치며 놀고 있었어요.

 

 

"바다다!"

 

드디어 한섬 해수욕장에 도착했어요.

 

 

"여기 엄청 예쁘다!"

 

동해시 한섬해변은 매우 예뻤어요. 백사장 자체가 매우 크지는 않았어요. 적당히 크기는 했지만 엄청나게 넓은 백사장이라고 일부러 찾아올 만한 광활한 백사장까지는 아니었어요. 그러나 경치가 매우 좋았어요. 백사장이 광활하지는 않아도 해수욕장으로 놀 만큼 크기는 했어요. 여기에 백사장 양 옆에는 멋진 절벽과 암석이 있었어요.

 

 

 

"여기 파도 엄청 세네?"

"제주도랑 비교가 안 된다."

 

한섬해변은 파도가 매우 높았어요. 제주도 바다와 비교가 안 되었어요. 해수욕장이라는데 파도 높이가 못 해도 50cm는 되어 보였어요. 최소 50cm이고 1m쯤 되어 보였어요.

 

"여기에서 파도 타면 엄청 재미있겠는데?"

 

파도 높이를 보자 깊이 들어갈 것도 없고 조금만 들어가서 파도 타면서 놀아도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옷과 가방만 아니었으면 가뜩이나 뜨거운데 확 들어가서 놀다가 나오고 싶었어요. 숙소는 한섬해변에서 별로 안 멀었어요. 햇볕이 뜨겁고 날이 더워서 옷만 엄청 얇게 입고 왔다면 가는 동안에 다 마를 거였어요. 문제는 저는 옷을 전혀 얇게 입지 않았고, 신발도 슬리퍼 같은 게 아니었어요. 물과 닿으면 절대 안 되었어요.

 

"저기 앉아서 닭강정 먹자."

 

친구와 벤치에 앉아서 동해닭강정에서 사온 닭강정을 먹기 시작했어요.

 

"여기 엄청 맛있네?"

 

닭강정이 매우 맛있었어요. 상당히 맛있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만원어치 사올 걸 그랬어요. 지도도 제대로 안 보고 막 걷다가 어떤 집인지 제대로 보지도 않았어요. 게다가 여기는 천곡동굴에서 로타리 오는 길에 사왔어요. 또 가서 사서 바닷가로 올 거리는 아니었어요.

 

친구와 닭강정을 먹으며 바다를 바라봤어요.

 

 

"여기 파도 왜 이렇게 높지?"

"민물 때인가?"

 

민물이라 파도가 더 높은 것 같았어요. 친구가 물때 시각을 봤어요. 예상대로 만조때였어요.

 

바다를 구경하다 다시 한섬해변 입구 쪽으로 걷기 시작했어요.

 

 

"저 그네 의자 앉자."

 

친구가 그네 의자에 앉자고 했어요. 그래서 그네 의자로 갔어요. 그네 의자를 흔들며 탔어요.

 

"이걸 왜 너랑 하고 있냐?"

"그러니까. 이런 건 연인들이 하는 건데."

 

연인들이 함께 타고 있어야 할 그네 의자를 남자 둘이 타고 있었어요. 한섬해변에 어떤 사람들이 왔는지 봤어요. 이거 완전 가족들 놀러오고 연인들 놀러오는 데이트 코스였어요. 남자 둘이 온 건 안 보였어요. 저와 친구 뿐이었어요. 내가 여자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여자친구 멀쩡히 잘 있는데 친구와 그네 의자를 타고 있어요. 둘 다 이 상황에 한숨 푹 내쉬었어요. 그리고 웃었어요. 웃겼어요.

 

 

 

 

이번에는 절벽 위로 난 산책길을 올라가보기로 했어요. 고불개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로 했어요.

 

 

멋진 풍경이 계속 이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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