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바람은 남서쪽으로 (2014)

바람은 남서쪽으로 - 34 베트남 하노이 깃발탑, 베트남 군사 역사 박물관

좀좀이 2025. 4. 1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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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 탕롱 황성을 다 보고 나왔어요. 이제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바로 옆에 있는 하노이 깃발탑 뿐이었어요. 호아루 수용소 감옥 박물관으로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애매했어요. 거기도 4시면 문을 닫을 텐데 4시까지 한 시간 채 안 남아 있었어요.

 

 

탕롱 황성을 뒤로 하고 하노이 깃발탑을 향해 걸어갔어요.

 

 

별 감흥이 없다.

 

베트남 하노이 탕롱 황성을 뒤로 하고 하노이 깃발탑으로 걸어가며 딱히 별 감정이 없었어요. 조금 더 둘러보고 싶은데 시간에 쫓겨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어요. 볼 만큼 다 봤고, 매우 잘 봤어요.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모두 들어가봤고, 사진도 여러 장 찍었어요. 그래서 아쉬울 것이 없었어요. 탕롱 황성에 더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이 정도 돌아다니고 봤으면 충분했어요.

 

'밋밋한 하루네.'

 

베트남 하노이 탕롱 황성은 기분을 더욱 흥분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정되게 만들었어요. 이날은 날씨도 매우 흐렸어요. 비가 내리지는 않고 있었지만, 비가 언제든 내리기 시작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하늘이었어요. 이러니 더욱 밋밋하게 느껴졌어요.

 

'그래도 여기 하루 더 있고 싶다.'

 

베트남 하노이 탕롱 황성은 솔직히 재미없었지만, 하노이 자체는 재미있었어요. 베트남 하노이를 돌아다니며 하루 더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유적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돌아다니고 베트남 하노이 길거리를 구경하고 싶었어요. 이건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베트남 하노이 탕롱 황성은 건물 내부가 너무 휑하고 황성 내부에 딱히 크게 예쁜 장소가 없어서 별로 볼 게 없어서 인상적일 것이 없었지만, 베트남 하노이 길거리 풍경은 달랐어요. 당장 온갖 선전 포스터만 구경해도 신기하고 너무 재미있었어요.

 

베트남 하노이를 하루 더 구경하고 싶기는 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었어요. 그렇게 고민하다 보니 어느덧 하노이 깃발탑 앞까지 도착했어요.

 

 

하노이 깃발탑 앞에 도착했을 때는 2014년 12월 24일 오후 3시 26분이었어요. 하노이 깃발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어요.

 

"여기는 입장료 따로 내야 해요."

"예? 황궁 표 샀는데요?"

 

직원분께 탕롱 황궁 표를 보여드렸어요.

 

"여기는 베트남 군사 역사 박물관 표가 있어야 입장할 수 있어요."

 

직원분은 하노이 깃발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베트남 군사 역사 박물관 표가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하노이 깃발탑이 탕롱 황성의 일부였지만, 그것은 옛날 이야기였어요. 하노이 깃발탑은 현재 베트남 군사 역사 박물관 안에 있었어요. 탕롱 황성이 아니라 베트남 군사 역사 박물관의 일부였어요.

 

베트남 군사 역사 박물관 입장료는 4만동이었어요. 여기에 카메라 촬영비는 3만동이었어요. 짐을 입구에 맡겨야 들어갈 수 있었어요.

 

'에이, 그냥 보자.'

 

다른 곳 갈 시간도 없었어요. 4만동이면 대충 2천원이었어요. 베트남 동 환율을 고려하면 베트남 동은 뒤의 0 하나를 지우고 2로 나누면 대충 원화와 맞먹거든요. 카메라 촬영비까지 합쳐야 7만동 - 3500원 정도였어요. 이 정도는 그냥 내고 들어가기로 했어요. 여기 아니면 이제 갈 곳도 없었어요. 탕롱 수상인형극장 공연은 저녁 6시 30분이었어요. 그때까지 길거리를 계속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입장료와 카메라 촬영비를 지불하고 하노이 깃발탑 안으로 들어갔어요.

 

 

하노이 깃발탑은 정상까지는 못 올라가요. 2층 누각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어요.

 

 

하노이 깃발탑은 응우옌 왕조 지롱 황제 집권 시절인 1805년에 건설이 시작되어서 1812년에 완공되었어요. 높이는 33.4m에요.

 

하노이 깃발탑 위로 올라갔어요.

 

 

 

 

하노이 깃발탑에서 본 주변은 위와 같았어요.

 

이번에는 하노이 깃발탑을 올려다 봤어요.

 

 

'다 봤네.'

 

이것이 전부였어요. 다시 내려왔어요.

 

 

미안합니다.

깃발탑보다 깃발탑 앞에 걸려 있는 포스터가 훨씬 더 인상적입니다.

 

역시 유적은 후에 가서 보는 게 나았어요. 고작 이것 볼 거라면 그냥 지나가면서 보고 지나쳐도 되었어요.

 

이제부터는 베트남 군사 역사 박물관이었어요.

 

 

베트남 전쟁 당시에 북베트남군이 격추시킨 미군 항공기 파편들을 쌓아놓은 조형물이 있었어요.

 

 

온갖 야포가 전시되어 있었어요. 이것들도 아마 베트남 전쟁 당시에 북베트남군이 사용하던 것이었을 거에요.

 

베트남 군사 역사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어요.

 

 

"자돌폭뢰!"

 

베트남 군사 역사 박물관에는 자돌폭뢰가 전시되어 있었어요. 자돌폭뢰는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개발한 대전차 무기에요. 나무로 된 긴 막대 앞에 달려 있는 깔때기 무양의 쇳덩어리가 바로 성형작약탄이에요. 고깔 모양 앞에는 침 3개가 있어요. 이 침 3개가 바로 충격신관이에요. 자돌폭뢰로 전차를 찍으면 충격신관이 작동하며 성형작약탄이 폭발하며 전차를 파괴해요.

 

자돌폭뢰는 사람이 들고 전차를 찍어야 작동하는 무기이기 때문에 자폭 무기에요. 이론적으로는 자돌폭뢰를 전차에 찍어서 폭파시킨 후 군인이 생존하고 도망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이에요. 먼저 전차를 관통하는 폭발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후폭풍도 감당해야 할 뿐더러, 폭발 후에 도망치는 군인을 얌전히 놔둘 군인들이 없어요. 전차가 혼자 고립되어서 포위되거나 혼자 돌격한 상황이 아니라면 무사히 도망칠 방법이 사실상 없어요.

 

더욱이 자돌폭뢰는 사람이 전차 바로 옆까지 가서 전차를 찔러야 하기 때문에 실제 사용하기도 매우 어려워요. 저 긴 막대기를 들고 전차 옆으로 다가가면 그걸 가만히 놔둘 군대가 어디 있어요. 오는 거 보고 진작에 다 죽여버렸죠.

 

그래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이 자돌폭뢰로 미군에게 입힌 피해는 거의 없다고 해요. 하지만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에게 점령당했던 역사가 있는 베트남은 이후 프랑스와의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자돌폭뢰를 자체적으로 양산했고, 나름의 전공도 세웠다고 해요.

 

재미있는 점은 당시 베트남이 양산한 자돌폭뢰는 품질이 안 좋았던 일본의 자돌폭뢰보다도 성능이 더 미약해서 사용 후 생환하는 일도 여럿 있었다고 해요.

 

 

"땅굴 모형이다!"

 

모형 위에는 베트남어로 MÔ HÌNH ĐỊA ĐẠO CỦ CHI 라고 적혀 있었어요. 베트남어로 mô hình은 모형이라는 말이에요. địa đạo 는 길이라는 뜻이에요. địa đạo는 땅굴이라는 의미에요. 여기에서 địa đạo는 한자로 地道를 베트남어로 읽은 거에요. 한국어로 직역하면 '땅길'이지만, 베트남어에서는 땅굴이에요. CỦ CHI 는 지명이구요. 그 유명한 꾸찌 땅굴 모형이었어요.

 

 

꾸찌 땅굴 모형을 보면 가운데에 함정도 있었어요.

 

 

꾸찌 땅굴 모형 윗부분은 위와 같이 생겼어요. 땅굴에서 나온 베트콩들이 미군 탱크와 싸우고 있는 모습이었어요.

 

 

이것은 남베트남 사이공 및 인접 지역 모형이었어요. 전시 작전 모형 같은 거였어요.

 

 

외부에는 탱크가 전시되어 있었어요.

 

 

이것은 옛날 베트남인들이 전쟁하던 모습 모형이었어요. 칼과 활을 들고 싸우고 있었어요.

 

 

계속 구경했어요.

 

 

이건 인도차이나 전쟁 및 베트남 전쟁 당시에 이렇게 물자를 자전거에 실어서 운반했다고 보여주는 전시물이었어요.

 

 

이런 부비트랩 모형도 있었어요.

 

 

자돌폭뢰병 모형!

 

자돌폭뢰병 동상도 있었어요.

 

 

 

"여기가 황궁보다 훨씬 재미있어!"

 

역시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 역사가 최고의 관광상품이에요. 당시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매우 괴롭고 끔찍한 시기였겠지만, 후손들에게는 베트남의 해방부터 통일까지의 역사가 두고두고 자랑할 거리이자 매우 훌륭한 관광 상품이 되었어요. 단순히 해방과 통일이라는 유산만 남긴 게 아니라 이 유산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어서 쏠쏠한 수입원이 되고 있어요.

 

물론 다른 나라들도 전쟁 다 겪어봤고, 군사 기념관 같은 것이 있는 나라도 많아요. 하지만 유독 베트남 전쟁이 매우 인상적이에요.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다룬 영화를 보면 하나같이 매우 독특하고 특유의 흡입력이 있어요. '베트남 전쟁'이라는 소재 자체가 갖는 흡입력이 존재해요.

 

제 생각에 이런 이유는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 사람들이 별별 창의적인 방법을 다 동원했고, 심지어 원시적인 방법까지 총동원해서 싸웠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여러 전쟁물이 있지만 모두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다룬 작품에 비해 크게 독특하지 못해요.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를 보면 단순히 정글이라는 점 때문이 아니라 원시적인 방법까지 총동원해서 싸우는 베트남인들 때문에 전장 자체가 매우 비현실적이고 심지어 판타지 같은 느낌마저 있어요. 베트남 사람들이 정말 처절하게 싸웠고, 여기에서 원시적인 방법까지 총동원했는데 이 원시적인 방법이 또 나름 효과적으로 먹혔기 때문에 더욱 기묘하고 빠져들어요.

 

베트남 군사 역사 박물관이 베트남 하노이 탕롱 황궁보다 훨씬 재미있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베트남 군사 역사 박물관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베트남 전쟁이었어요. 만약 대부분이 고대 시절이고 베트남 전쟁을 조금만 다뤘다면 매우 재미없었을 거였어요. 하지만 인도차이나 전쟁과 베트남 전쟁이 가장 비중이 높고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재미있었어요.

 

'중월분쟁은 안 보이네?'

 

베트남 군사 역사 박물관 전시물을 쭉 보다가 중국-베트남 전쟁은 없는 걸 알았어요. 1979년에 발생한 중국-베트남 전쟁은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전쟁이에요. 베트남이 크메르 루즈 치하의 캄보디아와 전쟁이 발생해서 주력군이 모두 캄보디아에 투입된 상황에서 중국이 크메르 루즈를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베트남을 침공했어요. 중국의 정예 군대와 베트남의 비주력 군대 및 민병대와 맞붙은 전쟁인데 중국이 패배했어요. 축구로 비유하면 A급 국가대표 2군도 아니고 3군, 4군쯤 되는 팀한테 패배한 일이에요.

 

당시 베트남은 아무리 비주력 군대에 민병대라고 해도 실전 경험이 매우 풍부한 데다, 미군에 비하면 중국군은 허접하기 그지 없어서 감당할 수 있었다고 해요. 물론 베트남도 위기이기는 했지만, 캄보디아로 진격한 주력 부대들을 베트남 본토로 되돌리지 않아도 되었어요.

 

이게 얼마나 중국에게 충격적인 일이었냐면, 중국에서 인해전술 대신에 군대의 질을 높여야한다고 방향을 틀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또한 베트남에게는 전쟁의 20세기 마지막 전쟁이었고, 중국마저 꺾은 전쟁이었어요. 이 전쟁을 통해 베트남은 다시 한 번 열강의 무덤임을 증명했어요.

 

하지만 중국-베트남 전쟁은 베트남 군사 역사 박물관에서 보이지 않았어요. 예전에 양국 모두 중국-베트남 전쟁은 그다지 언급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었어요. 중국은 어떻게 보면 최악의 망신이라 당연히 언급하고 싶어하지 않고, 베트남도 바로 이웃한 중국을 굳이 쓸 데 없이 또 자극하고 싶지 않아서 이 전쟁은 잘 언급하지 않는다고 했었어요. 진짜 그런 거 같았어요.

 

베트남 군사 역사 박물관 관람을 재미있게 마치고 밖으로 나왔어요.

 

 

거리에는 오토바이가 가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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