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책박스를 싹 다 뜯었어요. 책박스가 한두 개가 아니라 매우 많아서 이걸 다 뜯는 것 자체가 상당히 큰 일이었어요. 게다가 책 박스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무거워요. 무거운 박스를 방 구석에 쌓아놨는데 이걸 다 들어서 내리고 다 뜯어서 어떤 책이 있는지 보고, 다시 정리해서 집어넣고 있었어요. 이렇게 보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일이 상당히 크고 귀찮아요. 힘도 들구요.
"이사할 때 책을 잘 분류해서 집어넣었어야 했는데..."
예전에 이삿짐을 꾸릴 때였어요. 그때 책을 마구 집어넣었어요. 계속 미루다가 막판에 몰아서 이삿짐을 꾸렸어요. 그래서 계획 없이 그냥 쓸어담듯 담았고, 그나마도 크기 맞춘다고 이것저것 섞였어요. 그때는 완전히 책을 안 볼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넣고 이사가자마자 전부 다 뜯을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정작 이사 와서는 생각이 바뀌어서 몇 년을 그대로 방치했었어요.
전에 한 번 책 박스를 뜯었었지만, 이번에 또 책박스를 열고 책을 정리하고 버릴 책을 골라내었어요. 올해 구입한 책들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 그만큼은 버릴 생각이었어요. 책 박스 속에 있는 책 중 안 보는 책도 많고, 더 이상 아예 필요하지 않은 책들도 많이 있었거든요. 그런 책은 굳이 계속 박스 안에 놔둘 이유가 없었어요. 이러다 또 나중에 이사갈 때 몰아서 하려고 하면 상당히 힘들거든요. 버릴 책은 미리 골라서 또 버려야 했어요.
그렇게 책 박스를 계속 열고 책을 꺼내고 정리하고 버릴 책 골라내는 작업을 하는 중이었어요.
"이 책 어떻게 하지?"
책 박스에서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크어 초급 교재 Marhamat - Uzbek Coursebook for Beginners 책이 나왔어요.
"이거 필요 없잖아. 그냥 버려야겠다."
제가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크어 초급 교재 Marhamat - Uzbek Coursebook for Beginners 책을 다시 볼 일은 아예 없을 거였어요. 아무리 우즈베크어를 사용하지 않은 지 워낙 오래되어서 많이 잊어버렸다고 해도 이 교재 수준까지 잊어버릴 일은 절대 없었어요. 이 교재 수준까지 잊어버린다면 그건 정말 큰일난 거구요. 그쯤 가면 기억상실, 치매를 의심해야 할 거였어요.
그래서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크어 초급 교재 Marhamat - Uzbek Coursebook for Beginners를 버리는 책으로 분류했어요. 그리고 박스를 쭉 정리하던 중이었어요.
'이게 나의 첫 우즈베크어 교재였잖아.'
생각해보니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크어 초급 교재 Marhamat - Uzbek Coursebook for Beginners는 저의 첫 우즈베크어 교재였어요. 정확히 첫 우즈베크어 교재는 아니에요. 그 전에 친구가 선물로 사준 우즈베크어 교재가 하나 있기는 했어요. 하지만 그 책은 제대로 보지 않았고, 정말로 제대로 학습하고 배우며 본 교재는 바로 이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크어 초급 교재 Marhamat - Uzbek Coursebook for Beginners 였어요. 이 책으로 저의 우즈베크어 공부가 시작되었어요. 그러니 제 인생에서는 상당히 큰 의미가 있는 책이었어요.
"이건 그래도 놔둬야겠다."
제 개인적으로 상당히 엄청나게 큰 의미가 있는 책이기 때문에 이 책은 버리지 않기로 했어요.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크어 초급 교재 Marhamat - Uzbek Coursebook for Beginners 는 이렇게 생겼어요.
제가 갖고 있는 Marhamat - Uzbek Coursebook for Beginners 은 제본판이에요. 타슈켄트에서 2002년에 인쇄된 책이에요.
'이 책은 어느 대학교 부설 어학원에서 사용한 교재일까?'
책을 보며 궁금해졌어요. 이 책도 아마 어느 대학교의 부설 어학원 우즈베크어 과정에서 사용한 책일 거에요. 어느 대학교의 부설 어학원 우즈베크어 교재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왠지 거기도 제본해서 사용하고 있었을 거 같았어요.
지금은 인터넷으로 보면 엄청나게 달라졌어요. 하지만 제가 우즈베키스탄에서 1년간 체류하며 우즈베크어를 공부했던 2012년 당시에는 우즈베키스탄이 그랬어요. 우즈베키스탄 수도인 타슈켄트에 서점이 별로 없었어요. 서점 가도 책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희안한 것은 책은 엄청나게 많이 발행한다는 거였어요.
책은 엄청나게 발행하는데 그 책들은 대체 어디 있는가?
우즈베키스탄에 가기 전만 해도 우즈베키스탄 책이 워낙 많고 다양해서 우즈베키스탄에는 교보문고급 서점이 있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막상 가보니 서점이 다 작았어요. 신간이 출시되었다고 방송에도 나오는데 그 신간은 어디 있는지 찾아볼 수 없었어요. 당시 이 현실을 전혀 못 받아들여서 몇 달을 타슈켄트에서 대형 서점을 찾아 돌아다녔었어요.
그 당시에는 헌책방 중 상당히 책이 많은 헌책방들이 몇 곳 있었고, 이 헌책방에 있는 책들은 타슈켄트에서 크다는 서점보다 훨씬 더 많았어요. 귀한 서적, 신간 다 있었어요.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이 세계적인 서적 강국이었어요. 그리고 책은 제본하는 게 당연한 거였구요.
이 책은 목차가 앞에 있어요.
그리고 앞부분에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와 키릴 문자가 있어요. 이 둘은 매우 잘 알고 있어야 해요. 라틴 문자도 중요하고, 키릴 문자도 중요해요.
하지만 우즈베크어 교재를 구할 때는 키릴 문자로 된 것을 구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아요. 가장 큰 이유는 지문 내용이에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서적을 라틴 문자로 출판한 지는 상당히 오래 되었어요. 그렇다 보니 키릴 문자로 된 우즈베크어 교재는 지문에서 너무 소련 냄새가 많이 나요. 지문에 나오는 화폐 금액 단위도 제가 우즈베키스탄 있었던 2012년 기준으로 봐도 너무 낮았어요.
그러니 우즈베크어 교재를 구할 때는 라틴 문자로 된 것을 구하고, 키릴 문자만 따로 익히는 게 좋아요.
삽화는 위와 같은 스타일이에요.
'이건 소련 지역 공통 스타일 아냐?'
우즈베키스탄 뿐만이 아니라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 교재를 봐도 오래된 것은 이런 디자인과 스타일 삽화가 많아요. 이로 미루어봤을 때, 이건 소련 지역 공통 스타일이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지문도 있어요.
이 책의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문법은 a olmoq - '~를 할 수 있다' 표현이에요. 이 형태는 상당히 많이 써요. 반드시 알아야 하는 문법이에요. 단, 축약형은 없어요.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크어 초급 교재 Marhamat - Uzbek Coursebook for Beginners 의 전체적인 난이도는 매우 낮아요. 간단히 제한적인 일상생활 - 여행 회화 수준이라고 보면 되요. 문법, 어휘 모두 매우 기초적이에요.
즉, 이 책은 완벽히 입문자용 서적이에요. 매우 쉬워요. 혼자서 독학도 가능한 수준이에요.
예전에 이 책으로 처음 우즈베크어를 공부할 때, 제게 가르쳐주시는 분께서 이 정도는 우즈베키스탄으로 우즈베크어 어학연수 가면 한 달이면 다 배운다고 하시곤 하셨어요.
그 말이 맞았습니다
한 달? 아마 한 달도 안 걸릴 거에요. 어학원 커리큘럼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어학연수 초기에는 하루 종일 우즈베크어만 공부해요. 게다가 주5일로 공부하잖아요. 그러면 진짜 한 달도 안 걸려요.
특히 한국인은 우즈베크어를 매우 빠르게 배워요. 우즈베크어는 한국인이 배우기에 제일 쉬운 외국어에요. 냉정히 이야기해서 일본어와 우즈베크어 중 한국인이 배우기에 어떤 언어가 더 쉽냐고 물어본다면 대답하기 어려워요. 일본어가 한국어와 매우 비슷해서 한국인이 배우기에 가장 쉬운 외국어이기는 한데, 우즈베크어도 만만찮아요. 게다가 우즈베크어는 문법이 다른 튀르크어족 언어들에 비해 더 단순화되어서 상당히 규칙적이에요. 튀르크어족 언어 공부할 때 머리 아프게 하는 요소들이 거의 없어요. 일본어는 한자를 얼마나 잘 아는지에 따라 난이도가 다르구요.
우즈베키스탄 갈 때 이 책을 가져가지는 않았어요. 만약 그때 가져갔다면 이 책을 보면서 웃었을 거에요. 한국에서 이 책으로 우즈베크어를 배울 때는 정말 어렵고 진도 쫓아가기에 바빴거든요.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가서 어학원에서 우즈베크어를 배우기 시작하자 이 정도는 순식간에 끝났어요. 그나마도 문법은 진짜 금방 다 익혔고, 어휘 외우는 데에 시간이 조금 많이 걸려서 한달이었어요.
제게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크어 초급 교재 Marhamat - Uzbek Coursebook for Beginners 는 추억의 책이에요. 다시 볼 일은 없겠지만, 버리는 일도 없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